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화개장터의 민박집 바로 맞은편 식당에서 희미한 길을 올라간다.(02:57)
안개가 자욱히 껴있고 마을 근처의 야산이다 보니 길찾기가 수월치 않다.
여기도 길같고 저기도 길이고 헤메다 보면 밤에 마신 술냄새만 진동한다.
어제 차일봉과 왕시루봉을 잇는 산행을 끝내고 민박집에서 너무 많이 마신것 같다.
길도 없는 능선을 이리저리 올라가니 노으리님이 여기가 황장산 가는데가 맞기는 하냐며 고개를 갸우뚱 한다.
다행히 표지기들이 아주 간간이 보이기 시작하고 감각으로 어둠속의 등로를 찾아 나선다.
올라가다가 길이 이상하면 다시 빽하고 이러기를 몇번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 무덤가
능선만 따라 올라가니 무덤이 있고 더 올라가 봐도 길은 없다.
표지기가 걸린 우측 길로 내려가니 계곡물소리가 요란해 하산로인줄 알고 다시 빽한다.(05:20)
왔다갔다 하며 무덤가에 앉아 있으니 서서이 동이 트기 시작한다.
다시 계곡쪽으로 내려가 보면 길은 봉우리를 크게 우회하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그냥 표지기만 보고 무심히 올랐으면 30여분이나 헤메지 안 했을텐데 물소리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조금 올라가다 우측의 좋은길로 잠시 내려가니 큰집의 지붕이 보여서 다시 올라 온다.(05:50)
- 삼각점봉우리
능선으로 계속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인데 여기가 촛대봉인지 확실한 판단이 않선다.(06:10)
날은 밝았어도 구름이 많이 껴있어서 주위의 조망이 전혀 되지 않는다.
새껴미재는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친것 같고 조금 내려 가다가 능선 갈림길에서 아침을 먹는다.
누룽지 라면탕에 맥주도 한모금씩 마시니 평소에 빵만 씹어 대던 나로서는 호강인 셈이다.
- 황장산
점차 고도를 높혀가고 제법 높은 봉우리들을 몇개 넘는다.
이제 야산지대는 끝나고 고산같은 면모를 조금씩 보이며 포근하고 한적한 길이 이어진다.
속으로 황장산은 벌써 지났다고 생각할 무렵 봉우리를 좌측으로 길게 우회하는 급경사 바윗길이 나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봉우리 두개를 넘으니 표지기도 몇개 붙어있고 황장산(942.1m)으로 생각되는 봉우리가 나온다.(07:20)
여기는 정성석이나 안내판도 없으며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계속 있어서 구별하기가 꽤 힘들다.
- 삼각점봉우리
오랫만에 무성한 산죽밭을 지난다.
어제 간신히 말려 놓았던 옷은 다시 젖어 버리고 등산화도 질꺽대기 시작하며 웬일인지 새끼발가락 하나가 아파온다.
우측 하산로 한곳을 지나고 봉우리들이 계속 나온다.
간간이 암릉들을 지나며 올라가니 웬 삼각점이 보이는데 이것은 또 무슨 봉우리인지 모르겠다.(08:40)
- 당재
조금 내려가니 또 우측으로 하산로가 있는데 표지기도 한개 붙어 있다.
낮으막한 봉우리들을 넘고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발가락 아픈것도 신경이 쓰이는데 이제는 한쪽 깔창이 꺽여져서 발바닥을 찔러오니 죽을 맛이다.
양말도 갈아신고 거듭 등산화를 벗어서 펴곤 하다가 두터운 양말을 두겹으로 신어보니 좀 괞찮아진다.
완만한 능선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염소방목장의 철망이 있는 당재에 도착한다.(09:51)
단풍님은 식수가 부족하다고 바로 밑의 비닐하우스에서 물을 떠오는데 바닥에 흐르는 물이라니 부유물도 떠 있고 별로 깨끗하지는 않은것 같다.
- 통꼭봉
기대했던 염소는 한마리도 보이지 않고 철망문을 열고 능선으로 붙는다.
