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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8-11간 삼각등산동호회의 중국 항주/황산 여행 이야기.
(2008.3.8 : 인천공항 출국/항주시 도착-성황각과 성황묘 관광/황산시 도착)
인천공항 3층 출국장 도착시간이 10시35분인데 내가 지각을 해서 10시50분경 출국장에 도착하니 20여명의 일행들이 기다리면서“당신 오늘 스타되었요”라고 쫑끄를 주기도 했다.집에서 나와 도보로 도봉역에 도착하니 갑자기 변이 마려워 화장실에서 10여분 이상을 지체하는 바람에 이렇게 늦어버렸는데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변보느라고 늦었다고 이실직고 할수도 없어서 나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인천공항에서 13시05분에 이륙한 중국 항공기가 2시간 동안날아서 항주시 소산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15시22분이었는데 표준시간이 1시간 늦기 때문에 항주시 현지시간은 14시22분이었고 날씨는 안개가 자욱한 흐린 날씨였다.
항주시 소산 국제공항 입국장을 빠져나가자 항주시에서 황산시까지 안내를 맡은 현지 가이드 김성씨라는 분이 “하나투어”라는 안내표지판을 들고 서서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우리일행을 맞이해서 관광버스로 안내했다.
관광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현지 가이드 김성씨의 설명이 계속되었는데 남송시대 때 가장 번창한 항주시는 서호라는 자연 호수가 있는데 이 자연호수는 중국에서 서열 3위의 명승고적이라 했다.(항주시는 상해 남쪽에 위치한 절강성의 성도로서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는 해안가 省인데 이 절강성 남쪽으로는 복건성 광동성 해남성이 위치하고 있음).또한 현재 인구 600만명의 항주시는 조경이 잘 된 도시로서 중국에서 서열 2위라고 자랑했다.(조경이 가장 잘 된 도시는 요령성 대련시라고 했음).항주시는 양자강 남쪽의 강남이기 때문에 남방지역에 해당되어 건물내는 난방시설이 없고 지상 1층에는 습도가 많아서 사람이 살지 못하고 2층 이상에서만 사람이 기거한다고 했다.
중국대륙은 동서가 5200킬로미터이고 남북이 5000킬로미터의 대국이며 통계상 중국인구는 13억이지만 중국에는 무호적자인 흑호 또는 흑인이라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중국에선는 법적으로 자녀를 1명만 인정하기 때문에 2명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은 호적에 입적시키지 못하는 무호적자가 많이 있음) 실제로는 14억이상이라고 했다.13억 인구중에서 9억명이 농민이며 이 13억 인구을 종족별로 보면 한족이 92%,나머지 8%가 54개 소수민족이며 이 소수민족 중에는 5개 소수민족의 자치구가 있는데 그것은 티벹 자치구,신장 위구르 자치구,내몽고 자치구,쌍족 자치구,회족 자치구라고 했다.중국내 조선족은 150만명 정도로서 소수민족중에서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종족이라 했다.그리고 중국에는 4개의 특별시로서 북경특별시,상해특별시,선진특별시,중경특별시가 있다고 했다.
항주시에는 전단강이라는 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고 있는데 이 강의 길이는 605킬로미터로서 중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강이며 음력 8월에는 이 강의 강물이 역류하면서 생기는 파도가 최고 7미터가 된 때도 있다고 했다.(전단강 하류가 태평양과 인접해 있어서 만조시 역류하는 태평양 밀물과 태평양 쪽으로 흘러내리는 전단강물이 서로 부딪치면서 강물의 역류현상이 발생한다고함).이렇게 강물이 역류하면서 생기는 파도가 범람해 재해을 입히기 때문에 옛날에는 전단강에 괴물이 있다는 믿음이 전해지기도 한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각 지방마다 그 지방에서 선정을 베풀어 지방을 발전시키고 지켜준 城主를 성황이라 칭하는 데 이곳 항주시에서도 명나라 때 항주의 지방수령인“주신”이라는 분이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으로 유명했지만 명나라 황제에게 잘 못보여 처형되고 말았는데 항주시 지방 주민들이 처형된 성주 “주신”을 숭배하고 기념하고자 만든 것이 성황묘와 성황각이라 했다.성황각은 5층 탑으로서 1층에는 당대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민속박물관이었고 4층에는 항주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였다.이곳 성황각 4층에 서서 항주 시내를 내려다 보니 자욱한 안개 때문에 멀리는 볼 수가 없고 동남쪽으로 서호라는 호수 물이 희뿌연 안개속에 마치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그리고 성황각 옆에 위치한 성황묘에는 항주 지방 수령인“주신”이란 분의 동상이 금색으로 도금된 채 근엄하게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제단이 잘 비치되어 있기도 했다.
