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과 교회
1. 유년과 청소년 - 신앙은 어머니 (불교)
1) 내 고향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 354

2) 신앙은 어릴 때부터 어머님과 홍천 내촌 “쌍계사”라는 조그만 암자에서 1년에 두 번(4월 초파일, 칠월7석)정도 불공을 드리는 것이었고, 초등학교부터 가끔 우리 동네가 아닌 산 넘어 광암감리교회 크리스마스 발표회 참석

1961년 3월, 협성초등학교 졸업
3) 공부를 하려고 춘천으로 나와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농화학과를 1972년에 졸업 (소양강댐 현장 10개월 알바)
- ‘68년 춘천고 졸업 - 생활통지표 ( 희망직업 : 농촌지도사 )
- ‘72년 11월 (강원도농촌진흥원 - 농촌지도직 4을 합격, 현 7급)
대학시절 춘천지역 대학생 천주교 교리문답 공부를 하였으나 영세는 받지 않음
2. 청년시절 (최초 교회출석 - 포항 오천교회, 1973년)

1) 1973년 4월에 해병학교에 입학하여 동년 7월 20일에 해병소위 임관
동생이 근무하는 철원 6사단지역, 철원을 어머님과 함께 면회
2) 1973년 11월 진해에서 초등군사반을 마치고 포병소위로 포항 제1상육사단
포병 11연대에 근무하며 당시 오천면 오천교회에 나가며 1974년 4월 부활절에 첫 세례를 받음.
- 청년부 활동과 주일학교 교사를 맡기도 하고 군무에 충실함.
(사단 무장구보대회 40개 중대 팀 중 1위, 1주일 특별휴가)
- 세례를 받으면 더 큰 사탄이 공격하니 더 열심히 기도하라 (정영학 장로)
( 1974년 가을 결핵으로 판정, 포항병원 - 마산병원 입원치료 4개월)
- 정영학 장로님 딸과 청년부, 교사 활동, 중매까지 있었으나 김포전출
3) 김포 해병여단 포1대대 관측장교, 연락장교, 방위교육대 중대장 역임
- 강화군 철산감리교회 청년부장을 하기도 하고 신앙생활 유지
- 이병란 권사와는 1973년 11월 춘천에서 만나 편지와 가끔 서울서 만남
4) 1975년 9월 28일 결혼 (6.25당시 9. 28 서울 수복기념일, 해병장교 태극기)
- 1975년 음력 3월 1일 아버님 기일에 춘천 어머님께 갔다가 급성맹장으로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서 수술, 1달 동안 입원 (이병란 권사 자주 면회)
3. 장년 시절
1) 오류동중앙교회의 전신인 강서중앙교회에 처음으로 출석 : 1980년 5월

2) 교회 연혁을 보면 1976년 12월 19일 구로구 오류동 158-81호 김규동장로 사가에서 설립예배, 강서중앙교회에 나는 4년 후에 출석 나는 당시 33세로 예수님 돌아가시던 나이와 같았다.
강서중앙교회 단층교회 사진자료는 없고 87년에 나의 안수집사 및 권사취임 당시 주보사진을 보면 대략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현 오류남초등학교 동쪽 정문앞 3거리 초원교회 자리에 101평 대지를 325만원 마련하여 단층 60평 건물을 건축하여 전 박찬숙(후 박요한) 목사님의 부임으로 개척 그후 81년 1월 김규동, 성석인, 이현순 3명의 장로가 취임하고 강서중앙교회로 출범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성석인과 이현순 장로는 다른 교회로 가거나 교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3) 그러나 나는 당시 나이도 젊고 서리집사 시절이라 자세한 내분 등 문제는 잘 알지 못하였고 그저 당회장 목사님을 믿고 나 나름대로의 교회와 직장생활에 충실하려 노력하였다.

