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뒤안길에서
수필가 조 규 훈
어느새 삼월도 중순이다.
앞마당 화단에는 어김없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진돗개 설기군도 땅속에서 올라오는 봄 냄새를
맡느라 코를 벌렁거리며 여기저기 냄새 맡기에 여념이 없다.
화단에 있는 돌 틈에서 상사화 잎파리가 빼꼼히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앙증스럽게 애처롭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대단한데도....
지금쯤 고향땅 뒷산에도 진달래와 할미꽃이 피어 있겠고.도라지와
둥굴레 등도 싹을 틔우고 있겠지! 이렇게 봄이 되면 고향생각이 더
나는 것은 웬일일까?
"고향! 언덕을 넘으면
영혼은 소리되였으리
바다" 가슴에 차오고
산소리. 바람소리"
라며 고향을 노래한 어느 시인이 생각는 계절이다
지난주말 인천송도의 라마다호텔 대공연장에서는 나의초등학교
모교인 방갈초등학교 총동문회 창립총회가 400여 동문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였다.
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향의 모교는 그동안 동문회가 결성
되지 않아 동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긴 세월을 지내왔었다
나도 셀레는 마음으로 참석하여 그동안 말로만 듣고 있던 선.후배
동문들과 반갑게 해후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50여년전!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해방과 6.25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농촌은 하루 세끼를 때우기 어려워 허기지며 살아야
했고.많은 사람들은 하루 한 끼로 겨우 연명하며 살아야했다.
봄이되어 보릿고개를 넘길 때쯤이면 양식이 떨어져 들로 산으로 혹
은 바다로 나가 먹거리 장만에 여념이 없었고. 어떤 사람들은 영양부족
으로 누렇게 부황이 들고 얼굴은 부어있기도 하였다.
내가살던 마을의 어느 아주머니는 출산을 하였는데도 쌀은 고사하고
미역 한 잎 살돈이 없어 이웃들이 쌀과 보리를 조금씩 도와주어 연명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태안에서도 가장 오지에 있던 방갈초등학교에 다니던 때는 이렇게
가난이 극에 달했던 50대 중반이였다.
이때의 학교라고 해야 허름한 단층기와집에 판자로 칸막이를 한 건물
한동과 초가지붕에 흙벽돌로 지은 건물 한 채가 전부였는데 학기 초에
는 서로 기와집 건물에서 공부하려고 난리였다
겨울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떨어야
했고 여름에는 지독한 더위와 싸워야 했다.
그래도 주변의 경관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학교앞으로는 청정한 바닷
물이 넘실거렸고 뒤쪽으로는 한암포와 구레포 해수욕장이 있어 훌륭한
놀이터가 되였으며.소나무가 울창한 국사봉을 배경으로 한 학교는 한 폭
의 동양화 같았다.
이런 곳에서 우리들은 가난하지만 자연을 친구 삼아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웠다.그리고 초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각자 살길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 총동문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경향
각지에 흩어져 한몫을 하던 동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동문회장은 그야
말로 대성황을 이루고 흡사 이상가족 상봉장 같기도 하였다.
그 날 참석하였던 원로선배 동문은 거의 팔순의 나이가 되여 있기도 하였고
젊은 후배들은 30대 후반이였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월은 반세기가 넘어 대다수의
동문들의 얼굴에는 굵은 주름살이 패여있고 머리에는 하야게 서리가 내려
앉아 있었지만 반갑게 만나는 그 마음들은 감동과 감격 그 자체 였다.
사람사는 세상에 만남이 어찌 반갑지 않으리오만은 이렇게 고향에서 같은
학교를 다닌 동문들이 천리타향 객지에서 여는 동문회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두세시간의 행사를 마치고 헤여지는 동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서로 손을 잡고 흔들며 다시 만날것을 기약하였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학교는 초등학교 동문들이 좋다는 것을 확인 한
자리였다.
흘러간 세월의 뒤안길에서 잊혀져 가던 동문들을 만난 감회는 남달랐고
그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견학및 간담회때 나누어준"태안문학"제22집 2009
상반기호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것들 외1
"세월의 뒤안길에서" [옮김] 수필가 조 규 훈 글
2009 년 7월 20일
방갈초교 총동문회 부회장 김 덕 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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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읽어내려오다보니 우리 언니 오빠들의 보습들이 스쳐지나가며 흐르는 노랫소리마져 마음을 쨘~하게하며 다시한번 고향을 떠오르게하는 글귀인것 같네요.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후배님 고향생각이 많이나지요 집앞 마당으로 매일 우리들 학교다녔는데
친구는 옛친구가 좋고 고향은 언제나 엄마 품속처럼 아늑하고 동문이라는 이유하나로 선 후배님들은 가족처럼 따스하고 참 좋으네요. 선배님의 좋은글 많이 부탁 드립니다.
후배님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신세 노래가 생각나요
울 부회장형님에 글을 보면고향 황촌리 육골 시거리 소 풀뜯기러 다니던 신두리백사장 원뚝밑에 보면 황발이들이 춤추던 고향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봄에는삐삐 뽑아먹고 여름이면 깽므르 로 허기를채우던 고향,,,,,형님 보고싶습니다, 건강하세요~~
병래 아우님! 지금도 그 어려웠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같이 생각난다네, 그렇지만 동양화같던 고향의 모습은 지금 많이 없어지고 상업적이고 지꾸 이기적이 되어가는것같아 마음이 허전하다네, 깽무르 라는 말은 잊었었는데 아우때문에 기억이 되살아 나는군, 마음씨 후덕하시던 아주머니께서는 지난 봄엔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까페에서 보았네 늦게라도 명복을 비는 바이네, 언제 상경하는길이 있으면 꼭 들려 주게나, 건강, 행운 기원하네.
열두줄♬♪ 이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율목동 울칭구가 생각이 ....
율목동이면 아 친구들 절골 맞죠
시골의 작은 학교지만 60년의 긴~역사속의 증인들이 한자리 모여 손을잡고 지난 세월을 회고할 수 있었던 '총동문회 창립총회' . 그 가슴벅찬 순간이 감동으로 스칩니다.. / 선배님의 좋은 글, 가슴에 담아갑니다.
김일환 부회장님의 노고와 열정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건투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