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 독일의 이름,수도,접경국,인구,면적
독일(獨逸, Deutschland (영)Germany) 공식 이름은 독일연방공화국(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 Bundesrepublik Deutschalnd). 유럽대륙의 주요 천연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유럽 중북부에 있는 국가. 공식 수도는 베를린이다. 알프스 산맥 외곽 능선으로부터 북쪽으로 독일중앙고원의 여러 지역과 북독일평야를 가로질러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발트해 ,덴마크, 북해, 서쪽으로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프랑스, 남쪽으로 스위스,오스트리아, 동쪽으로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와 접경한다. 면적:357,042km², 인구 79,070,000(1990).
2) 자연 환경
남북 최대 거리는 북위 47 ~ 55도 사이의 약 850km이고 , 독일 중심부를 가로지는 동서 최대 거리는 동경 6 ~ 15도 사이의 약 640km이다. 동서로 접한 이웃 국가들처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지형학적 특징을 보인다. 지리학적으로 북독일평야,독일중앙고원, 남부산악지방 등 3지역으로 구분된다.
독일의 북쪽 1/3 정도를 차지하는 북독일평야는 북쪽 해안으로부터 오레 산맥에까지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브레멘 ,함부르크,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이외에도 베를린,작센안할트,브란덴부르크,니더작센 주의 대부분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북서부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빙하시대동안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이 지역은 거대하게 뻗어 있는 해안 평야로부터 완만하게 기복이 진 구릉지대, 수림지, 호수 습지, 황무지 등으로 이어지는 지형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의 평균고도는 해발 100m가 채 되지 않는다.
북부지역은 농업(특히 곡물 재배),낙농,가축사육에 매우 적절하다. 또한 이전에는 철이 많았으나 현재는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같은 조건들은 이곳의 많은 강 및 운하와 결합하여 이 지역의 부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엘베 강과 베져 강이 내륙 해항인 함푸르크와 브레멘을 통과하여 흐르며, 유럽 최대의 내륙수로인 라인 강은 인구가 밀집되고 고도로 공업화된 루르 지방에서 바다로 나가는 통로가 된다.
흔히 독일중앙고원으로 알려진 독일의 1/3에 해당하는 중부지역은 삼림이 우거진 산마루의 저지대, 강유역, 고원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 지형을 보인다. 이 지역은 헤센,라인란트팔츠,자를란트,튀링겐,작센주의 전부 또는 대부분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니더작센,작센안할트, 브란덴부르크주의 남쪽 부분들을 포함한다. 이곳은 독일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면서 번창한 공업지대인 헤센 남부의 라인-마인 지역 일부와 인구가 희박한 오지의 일부도 포함한다. 이 지역에서는 목재가 중요한 자원이며, 비교적 최근의 지질연대에 발생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구역은 중요한 광물 공급원이다. 이 지역 안의 골짜기에서는 곡물이 재배되고, 기후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는 포도주용 포도가 재배된다. 그외 다른 구역에서는 풍부한 수력전기가 공급되고, 수상, 철도, 도로 교통이 편리해 광산업, 제조업, 가공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남쪽의 남부산악지방은 사실상 쥐라 산계의북동 연장부이다. 마인 강에 의해 독일 중앙고원으로부터 분리된 이 지역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바이에른 주의 대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마인 강과 네카어 강 유역으로 둘러싸인 부분은 낮은 구릉, 대지, 골짜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풍부한 농업지대이며, 또한 비교적 고립되어 있어 보존이 잘된 옛 도시들이 많다.
남부산악지방의 대부분은 쥐라 산맥 최북단의 2개 지맥으로 형성되어 있다. 서쪽 지맥은 그곳을 덮고 있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거무스름하게 보여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로 흔히 알려져 있다. 동쪽 지맥은 슈바벤 쥐라 산맥과 더 북쪽의 프랑켄쥐라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의 일부에서는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지질층이 뚜렷이 나타난다.
남부산악지방의 가장 동쪽 부분에는 보헤미아 숲과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가 있으며, 독일의 남쪽 국경에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바이에른 알프스 산맥이 있다. 바이에른알프스에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추크슈비체 봉(2,962m)이 있다.
(1) 수계
독일 지형은 북쪽 해안에서 부터 남동부의 바이에른 고원과 알프스 산악지역으로 가면서 고도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강이나 지류들이 북쪽으로 흐르며 라인,엠스,베져,엘베 강 등을 거쳐 북해로 들어간다. 폴란드와의 국경 대부분을 이루는 오데르 강과 그 지류인 나이세 강은 북쪽으로 흘러 폴란드를 통과하여 발트 해로 들어간다. 바이에흔 지방으로 흐르는 강들은 동쪽을 향해 흐르는 도나우 강과 합류한다.
독일에는 비교적 호수가 없는 편이다. 북동지방의 후빙기 저지대에 형성된 얕은 호수들에 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 이 지역의 가장 큰 천연호수는 빙하퇴적물물이 쌓여 이루어진 바히젤에 있는 뮈리츠 호(112km²)이다. 몇몇 작은 호수들이 니더작센 주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산재해 있고, 나머지는 오버바이에른의 가장 남동쪽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호수들의 주변경관은 두드러지게 아름답다. 독일 최대 호수로 최장길이가 64km나 되는 콘스탄츠 호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도 걸쳐 있다.
