대중음악 문화와 추억에 빠진 ‘음악 프로그램’ 다시 보기
'추억'이라는 스스로의 덫, 경계해야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헌식(codess) 기자
최근에 추억속의 음악과 가수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KBS <콘서트 7080>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중심에 있는 70-80세대가 “추억의 음악 상품”에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음악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인지,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막연히 과거에 대한 공유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단지 추억의 음악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 자체만의 매력 이전에 대중음악 문화와 음악 프로그램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서 비롯한다. 특히 방송의 음악프로그램들이 가진 문제점들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생긴다.
추억 속의 가수와 가요들이 주로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들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 원인과 문제점들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대중음악의 본질적인 속성부터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음악의 성격과 방송의 가요 프로그램
1)대중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성격
대중음악에는 그동안 많은 비판할 점이 있어 왔고 이러한 점이 대중들을 음악에서 소외시켜오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이론가중 대표주자였던 아도르노는 “대중음악에 대하여(on popular Music)”에서 세 가지 비판을 하고 있다. 즉 규격화, 수동화, 폐쇄성이다.
먼저, 대중음악이 규격화 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어떤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상업적으로 고갈이 될 때까지 사용된다. 그리고는 이러한 규격화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유사 개별화(Pseudo individualization)"를 이룬다. 약간만 다르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수동적인 음악의 소비를 추구하게 한다. 음악에 안주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도록 한다. 능동적인 움직임보다는 그 음악 속에 빠져버리게 한다. 세 번째 음악이 사회적인 접착제 역할을 해서 사회의 기존 가치관이나 질서를 옹호하는 데만 머문다.
이런 점들은 대중음악이 상업성을 가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상품 자본주의적 성격과 버무려지면서 다양한 음악장르에 대한 향유를 방해해 왔다.
2)음악 프로그램은 제대로 역할을 해왔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대중음악은 많은 이들의 사랑의 받으며 삶의 희망을 주어온 것도 사실이다. 힘들 때면 힘을 주고 기쁠 때는 기쁨을 북돋워 주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음악은 ‘대중’과 ‘음악’의 합성어이듯 대중이 공유하는 음악인데 한국의 대중음악이 실제 대중에게 공유되는 음악이었는지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특히 대중음악이 방송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한 대중음악의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3)음악 프로그램들의 문제점
이럴 때 방송을 중심으로 한 가요 프로그램들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텔레비전 대중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1) 10대 취향 위주의 기형적인 음악 시장의 형성에 더 역할을 했다. (2) 이 때문에 감각적인 내용의 사랑과 연애를 다룬 노래들이 주류를 이룬다. 즉 10대 위주의 편협한 장르의 음악만을 보여주어 왔다. (3) 이 과정에서 방송사는 시청률 지상주의만을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기에 이른다.
이러한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결국 다양한 세대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다양한 가요 문화가 생산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없앤다. 그래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문화적 요구를 차단하기 때문에 문화 민주주의와 훼손된다고 는 비판이 있어 왔다. 많은 사람들의 가요 향유권이 박탈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5)음악 생산 구조와 연결된 문제
이런 방송의 문제점은 비단 방송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가요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연결이 되어 있다. 대형 물량 중심의 음반 제작,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일부 몇몇의 독점, 기획 상품이 되어버린 가수와 음악에 따른 아티스트 부재, 그리고 이 때문에 실력 있는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의 부재라는 악순환의 연결로 더욱 대중과 음악을 멀어지게 해왔다.
6)방송의 중요성과 시청자들의 권리
방송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점은 시청자들이 '다양한 음악'을 즐길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품질의 음악프로그램을 공급하지 못해 왔다. 음악을 성장, 발전시키는데 있어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하는 방송이 오히려 이를 후퇴시켜온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을 음악에서 소외시켜온 점이 크다.
이러한 소외는 방송에서 다른 방식의 음악프로그램들을 성장시키는 토양이 되어온 게 사실이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들
1)대표적인 프로그램들
대중음악 프로그램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일찍부터 만들어 왔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에는 KBS <가요무대>, <열린 음악회>, <윤도현의 러브레터>, MBC<수요예술무대>, <가요 콘서트>, 그리고 최근에 화제가 된 KBS <콘서트 70-80>등이 있다. SBS가 상대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에는 약한 것을 볼 수 있다.
