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2』, 민음사, 2017 1판 46쇄(초판 2007.9.20.)
-조시마 장로-
사) 기도에 관하여, 사랑에 관하여, 그리고 다른 세계들과의 접촉에 관하여
청년이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라. 그대가 기도를 할 때마다, 만약 그것이 참되다면, 새로운 감정이 솟아날 것이며 거기에는 그대가 이전에는 몰랐지만 새로이 그대의 기운을 북돋아 줄 새로운 생각도 들어 있다. 그리하여 기도가 곧 교육임을 깨달을 것이다. 이것도 기억해 두라. 매일 그대가 할 수 있을 때마다 속으로 ‘주여, 오늘 하루 주님 앞에 나타난 모든 자들을 어여삐 여기시옵소서.’라고 되뇌도록 하라. 이는 매 시각, 매 순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자신의 삶을 끝내고 그들의 영혼이 주님 앞에 서기 때문이며-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누구 하나 그들을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심지어 그런 사람이 살았는지 어땠는지도 전혀 모르는 가운데 슬픔과 우수 속에서 땅과 완전히 결별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들의 명복을 비는 그대의 기도가 이 땅의 반대편 끝에서부터 주님께로 올라갈 것이니, 비록 그대도 그들을 모르고 그들도 그대를 전혀 몰랐다 할지라도 그럴 것이다. 주님 앞에 공포감을 느끼며 섰던 그의 영혼이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를 해 주는 자가 있으며 지상에 자기를 사랑해 주는 인간 존재가 남아 있음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얼마나 감동하겠는가. 더욱 하느님은 그대들 둘을 모두 더욱더 자비롭게 바라볼 것이니, 이는 그대가 그들을 이미 그토록 안쓰러워했다면, 하느님은 그대보다 더 한량없는 자비와 사랑을 지니고 그들을 안쓰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대를 봐서라도 그를 용서할 것이다.
형제들이여, 사람들의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가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할지니, 이는 하느님의 사랑과 최대한 닮은 사랑이야말로 지상의 사랑 중 으뜸인 까닭이다.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을, 그 전체를, 모래알 하나까지도 사랑하라. 잎사귀 하나, 하느님이 햇살 하나까지도 사랑하라. 동물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모든 사물을 사랑하라. 모든 사물을 사랑하면 사물 속에 깃든 하느님의 비밀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번 깨닫게 되면 그때는 앞으로 매일매일 끊임없이 그것을 더욱더 많이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엔 그때부터 전일적이고 전 세계적인 사랑으로 전 세계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동물들을 사랑하라. 하느님은 그들에게 생각의 시초와 평온한 기쁨을 주었다. 그 기쁨을 깨뜨리지 말 것이며 그들을 괴롭히지 말 것이며 그들에게서 기쁨을 빼앗지 말 것이며 하느니므이 생각에 반하지 말지어다. 인간이여, 동물들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지어다. 그들은 죄 없는 존재이지만, 인간인 그대는 위대하게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땅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자신의 썩은 고름은 죽은 뒤에도 남겨 놓곤 하니 – 오호, 우리 모두가 거의 다 그러하도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할지니, 이는 그들도 또한 천사처럼 죄 없는 존재로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있어 어떤 지표처럼 살고 있는 까닭이다. 갓난애를 욕보인자에게는 고뇌가 있을지니라. 나에게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친 건 안핌 신부였다. 우리가 함께 순례를 할 때에 늘 말이 없고 다정스러웠던 그는 희사받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당밀 과자와 사탕을 사서 나누어 주곤 했다. 아이들 곁을 지날 때마다 늘 영혼의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떤 생각 앞에서 의혹을 느낄 때가 있는데, 특히 사람들의 죄를 보면 ‘힘으로 취할 것인가, 아니면 겸허한 사랑으로 취할 것인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그때는 언제나 ‘겸손한 사랑으로 취한다.’라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일단 그렇게 결심하고 나면 전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겸허한 사랑은 강력한 힘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힘이며 그에 맞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일, 매 시각, 매 순간 자기 주의를 돌면서 그대의 형상이 장엄한지를 살피도록 하라. 가령 그대가 어린아이의 곁을 지나갈 때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 추한 말을 하고 격노한 영혼을 지녔다고 치자. 