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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항산 여행기 (2016. 5.17 ~ 21) 소산/문 재학 2016년 5월 17일(화) 맑음 모처럼 부부모임에서 태항산 탐방을 하게 되어 아침 6시에 김해공항으로 출발했다. 어제 내리던 비가 그치고 여행길을 축복이나 해주듯 날씨는 맑고 오월의 신록은 윤기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해 국제공항에서 10시 10분에 제주항공(7c8851)편으로 중국 석가장(石家庄 )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 예상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잠시 졸고 있는 사이 석가장 시 상공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석가장 시는 상당히 넓고 곳곳에 고층아파트들이 散在해있어 인구 천만 명 도시답게 대형 도시였다. 석가장 공항에는 11시 50분(현지시간 시차 1시간임)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에서 여권사진과 철저히 대조하면서 우리일행 중 한사람에게는 지참하지도 않은 주민등록증을 요구할 정도로 애를 먹었다, 그리고 여행가방도 개인별로 대조 확인 했는데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하는 공항은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물건을 잘못 찾아가는 사례는 없을 것 같아 시간이 다소 지체되어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현지가이드 김인식(교포 3세)씨를 만나 밖으로 나오니 황사가 짙게 깔려 백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여행일정이 염려스러웠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왕복 4차선 고속도로를 달렸다. 중국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중앙분리대는 조경수로 단장을 하였고 도로 양측으로는 대형 야립 간판이 줄지어 있었다. 河北省은 면적은 187,99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7천만 명이다. 그리고 수도인 석가장은 면적 14,05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천만 명이란다. 30여분을 달려 조자룡의 고향에 있는 조운묘(趙雲廟)’라 불리는 조자룡 사당을 찾았다. 삼국시대의 명장 조운(호:자룡)은 무기를 잘 다뤄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에서 유비와 제갈량의 신뢰를 받으며 관우, 장비, 마초, 황충과 더불어 오호대장군 반열에 올랐고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어 '항상 승리하는 장군'을 의미하는 常勝將軍이라 불렸다 말 위에 앉아있는 조자룡의 騎馬상이 있는 입구를 지나 장수처럼 생긴 정원수들이 모양이 각기 다른 창을 들고 통로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사당에는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이 조자룡과 함께 대형 입상을 둘러보았다. 다시 가까이에 있는 융흥사로 갔다. 융흥사(隆興寺)는 석가장에서 동쪽으로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정정(正定)이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하는 중국북방지역 최대 규모의 불교사원이다 중국 10대 사원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된 대표적인 불교사원이다. 수나라 때인 586년 창건한 천 년 고찰로 송나라 시대의 아름답고 화려한 목조건물이다 송나라 초기에 동으로 만든 천수천안관음상은 22m 높이의 몸체에 42개의 팔이 달려 있었다. 또한 사찰 창건 당시에 세워진 비석을 비롯해 각 시대의 비각 30여 점이 있었다. 이곳저곳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5월인데도 날씨가 30도나 되어 마치 초여름 날씨 같았다. 오후 2시 35분 버스는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진시황의 고향인 한단시(邯鄲市)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예상이다. 대평원에 직선으로 뚫린 고속도로 양측으로는 신축하는 고층빌딩들이 많이 보이는데, 급성장하는 중국경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석가장 시가지를 통과한 후는 고속도로 양측으로 수벽을 이루는 미루나무 사이로 야립 간판이 줄을 잇고, 그 너머로 초록융단을 이루는 밀밭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그리고 이의 후기작으로는 옥수수를 심는다고 했다. 어느새 왕복 8차선으로 바뀌었다.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100km이다.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아 비교적 한산했다. 이유는 통행료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란다. 3시 40분경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다.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라 그런지 시설 규모가 상당히 크고 깨끗했다. 한단시가 가까워지니 나란히 고속철도가 함께 하는데 그 위로 하얀색의 날렵한 고속열차가 지나갔다. 그리고 하늘에는 헬기 2대가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무엇인가 중국의 발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외기온도가 높아서인지 차량 내에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아 후덥지근하다. 4시 53분 개통한지 얼마 안 되는 이색적인 형상의 요금소를 통과했다. 우리나라 서울-대전간 거리인데 통행료가 36천원이라 했다. 하남성에 있는 한단시(邯鄲市)는 면적 12,087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917만 명(시내는 350만 명)이다. 