(2)토양
경작이 가능한 토지에서는 대부분 농작물을 재배하지만 매우 비옥한 따은 비교적 적다. 대규모의 곡물 생산이 부적절한 땅은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토양은 대부분 모래와 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와 서부 일부지역은 황토, 최북단과 최남단은 점토와 습지로 덮여 있다.
(3)기후
위도상 상당히 북쪽에 위치하고 영토의 대부분이 대서양에 있는 따뜻한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대체로 온대기후의 혜택을 입고 있다. 혹독한 취위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는 드물며 강우량이 풍부하여 농작물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서유럽 전역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독일의 기후도 멕시코 만류에서 발생해 서쪽으로 흐르는 따뜻한 해양성기후가 유럽 북동부로부터 이동해오는 매우 찬 기단과 충돌할 때 갑작스런 날씨 변화를 보인다. 북해와 발트 해를 향한 해안선 때문에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독일 북서부와 저지대는 주로 습하며 알맞은 온도를 갖춘 대기의 영향을 받는데, 이 대기는 편서풍을 타고 북해로부터 내륙쪽으로 옮겨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대기는 적당히 따뜻한 여름과 온난한 겨울 날씨를 누릴 수 있게 하지만 높은 습도, 긴 장마철, 서늘한 계절에 안개가 끼는 등의 나쁜 점도 동반한다. 유라시아 내륙을 향해 평야가 펼쳐지는 동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은 감소하고, 가장 따뜻한 달과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차가 커진다. 중부와 남서부 지역의 구릉지대에서는 대륙성기후 때문에 한서의 차이가 보다 뚜렷해지고, 남동부 고원 및 대지 구역에서는 그 차이가 더 심하다. 산맥에서는 비가 많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서쪽을 향한 비탈에서는 해양성 대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북독일평원에서는 510mm-710mm,독일중앙고원에서는 710mm-1,505mm, 알프스 산악지역에서는 1,989mm가 넘는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은 북부 저지대에서는 -3 ~ 1°로 변화하며, 고원지역에서는 고도에 따라 -6°까지 떨어진다. 7월 평균기온은 16-19°에 이르며 깊숙한 강 골짜기에서는 기온이 약간 더 상승한다.
(4)동,식물
중부유럽을 가로질러 대략 남북으로 자리잡은 형태인 독일의 동,식물군은 주변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빙하작용을 받은 저지대는 원래 오크나무,보리수나무,너도밤나무,자작나무 등의 혼합낙엽수림으로 주로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이 나무들 중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만이 북독일평야 일부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튀링겐 분지의 가장자리에 있을 뿐이며 오크나무는 별로 없다. 이들 원시림의 벌목 후, 독일은 체계적 재식림에 앞장섰으나, 대부분 전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 등을 비롯해 빨리 성장하는 침엽수를 심어 지금은 침엽수가 모든 종류의 낙엽수보다 수적으로 크게 우세하다. 과거 사회주의권이었던 독일동부와 이웃 국가들에서 규제되지 않은 채 수십 년에 걸쳐 방출된 산업공해로 인해 삼림자원이 심하게 손상되었다.
사과,배,복숭아,버찌,서양자두,살구,마르벨로 등의 과실수와 호두나무,밤나무,개암나무가 널리 분포한다. 그러나 포도나무처럼 이 나무들도 서부와 남서부 지역에서 가장 무성하게 자란다. 딸기,블루베리, 검은나무딸기,난출월귤,알이 잘고 씨가 없는 건포도가 모든 지역의 삼림과 초원에 풍부하다.
산재한 부락이 있을 뿐이 거대한 삼림구역과 산악지형 때문에 인구가 밀집되고 고도로 발달된 이 나라에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사슴,야생수퇘지, 산토끼,꿩 등과 알프스 산맥지역의 샤므와,알프스아이백 등 사냥용 동물이 대부분의 지역에 많이 있는데, 엄격한 사냥법으로 이 동물들을 보호하여 그 수를 유지하고 있다. 야생 곰과 늑대는 멸종되었으나 스라소니,말코손바닥사슴,삵쾡이는 전호ㅜ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긴털족제비, 담비, 족제비, 해리, 오소리, 희귀한 수달과 삵쾡이등은 모두 토종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파충류로는 도룡뇽,무족도마뱀 등을 비롯 여러 종류의 도마뱀과 뱀 등이 있는데, 이 중 독이 있는 것은 북살무사뿐이다. 흰황새, 가마우지,부엉이, 물수리 등은 거의 사멸되었으나 검독수리와 왜가리는 그 수가 늘었다.
3) 국민
독일어를 쓰는 민족은 민족적 기원이나 정치, 문화적 유산 면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1871년 최초로 통일된 독일 국가인 독일제국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방언을 가진 언어, 약간의 문화적 유사성,혼란한 정치적 제휴등으로 매우 느슨하게 결속된 형태에 불과했다. 이때에는 어떤 의미로든 독립 국가의 지위 혹은 국민적 의식을 형성할 만한 동족간의 결속 정도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어서 분명히 프랑스나 영국 같은 형태의 단일민족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의 독일은 대체로 독일제국의 핵심이었던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와 카롤링거 왕조 하의 동프랑크 왕국의 영토 대부분을 포함하지만 민족적,언어적 하위구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경계선을 초월하게 된다.
