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문 해설] :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 사도(使徒) 예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가르치신 열 두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주교(主敎)들이 옛날 사도 그룹에 속하는 분들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초대교회의 첫 주교들이다.
♠ 신경(信經)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할 신앙고백이다. `신경'은 라틴말로는 `상징(Symbolum). 표시. 신분. 증명서. 계약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3세기 성 치쁘리아노께서 처음으로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이 믿음 조항을 입으로 고백함으로서 곧 그리스도 신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신분증명 또는 상징.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신경이 여러 개가 있었으나 현재 우리 천주교회에서 쓰고 있는 신경은 3가지 만이다.
첫째는 ; `사도 신경' 둘째는 ; 아타나시오 성인의, 성삼교리(聖三敎理)가 골자로 되어 있는 `성 아타나시오 신경' 셋째는 ; `니체노 꼰스딴띠노 뽈리따노 신경'
여러가지 신경이 생기게 된 까닭은, 옛부터 가톨릭의 신앙 개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자, 이들을 거슬러 우리의 산 신앙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신경을 외는 것은, 그리스도로 부터 내려오는 가톨릭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가 된다.
사도신경에는 열 두 개의 믿음 조항이 들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열 두 사도가 하나씩 만든 것이므로 사도신경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배운 것을, 그리고 그를 믿고, 그들이 전해준 교리 중에 가장 바탕이 되는 믿음 조항이 여기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 한다. 이는 직접 예수님으로 부터 내려오는 교리이기 때문에, 성경과 성전(聖傳)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사도신경은 주님의 기도와 함께 초대교회 부터 있었던 기도문이며, 특히 신입 교우가 성체(聖洗)을 받았을 때 천주교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이것을 성세 예절 중에 공식으로 바쳐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이것는 가톨릭의 믿을 교리편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미국의 뉴옥에 갔다 온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 뉴욕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102층 집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 이야기를 한 그 이가 진실한 사람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면 그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로 속일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지 못하겠는가! 우리가 사람의 말도 믿을 진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면 도리어 우스운 일이다. 교회는, 진심으로 사도신경을 한 번 외는 자에게 5년 은사을 베풀어 준다.
사도신경 해설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천지'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하늘과 땅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 세상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총칭한다. `창조주'란 세상 만물을 아무 것도 없는데서 만드신 어른이란 뜻이다. `나는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는다.', 즉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또한 하느님께서 아무 것도 없던 거기에서, 재료도 없이 만물을 만드신 것을 믿는다. 물론 세 위(位)를 가지신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나, 성부를,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와 같이 생각해서, 흔히 성부께서 창조 사업을 한 것으로 말한다.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아들'은 하나 밖에 없는 외동아들이란 말이다.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세상을 구속하는 자(救世主)'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기름으로 거룩해진 임금 혹은 대사제(大司祭)'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 밖에 없는 '성부의 아드님'을 믿는다.
†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동정'은 아이의 몸이란 처녀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천주 제삼위(第三位)이신 성령의 힘으로, 처녀인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사람이 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또한 사람이시기도 하다. 무릇 세속에서 자녀의 잉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만 생성되는 것이 자연법칙이지만, 예수는 하느님이시니까 사람과는 달리 천주스런 방법(성부 하느님의 방법)으로 즉 성령의 힘으로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다니, 도무지 알아 듣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본시오 빌라도'는 그 당시 그 지방 총독의 이름이다. 빌라도가 총독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잡혀 십자(+) 모양으로 된 형틀에서 죽으셨다. 그 때의 형법에는 십자가형의 사형이 가장 중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이르기를 예수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하나, 이것은 터무니 없는 소리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고 거룩한 시체는 땅에 묻히셨다. 이것을 믿는다.
† 고성소에 내리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고성소'는 원조(元祖)들이 죄를 지은 후부터 그리스도 오시기 까지는 천당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祖-예컨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곳을 고성소(古聖所)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의 영혼은 고성소에 가시어, 그 때까지 하늘나라(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죽으신지 사흘째 되던 날 , `죽은 이들 가운데서', 죽은 모든 이를 떠나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예수 부활이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약을 가지고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죽으셔서 땅에 묻히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으므로 이것은 곧, 당신은 사람이 아니요 하느님임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즉시 부활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죽으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나중에 부활될 수 있다는 보증이 되기도 한다....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다.