항주시내에서 성황각과 성황묘를 구경한 일행은 3시간30분 동안 항주 황산간 고속도로를 (항휘고속도로) 타고 황산시로 이동했다.밤이라서 고속도로 주변은 전혀 구경할 수가 없고 고속도로상에는 상하행선 모두가 통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산했으며 속도는 시속 80킬로미터로 제한된 고속도로였다.
이때부터 항주시 현지 가이드 김성씨는 황산시 현지 가이드 서명호씨로 바뀌었다.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황산시 현지 가이드 서명호씨의 설명에 의하면 항주시는 행정구역이 절강성에 속하지만 황산시는 안휘성에 속한다고 했다.절강성과 안휘성의 위치가 감이 잡히지 않해서 나중에 중국 지도를 확인해보니 상해 남쪽 태평양 연안의 절강성에서 서쪽 내륙지방으로 인접한 곳이 안휘성이었다.따라서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리는 셈이었다.
인구 100만명의 안휘성 황산시는 1년중 약 200일 정도가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는 날씨라고 했다.특히 황산시는 전기가 부족해서 주민들은 저녁이면 집안에서 각 방의 전기불을 소등한 채 텔레비전만 켜고 시청하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된다고 했다.
3.9일 황산 구경 일정도 대략 소개했는데 호텔에서 황산 입구까지는 항주시에서 타고온 관광버스로 이동하고 황산 입구부터는 황산 전용버스로 옮겨탄 뒤 해발 800미터 지점의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이동할 것이며 케이블카로 황산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도보로 이동하면서 약 3시간 동안 황산을 구경하게 된다고 했다.또 내일 아침 05시30분 기상,06시30분 아침식사,07시 출발해야만 무난하게 관광을 마칠 수 있으니 모닝콜은 05시30분에 울릴 것이라 했다.
항주시를 출발한 버스가 황산시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밤 20시가 넘었다.황산시내의 아리랑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은 뒤 일행은 호텔로 이동했다.황산시내에서 2박을 하게될 호텔방을 나는 홍성재 선배와 같이 배정 받았다.
호텔 객실 목욕탕에서 목욕탕 수도꼭지를 살폈더니 “H”와 “C”자가 표시되어 있었다.“H”는 HOT 이고 “C”는 COLD 라는 뜻 같아서 “H”자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리고 물을 흐르게 했더니 뜨거운 물이 아니고 찬물이 쏟아졌다.이상해서 관리실로 전화했더니 현지 가이드가 올라와서 수도꼭지 손잡이를 “C”자 쪽으로 돌리니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지만 수압이 약해서인지 물이 찔찔 나올뿐만 아니라 물도 미지끈해서 뜨거운 물속에 몸좀 푹 담그려던 내 의도는 허사가 되고 말았다.시설물을 설치할 때 “H”자 쪽으로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설치한 것이 아니고 거꾸로 바꿔 “C”자 쪽으로 돌려야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잘못 설치된 시설물이었다.
호텔 객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너무 추워서 잠에서 깨 다시 일어나 옷을 더 껴입고 잠을 청했지만 그래도 객실안은 추워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나만 그런것이 아니고 같은 방에서 지냈던 홍성재 선배도 간밤에 추워서 잠을 잘 못잤다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
(3.9일 황산 구경/ 발맛사지)
3.9일 아침 07시10분경에 일행이 탑승한 버스는 황산 시내호텔을 출발해서 황산이란 산을 향해서 이동했다.날씨는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황산의 산상에서도 이렇게 안개가 자욱하면 큰일이구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황산 현지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황산지방은 3모작을 하는 곳이고 지금 밭에 푸르게 보이는 것은 대부분이 유채밭이라고 했다.이곳 황산 지방사람들은 남자는 공부를 잘 하거나 공부를 못하면 외지로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기 때문에 마을에는 여자가 혼자 남아 살림을 하고 애들을 키워야 하는 운명 때문에 주민들은 외딴곳에 살지 않고 반드시 집단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며,이렇게 집단으로 가깝게 붙어서 살다보니 화재가 발생하면 전마을이 소실되는 우를 범하기 때문에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집과 집 사이에는 반드시 1미터 이상 높이의 방화벽이란 차단막을 설치해서 집을 짓는다고 했다.따라서 안휘성 촌락 집들은 미관상으로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방화벽을 거의 모두가 설치한 것이 목격되었다.