로마 시대와 중세 초기부터 6개의 주요 독일 민족집단이 역사적으로 각각의 지역을 고수해왔다. 이 6개의 민족에는 남서부의 바덴,슈바벤 지역의 알마만족, 남부의 바이에른족(티롤족이 지파로 속함), 중부의 오버프랑크족, 현재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니더프랑크족, 현재의 튀링겐,작센,작센알한트 주의 작센족, 유틀란트 해안 근처의 섬들과 니더작센 주의 프리지아인 등이 있다. 9세기에 서쪽의 식민지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민족집단은 메클렌부르크족,오버작센족, 발트 해 독일인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수민족집단은 중세 초기 이래 독일 서부에 거주해온 유대인과 엘베 강 동쪽의 식민지화된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슬라브인, 그리고 17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여 독일 땅으로 들어오게 된 위그노들이다.
비교적 근대에 독일로 들어온 소수민족집단으로는 폴란드인, 10월 혁명 후에 이민온 러시아인, 동유럽으로부터 온 수많은 '난민',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발칸인,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계 민족 등이 포함된다. 또한 수백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 실질적으로 비독일계 소수민족집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남부 유럽 국가들과 터키 출신의 이민노동자들로 현재 독일 전체인구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다. 동독에서는 공식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영구 이민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표면상 교육 및 훈련 목적으로 약 9만 명의 노동자가 베트남 , 앙골라, 쿠바, 모잠비크 등지에서 입국했다.
(1)언어
독일의 방언 구분은 한때 각 방언들이 시사했던 민족적,문화적 구별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대중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방언간의 차이가 표준화,균일화되고, 독일에서의 국내 이동과 함께 잘 교육받고 사회적 지위 이동이 빠른 젊은 계층에서 '사투리 어조가 없는'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도 각 방언은 지금가지 계속 남아 있다. 현재 방언들은 농촌지역 인구와 도시의 토박이 거주자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표준 독일어는 기원으로 바아 일종의 혼종어로서, 중부와남부 지역에서 상요되는 방언요소에서 파생되었으면서 북부 독일 지역에서 우세한 방언들의 음성적 특성을 갖고 있다. 표준 독일어의 발음은 사실 사람들이 임의로 절충하여 쓰게 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다.
주요 3가지 방언지역은 북독일평야, 독일중앙고원, 남부산악지방 등으로 분류되는 주요 지형학적 지역과 거의 동일하다. 각 지역의 방언은 북족으로부터 순서대로 저지 독일어, 중앙 독일어, 고지 독일어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다시 수많은 지역 방언들로 세분된다.
(2)종교
인구 중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교도의 수가 거의 같다. 라인란트와 바이에른 주에서는 압도적으로 로마 가톨릭이 우세하고 북부는 대부분이 프로테스탄트이다.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들도 약간 있다.
4)경제
세계 최대 경제강국 중의 하나이다. 1980년대 후반에 서독은 국민총생산(GNP)면에서 세계 4위를 기록했으며, GNP의 1/3을 수출했다. 1990년에 이루어진 동독과의 통일은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가져왔지만, 유례엾는 성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져다주었다.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서부와 역동적이지 못한 중앙경제체제의 동부지역 간에 경제발전의 격차에서 생긴 불평등으로 , 통일일 이루어지면서 동부에서 민영화의 대가로 상당한 실업이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는 등의 대혼란이 야기되었다. 독일민주공화국 정부에 의해 몰수되었던 토지와 재산의 소유권 문제해결이 1990년대 초엽에 시작되었다. 독일연방공화국 경제의 힘은 주로 제조업에서 나온다. 독일 경제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이나 실질적으로는 시장에서의 정부,기업경영자, 노동자,금융의 역할에 대해 명백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이다.
정부는 독일 경제에 있어 주로 조절기능을 한다. 국가는 경제와 사회에 필수적이지만 이익을 내지 않는 상품 및 서비스 부문에만 직접적으로 관여하는데, 특히 수송, 우편, 전기통신, 무연탄광업, 농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정부는 세금과 기부금으로 재원을 충당해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 관리하는데 , 여기에는 건강보호, 실직-장애 보상, 출산-양육비 보조, 직업재훈련, 연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연방정부 외의 경제계획기관으로는 독립적인 독일연방은행, 고용주협회, 노동조합 등이 있다. 경제정책위원회는 연방정부의 경제, 재부 각료들, 각 주 정부의 대표 1명, 자치체들의 대표들 등으로 구성되며, 연방 은행이 참여하는 가운데 통일된 금융정책을 마련한다. 비슷한 구성의 지정계획위원회는 연방, 주, 지방 등의 재정정책들을 조정한다. 정부 차원에서의 모든 주요수입원은 세금이다. 연방정부가 총수입의 반이 약간 안되는 몫을 가지며, 그 나머지를 주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사용한다. 소득세,법인세,일반거래세,원유세,관세 등 5종류의 세금이 총세입의 4/5를 차지한다.
(1)자원
비교적 천연자원이 적은 편이며, 따라서 주요공업국가로서 우너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해야만 한다. 자체 수요량에는 충분한 무연탄과 갈탄이 있다. 무연탄은 주로 Rhein-Ruhr 지방과 자를란트 주에 매장 되어 있고, 갈탄은 하르츠 산지와 쾰른 근처, 할레와 라이프치히 주변, 폴란드와의 국경을 따라 발견된다.