†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오른편에 앉으시며'라 함은 성부님 바른편 높은 자리에 정해 앉으셨다는 말이다. 하느님이신 성부께 바른편. 왼편이 없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가득히 누림을, 그 때의 풍속대로 말했을 따름이다. 즉, 제일 높은 사람의 바른편에 그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앉았었다.
`앉으시며'함은..., 예수님께서 마치 임금이 어좌에 앉음과, 심판관이 판석에 앉음과 같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천국 어좌에 앉으시어, 공심판 때 심판관이 되실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에 하늘에 올라 가시어 성부님 바른편에 앉으셨는데, 이것을 예수 승천(昇天)이라 한다.
하늘에 오르신 것은 첫째 세상에서 모든 고난을 받고, 그 보답으로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요 둘째) 천당에 우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요, 셋째) 우리를 위해 성부께 도움을 구하시기 위해서 이고, 넷째)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기 위함이다.
†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심을 믿나이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성부의 영광을 누리시다가 세상 마칠 때 하늘의 구름을 타고 세상 만민을 심판하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로 부터'라 함은 성부 바른편의 높은 어좌로 부터 심판관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산 이'라 함은 세상이 끝나는 그 때 까지 살아 있느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도 한번은 죽었다가 다시 살나기 마련이다. / `죽은 이'라 함은 세상이 만들어 진 이래 죽은 모든 선자.악자를 다 말한다.
이 밖에 다른 뜻으로는, `산 이'라 함은 은총의 지위에 있어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뜻하고, `죽은 이'라 함은 대죄(大罪) 중에 있어 지옥을 차지할 사람을 말한다. 심판관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만인 앞에서 각자의 선행과 악행을 판단하시어, 착한 이는 천당으로 악한 이는 지옥으로 각각 판결하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되는 것이므로 공심판(公審判)이라고 하고, 사람이 죽는 다음 하느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을(私審判)이라고 한다.
[성령과 교회]
† 성령을 믿으며
천주 삼위(三位)의 한 분이신 성령께서 참으로 계심과, 성부, 성자와 같이 하느님임을 믿는다.
†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공번된 교회'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믿을 수 있는 거룩한 교회이며, 하느님은 또한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므로 이 교회는 모든 이가 믿어야 하는 공번된 교회임을 우리는 믿는다.
`성령'이라 함은 세상에서 하느님을 열심히 공경하고, 남에게 좋은 표양을 주어 거룩하게 산 분들이, 죽은 다음 여러가지 기적을 통해, 그가 확실히 천국에 있다는 것이 판명된 다음, 교회에서 `성인'이라고 특별히 선언한 분을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성인은 천당, 연옥, 은총 지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킨다.
'통공'은 공이 서로서로 통한다는 말다. 교회안에 있는 모든 이는, 공이 있는 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즉 `모임'은 넓은 뜻으로 천당. 연옥. 세상... 이 세가지 모임을 말한다.
그러니까 천당에 있는 영혼은 불쌍한 세상 사람들을 위해 빌어주고, 연옥에서 보속하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이리하여 이 세 모임은 서로서로 도와주고 있는데, 이것을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 죄의 사함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첫째 이유는 우리에게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함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사)하실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 사업을 세상 마칠 때까지 맡아보는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 안에 죄를 용서(사)하여 주는 권한을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구속사업은 헛된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ㄴ-23) 하시면서 명백히 죄를 사(용서)하는 권리를 주셨다.
이것을 모르는 이들은 흔히, 천주교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사)한다고 한다.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교회가 예수님으로 부터 받은 권한으로서 죄를 용서해 주심을 믿는다.
†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한 평생 산 다음 그 육신이 죽지만, 나중에 세상이 끝나는 날,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 자기의 영혼과 결합한다. 이것이 육신 부활이다.