입산금지 안내판을 지나면서 급한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피아골의 물소리를 들으며 어느정도 올라 가면 전망대 같은 암봉들이 나오는데 오랫만에 하늘이 트여서 황장산에서 이어지는 능선들이 보이고 옆으로는 웅장한 남부능선이 긴 하늘금을 긋고 있다.
진땀을 흘리며 힘들게 올라오는 노으리님을 보며 농담으로 "힘들면 농평마을로 내려가시라고 해!" 했더니 정말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한다.
계속해서 가파른 길을 한동안 오르면 통꼭봉(904.7m)인데 수림만 우거지고 별 다른 특징은 없다.(10:50)
- 불무장등
이제 평탄하고 좋은 길이 이어진다.
오랫만에 가뿐한 기분으로 속도를 내보며 편해진 발걸음을 즐겨 본다.
한참을 걷다가 높은 봉우리를 우회하면 다시 반듯한 길이 이어지고 서서이 불무장등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산죽지대가 나타나면서 불무장등으로 오르는 힘든 길이 시작된다.
울창한 산죽을 헤치며 급경사 숲길을 한동안 오르면 멋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전망대 절벽이 나오고 피아골 계곡 너머로 왕시루봉이 멋있게 솟아 보인다.
뒤따라 오신 이사벨라님과 한참을 기다려도 단풍님과 노으리님은 오는 기척이 없다.
나중에 들으니 노으리님이 너무 힘들어 해서 실제 농평으로 내려 갔다고 한다.
조금 더 오르면 3주전에 삼도봉에서 당재로 내려 가려다가 잘못된 길로 착각하고 다시 올라 갔던 지점이 나온다.
그때는 뙈약볕 아래에서 거슬러 올라 가던 이길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모른다.
무덤 한기를 지나고 무성한 산죽을 뚫고 오르면 불무장등(1446m)에 닿는다.(13:01)
등로 옆으로 조금 올라가 정상을 찾으니 그냥 평평한 곳에 잡목만 차 있다.
사면을 조금 내려가면 피아골 갈림길인데 전에 잘못 들어가 당재로 못가고 피아골로 내려갔던 곳이다.
- 삼도봉
표지기에 당재라 써서 붙혀 놓고 삼도봉으로 향한다.
평탄한 길을 잠시 오르면 반야봉도 보이고 삼도봉의 우람한 암봉이 위압적으로 내려다 본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암릉을 타고 오르면 지리 일원의 탁트인 조망이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틀간 산행에 찌들은 땀방울들을 식혀 준다.
삼도봉(1499m)에 오르니 많은 산행객들로 북적거리고 이사벨라님과 마지막 남은 빵조각으로 허기를 채우며 기다려도 뒤에 오는 두사람은 소식이 없다.(13:37)
힘들어 할까봐 반야봉에 오르겠냐고 물어보니 철녀 이사벨라님은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원래의 계획도 반야봉에 올라 묘향암도 보고 이끼폭포도 들러서 반선으로 하산하는 것이라 호기있게 발걸음을 옮긴다.
- 반야봉
삼도봉에서 조금 내려가면 용수골 오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도 반야봉의 사면을 따라 묘향암으로 갈수 있다.
능선으로 붙으니 반질반질한 길에 단체나 가족 등산객들이 넘쳐난다.
자주 찾아서 낯익은 길을 묵묵히 올라가면 다소 힘들어 하시는 이사벨라님도 꾸준하게 잘 따라온다.
구슬땀을 흘리며 암릉을 넘어가면 돌탑들이 보이고 드디어 반야봉(1733.5m) 정상이다.(14:55)
바위에 앉아 잠시 쉬니 바닥의 반찬찌꺼기들과 파리떼들이 보기 싫고 정상석을 타고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옆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일행이 눈에 거슬려 곧 일어난다.
- 묘향암
노고단과 왕시루봉을 바라보며 줄을 넘어서 중봉으로 향한다.
중봉(1732m)의 무덤가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제법 뚜렸한 길에는 표지기들도 간혹 붙어 있다.
길을 잃지 않으려 조심해서 진행하면 어둡고 음침한 길은 꼬불꼬불하게 계속해서 내려간다.