약 1시간 정도를 달려서 황산 입구에 있는 정류장에서 일행은 중국 관광공사의 전용버스로 버스를 바꿔타고 산비탈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해발 800미터 지점의 케이블카 탑승장이었다.케이블카 탑승장 주변 대나무밭에는 왕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우선 대나무들의 굵기가 보통 대나무들보다 굵어 보였고 매듭도 무척 길어 보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상을 향해서 오르면서 케이블카 창을 통해서 좌우로 내다보이는 산세을 보니 기암괴석과 푸른 색 나무들이 뒤섞이어 장관을 이루었다.운이 좋은 탓인지 날씨가 쾌청해서 상당히 멀리까지 황산의 장관을 마음껏 조망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꼭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및 만경봉 일대의 기암괴석과 소나무숲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과 흡사했다.우리나라의 북한산보다 스케일이 훨씬 더 큰 것이 다른 점인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일행중 맨 뒤에 섰던 관계로 맨 마지막 케이블카를 탔는데 내가 탄 케이블카에는 황산의 현지 가이드가 같이 타고 있어서 카이블카 창밖으로 보이는 산세에 대한 설명을 그 가이드로부터 들을 수가 있었다.현지 가이드는 케이블카 남쪽으로 보이는 두 개의 봉우리를 가리키면서 오른쪽으로 조금 낮아보이는 봉우리가 황산 최고봉으로서 해발 1864미터인 연화봉이고 그 왼쪽으로 더 높아보이는 봉우리가 해발 1810미터은 천두봉이라고 했다.현 위치에서 볼 때 천두봉이 연화봉보다 더 높아보이는 것은 거리상으로 더 근거리에 위치한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곳은 황산의 7부 능선쯤 되어 보이는 곳인데 입구와 출구가 분리되어 있었다.입구는 이제 구경차 입산하는 관광객들의 통로이고 출구는 구경을 마치고 내려가는 관광객들의 통로였다.입구를 빠져 나가니 약1.5미터 폭으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좌우에 펼쳐진 황산의 기암괴석 절경들을 마음껏 조망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해발 1680미터의 시심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건너다 보이고 북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기암괴석의 절경은 정말 장관이었다.공간이 좁은 시심봉 정상에서 중국인 관광객과 우리 일행들이 뒤엉키어 사진찍고 구경하고 하느라 야단법석을 벌였다.
시심봉 구경을 마친 일행은 백학령을 지나 광명정으로 향했다.등산로 상에서는 공사자재와 짐을 운반하는 중국인 인부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약 2미터 길이의 대나무 장대 양 끝에 무거운 짐을 똑같이 나누어 메달아 균형을 만든 뒤 이 대나무 장대를 어깨에(데시기) 메고 돌계단을 오르거나 내리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황산의 제2봉인 해발 1860미터의 광명정에 도착하니(황산 제1봉은 해발 1864미터의 연화봉) 관광객들이 무척 붐볐다(최고봉인 연화봉보다 4미터가 낮음).광명정 정상 오른쪽에는 광명정 산장(호텔)이 있고 왼쪽에는 중국기상청 건물이 하얀색 돔으로 우뚝 서 있는데 이 하얀색 돔 건물은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띠니 아 저기가 황산의 제2봉인 해발 1860미터의 광명정이지 하고 쉽게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광명정 남쪽으로는 역시 황산의 최고봉인 해발 1864미터의 연화봉과 해발 1810미터의 천두봉이 희뿌연 안개속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지만 최고봉인 연화봉은 5년마다 출입을 통제하는데 올해가 출입이 금지된 해라서 관광객은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었다.광명정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등산로상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마치 염주알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 일행은 서쪽 코스를 따라 서해대협곡쪽으로 걷기 시작했다.이쪽 코스는 내리막길에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서 한산했다.