†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육신과 영혼이 다시 결합된 사람은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죽지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바램은,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이 마친 다음 참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6)하셨으니, 그 때 죄인은 지옥에서 영원한 벌 중에서 살 것이고, 선인은 천당에서 영원한 복락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또 이르기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희망삼고 하느님을 공경한다. 우리가 마땅히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할 진대, 이 모든 것이 착하신 하느님의 말씀이고 보니, 굳이 믿을 따름이다.
|
[라틴어, 사도신경]
Credo in Deum, 전능하신 Patrem omnipotentem, 천주 성부, Creatorem caeli et terrae.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jus unicum, dominum nostrum: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성령으로 인하여 natus ex Maria Virgine,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passus sub Pontio Pilato,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descendit ad inferos; 저승에 가시어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ascendit ad caelos; 하늘에 올라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Credo in Spiritum Sanctum, 성령을 믿으며,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Sanctorum communionem,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remissionem peccatorum, 죄의 용서와 carnis resurrectionem,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vitam aeternam.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Amen. 아멘. |
[참고 : 보조자료] :
'신경'이란 말은 라틴어로 Symbolum(표시)이라 하는데 신앙적 교리를 교회가 권위있게 공식 문구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신경을 염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진리를 모두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즉 신자의 표시로 신경을 염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님의 기도와 함께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의 특권으로서 이 기도를 염하게 했고 이 기도의 내용을 믿는 것은 신자의 의무였다.
모든 신경은 '나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믿음이란, 지성을 가진 피조물 즉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믿음은 오관을 통해서 감지할 수 없고 지능으로 밝히 깨달을 수 없지만 말씀하시는 이의 진실성을 보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경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즉 성부, 성자, 성령과 그 업적을 차례로 고백한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운 신앙의 근본 가르침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성전으로서 가톨릭 교회의 모든 교리가 요약되어 있으며 열 두개의 신앙조항으로 구분될 수 있다.
1) 나는 무에서 유를 지어내시는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나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다.
2) 나는 생명의 근원이신 성신의 힘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이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지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그분이 바로 나의 주님이심을 믿는다.
3) 나는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을 모독하고 백성을 현혹했다는 유다인의 고발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아리마테아 사람 요셉의 돌무덤에 묻히셨음을 믿는다.
4)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조들 [구약의 성인들] 이 구원자 오시기를 수 천년 동안 고대하고 있던 고성소에 가시어 그들을 위로하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첫 사람이 되셨음을 믿고, 하느님의 친아들 이심을 믿는다.
5)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40일만에 하느님 나라에 오르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오른편에 앉으시어 아버지와 똑같은 영광을 누리시며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시고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다
6)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종말에 권능을 가지고 다시 오시어 산 이와 죽은 이, 즉 모든 사람을 심판하여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리라는 것을 믿는다.
7) 나는 천주 제3위로서 성부와 성자와 같이 한 하느님이시오, 진리와 생명과 사랑, 즉 모든 은총의 근원이신 성령을 믿는다.
8)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시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구원이 될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며 세상 종말에 완성될 순례하는 교회를 믿는다.
9) 나는 하늘 나라에 있는 성인들과 세상을 떠나 정화 중에 있는 연옥영혼들 그리고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가족을 이루고 같은 생명을 누리면서 서로 공을 통함으로써 도와주고 있음을 믿는다.
10)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첫째 이유가 우리에게 죄의 사함을 베풀기 위함이요,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하는 권한을 받은 교회가 우리의 죄를 사해줄 수 있음을 믿는다.
11) 나는 죽은 후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세상이 끝나는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됨을 믿는다.
12) 나는 육신과 영혼이 다시 결합하게 되면 선인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끝없이 누리리라는 것을 믿는다.
사도신경 외에도 다음과 같은 신경이 있다.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Symbolum Nicaeno-Constantinopolitanum AD381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잘 표현한 신경)
"나는 믿는다. 한 분이신 전능 천주성부, 하늘과 땅에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 나신 천주의 외아들이시며, 천주로 부터 나신 천주시오,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오, 참 천주로부터 나신 참 천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 만물이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으며,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하 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믿나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좇아 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 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성세를 믿으며 죽은이들의 부활과 후세의 영생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아타나시오 신경(Symbolum Athanasianum :4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성 아타나시오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잘 표현한 신경)
이 밖에도 다른 신경이 많이 있다.