동독은 통일 직전에 세계 최대 갈탄 생산국이었으며, 갈탄을 연료로 많이 사용한 것이 동독지역에 심각한 공해문제를 야기 시킨 주요요인이 되었다. 서독에서는 주요 에너지원으로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사용을 늘임으로써 석탄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경제성이 높은 다른 광물자원으로는 하르츠 산지 북부와 남부에서 얻어지는 암염과 칼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옥의 에르츠게리르게에 매장된 우라늄 원광은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채굴되었다. 건설업에 필요한 광물진은 풍부하다. 도시화, 공업화되고 오염된 동부에서는 용수 공급이 어려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주요 댐과 저수지는 남부와 서부의 고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북부의 모래가 많은 융빙유수퇴적물 지역에서는 샘, 호수, 강 등으로부터 물을 얻는다. 약간의 석유, 천연가스 매장지가 주로 북해 연안을 따라, 특히 네덜란드와의 북서 국경지역에 있는 엠슬란트에 있다. 국내 원유생산량은 독일 수요량의 소량만을 공급할 수 있는 반면, 천연가스는 전체 필요량의 1/3을 공급한다. 부족한 양은 네덜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등에서 수입한다. 석탄을 연료로 쓰는 화력, 원자력, 수력발전소 등이 전기를 공급한다.
(2)농업
농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서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발달되었다. 통일 이전의 서독은 기본적으로 가족농가지역이었다. 동독에서는 분단 후 활발하게 토지개혁제도가 진행되면서 대토지들이 나누어지거나 국영농장으로 편입되었고, 1950년대 강제로 소농들을 집단화하여 농업협동체를 만들었다. 농업생산은 점차 매우 큰 규모의 전문화된 단위로 집중되었다. 1990년 독일 분단이 종식된 후로 농업협동체는 해체되기 시작했고, 토지의 사유재산권이 복구되었다.
비옥한 지역에서의 주요농작물은 밀, 보리, 옥수수, 사탕무 등이다. 북부의 융빙유수퇴적물 평야와 고원지역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옥수수, 호밀, 구리, 녹색 사료, 감자 등이 자란다. 가축으로는 돼지, 소, 양, 말, 오리, 기타 가금류 등이 있다. 주요 낙농지역은 북해안 저지대와 바이에른에 있다. 전통적 농작물 특산지로는 과일이 생산되는 포츠담 근처의 하펠 호수 지역, 할레 지방, 튀링겐과 녹색 채소가 자라는 슈프레발트의 이탄질 토양이 있다. 드레스덴 근처의 엘베강 골짜기언덕 경사면에서도 포도주용 포도가 생산되지만 포도원은 주로 서부, 특히 라인, 모젤, 마인, 네카어 강들의 골짜기와 그 근처에 있다.
(3)산업
경제력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산업은 자동차 생산, 기계-전기공학, 전기, 화학, 식품가공 등이다.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산업으로 우주항공, 정밀공학, 광학, 시계제조 등이 있고 관광업도 중요하다.
모든 산업체의 반 정도가 고용인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이다. 서독의 산업체 중 아주 작은 비율만이 고용인 500명 이상의 규모가 큰 업체이며, 이들은 광산, 철강, 석유가공, 자동차 제조부문의 업체들이다. 주요 생산품으로는 것은 석유제품, 강철 주괴-주형 제품, 압연강철, 선철, 시멘트, 석탄-석유 가스, 화학약품-수지-플라스틱, 비료, 자동차-철도기관차-차량-선박, 가전제품, 합성-면-모 섬유와 직물, 기계류-수공구-섬유기계-농기구-건축장비-엘리베이터, 시계류-카메라-전자제품 등이 있다. 통일이 되면서 동독은 전통적 주연료인 갈탄의 사용과 중공업에서 기인한 심각한 공해문제뿐만 아니라 공업 설비와 장비가 심각하게 노후 되었음이 드러났다.
(4)금융
은행 체계는 민간 상업은행들에 의해 보완되는 중앙은행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 있는 독일연방은행은 지폐를 발행하고, 지폐와 동전의 통화량을 조절하며, 여신공급을 규제한다. 이 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이지만, 연방정부의 일반적인 정책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수백 개가 되는 민간 상업은행은 규모가 큰 '3대 은행'인 도이치은행,드레스드터은행,코레르츠은행에 의해 주도된다. 상업은행들은 산업체, 정부 지방 당국들에게 장기 금융을 제공하며 주식을 판다. 독일 민간은행들은 공업 부문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5)무역
1986년 독일은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주요 무역국의 위치를 차지했다. 크게는 미국 달러의 가치가 갑작스럽게 떨어졌기 때문이지만 독일 경제가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1950년대 이후로 무역흑자를 기록해왔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수출액이 150% 이상 증가했다. 가장 중요한 무역상대국은 유럽 공동체의 회원국들이고 그 다음이 미국이다. 수입은 네덜란드,프랑스,이탈리아,영국,벨기에,룩셈부르크,미국 등으로부터 대부분이 이루어지고 수출은 주로 프량스,미국,네덜란드,영국,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스위스,오스트리아,스웨덴,일본 및 동유럽 국가 등으로 한다. 러시아 역시 중요한 무역상대국이다.
