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ine, the Sequel
그녀는 항상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과연 이번에도 테니스 코트를 평정할 수 있을까?
작년 5월 말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쥐스틴 에넹(벨기에)이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가장 많이 들어올렸던 롤랑 가로스에 ‘쥐스틴 에넹 길(Justine Henin alley)’ 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가진 행사에 근 1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 행사에서 복귀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선수 생활 시절보다 머리색도 밝아지고 한층 더 우아한 모습으로 나타난 에넹은 자선 행사와 ‘평범함’에서 얻은 만족감과 자아 의식에 대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저와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복귀하는 선수들은 아마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 당시 막 복귀를 선언했던 킴 클리스터스(벨기에)를 두고 한 말이었다. “은퇴하고 나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 해요.”
테니스에 마침표는 없다 에넹 본인은 복귀 의사가 없음을 밝혔지만, ESPN의 테니스 분석가 팸 슈라이버는 그녀의 은퇴가 일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에넹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테니스 인생에 ‘느낌표’나 ‘확고한 마침표’를 찍지 않는 이상 테니스계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찾는 것이 워낙 힘든 일이죠. 전 에넹이 그렇게 확고한 마음으로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슈라이버의 ‘예언’대로 에넹은 결국 롤랑 가로스에 모습을 드러낸 지 불과 두 달 만인 2009년 7월 중순에 선수 생활 복귀를 결심했다. 그리고 클리스터스가 US오픈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복귀한 지 일주일이 지난 두 달 후, 그녀는 공식적으로 16개월 간의 짧은 은퇴 기간을 접고 복귀를 선언했다.
에넹은 복귀 후 세 번째로 출전한 대회에서 US오픈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던 벨기에 출신인 클리스터스의 복귀가 자신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그녀와 비슷한 복귀 노선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라켓을 놓은 지 20개월 만인 1월에 에넹은 브리즈번(호주)에서 결승에 진출해 클리스터스에게 지기 전까지 접전을 펼쳤던 3세트 동안 매치 포인트를 두 번이나 따냈다. 2주 후에는 호주오픈 결승 진출을 위해 투지를 불살랐다. 그녀는 세계 5위의 엘레나 데멘티에바를 극적으로 2세트의 접전 끝에 눌렀고 (후에 에넹은 “이런 경기를 다시 경험해보고 싶어서 돌아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8강에 오르기까지 알리사 클레이바노바와 야니나 위크마이어를 3세트에 걸쳐 어렵게 이겼다. 클리스터스가 3라운드에서 만난 나디아 페트로바에게 맥을 못 추리고 일찍 패하는 동안 에넹은 전매특허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테니스를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상대 선수가 자멸할 때까지 끈질기게 경기를 이어가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집념을 보였다.
첫 주가 그렇게 힘들게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에넹은 페트로바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를 펼친 끝에 2세트 만에 승리를 거두고 4강에서 만난 정지에를 51분만에 보기 좋게 깔아뭉갰다. 그랜드슬램에 출전한 지 2년이 흐른 시점에서 27세의 에넹은 또 한번 그렇게 그랜드슬램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비록 세레나 윌리엄스에게 3세트에 걸쳐 패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호주오픈 역사상 와일드 카드로 출전한 선수로는 최고의 성적을 냈다. 여기에 준우승자로서 밝힌 우아한 소감까지 더해져, 에넹은 아멜리 모레스모(프랑스)를 상대로 경기를 펼치다 2세트에서 위통으로 기권했던 2006년 호주오픈 결승전에서의 나쁜 기억을 마침내 지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초반부터 어려운 경기가 많았어요.” 미국 데이비스 컵 주장인 패트릭 맥켄로는 말한다. “하지만 그 경기들을 이긴 다음부터는 결승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정신적인 면에서 에넹은 늘 준비되어 있었고, 그녀가 이처럼 성공하기기까지 정신력이 크게 작용했던 건 사실이에요.”