1981. 12. 24 성탄 그리스마스 행사 발표회 광경
맨 오른 쪽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학생이 76년생 6살로 큰 딸
당시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바로 전

1983. 12. 24 성탄절 전야 행사 중 유치부 악기연주 발표 사진.
앞에서 연주 지휘하는 학생이 당시 김춘현집사 둘째딸 김가영,
뒷줄 맨 오는쪽에서 실로폰을 치는 아이가 내 둘째딸 주은혜

1980년부터 84년까지 약 4년 정도 산 집, 교회와 같이 성장발전하고
많은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33년간 교회와 함께 하고 있음.

80~84년까지 살던 오류동 집 (오류 2동 사무소 뒤)

1983년 강서중앙교회(21세기드림교회 전신)시절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며 물놀이 갔던 사진
인화가 83년 9월로 되었는데 실제로는 7월 말이나 8월 중으로 판단

1983년 12월 국립농업자재검사소 근무, 12월 성탄절을 맞아 축하예배
나원용 목사님 종교감리교회 담임목사님, 전국 직장선교협의회 창립
국립농업자재검사소 직장신우회 부회장, 기독교방송 "새롭게 하소서"
직장신우회편 함께 출연 함창연습을 하였던 "예수가 함께 계시니"가
나의 애창곡이 되고 년말 앵콜방송으로 재방송 되었음.

우측 뒤에 앉은 학생이 차영덕 장로님 큰아들 차동일 (‘85년 4월),
이성용 목사님과 동기로 우리 교회에 함께 있었다면 중추적인 역할 기대

84년 5월 어린이날을 전후한 배경으로 보아 천왕동 약수터 논 부근?

전임 박요한 목사님의 아들 박성준전도사, 박요셉, 임명규 등
전도사님이 졸업한 연세대학교로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 사진
84년 8월에 박성준 전도사와 함께한 수련회 사진
배경사진으로 봐서 북한강 가평 유원지로 판단
4) 안수집사 임직예배 및 창립 10주년 기념예배 (1987. 5. 30)

강서중앙교회에 출석 만 7년 만에 집사안수를 받고, 40세가 되던
만 39세,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닌 지 13년만임
1987년 집사안수를 받고 대표기도와 헌금기도, 성탄예배 (‘87~88 추정)


사진에 대한 기록이 없고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음
이렇게 사진 한 장 남아있어 재촬영하였는데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박요한 목사님, 이기복 장로, 최경원 장로가 보임 (90년대 중반)
4. 오류동중앙교회 시무장로 장립 (2000. 6. 18 )

‘87년 안수집사 취임 후 13년 만에 53세

좌로부터 구형숙집사, 고애심권사, 이병란권사, 홍덕자권사,
허숙희집사, 황경신 권사, 김종례권사, 주혜준집사

좌측부터 김남훈, 주혜준, 정옥균, 고애심, 김종례, 홍덕자, 황경신 권사님,
이병란권사 뒤에 한길준, 김일상, 문춘자권사님 뒤에 최대남집사님이 보임
5. 오류동중앙교회와 한마음교회 합동 - 21세기드림교회 ( 2004. 4. 18 )

이성용목사님 위임예배, 설교 : 황해노회장 수원명성교회 당회장 안명환 목사님

이성용목사 양력 보고 : 주진복 장로 ( 2005. 1. 15 )

2004년 교회를 합병한 이후 21세기드림교회 전교인 체육대회 (‘06. 6. 6 )

몽산포해수욕장 야외예배 (‘05. 6. 6 )



2005년 오후 찬양예배 인 듯 (현 초인교회 자리 )
이성용 목사님 어머님 고구자희 목사님, 고애심 권사님, 김종례 권사님 등

2006년 4월 16일 부활절예배 성찬식

오류2동 파출소옆 상가 2층 교회시절 여전도회 찬양 모습

전교인 찬양 경연대회 (‘07. 5. 25 )
6. 21세기드림교회 새성전 건축 (2008. 11. 30)

21세기드림교회 입당예배(2008.11.30) : 건축위원장 주진복 경과보고


제1회 수목원열린음악회 : 2009년 9월 18일(금)