(6)운송
유럽 각지를 이어주는 교차로에 위치한 주요공업국으로서 광범위한 운송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괴되었던 자동차고속도로망은 1950년대 초부터 확장-개량되기 시작해, 1990년에는 총길이가 8,000km 이상 되었다. 철도 교통은 도이치라이히스반(Deutsch-reichsbahn)에 의해 제공되며, 보완적으로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몇몇 휴양지 철도노선이 있다. 수로 역시 독일 경제에 필수적인데, 항행가능한 수로 6,720km 중 약 2/3가 강이며, 나머지는 주로 운하이다. 국영항곡회사는 사업용 항공산업의 초기 주자인 루프트한자(Lufthansa)항공사이고, 주요공항은 베를린, 본-쾰른, 뮌헨, 뒤셀도르프, 함부르크, 라이크치히 등이 있다.
정부의 구조와 권한은 기본법(Grungesetz)에서 나온다. 이 법은 서방 점령국들의 군사 정부가 당시의 서독이 독일연방공화국을 형성하는 것을 공식 승인한 후, 지방 의회들이 연방 결성에 동의하여 1949년 5월 23일 서명-공포되었다. 완전한 주권의 확정은 1955년 5월 5일에 이루어졌다. 기본법의 23조는 동부지역의 궁극적 합병과 통일독일의 회복을 규정했는데, 1990년 10월 3일 통일이 실현되었다.
국가의 공식 수반은 특별히 소집된 의회에 의해 선출되는 5년 임기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독일연방의 총리와 총리가 선임한 내각을 임명하는데, 총리의 권고를 받아 내각을 해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연방총리나 연방의회(하원)는 해산시킬 수 없다. 집권 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며, 대통령이 지명하면 연방하원의 과반수 표결로 선출된다. 총리에게는 상당한 독립적 권한이 부여되며, 정부 정책을 주도한다. 총리는 연방 하원 과반수 찬성으로 그의 승계자 선출이 확실시되어야만 역시 연방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해임될 수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불안정을 피하기 위한 보호장치로 시행된 이 '건설적인 불신임투표' 때문에 총리나 그의 정부가 물러나게 되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료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대부분 연방의회 의원이며, 여당이나 여당과 연합한 정당들로부터 그 구성 비율에 따라 선임된다. 하지만 총리는 특정한 기술분야에서 정당과 무관한 사람을 지명할 수도 있다. 내각부처에는 외교정책, 재무, 국방, 내무, 법무, 통상, 체신(우체국-전화-전조-일부 방송업무), 청소년-가정-여성-보건, 경제협력, 교육-과학, 노동-사회문제, 지역계획-건축-도시개발 등이 있다.
정부체제의 초석인 연방하원은 1990년의 통일과 독일 총선에 이어 의원수가 약 600명(약간 변동이 있을 수 있음)으로 확대되었다. 이 중 144명은 동독 영토에서 선출된다. 연방하원 의원들은 4년마다 열리는 총선이나 혹은 특별한 중간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각 구에서 선출되는 의원 외에도 지방 전체를 대표하는 의원이 동시에 선출되는데, 이는 하원에서 주요당들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국가-주-정당-일반 유권자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후자의 기능을 위해 주 저체 대표하원의원은 지역선거구 법령에 의한 엄격한 대표제에 내ㅐ한 지방색 경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연방하원은 연방평의회(상원)보다 훨씬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연방상원에서는 주들이 자체적으로 그들의 권리와 특전을 보호하기 위해 권한을 행사한다. 상원의원들은 주 정부들에 의해 임명되는데, 각 주는 크기와 인구에 따라 3~5명의 의원을 임멍하게 된다. 이들 의원단은 출신지방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만 한다. 모든 법률은 하원에서 제정되며, 상원의 동의가 필요한 경우는 특히 재정-행정분야의 입법과 같이 각 주들의 이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사안이나 기본법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국한된다. 상원은 하원이 통과시킨 입법안을 거부함으로써 제약을 가할 수도 있으나, 그 법령이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면 하원의반수 동의로 상원의 표결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이 장기간 해외에 나가 부재중이거나 또는 대통령직에어 물러날 경우에는 상원 의장이 그 권한을 위임받는다.
(1)주-시 정부
법집행과 교육의 기능은 명백히 주들이 담당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주들간의 일관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위한 시도로 공동협의기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주에는 주정부 수반이 자체적인 장관들로 구성된 내각을 이끌며, 독자적 의회 기구를 갖는다. 그러나 함부르크-브레멘-베를린 등과 같이 시가 곧 주인 곳에서는 시장은 주정부 수반, 자치시의 상원은 주의회, 시 관료들은 주장관의 성격을 갖는다.
(2)연방-주 법원
법원조직은 모든 예심법원과 상고법원이 주법원이라는 점에서 미국 같은 나라의 연방법원 조직과 다르다. 주가 독점적으로 통제권을 같는 법률 영역이 있기도 하지만 모든 법원은 연방 차원에서 제정된 법률에 근거한 소송을 심리할 수 있다. 주 법원에 의해 국법이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연방법원이 보장한다. 최고법원인 연방법원을 포함하여 민사,형사 소송을 일반적으로 관할하는 법원들 외에도, 행정,노동,사회보장,세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관할하는 4개의 법원 조직이 있다. 예를 들어 3단계로 이루어진 행정법원은 다른 전문법원이 관할권을 갖지 않는 한 비헌법적인 성격의 모든 민사소송을 관할한다.