설사 그대는 아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는 그대를 보았으며 그대의 꼴사납고 불결한 형상은 무방비 상태인 아이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대는 이것을 몰랐겠지만, 이로써 이미 아이게에 고약한 씨앗을 뿌린 셈이며 그것이 자라날 것이니, 이 모든 것이 그대가 아이 앞에서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 조심스럽고 활동적인 사랑을 자기 내부에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사랑이란 스승과 다름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아야 되는 것이니, 이는 그 사랑을 획득하기란 지극히 어렵고 오랜 시간의 일과 오랜 기간을 통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되기 때문이며, 그저 한 우연한 순간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랑해야 한다. 순간적인 사랑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심지어 악동조차도 그런 사랑은 하는 법이다. 젊은이였던 나의 형님은 새들에게도 용서를 구했다. 이것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실은 진실이었으니, 이는 모든 것이 대양과 같아서 흘러 흘러서 서로 만나게 되므로 한 곳을 건드리면 - 세계의 반대편 끝에서 그 반향이 울려 퍼지는 까닭이다. 새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고 해도, 그대 자신이 지금 그대의 모습보다 더 장엄하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더 그러하다면, 새들도, 아이들도, 자네의 주위에 있는 온갖 동물들도 한결 더 가뿐해질 것이다. 모든 것이 대양과 같다고 내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그때는 전일적인 사랑으로 괴로워하며 어떤 환희마저 느끼면서 새들을 향해 자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나의 벗들이여, 하느님에게서 즐거움을 구하라. 어린아이들처럼, 하늘의 새처럼 즐거워하라. 사람들의 죄가 그대들의 행동에 있어서 그대들을 미혹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것이 그대의 과업을 망쳐 성사되지 못하게 방해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며 “죄도 강력하고 부정도 강력하고 추악한 환경도 강력하건만, 우리는 외롭고 힘이 없으며 추악한 환경이 우리를 망치고 복된 과업의 수행을 방해한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여, 이와 같은 우울함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하라! 여기서 그대가 구원받을 길은 하나이다. 즉, 스스로를 사람들의 이 모든 죄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만들도록 하라. 벗이여, 이건 정말로 그러하니, 무릇 스스로를 진정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로 만든다면, 그 즉시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며 그대는 정말로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에 대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나태와 무기력을 사람들에게 떠넘긴다면, 결국에는 사탄과 같은 오만함에 합류하여 하느님에게 불평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사탄의 오만함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그것을 이해하기는 어렵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뭔가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너무도 쉽게 오류를 범하고 거기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가장 강렬한 감정들과 움직임들 중 많은 것들을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는 터득할 수 없으니, 이것에 현혹되지도 말 것이며 이것이 그대의 어떤 것을 정당화해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 것이니, 이는 영원한 재판관은 그대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대에게 물을 것이기 때문이며, 그대는 몸소 이 점을 확실할 것이며 그때 가면 모든 것을 올바로 보게 되어 더 이상 논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참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니, 만역 그리스도의 귀중한 형상이 우리 앞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대홍수 직전의 인류처럼 파멸하여 완전히 길을 잃었을 것이다. 지상의 많은 것이 우리로부터 감추어져 있지만, 그 대신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드높은 천상의 세계와 우리 사이에 맺어진 생생한 관계에 대한 은밀하고 소중한 감각이 주어졌고, 더욱이 우리의 생각들과 감정들의 뿌리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노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지상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다른 세계에서 씨앗을 가져와 이 땅에 뿌렸고 그분의 정원을 가꾸었으니, 싹을 틔울 수 있는 모든 것은 싹을 틔웠지만 자라고 있는 것은 오로지 다른 신비스러운 세계와의 접촉의 감각을 통해서만 살아가고 또 이로써만 살아 있는 것이 되는 셈이다. 만약 그대의 내부에서 이 감각이 약해지거나 없어진다면, 그대의 내부에서 자라난 것도 죽을 것이다. 그때믄 삶에 무관심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86~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