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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instructions
최후의 가르침
Sutra text:
경전
All of you Bhikshus, you should always singlemindedly and diligently seek the way out of all the moving and unmoving dharmas of the world, for they are all decaying, destructible, insecure appearances. All of you, stop; there is nothing more to say. Time is passing away, and I wish to cross over to Nirvana. These are my very last instructions.
너희들 비구여, 항상 일심으로 부지런히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구하라. 일체세간의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존재는 다 부서지고 파괴되는 불안한 모습이라. 너희들은 모두 멈춰라. 더는 말할 것이 없다. 때는 장차 지나가려 하고, 나는 멸도하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汝等比丘 常當一心勤求出道
여등비구 상당일심근구출도
一切世間動不動法 皆是敗壞不安之相
일체세간동부동법 개시패괴불안지상
汝等且止 勿得復語
여등차지 물득부어
時將欲過 我欲滅度
시장욕과 아욕멸도
是我最後之所敎誨
시아최후지소교회 (가르칠회)
Sutra commentary:
주석
Final instructions. Below are the Buddha's last words to us.
최후의 가르침.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최후의 말씀입니다.
All of you Bhikshus, do you realize that before going, I'm still concerned about you. you should always singlemindedly, did you finally notice? Mahayana emphasizes single-mindedness, not proper mindfulness 正念. Mindfulness is the major meditation Dharma for the Hinayana. They still don't understand that single-mindedness leads to mindfulness. Conversely, proper mindfulness does not necessarily lead to single-mindedness. When you select a cultivation path, you should have the “Dharma selecting eye” to be able to recognize which method of practice is proper and can bring concrete results. Do not be fooled by appearances or marks (many put on Mahayana clothes but only teach Hinayana dharmas), reputation (the general population do not necessarily know any better).
너희들 비구여, 내가 떠나기 전 난 여전히 너희가 걱정된다는 걸 아는가? 항상 일심으로, 마침내 알아챘나요? 대승은 정념(正念, Mindfulness)가 아닌 일심을 강조합니다. 정념은 소승의 주요한 명상법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일심이 정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정념이 반드시 일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수행의 길을 택했다면, 어떤 수행법이 바르고,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인식할 수 있는 “택법안(擇法眼)”이 있어야 합니다. 겉모습이나 상(많은 이들이 대승의 옷을 입었으나, 오직 소승법만 가르칩니다), 명예(일반 대중이 반드시 더 나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에 속지 마십시오.
Diligently seek the way out. “Diligently” means to practice the vigor paramita; “seek”: out a good knowing adviser, who can transmit to you “the way out” a Dharma for escaping the Triple Realm.”
부지런히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구하라. “부지런히”란 정진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에게 삼계를 탈출하기 위한 “벗어나는 길” 법을 전해줄 수 있는 선지식을 “구하라”는 의미입니다.
Such is the attitude of superior root people. When they listen to worldly dharmas such as smiling, admiring the sunset, smelling the roses and tricks to intensify their sensual pleasures they are the least interested. Why? Perhaps because deep down in the mind, they realize that to undertake those practices only creates more attachments. When you are on the right path, you should have fewer attachments and hence, fewer afflictions.
이런 것은 상근기의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미소짓기, 일몰 감상, 장미 향기맡기와 같은 세간법과 육욕적 쾌락을 증진시키기 위한 속임수를 듣는 것에 가장 관심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은 그러한 수행을 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집착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길을 가면, 집착이 적고, 번뇌도 적어야 합니다.
How can we then recognize worldly dharmas? all the moving and unmoving dharmas of the world are of two types: “moving” and “unmoving.”