2)선호되는 이유 몇 가지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장수 프로그램들인데 선호되는 이유를 좀 더 정리하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10대 위주의 가요프로그램에서 소외된 세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2)여기에 제법 다양한 장르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또한 방송은 항상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감각적인 음악만 다루기 쉬운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들을 접할 수 있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갖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3)몇 가지 문제점들
각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경우에는 20대의 취향에 맞추어져 있다. 또한 <가요무대>의 경우에는 50대 이상의 취향에 맞는 노래가 나온다. 또한 <가요콘서트>는 주로 트로트 가요에 한정 된다. <수요예술무대>도 20대 위주이면서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색채가 강하다. <열린 음악회>의 경우에는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다루다 보니 음악과 노래들이 밋밋하고 그 범위가 자연스럽게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가요무대>의 경우에는 완전히 과거 속의 노래만을 부른다. 이러한 재판 형식이 최근에 선보여 주목을 받은 <콘서트 7080>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세대만 젊어진 것이다. 자기색깔을 갖는다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의 덫이 될 수 있다.
4)<가요무대>의 젊은 버전 <콘서트 7080>
물론 <추억의 콘서트 70-80>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이런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을 거꾸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세대나누기 가르기가 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386세대와 475세대, 즉 40대이면서 70년대 학번의 50년대 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30-40대 ‘대중가요 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7-8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들과 노래들을 주로 다룰 수밖에 없다.
5)추억이라는 상품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추억이라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이제 추억이나 기억은 하나의 문화상품이 된 지 오래다. 과거의 음식이 인기 메뉴가 되거나 장소가 명소가 되는가 하면 인터넷에는 추억의 불량과자들이 판매되고 <로보트 태권V>같은 추억의 만화 영화가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개그의 주요소재가 되기도 한다. <폭소클럽>의 경우 추억의 상품을 파는 홈쇼핑 꼭지를 다루고 <개그콘서트>의 복학생은 80년대의 다양한 추억거리를 웃음소재로 삼고 있다.
6)추억의 음악이 각광받는 심리
이렇게 추억의 사물과 노래들이 방송에 등장하는 이유를 음악 프로그램에 한정시켜보면 1)시청자들이 수많은 정보와 문화적 혼돈 속에서 과거의 향수를 통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2)추억의 음악 프로그램들은 음악과 가수에 얽인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여유를 가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선호될 수밖에 없다. 일종의 느림의 철학, 느림의 삶이라는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3)먼 과거 속에 사라진 것으로 여겼던 노래와 가수들을 공중파 방송 속에 다시 끌어들이면서 일종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이 있다는 자기 존재의 확인 차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억의 음악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7)추억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품고 있는 독
이러한 프로그램은 여전히 세대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배타적인 자기정체성 찾기에만 머물 경우에는 부정적인 모습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외에 더 자세히 보면 몇 가지를 볼 수 있다.
우선, 문화적인 지제나 퇴행을 낳을 수 있다. 음악을 과거 속에 묶어두기 때문이다. 과거 속의 노래들만 부르게 하는 것은 음악의 발전을 방해한다. 막연하게 과거가 더 좋았다는 식의 향수에만 젖어 있는 사이 음악은 제자리를 맴돌 수 있다.
두 번째, 음악가 혹은 가수들을 이중으로 소외 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수가 과거의 노래만을 부를 수만은 없다. 계속 새로운 작업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소외와 배제가 일어나게 된다.
세 번째, 이대로라면 또 하나의 폐쇄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강한 열정을 가진 소수자의 만드는 폐인 문화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 이면에 품고 있는 “폐쇄성”이라는 단점이 악화 되는 것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다른 세대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인정, 포용하고 반영하여야 한다.
네 번째, 결과적으로 문화의 수용과 반영에서 보이는 한국 대중의 수동적인 경향을 더 악화시킨다. 다양한 실험 정신을 지닌 음악들을 선보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과거의 음악을 다루더라도 지금과 같이 그 음악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과 미래지향적인 의미 부여의 작업이 없는 한 앞으로 음악의 발전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추억을 꺼내어 공유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와 미래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심층적으로 모아져야 한다.
음악적 권리를 위하여-요약과 제언
추억의 음악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음악의 생산과 소비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특히 기획 상품화된 대형 물량 공세에 편승한 10대 중심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많은 이들을 소외시켜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의 음악적인 요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음악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오랜 관행, 즉 대중음악프로그램의 세대별 구별, 전문성, 음악성보다는 오락성, 대중성이 중요한 제작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방송구조로는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일부 에서는 가요를 포함한 음악공영 방송국의 설립 추진을 제기 하기도 한다. 이럴 때 시청률에 관계없이 다양한 음악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음악에 함몰되는 것은 자칫 폐쇄적이면서 퇴행적인 문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시청자들도 추억에만 갇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영역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문화가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