서쪽 코스를 타고 내려가다가 일행이 飛來石에 도착했는데 이 비래석은 외지에서 날아와 이곳에 멈춘 돌이라는 뜻으로 비래석이라고 했다.높이가 10미터 이상은 되어 보이는 큰 돌덩이가 받침돌 위에 살포시 얹혀있는 모습이었다.그런데 받침돌 가장자리에는 가드레일을 설치해서 관광객들의 낙반사고를 방지토록 했기 때문에 별 위험 없이 비래석 받침돌 뒷켠으로 나가 서쪽 낭떨어지를 배경으로 일행들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이곳 받침돌 가장자리에서 서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기암괴석과 푸른 나무숲으로 어우러진 계곡 모습은 그 경관이 또한 장관이었다.
서쪽 코스를 타고 계속 더 내려가니 서해대협곡을 조망할 수 있는 排雲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앞에는 대협곡을 조망할 수 있도록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내려다 보니 끝없이 길게 뻗어내리는 대협곡의 기암괴석과 푸른 나무숲이희뿌연 안개속에 끝이 없어 보였다.
서해대협곡을 구경한 일행은 빽코스로 빠져나와 황산서해반점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시간은 3.9일 12시30분이었다.여덟사람이 착석한 우리 식탁에 나온 김치가 금방 동이나서 김치를 조금 더 달라고 하니 추가분은 중국돈 20원을 더 내야한다고 해서 김치를 더 시켜 먹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해발 1000미터가 넘는 이곳 심산유곡까지 짐꾼들에 의해서 물자를 공급받아야 하는 식당측 입장을 생각하면 추가 주문하는 김치값을 더 받아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았다.
황산의 심산유곡에 위치한 황산서해반점에서 점심을 마친 일행은 다시 오르막길 등산로를 걸었다.주변의 기암괴석과 푸른 숲으로 장관을 이룬 주변경관을 감상하면서 케이블카 위쪽 탑승장까지 돌아와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해서 케이블카 아래쪽 탑승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14시25분 경이었다.
이렇게 안위성 황산은 시심봉-백학령-광명정-비래석-서해대협곡 순으로 구경을 마쳤다.황산의 특징은 기암괴석과 푸슨 나무숲들이 뒤엉키어 조화를 이루는 경관이 장관인데 우리나라의 설악산 중청봉에서 천불동 계곡쪽으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공룡능선이나 화채능선의 기암괴석과 푸른 나무숲들이 조화를 이룬 경관과 비슷했다.우리나라의 설악산 비경은 등산 매니아들이나 구경하는 곳이지만 이것을 중국처럼 일반 관광객들이 접근토록 중청봉까지 케이클카를 설치하고 중청봉에서 공룡능선과 천불봉 계곡으로 관광용 등산로를 개설한다면 황산에 버금가는 관광객들이 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장가계를 구경한 나는 황산과 장가계를 비교해보니 황산은 장가계보다 상대적으로 신비감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황산구경을 마친 일행은 3.9일 15시36분경에 황산의 시내에 있는 실크 매장(명주 이불 한 채를 만드는데는 쌍둥이 누에 고치 8000마리 분이 들어간다고 함) 구경-보석 가게 구경를 마치고 17시40분경에는 발마사지장에 도착했다.
발맛사지 값은 여행 기본경비에 포함되어 있어서 맛사지사에게 주는 기본 팁 5불만 준비하면 됐지만 전신 맛사지를 받으실 분은 한국돈 1만원과 기본팁 5불을 추가로 부담하라면서 현지 가이드는 전신 맛사지 받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파악했다.따라서 일행은 발맛사지만 받을 사람과 전신 맛사지까지 받을 사람으로 양분되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모두 7명이 발맛사지만을 받았다.