[참고자료 : 김종헌 신부 가톨릭성가 홈페이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
[기도문 해설] : 개신교계의 사도신경 해설
1. 개신교의 사도신경 기도문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아멘)
2. 사도신경의 성립
사도신경 공인본문이 형성된 것은 5세기 말 - 6세기 초 사이다. 이 시기 이전에는 공인 본문 형식의 신경(또는 신조)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다만 지방(특히 서방교회의)에 따라 각종 신앙고백문들이 예배 때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형태들 가운데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공통부분들을 모으면, 하나의 기도문 형태가 된다. 이견은 있지만, 학자들은 그 기도문의 원형을 250년에서 460년 사이에 로마교회 예배 때 두루 사용된 신조(이른바 소로마신조)라고 본다. 이 때 이미 이 신조는 12사도로부터 직접 유래되었으며, 베드로에 의해 로마로 전해졌다고 믿어졌다. 그렇지만 그 여사적 근거를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2세기 경에에 세례식 때 사용되던 짧은 신앙고백문이 전승되었고, 이것이 서방교회에서 반전되면서 두루 전해져왔으며, 이것을 소로마신조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소로마신조의 원형이 되는 초기 형태의 신앙고백문은 당시 발흥하던 이단적인 견해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2세기 경에는 영지주의와 假現設과 같은 견해들이 팽배했다. 영지주의에서는 영혼(善)과 물질(惡)을 엄격히 구분하고, 신은 오직 영적인 세계만 창조했다고 믿었다. 순수한 영혼이 타락한 물질 안에 갇혀있으므로 영혼을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구원이다. 이들은 선한 그리스도는 학한 육체를 가질 수 없으며, 예수의 육체는 단순한 현현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가현설주의자들은 신이 악한 물질 세계를 만들었을리 없으므로, 신이 세계를 창조했으며, 인간 세계에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구약성서를 부인했다. 육한 육체는 성적 결합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성교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육체를 껍데기만 입고 오셨다면, 그의 고통도 헛것이고, 따라서 구원도 헛것이라 보았다. 아울러 기독교의 정통성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가장 초기 형태의 사도신경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천지를 만드신, 고난을 받으사, 죽으시고, 땅속(고성소, 저승)으로 내려가시고, 공회, 영원히 사는 것” 등과 같은 세세한 표현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5-6세기 경 갈리아(아일랜드 포함)에서 만들어진 신조에서는 소로마신조에는 없던 “천지를 만드신, 고난을 받으사, 죽으시고, 땅속(고성소, 저승)으로 내려가시고, 공회”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표현들은 동방교회에서 사용되던 교리적 표현들이었다. 갈리아 신조는 동방교회 신조로부터 이러한 풍부한 표현들을 배웠고, 그것이 오늘날 사용되던 신앙고백의 원형이 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당시 생겨나고 있던 이단적인 견해들(특히 아리우스의 견해 -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그리스도는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존재이므로 영원하지 않다.
신에게는 始點이 없지만 아들에게는 있다고 주장.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가 창조물의 하나라면 그의 구원은 절대적, 보편적일 수 없다 하여 당시 교회는 아리우스를 단죄했다.)을 가리기 위한 기준들이 필요했는데, 이 갈리아 신조의 내용이 소로마신조보다는 훨씬 풍부한 내용 - 특히 예수의 육신성 - 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갈리아 교회 신조를 권장하는 경향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 뒤 이 신조들은 점차 교회 예배 때 공식적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발전해, 카이사리우스 시대에 생겨난 대로마신조로 대체되었다는 사실만 확연하게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사도신경이다. 특히 루터와 칼빈이 교리문답서에 이것을 포함시킨 이후 교회는 사도신경을 중시하게 되었다. 사도신경은 어떠한 교리적 논쟁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가 유대교나 이단종파와는 구분되는 종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자기정체성 확인 작업의 결과인 것이다.
