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조난 경험으로 다시 찾은 행복
<<산행기에 앞서...>>
이 글은 1989년 11월 29일(수)에 산행한 것으로 저로서는 산행경험이 없는 초보자의 단계에서 겪은 산행을 옮긴 것입니다.
이 후로는 산에 대해 절대로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산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또한 이 글은 1992년 10월호 사람과 산에 실린 글이기도 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하였나요 ?
이 글을 다시 읽고 보니 참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의 그 심정을 떠오르면 다시금 두려웠던 그때의 그 일이 생각나는 군요.
그때 그 조난 산행으로 팔공산이 무서워 한 동안은 팔공산은 가지도 않았지요
그리고 사람과 산에 글이 실린 후 부산의 한 아가씨가 편지로 팔공산 산행을
안내해달라는 편지를 몇 차례 서로 주고받고 1993년에 함께 산행한 에피소드도 있었죠.
<< 산행기 >>
가벼운 마음으로 팔공산의 갓바위에 올라갔다.
때마침 입시철이라 자녀의 대학합격을 빌기 위해 갓바위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갓바위에 오르고 나니 팔공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동봉까지 산행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 빨리 갔다오면 되겠지 "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동봉까지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이미 첫눈이 내려 등산로에 눈이 깔렸지만 쌓였다고 할 만큼은 아니었다.
한적한 산행을 하는 도중에 이상한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 방향으로 봐서 동봉에서 내려오는 방향이나 발가락이 2~3개로 보이는
짐승발자국 같아 조금은 겁이 났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신령재를 지나가는 도중 도라지 담배 한 갑을 주웠다. 마침 담배가 없어 잘 되었다 싶어 한 대 피고 꽁초를 확인한 다음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후에 이 담배가 불길한 징조가 될 줄이야 ?)
드디어 동봉에 이르렀다. 신령재에서 동봉까지 암릉이 많아 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로봉에는 금지구역이라 올라갈 수는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춥고 배고프고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하산할 생각을 하고 시계를 바라보니 4시가 넘었다.
** 팔공산 동봉에서 길을 잃어
하산시간을 계산하니 늦어도 5시 30분까지는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가야한다는 긴급한 마음에 길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땅만 보고 뛰어가다시피 내려갔다.
그런데 동봉으로 올라온 나의 눈발자국이 보이지 않고 처음 밟아보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올라온 길은 암릉으로 올라왔으니 지금 내려가는 길은 암릉 옆에 있는 소로길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내려갔다. 계속 내려가는 길이 조금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갈수록 길이 처음의 길이 아닌 것 같아 다른 소로길로 갔다.
낙엽이 쌓인 숲을 헤치면서 가는 길이란 여간 힘들지가 않다.
전혀 생소한 길이라 판단하고 다시 되돌아갔으나 잘못 들어간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렇게 길을 헤매는 사이 시계를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초조한 마음은
더해만 갔다.
어둡기 전에 못 내려갈까 ? 하는 걱정도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무조건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 대로 계속 따라서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갈 길도 먼데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나니 불안한 마음은 더해만 갔고 아침만 먹고 올라온 것이라 배도 고프고 힘이 없어 지쳐있으니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집 밖에 나갈 때 잠깐 나간다 온다고 하고 나왔지만 지금쯤은 등산화가 없는
것을 보면 산에 간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조금씩 어두워지고 겨울의 산바람은 내 마음을 얼게 했다.
나무지팡이를 들고 짚으면서 올라가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산 아래에는 팔공 컨트리클럽이 저 멀리 보이고 인가도 조그마하게 보였다.
그곳을 향해 소리쳤다. " 길을 잃었습니다 ! " " 사람 살려 ! " " 엄마 ! " 하고 외쳤지만 주위는 무심했다.
** 지도와 나침반으로 길 찾아
점점 자신을 잃어만 갔다. " 언젠가는 산이 무서울 것이다 " 라는 누나의 말이
생각났다.
집에서 따뜻한 밥 먹고 TV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천국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
그러다 문득 신령재에서 올라올 때 주운 담배가 생각났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버렸다. 다시 용기를 내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온 것은 토큰 2개와 백원짜리 몇 개, 그리고 사진기, 지도와 나침반뿐이다.
당황한 나머지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온 것을 몰랐다.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방향을 확인해 보았다. 정확한 독도는 할 수 없으나
방향감각은 알 수가 있었다. 많이 헤매고 많이 걸었던 것 같았다.
현재 12시 방향에서 9시 방향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길은 없지만 경사진 곳으로 내려갔다. 미끄러지고 나무 사이사이를 헤치고 내려갔다.
주운 담배를 버린 후부터 불안감과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았다.
물소리가 들렸다. 순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리본도 보였다.
계곡 물이 보였다. 물을 숨쉴 겨를 없이 마셨다. 그리고 부지런히 내려가면서
집에 가게 되면 쌍둥이형에게 전화를 해서 산에서 길 잃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맥주와 쵸코파이, 돈까스, 우유를 사달라고 부탁해야지 ! 하고 생각했다.
아 ! 드디어 길을 완전히 찾았다. 저기 상가가 보였다.
길을 찾은 기쁨을 가지기도 전에 상가주인 아주머니에게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내려왔는데 배가 고픈데 돈이 없고 해서 염치 불구하고 구걸을
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친절하게 방안까지 들어가라며 밥상을 차려주셨다.
보통 집에서의 밥그릇의 3배나 되는 밥에 콩나물국, 김치, 시금치, 깍두기가
진수성찬처럼 보였다. 밥맛이 꿀맛 같았다.
이 밥 맛에 밥투정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가 부르니 먹는다는 게 인간의 단순한 욕망 같지만 가장 큰 행복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 먹고 싶었던 맥주와 돈까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산행의 아찔함과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멀어져 가는 팔공산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모님의 얼굴과 누나와 동생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행복감(?)과 이번 산행의 끔찍하고도 귀중한 경험을 식구 몰래 간직한 채 평소의
모습대로 TV 보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흥분과 행복의 감정이 가라앉히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