발 맛사지라고 해서 꼭 발만 맛사지해 주는 것이 아니고 옷 입은 채로 어깨와 팔뚝까지 포함해서 맛사지를 해 주었는데 발만을 훨씬 더 집중적으로 맛사지해 주었다.뜨거운 물을 담은 나무통 대야속에 발을 담궜다가 부드러운 손으로 세게 주무르고 압착시켜주니 한결 상쾌해지면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내 발을 맛사지해준 맛사지사는 스무살의 처녀였다. 이름이 상진이고 장가계에서 왔으며 맛사지 경력은 3년째라고 했다.이렇게 장가계에서 황산으로 맛사지 일을 하러온 친구는 자기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황산의 맛사지업자들은 장가계 맛사지사들을 스카웃해 온 것으로 보였다.
마사지가 끝난 뒤 식당으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일행중 모씨는 전신 맛사지를 받다가 생긴 일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전신 맛사지를 받기 위해 상의와 하의를 맛사지옷으로 갈아 입고 한참 동안 맛사지를 받았는데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소변이 마려웠지만 맛사지받는 중이라 소변보러 갈 수도 없어서 꾹 참고 있다가 맛사지가 끝나자 마자 빨리 소변을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맛사지 전용 하의를 입은 채로 그 위에다 자기 옷을 겹쳐 입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 가서 소변을 보고 밖으로 나왔더니 자기에게 전신 맛사지를 해 주었던 중국 맛사지 아가씨가 화장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보자마자 한국말로 “오빠 바지”해서 봤더니 자기가 맛사지 전용 하의를 겹쳐 입고 있어서 다시 탈의실로 들어가 맛사지 바지를 벗어주고 나오느라고 제일 늦게 나왔다고 해서 일행은 한바탕 크게 웃기도 했다.
(3.10일 : 다시 안휘성 황산시에서 절강성 항주시로 이동/영은사 사찰 구경/녹차 매장 구경/서호 유람선 관광/라텍스 매장 구경/송성 가무쇼 구경)
3.10일 아침 일찍 일행은 다시 항주 황산간 고속도로를 (항휘 고속도로) 타고 버스편으로 안휘성 황산시에서 절강성 항주시로 이동했다.그리고 현지 가이드는 황산 현지 가이드에서 다시 항주 현지 가이드로 바뀌었고 버스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항주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되었는데 중국의 13억 인구중에서 약 2500만명이 문맹인데 이렇게 문맹인구가 많은 것은 집안이 가난하면 학교를 안 보내고 또 흑호들도(무호적자) 학교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항주 황산간 항휘고속도로 중(항휘고속도로) 안휘성쪽 구간은 안휘성에서 건설하고 절강성쪽 구간은 절강성에서 건설했으며 통행료 징수도 안휘성쪽 구간은 안휘성에서 징수하고 절강성쪽 구간은 절강성에서 징수하기 때문에 통행료를 안휘성에서 한번 지불하고 다시 절강성 구간에서 또한번 지불하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라고 했다.또한 省政府 재정이 더 나은 절강성 구간의 항휘 고속도로는 일찍이 완공됐지만 省財政이 허약한 안휘성 구간의 항휘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안휘성에는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물동량이 없어서 항주 항산간의 항휘고속도로는 한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항주에서 황산으로 들어갈 때는 항주-황산간 고속도로를 ( 항휘고속도로를) 밤에 이동했기 때문에 주변경관을 구경할 수가 없었지만 황산 구경을 마치고 항주로 돌아올 때는 오전중이라서 고속도로변을 적나라하게 구경할 수가 있었다.고속도로변 산야에 무덤이 보이지 않해 왜 무덤이 보이지 않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중국에는 공동묘지가 별도로 있어서 반드시 공동묘지에 시신을 매장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산야에서는 무덤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안휘성의 항주 황산간 고속도로변 (항휘고속도로변) 좌우측은 온통 산악지대이고 험준한 산비탈에 계단식 농토가 있고 산구릉에는 밀집된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저 많은 사람들이 무얼 해서 먹고 살지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고속도로 뚫리지 않았다면 심심산골이 아닌가 하는 소감을 피력하는 일행도 있었다.반면에 절강성 항주시쪽이 가까워지자 고속도로 주변은 끝없는 지평선과 들녘이 전개되었고 산업단지도 많이 보였다.