3. 사도신경 해설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 가톨릭)
이 첫째 항목은 ‘하나님의 전권’에 관한 항목이다. ‘하나님의 전권’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믿는다, 하나님을 - 이것이 원형이다. 여기에 아버지(성부), 전능하심,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 등의 표현이 나중에 추가됨.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불렀다. (마 11,25; 26,39, 막 14,36) * abba - 어린이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아람어식 표현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시다 - 예수님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었다. (막 10,6-9; 13,19, 마 5,34-37)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 예수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다.(막 14,62; 마 19:25) * ‘전능하신’(판토크라토르)라는 표현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와 같은 분이라고 소개한다.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 외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둘째 항목부터 일곱째 항목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항목들로서, 4-5세기 경에 난립한 이단설에 쐐기를 박으려는 목적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둘째 항목은 예수의 정체, 즉 예수가 참 하나님임을 보여준다. “그 외아들”(모노게네스 - 유일하게 나타난, 獨生) - 신약성경에서 이 낱말은 오직 예수에게만 쓰인다.(요 1,12-14 참조) 2세기 경에 여러 신들이 난무하자, 예수야말로 한 분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임을,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다. 특히 예수를 “우리 주(퀴리오스)”라고 한 것 역시 예수님이 참 하나님임을 강조한 말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면 바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 된다. 그래서 “우리 주”라고 표현.
(3)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예수가 인간의 몸을 가짜로 입고 내려오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에서 출생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구절이다. 그러나 여느 인간과는 달리 아버지의 씨를 받아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처녀에게서 잉태되었다. 이것은 누가복음 1장의 예수탄생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4)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이 부분은 예수의 수난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그리고 이 부분 역시 예수가 실제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며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려주고 있다. 장사했다는 표현 역시 그것을 강조한 말이다. 예수는 거짓으로 고통을 당한 체 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 빌라도 : 26-36년 사이에 유다와 사마리아 땅을 다스리던 로마인 총독으로, 그만이 사형을 언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 십자가 : 로마의 가장 끔직한 사형방법으로서, 노예나 반역자에게만 가해지던 형벌. * 가톨릭에는 “저승(쉐올)에 가시어”(또는 “고성소에 내리시어”)라는 표현을 첨가해 쓰고 있다. 이것 역시 예수가 철저히 죽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5)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사흘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앞의 내용들은 예수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신앙고백문이었으나, 여기서부터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부분들로 이어진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예수의 부활이다. 부활에 대한 원초적인 증언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셨다”이다. 예수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다”는 수동태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롬 4:25) 예수의 부활 역시 하나님의 주도권을 중시하는 신앙고백이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신약성서에서 두루 전하고 있다: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4 - 바울은 모든 사람이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는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각자의 신앙생활에 예수의 부활이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부활에 대한 신앙고백문을 소개한 것이다). 이 신앙고백문은 서기 30-4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서, 여기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라는 구절이 나중에 추가되었고, 사도신경에는 그 나중 구절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죽은 이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한 말이다.
“사흘만에”의 사흘이라는 숫자 자체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있었던 요나의 전승과 연결된다. 요나가 잠시동안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다가 다시 나오게 된 것 처럼, 예수도 잠시동안만 죽었던 것이지, 영원히 숨을 거두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 들어있다.
(6)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예수의 승천에 관한 고백이다.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지신’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으니, 예수님이 신비스런 방식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게 된 것은 당연했다. 이 신비스런 방식이 승천이다. 승천은 예수님의 ‘다시 일으켜지심’, 즉 ‘부활’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신앙고백문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의 인간적인 성품과 동시에 그가 영광에 싸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뜻을 반영한 신앙고백이다. 이 가운데 ‘오른편’이라는 표현은 시편 110:1의 표현으로서,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니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에게 지극한 존경을 보낸다는 뜻을 담은, 비교적 상징성이 강한 구절이다 -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신데 ‘오른편’인들 따로 있겠는가 -.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에 휩싸여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계신다는 신앙적 사실의 표현인 것이다.
