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서양에서 더 인기 높은 우리나무
온대지방에서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겨울이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잠을 잔다. 하지만 몇몇 나무들은 겨울철에도 푸른 잎을 달고 청춘을 뽐내기도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겨울철에 푸른 잎을 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까지 익히는 특별한 나무다.
길이 5-10cm쯤 되는 상록성 푸른 잎은 여느 상록수의 잎과는 다르다. 다른 상록수들처럼 두꺼운 것은 물론이고 그 색깔은 짙푸름을 넘어서 윤이 날 정도이기 때문이다. 구슬처럼 둥근 지름 8-10mm의 열매 또한 그냥 붉은색이 아니다. 어찌나 맑고 짙고 산뜻한 색깔인지 모른다. 온대지방의 식물들이 겨울잠에 빠져드는 계절에 선홍색 열매와 광택 나는 짙푸른 잎을 달고 있으니, 얼마나 돋보이겠는가? 이처럼 호랑가시나무는 세인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나무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자생하는 나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변산반도보다 남쪽에만 분포한다.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자라며, 지역적으로는 제주도나 완도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의 군락은 가장 북쪽의 자생지로서 중요성이 인정되어 천연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변산반도에서 주민들은 이 나무를 ‘호랑이등긁기나무’라고 부른다. 호랑이가 잎에 붙은 억센 가시로 등을 긁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며, 이 이름이 변해서 호랑가시나무가 된 것이라는 그럴듯한 주장도 있다. 완도 등지에서는 ‘호랑이발톱나무’라고 부른다. 한자 이름은 묘아자(猫兒刺)로서 가시를 뜻하는 ‘자(刺)’자와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자가 함께 쓰인 것으로 보아, 이 이름 또한 가시가 고양이 발톱처럼 날카롭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쨌거나 잎에 돋은 거친 가시가 호랑이나 고양이의 발톱이 연상될 정도로 날카롭다는 데서 이름들이 붙여진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한방에서는 구골목(枸骨木)이라 하는데, 이것은 이 나무의 줄기가 개의 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매, 뿌리, 줄기, 잎에 카페인, 사포닌, 탄닌 같은 성분이 들어 있어서 골절, 골다공증, 류머티스 관절염, 요통 등 뼈 질환에 약으로 쓰는 것도 한방 이름과 연관이 있는 듯하여 재미있다. 잎으로 만든 약차인 구골차는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없애준다.
중국에서도 새해를 맞이할 때 사찰이나 공회당을 장식하는 나무로 이용하였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호랑가시나무는 원산지인 우리나라나 중국보다 서양에서 더욱 인기가 높은 것 같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용 식물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무로 꼽힌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호랑가시나무의 잎이 억센 가시를 많이 가졌으면 그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강해지고, 가시가 부드럽거나 없으면 어머니의 발언권이 세게 된다는 속설도 있다. 크리스마스카드에서 볼 수 있는 푸른 잎과 붉은 열매를 가진 나무도 바로 이 호랑가시나무다.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호랑가시나무를 태양에 의해 결코 마르지 않는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왔다. 온대 낙엽수림대에서 겨울에 홀로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 목 박힐 때 썼던 관을 장식한 나무가 호랑가시나무였는데, 이때는 열매가 노란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의 피로 붉게 물들어서 열매가 붉게 되었고, 이후로 열매는 붉은 색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처럼 서양인들은 호랑가시나무를 아주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사실은 영어 이름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언어학자들은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인 홀리(holly)가 성스럽다는 뜻의 호울리(holy)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의 호랑가시나무는 일렉스 아퀴폴리움(Ilex aquifolium)이라는 종으로서 우리의 호랑가시나무와는 다른 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빨간 열매는 말려서 옷을 치장하는 데 이용하였다는 호랑가시나무는 미국 토종으로서 일렉스 오파카(I. opaca)라는 종이다. 그런데 현재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원산의 호랑가시나무가 이들보다 더욱 인기다. 키가 작고, 키우기 쉬우며, 열매가 더욱 화려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호랑가시나무에서 로툰다(Lotunda), 카리사(Carissa), 버포디(Burfordii), 니들포인트(Needlepoint) 등의 품종이 개발되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사진 설명)
1. 호랑가시나무는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 자라는 감탕나무과의 상록 떨기나무로서 윤기가 나는 푸른 잎과 함께 겨울에 익는 빨간 열매가 매력적인 식물이다. 원산지는 우리나라와 중국이지만 미국과 유럽으로 건너가 크리스마스 장식용이나 울타리 등의 조경용 나무로서 인기가 매우 높다.
2. 꽃은 4-5월에 우윳빛으로 피어 향기를 풍기지만 잎과 열매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작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잎은 타원형으로 각이 져서 육각형처럼 되기도 하며, 각이 진 모서리에는 끝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는다. 이 가시로 호랑이가 등을 긁는다고 하여 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