그렇다면 어떻게 세간법을 인지할 수 있을까요? 일체세간의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존재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움직임(動)”과 “움직이지 않음(不動)”
What are “moving dharmas?” They advocate chasing after externals. This is the Dharma for the Desire Realm. They don't teach about samadhi because they still have no control over their mind. Their mind still moves. When it does, then the body also moves. They take pleasure in movement. For example, go to the bookstore and you'll find a great number of meditation books that supposedly teach about mindfulness but if you look closely, they actually advocate meditating in order to increase sensual pleasures. They teach people to meditate so as to help them have more pleasure out of life: in watching the sunrise, savoring tea, using chakras to intensify sensual pleasures and so on. They are the moving dharmas. Practice them and you are guaranteed to be bound to the Desire Realm.
“움직이는 법(動法)”이 무엇인가요? 그들은 외부를 쫓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욕계의 법입니다. 이들은 아직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에 선정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움직입니다. 마음이 움직일 때, 몸도 역시 움직입니다. 이들은 움직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예로 여러분이 서점에 가면, 명상 관련 서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서적들은 마음 챙김에 대해서 가르쳐줘야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사실은 감각적 쾌락을 늘리기 위한 명상을 부추깁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삶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얻도록 명상을 가르칩니다. 감각적인 즐거움을 강화하기 위해서 해돋이를 보고, 차를 즐기고, 차크라를 사용합니다. 이것들이 움직이는 법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수행하면 여러분은 확실히 욕계에 묶여있게 됩니다.
What about “unmoving dharmas?” Those are the Dharmas of the Form and Formless Realms. They develop samadhi power and therefore their mind is unmoving. When the mind is unmoving, the body does not like to move either. Dhyana consists of four levels: first through fourth. Even though they developed concentration power, they are still bound by the form cage, which is very hard to escape from! If they make it out of that cage, then they graduate to the Formless Realm which also has four levels: Limitless emptiness (5th Samadhi), Limitless consciousness (6th Samadhi), Nothing what so ever (7th Samadhi), and Neither thought nor non-thought (8th Samadhi).
“움직이지 않는(부동)의 법들”은 어떤가요? 이들이 색계와 무색계의 법입니다. 이들은 삼매의 힘을 키워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몸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디야나(선)은 초선에서 사선까지 네 단계가 있습니다. 이들이 집중력을 키워도, 색롱色籠에 의해 여전히 묶여있습니다. 이건 탈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들이 이 색롱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때 역시 네 단계가 있는 무색계 즉 무한의 공(오정), 무한의 의식(6정), 아무것도 아예 없음(칠정) 그리고 생각이 있지도 없음(팔정)로 졸업합니다.
* 공무변처 空無邊處, 식무변처 識無邊處, 무소유처 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 非想非非想處
Those two types of moving and unmoving dharmas are still not ultimate because they do not liberate us from suffering. Why? Because they all have decaying, destructible, insecure appearances.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움직이는 법과 움직이지 않는 법은 여전히 궁극적인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를 괴로움으로부터 해방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다 부서지고敗 파괴되는壞 불안不安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Please make a note of this. Worldly dharmas have three characteristics:
이 부분을 자세히 보십시오. 세간법은 다음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Decaying”: They are falling apart. Is there anything that does not deteriorate? To pursue them would be to go after the transient and impermanent, like that ephemeral beauty.
“부서지고(패敗)”: 이것들(세간법)은 부서집니다. 어떤 것이든 변질되지 않는 것은 있나요? 그들을 쫓는 것은 덧없는 아름다움처럼 순간적이고 무상한(일시적인) 것을 쫓는 것입니다.
“Destructible”: They will disappear, won't be around, and will be gone without a trace. Is there anything that does not return to emptiness? To pursue fame and profit, can you take them with you at death time?
“파괴(괴壞)”: 이들은 없어져서, 근처에 없을 것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어느 것이라도 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있나요? 명예와 이익을 쫓는데, 여러분이 죽을 때, 그것들을 가지고 갈 수 있나요?
“Insecure”: They tend to add more afflictions. You feel insecure because you still have attachments. If you can't see through it, can't put it down then you still worry, still have to experience the ups and down of like and dislike, love and hate and so on. The BuddhaDharma is precisely the anti-dote for those dharmas.