항주시에 도착한 일행은 시내에 있는 영은사라는 사찰 구경에 나섰는데 영은사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잡상인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었다.여기에서 일행 b씨는 자신이 당한 경험담을 털어 놓았는데 현지 잡상인 선글라스 판매원이 달라붙어서 맨 처음 썬글라스를 내보이고 제시한 가격이 한국말로 5000원 그다음에는 3000원 2000원 순으로 내려오더니 맨 마지막에는 1000원을 제시하면서 사달라고 어찌나 집요하게 달라 붙던지 짜증이나고 귀찮아서 한국돈 1000원짜리 한 장을 그냥 꺼내주고 떼어냈더니 이번에는 그 썬글라스를 강제로 맡기다싶이 건네주길래 그것을 받아서 그 옆에 있는 지도파는 잡상인에게 그냥 되돌려 주고 왔다면서 이렇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중국 잡상인들의 상술에 기가 막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항주시내 영은사라는 사찰은 서기 326년에 인도의 해리라는 스님이 이곳에 와 현재의 영은사 사찰 앞에 있는 飛來峯이란 산을 보고 이 산봉우리는 인도에 있는 영취산 봉우리를 꼭 닮았으니 인도의 영취산 봉우리가 중국땅으로 날아온 것이라는 뜻으로 비래봉이라 칭하고 이 비래봉 근처에 사찰을 세우면 중생교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서 현재의 위치에다 영은사라는 사찰을 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영은사 경내 입구에는 영은사라는 표지판이 있고 일반 사람들은 이 사찰을 영은사라고 부르지만 사찰 정면에는 雲林禪寺라는 현판이 또 붙어 있으니 한 개의 사찰에 2개의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 사유는 영은사가 불타고 재건축한 뒤 황제께서 영은사를 찾아오자 영은사라는 현판을 친필로 써달라는 부탁하니 황제는 영은사라고 쓴 것이 아니고 운림선사라고 써 주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황제께서 하시는 말씀이 불도가 구름처럼 모여 숲을 이룬 사찰이란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고 했다.따라서 지금의 영은사 경내에는 운림선사라는 현판이 아직도 붙어 있었다.
영은사 경내있는 달마대사상(석가모니가 죽은 뒤 56억7000만년 후에 부처가 될 사람이라는 미래불상),위타보살상(석가모니를 보호하는 보살) 등과 500 나한상 등의 조각상과 약사여래불(건강을 관리하는 부처) 등을 둘러본 일행은 대웅보전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한판 찍기도 했다.
영은사 경내를 둘러본 일행은 점심식사로 항주의 4대 요리중 1위의 동파육(돼지고기 삼겹살을 장조림해 놓은 것과 같은 요리)과 2위의 거지닭 또는 황제닭(거지들이 연잎같은 잎사귀로 싸 구어 먹었다는 닭요리를 배고픈 황제가 먹어보고 맛이 있어서 환궁해서도 그 닭요리를 자주 시켜먹었다는 삶은닭고기 요리) 요리를 맛보기 위해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소문과 달리 나는 동파육이나 거지닭 요리에서 특별한 별미를 느끼지 못했다.
중국식으로 점심을 마친 일행은 이제 항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용정차라는 녹차집으로 이동했다.황산에서의 실크매장과 보석매장에 이어서 항주에서는 녹차 매장이었다.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항주 녹차는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먹어보고 독특한 맛에 반해 국가에 그 녹차를 납품토록해서 유명해진 녹차라고 했다.이어서 북한 말씨를 구사하는 녹차집 안내원의 청산유수같은 녹차의 우월성 설명이 끝난 뒤 녹차 시음까지 해보니 녹차맛이 떨떠름했지만 건강에 좋은 차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싶었다.
녹차 매장 구경을 마친 일행은 이제 서호 유람선 관광길에 올랐다.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현지 가이드는 중국 현대사 일부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196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있어던 10년동안의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30년 후퇴시켰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 문화대혁명기간 중에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 등지로 이주해서 그들이 오늘날 중국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또한 중국의 유소기 동지가 1950년에 수립한 중국 발전계획을 토대로 등소평 주석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행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西湖라는 이름의 호수는 중국에서 모두 36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항주시에 있는 서호가 최고라고 했다.서호에는 1산 2제 3도가 있는데 이것은 산이 1개,방파제가 2개,인공섬이 3개라는 뜻인데 1산은 호수안에 고호산이라는 산이 1개 있다는 뜻이고 2제는 소제라는 방파제와 (항주의 성장 또는 성주로 있었던 소동파라는 사람이 만든 길이 2킬로미터짜리 방파제) 벽제라는(역시 항주의 성장 또는 성주로 있었던 백낙청이라는 분이 만든 길이 1킬로머터짜리 방파제) 방파제가 있다는 뜻이며 3도는 호수안에 있는 3개의 인공섬을 의미한다고 했다.
