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에 읽어볼 소설 <순교자>, 김은국,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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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 6.25전쟁 당시 평양을 배경으로, 이념의 대립이 빚어낸 비극적 사건의 진실을 밝혀나가며 그 과정에서 겪는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을 인간의 실존과 보편적 운명이라는 세계문학적 주제와 연결시켰으며, 이를 추리소설적 요소를 이용해 풀어냈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이념의 대립이 만들어낸 열두 명의 '순교자'를 둘러싼 진실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추적해나가는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미국 언론과 문단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 펄 벅은 "신앙을 갈망하는 데서 비롯되는 의혹과 고뇌를 다루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LA 타임스」는 "위대한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20세기 작품군에 포함될 만한 작품"이라 칭하기도 했다.
<순교자>는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아 미국 전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심까지 올랐다. 또한 작가 김은국은 이 작품으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1965년 고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연극으로 여러 차례 각색되기도 했다.
<작가> 김은국
1932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황해도에서 보냈다. 1945년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복무한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매사추세츠 대학교 영문학과 부교수와 서울대학교 교환 교수를 지냈다. 1964년 발표한 처녀작『The Martyred』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Lost Names』『The Innocent』등 한국을 무대로 한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각각『잃어버린 이름』『순교자』『심판자』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우리나라의 불행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절박한 현실 속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는 인간적 고뇌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책 읽은 이의 서평>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의 고뇌에 대하여
6. 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초겨울 평양. 육본 파견대 정치정보부에서는 6. 25전쟁 발발 직전, 평양에서 일어났던 열네 명 목사들의 긴급체포와 집단 처형이라는 사건 경위를 조사하게 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장대령과 이대위 그리고 처형 현장 가운데서 살아남은 신목사. 그 하나의 사건을 두고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각자의 관점으로 진실을 향해 혹은 진실을 외면한 채 소설 <순교자>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는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 그 순교자들은 결코 싼 값에 팔아 넘겨선 안 돼. 빨갱이들에 대한 그 순교자들의 정신적 승리를 모든 사람이 목격하도록 해야 한단 말야.”(75쪽)
이 사건의 총책임을 맡게 된 장대령에게 사실과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장대령에게 있어서 그 목사들은 단지, 남한 정권의 선전을 위한 주요한 소재이자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장대령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닌, 북한 정권에 의해 죽음에 이른 목사들 곧 ‘순교자’들이 정권 선전을 위한 매우 적당한 소재이며 훌륭한 도구이고 성스러운 상징물이 되어준다는 이용가치에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야.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이야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네들은 그걸 줘야 하는 거야.”(213쪽)
장대령의 명령 하에, 이 사건을 일선에서 담당하게 된 이대위는 진실이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져야 하고 알려져야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선전 목적에 맞추기 위해 진실을 비틀 수는 없는 것이며 진실이 비틀어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대위에게 있어서 진실은 그것이 추악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저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져야 마땅한 것이다.
“목사님의 신이건 그 어떤 신이건 세상의 모든 신들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은 우리의 고난을 이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비참, 살육, 굶주린 백성들, 그 많은 전쟁, 그리고 그 밖의 끔찍한 일들과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253쪽)
이대위의 이러한 의구심과 회의는 무릇 이대위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는 괴로움이 아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고난 속에 처해 있는 여타의 무수한 인간들이 품고 있는 번민이며 고뇌이다. 이대위의 실존적인 이 질문 앞에 과연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255쪽)
목사들의 죽음을 단지 선전 도구로, 이용 수단으로 여겼던 장대령조차도 숙연케 만든 신목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다. 소설은 신목사가 가장 성스러운 존재가 되려는 순간 마치 연극에서의 암전처럼 신목사의 성스러움을 암전시킨다, 잠시 동안.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절망에 맞서서 계속 희망해야 하오.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 (256-257쪽)
그러나 암전 가운데 핀조명이 떨어지듯 신목사야말로 저자 김은국이 진정한 순교자로서 그려지길 원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유다로, 배덕자로, 겁쟁이로 낮추고 희생함으로써 교인들에게 또한 무의미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에게 절망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곧 희망임을 드러낸다. 처형 가운데 인간이 희망을 잃었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지켜보면서 인간이란 희망이 없이는 결코 고난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신목사에게 있어서 진실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뛰어넘은 그 무엇 곧 절망 가운데 희망이 되어주는 그 무엇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신목사의 고뇌 앞에서 또한 진정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간 그의 뜨겁고도 처연한 발걸음 앞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의 운명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숱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를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283쪽)
알라딘http://www.aladin.co.kr에서 옮겨왔습니다.
첫댓글 마르코 신부님이 떠나시며 추천해 주시던 그 책이군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