점점 등로는 급해지고 바위들과 진흙길은 미끄러워서 아주 조심스럽다.
밧줄이 매어져 있는 물이 흐르는 작은 절벽을 내려 가고 미끄러운 너덜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제나 저제나 묘향암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하염없이 비탈길을 내려가니 어느덧 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지나쳐 온것을 깨닫고 주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묘향암을 찾는 사람들이 귀찮아 스님들이 길을 알지 못하게 해놨다고 하는데 중봉에서 조금 내려와서 나뭇가지로 가려져 있던 샛길로 들어 갔어야 했을 것이다.
- 이끼폭포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파랗게 이끼가 낀 바윗돌들을 조심해서 내려가면 심마니 능선이 가깝게 보이고 물소리는 우렁차게 들린다.
벌써 중봉에서 한시간 이상 내려온 거리이다.
간간이 살에 와닿는 빗줄기를 맞으며 조금 더 내려가면 계곡에 닿고 시원한 물줄기들이 굉음을 내며 내려온다.
작은 이끼폭포를 구경하고 좀 더 내려오니 규모가 큰 이끼폭포가 나오는데 그때부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잠시후 장대비가 뿌려 댄다.(16:30)
계곡의 물은 금방 차오르는것 같고 물소리는 귓청을 뚫을듯 거세진다.
마음은 급해지고 안경은 빗물이 흘러 보이지도 않는다.
간간이 보이는 표지기를 확인하며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는데 처음에는 조심해서 돌을 밟고 건너다가 나중에는 신을 신은채 그냥 건너 버린다.
미끄러운 바위들을 넘으며 희미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큰 폭포들이 자주 나타나고 물살이 거세져 계곡을 건너지 않기만을 바란다.
-뱀사골주계곡
가도가도 주계곡은 나오지 않고 이사벨라님은 점점 불안해 한다.
다행히 계곡은 건너지 않아도 미끄러운 돌길이 끝이 없이 이어진다.
사정없이 내리 꽂히는 빗줄기를 맞으며 한동안 내려가면 드디어 주계곡과 만나는데 성난 급류가 계곡을 꽉 메우고 있다.(17:41)
안도하는 마음으로 아픈 발을 절뚝거리며 물이 넘쳐 흐르는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제승대를 지나면서 빗줄기는 약해지지만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볼만한 광경이다.
- 반선
이정표에 반선까지 3.7km로 적혀 있는데 아주 지루한 길이다.
잔돌들이 깔려있는 길을 내려가면 발바닥도 아프고 아침부터 이상하던 새끼발가락은 건드릴수가 없다.
병풍소와 탁룡소를 지나고 철다리를 몇번 건너면 와운골 갈림길이 나오고 여기에서도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내려가야 한다.
새로 짓는 전적기념관 옆으로 전에 올랐던 심마니 능선 초입부가 얼핏 보인다.
탁류가 거세게 흘러 내려오는 반선교를 넘으면 729번 국도가 나오고 가겟집에서 차시간을 물어 보며 차가운 캔맥주 하나로 길었던 산행을 끝낸다.(19:02)
- 남원
반선에서 남원가는 버스는 18시50분이 막차이다.
이사벨라님이 잡은 찝차로 인월까지 얻어 타고 바로 전주행 버스로 남원으로 갔지만 이미 19시30분발 서울행 버스는 떠난 후이다.
할수없이 22시20분 심야버스표를 사고 대합실에 앉아 양말을 벗어보니 이틀간의 우중산행으로 발바닥은 말이 아니다.
이사벨라님이나 나나 발바닥은 뿔은 오징어 발처럼 퉁퉁 부어있고 내 새끼발가락 하나는 껍질이 홀랑 벗겨져서 달랑거린다.
이사벨라님은 너무나 아파서 신발도 신지 못하고 쩔쩔 맨다.
늦은 저녁을 먹고 두사람이 대합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발바닥을 내려 놓으니 그제서야 이틀간 혹사당했던 발들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모기떼들은 사정없이 몰려들고 이런저런 산행 이야기를 나누며 심야버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