모든 법원이 그 환할권 내에서의 정부 조치와 법령의 합헌성을 검토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으나 카를스루에에 있는 연방헌법재판소만이 법령의 위헌 여부를 판결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법원들이 어떤 법령이 위헌임을 발견하면 소송절차를 일시 정지시키고 합헌성 여부를 결정짓도록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출해야만 한다. 중대한 형사소송의 경우에는 예심법원에 재심원과 비슷한 역할을 한느 6명의 평민법관들이 배석된다. 미리 정해진 명단에서 추첨에 의해 선택된 이들 평민법관은 전문법관들과 공동으로 모든 죄와 벌의 문제를 결정한다. 또한 평민법관들은 형사문제에 관련되지 않은 재판에 참여하기도 한다.
1970년에 선거권 취득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추어졌다. 국민은 대중매체의 집중적 보도를 통해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게 되며 투표권행사가 강제된 것은 아니나 투표율은 대단히 높다.
(3)정당
정당들은 한때 엄청나게 확산되어 1933년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초래했지만 연방공화국의 초창기 이래로 점차 농합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군소 정당들은 더 큰 정당들과 제휴하거나 중요성을 갖지 못하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통일 독일에는 사실상 2개의 대정당인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있을 분이다. 1966년이래 독일연방공화구의 모든 행정부들은 소정당들과 연합해야만 집구너이 가능했는데, 이 때 연정을 이룬 소정당은 대개 자유민주당이었다. 특정 선거에서 최소한 투표의 5%를 얻기만 하면 그 정당이 대표의원을 연방하원 혹을 지방의회에 보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5% 원칙'은 모든 조유의 과격파를 배제시키고 분리파의 형성을 막는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이다. 반대의견은 당 자체 내의 파벌과 분파 내에서 해결된다. 1970년대 후반 환경주의자들의 정당인 녹색당이 결성, 급속히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4)군대
독일은 자국 영토 내에 나토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고 주도적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연방무장 병력이라고 알려진 통합방위군을 가짐으로써 서방방위 체제에 기여하고 있다. 유럽 내 나토군의 최대 분견대를 이루는 이 무장병력은 육군-해군-공군으로 나뉜다. 창설 때부터 이 병력은 '시민의' 바위군으로 구상되어 연방상원을 통한 민간통제하에 놓여 있고 장교들과 군인들은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군대의 역할에 유념하도록 훈련된다. 남자는 누가나 징집대상이며 군인으로서의 의무는 18세에 시작하여 35세에 끝난다. 양심적인 징집반대자는 대신 20개월간의 행정사무를 선택할 수도 있다.
독일 통일을 위한 준비로 1990년 7월 러시아와 독일연방공화국 간에 체결된 조약은 양국이 3-4년의 기간에 걸쳐 동독 영토로부터 소련군을 철수시키도록 준비하며 독일은 이에 따르는 비용지원을 규정했다. 이에 따라 철군이 진행되는 동안 베를린에 주둔한 연합군을 제외하고 외국의 나토군이 독일 영토 내에 주둔할 수 없게 되었다. 통일 독일의 잠재적 군사력에 대한 국내외적인 우려를 고려하여 정부에서는 4년 후 독일의 지상군-공군-히군 등의 총병력수가 37만 명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5)치안
전국적 규모의 독일 경찰군은 없으며 치안은 주 고유의 영역이다. 각 주는 시의 경찰대가 맡은 기능을 제외하고는 집행의 모든 면을 담당하는 자체병력을 유지한다. 국가비상사태시에는 연방정부에서 민간비상사태시 행동할 수 있도록 각 주가 훈련,준비시켜 놓은 대기 경찰예비대와 함께 주의 여러 경찰단위 기능을 징발할 수도 있다.
한편 연방 관리는 일정한 행위들, 특히 특정 주의 경계를 초월하는 범법행위나 국가 안보에 역행하는 행위를 수사한다. 연방범죄기구는 범죄자와 범법행위를 소탕하는 기구로서 지방 및 시 기구들을 지원한다.
(6)교육
6-8세의 모든 독일인에 대해서는 취학이 무상이자 의무이다. 15-16세의 청소년 대부분은 직업훈련과 시간제 학과수업을 병행한다. 교육 통제는 각 주의 중요한 특권이지만 상설위원회가 교과과정,필수요건,기준 등을 어느 정도 일관되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러한 것의 시행은 각 주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책과 학습자료는 일반적으로 무료이며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재정 지원과 여러 형태의 도움을 받는다.
교육은 많은 개혁안이 도입되고 선택 가능한 사안들도 있지만 아직 전통적인 형태가 우세하다. 처음 4년간은 공통적인 초등학교에 다닌 뒤 3분야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첫째는 추가로 5,6년제의 초등학교에 다닌 뒤 15,16세 때 장사를 하기 위한 견습공이 되거나 특별한 공업 분야의 직업훈련을 받는 것이다. 둘째는 주로 성직,행정,사업 분야의 경력을 준비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셋째는 대학 입학 혹은 높은 지위의 경영인이나 공무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로 장기간의 학문적 훈련을 받는 것이다. 90개 이상의 대학교와 동급의 교육기관들이 있다. 17세기에 폐지되었던 문학석사학위가 부분적으로 부활되었으나 수여되는 학위는 박사학위뿐이다.