윔블던 우승컵을 위해 에넹은 로저 페더러가 2009년 프랑스오픈의 우승으로 캐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 그녀가 우승컵을 따내지 못한 단 하나의 그랜드슬램인 윔블던 대회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게 만들게 했으며 이로 인해 복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보다 그녀의 복귀를 더 부추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고난 경쟁심이었다. 에넹이 말하기를, “테니스는 항상 제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것이 사라지고 나니까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윔블던이 분명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테니스를 아끼는 마음과 제 경쟁심이 다시 돌아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에넹은 멜버른에서 거듭 예전과 달리 경기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그녀가 감정적으로 달라진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에넹이 테니스를 더 즐기게 되었고 플레이도 더 공격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맥켄로의 말이다. “전 그녀가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분명히 봤어요. 하지만 경기를 즐기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전 그녀가 아직도 걱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슈라이버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한다. “그녀는 마치 길고 험난한 길을 다시 걷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녀가 경직된 얼굴로 코치 카를로스 로드리게즈를 얼마나 자주 올려다보았는데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제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옛날과 똑같았어요.” 그녀는 겉모습은 예전 그대로의 쥐스틴일지 몰라도 기술은 더 많아졌다. 여전히 경쟁심도 강하고 현직 선수들 중 가장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에넹은 호주오픈에서 네트를 향해 자주 달려가서 165번의 네트 플레이에서 무려 117차례나 포인트를 따냈다. 71%라는 상당히 높은 성공 확률을 보인 셈이다. 에넹은 이런 공격적인 플레이를 위해 서브를 넣는 자세에도 변화를 주었다. 서브에 속도감을 더해 체격이 더 좋은 선수들을 상대하고 윔블던에서의 우승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윔블던에서 아홉 차례나 우승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체코/미국)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에넹은 못 치는 샷도 없고, 코트에서 무턱대고 전진하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포인트를 만들어나갈 줄도 알고, 상대 선수를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때에만 네트로 뛰어가 발리샷을 시도하죠. 그녀는 늘 이런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코트에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변함없는 우승 후보 이에 못지 않게 놀라운 점은 에넹이 경기 중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네트 플레이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요한 순간에 경기를 끝내려고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라고 맥켄로는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향상된 경기력이 윔블던에서의 우승 가능성을 현저하게 높여줄 지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 않다. 코트가 느려지고 에넹이 (아직 갈고 닦아야 하는) 새로운 서브를 익히고 포핸드 백스윙도 짧게 바뀌었어도 말이다. “에넹을 우승 후보로 꼽을 순 없어요. 우승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아요” 라고 맥켄로는 말한다. “세레나와 비너스가 서브도 더 강하고, 체격이 더 좋은 만큼 스트로크도 더 강하죠. 윌리엄스 자매가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면, 에넹이 둘 중 누구와 붙더라도 이기기 힘들 걸요.” 에넹은 윔블던에서 2001년과 2006년 모두 준결승에 그쳤지만, 이반 렌들처럼 우승에 집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전 계속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칠 거에요. 윔블던에서 성공할 것만을 염두에 두진 않을 거예요” 라고 에넹은 말한다. 그러나 에넹이 윔블던 우승컵인 비너스 로즈워터 디쉬 (Venus Rosewater Dish)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역사상 캐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열 번째 여자 선수로 등극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녀가 말한 대로 ‘테니스 없이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려고 코트를 떠났던 경험을 발판 삼아 역사적인 기록을 수립하게 될 것이다. “테니스계를 떠나 있는 동안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여행도 하고 아카데미에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재단에서 일도 했거든요” 라고 에넹은 말한다. “경쟁과 테니스가 그립기는 했지만 전 다른 대상에 열정을 쏟아 부었어요.” 슈라이버는 에넹이 그녀가 2년 전에 은퇴한 이유로 대회를 준비하려는 열정이 식은 점을 꼽았다. “세계 1위의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그랜드슬램 대회를 목전에 두고 왜 은퇴를 선언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때마다 전 이해가 안 갔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건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아마도 정신적으로 준비가 안 되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왜냐하면 그녀는 다른 어떤 챔피언 선수들보다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을 혐오했거든요.”
(To be conti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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