(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승천은 재림과 연결된다. 재림이란 그리스어로 ‘파루시아’이며, 이것은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의 힘을 세상에 과시하며 나타난다는 뜻에서 쓰인 말이다. 이 용어는 황제와 같은 사람이 어떤 지역을 공식적으로 방문할 때도 사용된다. 넓은 의미로는 출석, 현존의 뜻이다.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예수께서 이제는 그 구원의 가능성을 실현한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시고자 하늘로부터 다시 세상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는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까지, 즉 모든 이를 심판하는 심판자로서 오신다. 이 때의 심판이란 멸망으로의 심판이 아니다.
구원으로의 심판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예수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래서 예배 중에 “마라나타”(고전 16:22)을 외치기도 했다. 마라나타란 “주여, 오소서!” 또는 “주께서 오신다!”의 뜻이다. 여기까지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조이다.
(8) “성령을 믿사오며”(성령을 믿으며)
이 짧은 구절은 성령에 관한 신앙고백이다. 가장 오래된 세례문 양식에 따르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도록 되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다. 예수가 구원자라는 사실에는 예수를 구원자로 내려보낸 하나님 아버지가 이미 전제되며, 동시에 예수께서 보내시겠다고 한 보혜사(요 14: 16-17), 즉 성령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성령은 예수의 계시를 전달하고 그 깊이를 더해 주며 그의 실존을 마음으로 느끼에 해준다.(요 14:26) 한 마디로 진리의 영, 하나님의 영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 하고, 또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은 아버지 및 아들과 동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항목은 성령의 신성에 관한 고백이 되는 셈이다. 특히 성령의 신성에 관한 신앙 고백은 381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성령의 신성을 무시하는 이단적인 견해를 경계하면서 성령을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 선포하게 되었다.
(9)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아홉쩨 항목은 “거룩한 교회”에 관한 것이다. 교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이다. 예수는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때의 교회란 제도적이고 가시적인 건물로서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건물은 결코 거룩하지 않다. 부활하신 예수가 성령을 통해 활동하심으로써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의 모임이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약에서는 하나님께만 쓰였고, 신약에서는 예수에게 적용된 표현이다. 이것을 사도신경에서는 다시 교회에 적용한다. 하나님과 예수님에게만 적용되던 이 고백을 교회에 적용한 것은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만 거룩한 이, 즉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것도 단지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는 정도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성도의 교통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컴뮤니오 상토룸’communio sanctorum이다. 한 마디로 ‘거룩한 이들의 결합’이라는 뜻이다.(‘거룩한 것들의 결합’, 즉 ‘성사’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때 거룩한 이들은 포도나무의 비유에서처럼 참으로 ‘예수와 하나된 이들’이다. 여기에는 이미 죽은 이들이나 성인들, 그리고 천사까지도 포함된다. 참으로 거룩한 이라면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죄의 사함과)
죄가 용서된다는 기쁨의 사실에 대한 고백이다. 그런데 누가 죄를 용서해주는 것인가?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고백문의 문맥상으로 보면, 교회가 그렇게 해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교회가 참으로 거룩한 이들의 공동체일 때 가능하다. 그 거룩한 모임에 함께 해 거룩해진 이에게 더 이상 이전의 죄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몸이 다시 사는 것과(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이 표현은 부활이 막연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추상적인 의미의 사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몸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 그대로 부활한다는 뜻이다. 영혼이 몸을 떨쳐내고 자유롭게 된다는 그리스식 영의 부활 사상에 반대해서 몸의 있는 그대로가 다시 일어난다고 강조한 것이다. 물론 예수의 부활이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신’ 것이듯이, 인간의 부활도 하나님의 전권에 따른 것이다.
참으로 거룩해진 이들은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한다고 해서 이승의 삶이 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그랬듯이, 지상의 법칙에는 매이지 않는, ‘하늘의 천사들처럼’ 되는 것이며,(막 12;18-27 참조) 전체 인간이 하나도 모자람 없이 하나님에 의해 하늘의 존재로 거두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12)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지상의 시간은 끝을 두고 달리는 것에 불과하며, 종말 부활 때에는 무엇인가 충만한 새로움을 만나게 된다 뜻이다. 의인들에게는 영원한 축복이고, 죄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다.(마 25:46) 물론 그 영원함의 방향을 가르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같이 거룩해진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리고 있는 그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