(7)보건-복지
사회복지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하고 포괄적인 것에 속한다. 사회보장법령 부문에서 독일의 선구적 작업은 1880년대에 시자되었으며 지금은 의료-사고 보험, 근로자와 고용인에 대한 수당-연금, 광부 보험뿐만 아니라 전쟁미망인-고아-농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제도까지 포함하고 있다. 전시의 부상으로 인한 장애자들에게는 추가로 공공수당이 지급된다. 보건-위생 상태는 세계 최고수준이며, 영아사망률은 낮고 평균수명은 75세이다.
(8)언론
세계 3위의 주요 출판국이다. 출판사는 민간 소유이고 활동이 왕성하다. 출판의 자유가 '기본법'에 보장되어 있고 수백 종의 일간지와 수천 종의 정기간행물이 발행된다. 국내 신문으로는 함부르크와 본의 <<벨트 Die Welt>>-<<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과 국내판 외에도 특별히 국제판을 발행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슈우트가르터 차이퉁 Stuttgarter Zeitung>>, 뮌헨의 <<쥐트도이쳬 차이퉁 S&umm;ddeutsche Zeitung>>-<<프랑크푸르터 룬드샤우 Frankfurt Rundschau>> 등이 최고 수준이다.
다음 수준으로 국내 신문을 대표하는 것은 8개의 지역판을 발행하여 광범위하게 읽히는 타블로이드판 <<빌트 차이퉁 Bild Zeitung>>(함부르크)이 있다. 주간 시사해설지로서 유력한 언론지인 <<슈피겔 Der Spiegel>>은 독일 언론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창간되어 독일연방공화국의 여론을 형성해왔다.
취재 범위가 포괄적이고 기사의어조가 논쟁적인 이 해설지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취재한 특집기사들을 싣는다.
방송매체는 공영과 민영의 이중체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가와 민간 기업을 수입원ㄹ으로 하면서 비교적 독립적이고 자유롭다.
6) 문화
문학 전통은 8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 큰 영향을 미친 초기 설화문학에는 ((니벨룽겐의 노래Nibelungenlide>>(1200-10 경)와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발 Parzival>>(1200-10 경)이 있다. 독일문학의 전성기는 일반적으로 18세기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시대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 기간의 중요한 작가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chen Wolfgang von Goethe),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Jochen Gottfried von Herder),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등을 들 수 있다. 그후의 작가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르투어 슈니츨러,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베르톨트 브레히트, 헤르만 헤세등도 세계 문학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분단 독일에서의 전후문학 역시 중요했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독일 작가 가운데는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야코프 펜츠, 우베 요손, 지크프리트 렌츠, 안나 제거스, 아르놀트 츠바이크, 크리스타 볼프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독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와 작곡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여기에는 바흐 가문, 르트비히 폰베토벤, 요하네스 브람스,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포함된다. 주목할 만한 현대 작곡가는 한스 베르너 헨체,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 카르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이 있다. 베를린 교향악단, 뮌헨 교향악단, 밤베르크 교향관현악단,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단이다. 쿠르트 마주어 지휘하의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라이프치히에 있는 장크트토마스 합창단, 테너 상악가 페터 슈라이어 등은 음악적 탁월함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공연예술에서는 뷔르템베르크 주립극장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세계적으로 돋보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발레단은 남아프리카 태생의 존 크랑코의 지도하에 세계적인 명망을 얻었으며, 1973년 ㅡ가 죽은 후에도 마르시아 하이데의 지도하에서 명성은 계속되었다. 안무가 피나 바우슈에 의한 <<춤의 무대 Tanztheater>> 같은 새로운 형태의 무용이 부퍼탈에서 시작되었다. 함부프크 발레단은 세계 발레의 활기찬 구심점이 되고 있다.
뛰어난 시각예술가들은 15, 16세기의 알브레히트 뒤러, 대 루카스 크라나흐, 홀바인가(가) 등으로부터 독일 표현주의의 화가들(막스 베크만, 게오르크 그로츠 등), 요제프 보이스, 안젤름 키퍼 등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반에 바우하우스 조형학교는 많은 디자인 영역, 특히 건축에 중요한영향을 미쳤다. 발터 그로피우스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헤 같은 바우하우스 출신의 건축가들은 현대적 도시 발달에 있어 세계 전역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 영화 역시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독일의 영화제작소인 유니버섬 영화사(Ufa)는 바이마르공화국(1919 - 33) 시대인 독일 영화의 황금기 동안에 대부분의 영화를 제작했다. 당시 제작된 영화로 큰 감동을 주었던 <<칼리가리 박사의 캐비넷 The Cabinet of Dr.Caligari>>(1919)과 E.W.무르나우, 프리츠 랑, G.W. 파브스트 등의 작품들이 있다. 비교적 영화 제작활동이 정지된 채 오랜 기간이 흐른 후 1960년대 후반에 매우 내관적인 신독일영화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폴커 슐뢴도르프,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베르너 헤르초크,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과 같이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의 작품에서 꽃피었다.
독일에는 수천 개의 박물관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곳으로 뮌헨에 있는 알테('옛')피나코테크-노이에('새')피나코테크-독일박물관,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과 프로이센 문화재단 박물관, 뉘른베르크의 국립 게르만 박물관, 마인츠의 로마게르만 중앙박물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젠켄베르크 자연과학박물관, 슈투트가르트의 주립 화랑 등을 꼽을 수 있다.
