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5. 3. 8. 19:19
▲이시발 필서간(李時發筆書簡)/크기 : 25.8㎝(가로) x 21.6㎝(세로)
◈품명 : 이시발 필서간(李時發 筆書簡)
◈용조 : 서간류(書簡類)
◈크기 : 25.8㎝(가로) x 21.6㎝(세로)
◈소장처 :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
◈유물번호 : 순천대(순천대) 208341-000
[작가]
이시발『李時發, 1569년(宣祖 2)∼1626년(仁祖 4)』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한 후 전적(典籍), 정언(正言) 등을 지내며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1601년(선조 34) 경상도관찰사, 1604년 형조참판(刑曹參判), 이듬해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등용, 형조판서에 오르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체찰부사(體察副使)로서 난의수습에 공을 세운 뒤 삼남도검찰사(三南道檢察使)를 지내고, 11월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쌓고 수어청(守禦廳)을 설치감독하다 죽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시발은 1601년부터 경상도관찰사로 있었는데, 이 서간은 그때 쓴 것이다.
웅담을 함께 보내면서, 자신은 병으로 몹시 시달리고 있다는 것과 소량의 웅담을 보낸다는 것, 변경엔 별다른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화약에 관한 문제는 공문에 유념할 것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謹接惠翰 慰甚 鄙生疾病纏骨 日向沈痼 瓜外仍命 尤極悶迫 熊膽小餘覓呈 不知所苦河腫耶 邊聲時無 大段 匠事 當留念移文 伏惟尊照 謹拜謝狀
癸卯 八月 晦日 時發 拜 堤川丈有歸意云然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