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초대를 받은 친정엄마를 태워가기 위해 나는 화진휴게소에 들렀다. 시댁은 영덕에서 40분을 더 들어가는 '삼계리'에 있어 화진에서부터는 내가 태워가기로 하고 언니와 형부는 내 차를 따라오게 했다. 차를 옮겨 탄 엄마는 7번국도의 경치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며 부산의 바다와는 다른 느낌의 바다라 했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치를 보여 줄 테니 놀라지 말라 말하고 강구파출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풍력 발전소가 있는 해안도로 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엄마에게서 감탄사 외의 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나는 구름 마차를 끄는 마부처럼 곱게 차를 몰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인사하는 어머님 말에 친정 엄마는 목을 쭉 빼고 경쾌한 목소리로 "죄송하지만 사돈, 마당구경 좀 하고 들어 감시더!"라고 했다. 잔디가 깔린 어머님의 마당은 이른 봄부터 어머님이 심기 시작한 온갖 꽃들이 만개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분꽃을 비롯해 봉숭아, 백일홍, 작은 돌 틈 사이마다 심겨진 채송화 그리고 백합과 장미까지, 백 평에 가까운 마당 가장자리와 마당 한쪽에 놓인 돌 주변마다 계절을 바꿔가며 피는 꽃나무들이 빼곡히 심겨져 있다.
부산을 출발해 3시간의 이동시간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는 팔순의 친정엄마는 20년 전 여덟 살짜리 내 딸이 웃는 것처럼 활짝 웃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열두 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엄마로서는 충분히 흥분할 만한 잔디와 꽃나무였다. 7번국도의 경치에 이어 두 번째로 쏟아 내는 감탄이었다. 엄마는 어머님이 만들어 놓은 꽃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허리만큼 키가 큰 분꽃을 건드려 보기도 하더니 마당 끄트머리 정화조 옆 꽃밭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화조가 묻혀 있는 주변은 꽃밭 중의 꽃밭이다. 키가 큰 분꽃 사이 땅에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운 채송화 꽃에 시선을 고정시킨 엄마는 "세상에! 우째 이래 이뿌게도 심어 노셨노 어여?!"라며 부산사투리로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엄마를 태우고 온 언니와 형부도 공감하며 엄마의 뒤를 따라 걸었다.
처음으로 며느리의 친정엄마를 초대한 어머님은 엄마보다 세 살 아래지만 힘든 농사일로 연세가 더 들어 보인다. 허리는 기역자로 자꾸만 굽어가고 거동도 조심스럽기만 한데 눈만 뜨면 당당하게 배를 들어 내놓고 있는 대지에 허리를 숙여 씨앗을 뿌리고 풀을 뽑고 또 그 허리로 수확하고 꽃나무를 심었다. 지난 늦가을, 온 식구들이 심은 잔디를 행여 말려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느냐며 땀에 젖은 몸으로 잔디밭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주곤 하셨다. 사람들이 잔디가 잘 자란 마당과 온갖 꽃들로 치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예쁘다 말하면 자식들이 집을 잘 지어줘 그렇다며 공을 자식들에게 돌리곤 하셨다. 나를 비롯한 다른 그 누구도 어머님의 칭찬을 들을 만큼 겸손하게 허리를 숙여 이 잔디밭에 눈을 맞춰 준 적 없는 것 같은데 어머님은 언제나 그렇게 말씀하셨다.
흙과 식물이 어머님에게는 잘 복종하는 듯하다. 집을 새로 지어 들어간 지 1년 조금 지난 마당이 이렇게까지 푸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눈길과 하루도 거르지 않는 손길 때문이다. 어느 정도 마당 구경이 끝나자 엄마는 집안으로 들어와 어머님과 마주 섰다. 손을 잡고 서로 손등을 두드려 가며 부산사투리와 영덕사투리로 진심 어린 가슴으로의 인사를 나누었다. 마당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엄마는 그동안 어머님의 고생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말로 찬사를 보냈다. 어머님의 한결같은 대답은 오늘도 예외이지 않았다.
"자식들이 저거 다 어려운데도 힘을 합해 지어준 집인데, 이까짓 거 가꾸는 일이야 뭐 대수겠니껴?"
어머님은 정겨운 영덕사투리로 화답했다. 남북으로 열린 거실문으로 잔디밭을 훑은 바람이 거칠게 들어왔다. 벽에 걸린 숫자만 적힌 커다란 흰색 달력이 장삼 자락 휘날리듯 들썩이며 제멋대로 춤을 춘다. 다섯 사람이 한꺼번에 웃었다. 소소한 일상의 움직임에 함께 웃을 수 있는 바람이 들어온 것이다. 형부는 들길을 걸어보겠다며 나가고 언니와 나는 주방으로 가 영해시장 동해횟집에 주문해서 찾아온 문어를 썰고 집에서 가져 온 밑반찬을 담아 점심상을 차렸다. 두 어머니가 드시기 편하도록 문어를 채를 썰 듯 가늘게 썰어 따로 한 접시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푸른 마당을 보고 싶어하는 엄마와 기어이 한 이틀 묵고 가라는 어머님의 의견일치로 언니와 형부는 엄마를 두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1시간 후 나도 3일 후 엄마를 태우러 오겠다 하고 대구로 출발했다. 운전을 해 혼자 돌아오는 내내 굽은 허리로 마당을 가꾸는 어머님과 7번국도와 어머님의 꽃밭을 보고 활짝 웃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통증이 짠하게 가슴으로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