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고속도로
이번에는 유럽의 고속도로와 자동차 관련 이야기입니다. 올해부터 Euro 사용과 더불어 EC 국가간 국경이 완전히 open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차를 몰고 벨기에 인접국인 독일을 갈 때 국경에 초소가 철거 되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국경을 통과했는지도 모르게 “달려 오던 동일한 속도로” 국경을 통과합니다. 140 km/h 속도로 벨기에/독일 국경을 통과할 때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유럽의 주요 고속도로는 E40, E314 처럼 숫자 앞에 E 자를 붙이고 있습니다. E자가 붙은 도로는 유럽 전체 지도를 놓고 이름을 붙인 도로입니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주요 고속도로인 E40 은 영국이 건너다 보이는 프랑스 서북부 해안에서부터 시작해서 벨기에, 독일, 동구권까지 연결된 도로이며, 국경이 바뀌어도 도로 번호가 동일합니다. E40 을 달리다 보면, E40 밑에 조그맣게 A10 처럼 A 번호가 동시에 써 있기도 하는데, 이는 각 국가에서 기존에 붙인 고속도로 번호입니다. 따라서 E40 고속도로에서 프랑스에서는 A1, 벨기에에서는 A10, 독일에서는 A4, 동구권 어느 나라에서는 또 뭐… 하는 식으로 E40 밑에 조그맣게 A 번호가 써져 있습니다.
또한 이들 도로에서는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에서는 130 km/h 정도의 속도 제한이 있습니다. 130 km/h 면 너무 고속이라고 여길 지 모르나, 유럽의 고속도로는 차선 폭이 우리나라보다 더 넓고, 곡선 구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130 km/h 로 달려도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100 km/h 정도의 속도감을 느낍니다.
벤츠, BMW, 아우디 같은 차들은 여기서도 고급차지만, 실제 유럽에는 이들 고급 차 보다는 폭스바겐, 오펠(Opel), 르노 등의 유럽산 차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간혹 미국의 포드, 일제 차, 한국 차들이 보입니다. 특이한 것은 미국 차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합니다. 한국 차 중에서 대우 차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며, 여기 사람들은 대우 자동차 같은 좋은 회사가 왜 부도가 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저의 차는 미쓰비시의 Space Runner 라는 6살짜리, 10만 km, No option (No 에어컨, No 라디오, 스틱) 중고차입니다. 그렇다고 고물차는 아닙니다. 당시에 800 만원이나 주고 샀고, 겉 모습도 깨끗하고, 엔진 소리도 조용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약 1만 km 를 주행했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말썽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자동차 검사 (출고 후 4년 이후부터는 매년 받아야 함)를 받았는데 문제없이 15분 만에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에는 자동차 회사도 많고, 자동차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차 값이 쌀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중고차 포함 모든 차 값이 우리나라의 약 1.5 배 정도 됩니다. 세금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대우의 조그만 차 마티즈 새 차인 경우 수동, 에어컨 없이 약 850 만원 정도 합니다).
비가 자주 와서 공기가 깨끗한 점도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차를 열심히 잘 관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6년 중고차인데도 본넷트를 열어보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합니다. 벨기에는 더운 날이라야 7월말에 반짝 2주 동안 30도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차들이 대부분입니다. 작년 여름을 지내보니까 차에 에어컨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라디오는 어차피 화란어나 불어를 모르니까 필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고속도로 이야기를 하면 독일의 무제한 고속도로를 먼저 떠올리고,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곳이라는 선입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벨기에는 경상도 만한 조그만 나라라서 벨기에 저희 집에서 동쪽에 있는 독일 국경까지는 40분 정도면 도착하고, 독일 서부 지방의 주요 도시 (아헨, 쾰른, 뒤셀도르프, 본)는 1~2시간 만에 도착합니다. 이들 도시에는 한국 수퍼도 많고, 이제 동일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한나절 생활권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의 고속도로는 특별한 표시가 없으면 무제한 도로이고, 무슨 사정이 있을 때만 130, 90 처럼 속도 제한 숫자가 나타납니다. 비록 무제한 구간일지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자동차의 분수(?)를 알고 130-140 km/h 정도로 차분하게 달리며 물결 흐르듯이 앞 차만 따라가면 우리나라보다 운전하기가 편합니다.
독일의 고속도로의 가장 큰 특징은 1차선으로 계속 달리는 차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라도 1차선은 철저히 추월 목적으로만 사용하지 “감히” 자기가 독차지해서 달리지는 않습니다. “감히”라고 표현한 이유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밑에서 “총 쏘는” 강자가 또 있기 때문입니다.
총 쏘는 자들 때문에 1차선으로 추월을 해야 할 때는 신경을 좀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편도 3차선 도로의 제일 바깥 3차선에서 130 km/h로 달리다가 애매한 속도의 차량 부대를 만나서 2차선도 아니고 1차선으로 추월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데, 이 때는 1차선 먼 시야에서 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저 멀리 1차선에 차가 보일 때 추월을 시도하다가는 추월하는 도중에 어느새 제 차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는 차를 보게 됩니다. 이런 차는 십중 팔구는 180~200 km/h 정도로 달리는 BMW, 벤츠, 아우디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이들 차들이 뒤에서 빵빵 거리거나 번쩍번쩍 하는 경우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뒤에 “바짝 붙여서” 따라만 옵니다. 길을 비켜 달라는 소리입니다. 좌우간, 이렇게 무섭게 달리는 차들도 추월만 끝내면 언제 나타날 지 모르는 큰 형님을 위해 다시 2차선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한편, 독일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체 고속도로가 사실상 속도 제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고속도로에 교통순경이나 레이더 카메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벨기에 고속도로에서 속도 위반을 단속하는 경찰을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여기에 있는 각 나라의 유럽 녀석들에게 물어 보아도 각 나라마다 고속도로에서 속도 위반을 단속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사고가 나면, 철저히 조사해서 속도 위반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따진다고 합니다.
아무튼 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고속도로에서 정해진 안전 속도를 절대 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02. 0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