독일의 레크리에이션 형태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함께 하는 이중성이 특징이다. 고도로 공업화된 면과는 달리 지금도 옛 축제나 관습들이 로마 가톨릭교와 개신교도 지역 모두에서 광범위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어떤 것은 그 기원이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남부지역에서는 '파싱', 라인란트에서는 '카르네발'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사순절 전의 축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주요한 종교적 축제 외에도 축하행사인 포도주,맥주,수확,사냥 등의 축제와 역사적 축제가 지역별로 풍부하다. 이같이 독일 관습에 깊이 뿌리박은 '민속축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매년 9월에 열리는 뮌헨의 10월 축제(Oktober Fest) 이처럼 국내 축제가 많은데도 독일인들은 세계 어떤 나라의 사람들보다 즐기기 위한 목적의 여행을 많이 한다.
(7)한국과의 관계
1883년 11월 26일 한-독 수호조약 13관과 선후속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과 독일의 공식외교관계는 시작되었다. 1880년대 초반은 조선이 쇄국과 금압정책으로부터 벗어나 서구 열강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던 시기로, 독일은 정치적인 이해보다는 경제적인 요청에 따라 조선과의 유대관계를 진작시켜 나아갔다. 이무렵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이홍장의 추천을 받아 해관 및 외교 고문으로 등용되었고, 1896년 4월 독일무역상사 세창양행이 금성-당현의 광산채굴권을 허가받았으며, 1898년 9월에는 관립덕어학교가 설립되어 j.볼리안이 교사로 초빙되었다. 이러한 한독관계의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1898년 7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친동생 하인리히 대공이 조선을 방문했는데, 그는 구한말의 외교사에 있어서 가장 큰 국빈이었다. 수호 조약 체결 이후 발전되어온 한-독 관계는 을사보호조약(1905)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독일공사관이 폐쇄됨에 따라 단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비공식 교류는 계속 이어져 1927년 영친왕은 유럽 여행길에 힌텐부르크 원수를 접견했고,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했으며 적지 않은 한국학생들이 유학차 독일로 건너갔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서 냉전은 독일과 한국 모두에게 국토분단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1948년 남-북한은 차례로 정부를 수립했고 이듬해 독일에서는 이념이 서로 다른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 민주공화국(동독)이 탄생되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의 통일이 선포되기 이전의 한-독 관계는 분단국가가 가지는 국제정치적인 주건과 제약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11월 동독과 북한이, 1955년 12월 서독과 남한이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경제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 '한-독 경제 회담에 관한 의정서' 등의 채낵과정에서 진전되어온 서독과 한국의 우호관계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방문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1967년 3월에는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4개월이 조금 지난 7월 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거점 북한대남공작단사건'의 전모를 공개했고 양국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어 갔다. 이른바 '동백림'(東白林) 사건의 처리를 둘러싼 한국 정부의 안보우선주의와 서독 정부의 인권문제 중시의 태도는 상당한 긴장과 반목을 야기시켰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켰다. 양국간 의견의 폭이 쉽사리 조혀지지 않자 서독은 정경분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남한의 정치상황에 냉담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1970년 2월 신태환 통일원 장관이 독일을 방문해 동-서독의 분단상과 통일노력을 시찰했으며, 같은해 5월에는 독일의 외무장관 쉘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독 문화협정'과 '부산직업학교 설립에 관한 약정서'에 서명했다. 1972년 11월에는 '한-독 비자면제협정'과 '한-독 재정원조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3,500만 마르크의 차관이 제공되었다. 1986년 전두환 대통령이 , 1989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공식 방문길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29일부터 6월 2일까지는 북한의 김일성이 동독을 방문한 바 있다. 1991년의 대한수출은 34억 1,270만 달러, 수입은 29억 1,020만 달러이며 , 1960년대 초반부터 취업차 건너간 광부,간호원을 포함하여 재독 교민과 체류자의 수는 1991년 6월 현재 각ㄱ가 7,766명과 2,703명이다. 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한-독 관계는 매우 이채롭다. 일찍이 초대 주독명예영사를 지냈으며 홍콩에 상사를 설립하고 1884년 젬루포에 세창양행을 설치한 E.마이어는 상사를 통하여 수집한 한국물품을 1889년 함부르크 산업박람회에 전시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이름이 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분도회 총원장 N.베버의 작품명이며, 같은 분도회 선교사로 1908 - 29년 한국에 머물렀던 A.에카르트는 <<한국어 문법>> ,<<한국 미술사>>,<<한국의 음악>>등을 펴내고 뮌헨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침으로써 독일 내 한국학 연구의 초석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의 독일은 비자의 취득이 없이도 유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체류하며 연구활동을 벌였다. 대개 자연과 학,철학,예술 등을 전공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나 역사를 본격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었으나 유학기간 동안의 생활 속에서 한국문화의 특징적인 국면들을 전해주었음은 충분히 짐작된다. 이미륵의 경우는 특기할 만한데, 1928년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이내 문필활동에 들어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만년에는 한학과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바우어 같은 우수한 동양학자들을 육성하기도 했다. 1946년 출판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sst>> 는 지금도 독일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독일문단의 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