서호 전체 둘레는 약 15킬로미터쯤 되고 서호의 수심은 약1.5미터정도인데 수심 밑바닥에는 3-4미터의 뻘이 쌓여서 이 뻘속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수영이 금지되고 낙시도 금지되고 빨래도 금지되고 있으며 호수 주변 1킬로미터 이내에는 개인주택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소제와 벽제라는 兩堤의 남쪽에는 양식장으로 사용하는 4개의 內湖가 있으며 양제 북쪽에는 양어장으로 사용하는 1개의 外湖가 있어서 서호는 모두 5개의 호수가 되는 셈이라 했다.그리고 북경의 곤명호도 서태후가 이 서호를 본떠서 만든 호수라고 했다.
일행은 소제라는 방파제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서호 깊숙이 들어갔는데 이 유람선상에 보니 호수라기 보다는 바다 같았다.유람선은 소제라는 방파제와 제1인공섬 사이로 빠져나가 벽제라는 방파제와 제2 제3 인공섬을 먼 발치에서 둘러보고 방향을 바꿔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나왔는데 유람선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들은 꾀 볼만했다.호수 서쪽으로는 항주 시가지 건물들이 희뿌연 안개속에 모습을 드러냈고 특히 일행이 첫날 방문했던 성황각 건물도 확연히 식별되었으며 호수 동쪽으로는 래봉탑이란 탑이 숲 속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또한 장관이었다.
현지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항주시는 부자들의 별장이 많이 있고 이 호수 때문에 항주시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며 1980년에는 이 호수에 전단강 강물이 유입되는 입구와 호수물이 빠져나가는 출구를 만들어 호수물이 순환되도록 했다고 한다.
서호 유람선 관광을 마친 일행은 마지막으로 라텍스(천연고무로 만든 메트리스) 매장으로 이동했는데 매장 관리인은 간단히 설명하겠다더니 상당히 장시간을 일사천리로 라텍스가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왜 라텍스가 좋은가까지 일목요연하게 갈파해 나갔지만 듣는 내 입장에선 무척이나 짜증이 나기도 했다.
라텍스 매장까지 구경한 일행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宋城가무쇼를 구경할 수 있는 민속촌이었다.이곳 민속촌 입구에는 “給我一(급아일) 還你千(환리천)”이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일행은 모두 저게 무슨 뜻일까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給我一은“내가 이곳에다 1시간을 투자하면”의 뜻이고 還你千은“우리는 당신에게 천년전의 시간을 돌려드립니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어서 이곳이 어떤곳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이곳에서 1시간 동안만 구경하시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천년전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해 드립니다 라는 뜻이니 정말 그럴듯하고 오묘한 한자적 표현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항주시가 약 150년 동안 남송시대의 수도였기 때문에 남송시대를 재현한 민속촌 거리를 만들어서 관광객들에게 남송시대의 문물을 보여주는 곳이었다.가무쇼 시작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일행들은 남송시대 문물이 재현된 민속촌 거리를 둘러보았는데 대장간이나 주막집 및 사주보는 집 등을 둘러보니 마치 1000년전의 남송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거리 전체가 1000년전 남송시대 당대 사람들의 두발 및 복장을 한 채로 시장터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행이 극장안으로 들어서서 조금 기다리니 가무쇼가 시작되었는데 (1)곡예사들의 막대기 오르기 쇼 (2)궁중 댄싱 (3)전쟁 (4)항주의 신화와 전설(5)일본 무용 소개(6)한국의 아리랑 노래와 춤 순으로 쇼가 진행되었는데 가장 인상 깊게 감명받은 것은 원통형 조명효과 속에서 무희들이 춤추는 모습은 정말로 경이적이었고 또한 폭포수 물이 쏟아지도록 만든 무대장치도 놀랍기만 했다.이렇게 해서 내게는 중국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체험을 겪은 훌륭한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