“불안(不安)”: 그들은 더 많은 번뇌를 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여전히 집착이 있어서입니다. 꿰뚫어 볼 수 없을 때, 내려놓을 수 없을 때, 여러분은 여전히 걱정하고, 여전히 좋아함과 싫어함, 사랑과 미움 등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불법이 바로 이런 법들을 위한 해독제입니다.
If you can see all phenomena like that, then you are beginning to have the “Dharma selecting eye”! I hope that you make a note of this so that we don't let the Buddha down.
여러분이 그와 같은 모든 현상을 볼 수 있다면, 그러면 여러분은 “택법안”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걸 잘 살펴봐서 우리가 부처님을 실망시키지 않길 바랍니다.
All of you, stop, such is the Buddha's secret wish: that we know how to “stop.” “Stop”? He means stop thinking! If you can stop your mad mind then you'll see that there is nothing more to say. Continue to do Chan and you'll quickly see what the Buddha means! His teachings are so profound that you need to dig very deep before you can fully understand!
너희들은 모두 멈춰라. 이것은 부처님의 비밀 소망입니다. 우리가 “멈추는” 방법을 압니다. “멈춰라”? 부처님은 생각을 멈춤을 뜻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미친 마음을 멈출 수 있다면, 그때 여러분은 더는 말할 것이 없음을 볼 것입니다. 선禪을 계속하면, 여러분은 부처님이 무슨 뜻인지 금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심오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려면 매우 깊게 파야만 합니다.
Time is passing away the conditions are expiring, I wish to cross over to Nirvana: I want to enter Still Extinction. That is the last thing I want to do for all of you, not because I want to go into retirement, kick back and enjoy myself. He wants to make an example for those who have already attained liberation. As to those who have not attained liberation, he uses this psychological tool: if you really love me, then let me be because I really want to go, don't get emotional about it.
때는 장차 지나가려 하고, 연이 끝나고 있다. 나는 멸도(열반에 들고자)하고자 한다. 나는 적멸에 들어가길 원한다. 이것이 내가 너희 모두를 위해 하고자 하는 마지막 일이다. 내가 은퇴하고 물러서서 쉬는 것을 원해서가 아니다. 부처님은 이미 해탈을 얻은 자들을 위해 본보기를 세우길 원합니다. 해탈을 아직 얻지 못한 자들에게, 부처님은 이 심리적 도구를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나(부처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진정으로 가고 싶으므로, 날 그대로 두고, 이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되지 말라.
When my Chinese teacher wanted to take his leave, he was 78 years old. After spending his lifetime taking on others' illnesses and sufferings, he was very sick and he was in great pain night and day. When he announced that he wanted to go, his disciples got emotional and requested him to extend his stay in the Saha world. A good number of his disciples understood that for him to stay on would mean that he had to continue to suffer great pains; they therefore offered to alleviate his suffering. Some would use incense to burn their body on his behalf. He thus chose to stay on for a few months longer.
나의 중국인 스승(선화 상인)이 떠나길 원하셨을 때, 그는 78세였습니다. 그는 평생 다른 이들의 질병과 괴로움을 얻고는 그 자신도 매우 아프고, 밤낮으로 큰 괴로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가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을 때, 그의 제자들은 감정적 되었고, 그에게 사바세계에 더 머물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의 제자 중 꽤 많은 이들은 그(선화 상인)이 계속 머물면 계속해서 큰 아픔에 괴로워야 함을 의미한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선화 상인)을 위해 향을 피우고, 자신의 살을 태웠습니다. 그래서 그(선화 상인)는 몇 개월 더 오래 머물기로 택했습니다.
These are my very last instructions. My work is completed. I already taught all to be taught to this world.
이것이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나의 일은 끝났다. 나는 이미 이 세상에 가르쳐야할 모든 것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