2010. 11. 7 추수감사와 이웃초청 주일및 제2회수목원 열린음악회

전도플러스 부흥대서회 : 황수관 박사 외 2인강사 (‘09.12.13~15 )

7. 올해가 신앙생활 40주년 ( 2013년 현재)

맥추감사 및 교회 36주년 설립기념예배 ('13.7.7 )


지난 7월 20일 만 40주년 해병대장교 임관 기념행사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 번 지난 40년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음.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한서 남궁억기념관 및 모곡예배당

한서 남궁억장로님 애국정신과 선양사업 - 동참 및 롤모델로 삼고 기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상
8. 결론
1. 아버님 6.25전사 60주기와 어머님 소천 1주기를 맞아 먼저 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60년 이상을 두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희생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어릴때부터 신앙심을 심어주시고 기독교로 개종하시면서 까지 아들을 믿어주시고 후원해 주신 어머님께 더욱 감사를 드리면서 미리 예정하시어 우리가정에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2. 아버님이 안계시고 벽촌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러주시고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주시며 근면과 성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모범을 보여주신 어머님께 감사하며 편지로나마 애국정신과 부모공경, 가족을 사랑하신 아버님의 순국정신과 유훈으로 아들을 가르쳐주신 아버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따라서 나는 어릴때부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장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고 신앙과 믿음으로 기도하고 결단함으로서 학교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및 교회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성공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큰 과오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전적으로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였지만 하나님과 부모님, 나와 함께한 주위의 모든 분들의 기도와 도움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3. 나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특출나게 좋은 것도 아니었고 초등학교 1학년 통지표에 공부는 잘하는데 너무 울기를 잘한다는 나약한 촌 아이었지만 스스로 나약함을 깨닫고 그렇게 목표를 높게 세우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집중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한 노력파의 학생, 학교나 직업 목표까지 될 수록 낮게 잡으면서 거기서 열심히 해서 남 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 지나고 나니 잘 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춘천고 시절에 8개반 중 특수반에 속해 서울,연고대를 바라보며 공부하는 중에서도 나는 강원대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농화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입학금면제와 학비를 장학금과 학생을 가르치는 알바로 자취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하였고, 후에 알게 되었지만 춘고 3학년 통지표에 희망집업이 "농촌지도사"였는데 목표대로 농촌진도직 시험에 합격하고 군무를 마치고 양구군농촌지도소에서 최초공무원을 시작하여 강원도농촌진흥, 농립부 산하 국립농업자재검사소, 농촌진흥청으로 영전하면서 농업사무관과 연구관으로 정년퇴직 함으로서 내가 목표하였던 농촌지도사보다 높은 직으로까지 오른 것은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요 축복이었습니다.
4. 청년부 여러분들들도 요즘 국내외 경제사정으로 취직이 어렵고 실업률 증가로 어려운 이때에 자기의 재능과 적성을 감안하고 주어진 환경과 형편도 고려하여 주의 종으로 전임사역을 할 것인가 직장과 사회생활을 하며 직장사역을 할 것인가, 또한 직업을 가지려면 어떠한 직업을 가질 것인가 진로방향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께 구하고 그 방면의 선배나 어른들께도 자문을 구하면서 신중히 결정하기 바랍니다.
일단 방향이 결정되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며 축복인 것을 믿고, 주어진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거기에 적응하며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전공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기술직이면 기능사, 기사, 기능장, 기술사 등 단계적으로 전문기술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학문이면 학사뿐 아니라 석사나 박사과정을 통하여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스펙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해야 한다.
우리가 목표하는 기도 중에는 구체적인 정보수집, 공부, 연구검토, 계획, 실천과 노력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난 행복한 전도세미나에서 네 분 목사님과 장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많은 은혜와 공감이 되기도 하였는데 신앙과 사업, 모든 면에서 항상 기도와 실천이 함께해야 목표를 이루며 주님의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항상 주님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