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47)>
공회형제(孔懷兄弟)
깊을 공(孔), 생각할 회(懷), 공회라 함은 ‘깊히 생각하다’라는 뜻이고, 형 형(兄), 아우 제(弟), 형제라 함은 ‘형과 아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회형제’라 함은 “형과 아우가 깊이 생각한다”라는 의미이다. “형과 아우가 서로 걱정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공회형제는 천자문에 나오는 사자성어이다. 천자문에 ‘공회형제 동기연지’(孔懷兄弟 同氣連枝)가 그것이다. “형제가 서로 깊이 생각하는 것은 한 부모의 기를 받은 같은 뿌리의 가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형제는 남자형제 뿐 만 아니라 여자형제 즉 자매(姉妹)간도 모두 일컫는다.
“맏형은 아버지 맏잡이고, 맏형수는 어머니 맏잡이”라는 옛말이 있다. 즉, 큰형은 아버지 버금가고, 맏형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부양능력이 없을 땐 형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고 키우는 아름다운 광경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형제의 의(誼)는 하늘이 맺어준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마땅히 다정하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어미에서 난 동기간은 친밀하다. 필자는 북한산 기슭에 지은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다. 아침이면 산새들이 아파트 앞 나무가지에 많이 날라온다.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모이통을 달아놓고 아침마다 새들에게 모이를 주곤 한다. 그런데 모이를 주면 색깔이 같은 비들기끼리는 사이좋게 먹지만, 다른 색깔의 비들기들은 서로 부리로 쪼아대면서 먹이다툼을 한다. 새들도 자기 동기간에는 음식을 함께 먹지만, 뿌리가 다른 새들 간에는 서로 배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찮은 미물(微物)이 그러 할진대, 사람의 경우에야 동기간의 친밀도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소학에서도 “동생이 먹을 것이 없으면 형은 마땅히 주어야 한다(제무음식 형필여지 : 弟無飮食 兄必與之}고 했다. 반대로 형은 굶는데 동생만 배부르다면 이는 짐승이나 할 짓이다 (형기제포 금수지수; 兄飢弟飽 禽獸之遂)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형제가 한 집에서 살 때에는 의좋게 살다가도, 결혼하고 분가하면 소원(疎遠)해 지기도 한다. 그리고 형제의 배우자인 동서간의 친밀도 여하에 따라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장가가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옛날 어느 동네에 우애가 좋은 삼형제가 있었다. 그들 삼형제는 자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감자 한 쪽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항상 사이좋게 지냈다. 삼형제가 그렇게 친하니 그들의 부인들도 또한 우애가 매우 좋았다. 어느날 삼형제가 한 자리애 모여 술상을 받았는데 그때 부인들 세 동서(同壻)가 웃으며 “사랑어른 삼형제가 이렇게 사이가 좋은 것은 모두 안 사람들의 사이가 좋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들은 한결같이 “ 아니오 우리 삼형제는 본래부터 우애가 돈독(敦篤)하기 때문에 동서들도 사이가 좋은 것이오” 하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부인들은 웃으며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리고 남편들 몰래 서로 약속을 했다. 각자 자기 남편에게 거짓으로 삼형제 사이에 금이 가도록 이간질을 하자고 합의하였다. 삼동서는 매일 자기 남편에게 시숙 (媤叔)의 흉과 불평을 거짓으로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부인들의 말을 듣지 않던 남편들이 차츰차츰 부인 말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듯이 몇 달이 지나자, 그렇게 사이좋던 형제가 서로 원수처럼 대하고, 서로 잘 만나지도 않고, 서로 대면해도 말도 않게 되었다.
이것을 본 부인들은 서로 “이만하면 되었으니 다시 옛날처럼 우애 있게 지내도록 합시다”하며 웃었다. 어느 날 부인 삼동서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좋은 술을 빚은 다음, 서로 만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삼형제를 달래서 한 자리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술을 권한 다음, 부인들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으면서 “이래도 당신들이 우애가 있는 것입니까? 사랑어른 우애가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안 사람들이 우애가 있기 때문입니다”하였다. 삼형제는 서로 크게 웃으며 마음껏 술을 마시고 다시 엣날 처럼 정답게 한 세상 잘 살았다고 한다. 이로보면 형제간의 우애는 그 부인들의 영향이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힘 없고 가난한 집의 가족들은 화목하게 오손도손 잘 살아가고 있는데 비하여,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 집에서 오히려 형제간에 불화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툴 것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세 아들인 남생, 남건, 남산의 불화와 다툼 때문에 국력이 쇠퇴한 가운데 나당연합군에게 멸망 당하고 만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 역시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첫째 아들인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幽閉)당하는 곤혹을 치르고 왕건에게 투항하고 만다.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아들인 조비는 평소 아우 조식의 뛰어난 재능을 경계하였다. 왕이 된 후에도 혹시 자기를 해치지 않을 가 걱정했다. 그래서 시문에 뛰어난 조식을 죽이려고 불러놓고, 일곱 발자국 걸을 때 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처형하겠다고 했다. 이때 조식이 지은 시가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時)이다.
조식은 “같은 뿌리에서 난 콩깍지와 콩이 불을 때서, ⌜삶는 존재⌟와 ⌜삶기는 존재⌟로 나뉘어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시를 지었다. 이 시를 보고 조비는 마음에 가책을 받아 조식을 벌하지 않았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수록되어 있는 7보시는 너무나 유명하고 그 내용이 재미있어 한번 감상해 볼 필요가 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 : 자두연두기(煮豆燃荳箕)
콩이 가마솥 안에서 울고 있네 : 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건만 : 본자동근생(本自同根生)
서로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 급한가? : 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
* 이 시를 지은 조식은 그 후 조비의 경계하에 변방에 유랑생활처럼
떠돌며 살다가 41세의 나이로 불우한 인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