시내 입구에 있는 HANDAN KANGYE호텔 1205호실에 여장을 풀고 한시간 정도 쉬었다가 시내에 있는 대형 식당에서 저녁을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의 시내 풍경은 특이한 모양의 가로등과 거리의 네온 등 조명이 상당히 화려했다. 2016년 5월 18일(수) 맑음 아침 7시 35분 호텔을 나와 하남성 天界山으로 향했다. 하남성은 면적은 167천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억 3천만 명으로 중국에서 제일 많다. 그리고 중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省이다. 이곳에는 포청천의 개봉. 소림사. 용문석굴이 있는 省이다. 약간의 황사가 있으나 날씨가 맑아 오늘 하루 여행에는 차질이 없을 것 같다. 소요 예상 시간은 3시간 30분정도 다. 왕복 8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곳곳에 과수원이 상당히 보이긴 하지만 물이 없어 벼농사 대신에 田作物을 재배하고 있었다. 밀은 기계로 廣幅 파종을 하여 수확량을 높이고 있었다. 농가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에 간혹 보였다. 8시 22분 경 하남성 요금소를 통과 하는데, 부지면적이 세계에서 제일 넓을 것 같았다. 광활한 땅 국유지이기에 넓게 확보하여 활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8시 30문경 한국의 안양시와 자매 결연을 맺었다는 중국의 안양시가 나타났다. 고층아파들이 즐비하고 신축하는 아파트도 많이 보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민들이 出穗가 완료된 밀밭에 나와 제초작업 등 농약을 살포하고 있었다. 너무나 광활한 들판이라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고속도로변 양측으로 전 구간 10~30m 정도 부지에 미루나무를 심어 樹壁을 이루고 있고 산들바람에 신록의 윤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농가주택이나 아파트 옥상에는 대부분 태양광 설치를 해 두었는데 우리나라도 이런 청정에너지를 적극 권장해야 하겠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이라 그러한지 넓은 하천이 있는 곳에는 중장비를 동원 골재체취를 하고 있었다. 9시 25분경 휴게소에 들렸다가 출발하는 부근에는 조금은 특이한 광폭의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10시경 신향[신샹(新鄕)] 서쪽 요금소를 통과 하는데 천계산까지 36km 남았다. 잠시 후 좌회전하여 중앙분리대가 없는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4차선도로 따라 도로변 나무들이 자주색나무와 녹색나무로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하여 삭막한 분위를 살리고 있었다. 10시 30분경 천계산이 22km 남았다고 했다. 도로양측의 가로수를 비롯 수벽을 이루는 나무들은 下部 1m 정도 높이까지 전부 하얀 석회유황합제를 塗布를 해두었는데 해충방제를 위한 것이라 했다. 잠시 후 부터는 도로변 양측으로 수km에 태항산에서 나온 정원석을 나열하여 놓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흐릿하게 거대한 암석산이 눈앞을 가로 막았다. 풍경구 입구에는 신설된 대형 주차장이 있었다. 남은 거리 7km 우리가 탄 버스는 2곳의 통제구역을 지나 4km 정도 들어갔다. 도중에 작년에 준공한 협곡 저수지를 지나 하늘과 신의 경계라는 뜻의 天界山 입구에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는 미니버스로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니 절벽바위를 뚫어 만든 산악도로가 나왔다. 이 길은 밖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마을 이장이 중심이 되어 마을 사람 12명이 기계의 도움 없이 곡괭이와 정으로 15년에 걸쳐 암벽을 뚫은 터널이다. 길을 이동하는 도중에 이들을 기리기 위해 커다란 동상을 세워두고 있었다. 조명과 통풍을 위해 제멋대로 뚫은 창과 길을 보면서 이들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길을 통과하면서 급경사 굽이 길에 놀라고 풍경에 놀라는 여자들 비명소리가 터널을 울렸다. 터널을 구불구불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제일먼저 하나투어의 환영 의 인사 글이 우리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참고로 태항산은 하나투어에서 400평방키로의 거대한 지역을 100년간 임차 7년간 120억을 투지 4개 관광코스를 개발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니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 하나뿐인 대형식당에는 한글 안내판이 게시되 있고 부근의 간이매점에도 전부 한글로 표시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한국의 유행가였다. 마치 한국의 어느 산에 놀러온 착각을 일으켰다. 제일먼저 2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15분정도 올라가니 해발1570m 의 노야정(老爷顶)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843개의 돌계단을 땀을 흐리면서 숨차게 올랐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찾았는지 폭 1.5m의 烏石 돌계단이 반들반들했다. 노야정(老爷顶) 정상에는 천하제일정이라는 玄天上帝 도교사원이 있는데 도교문화의 창시자 노자가 42년이나 기거를 한 곳이라 했다. 정상에서 땀방울을 걷어내며 사방의 그림 같은 풍경을 영상으로 담았다.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산 중허리에 수평을 이루는 수직 절벽들이 있고 산 정상으로는 기암괴석이 풍광을 자랑했다. 그리고 수평을 이루는 절벽 끝으로 전부 아슬아슬한 도로를 내 두었다. 은은한 범종소리를 뒤로 하고 하산하여 유일한 산장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했다. 관광객은 일부 중국인을 제외 하고는 전부 한국인뿐인 것 같았다. 중식 후는 운봉화랑은 홍암(붉은암벽)절벽위에 구름이 덮여 있을때 구름과 봉우리가 그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길 절벽 따라 전동차를 타고 360도 한 바퀴 돌면서 7개의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태항산의 비경을 감상하는 코스이다. 대기하고 있는 전동차(10~15인승)로 둘레길이 8km를 돌면서 담력을 시험해 본다는 試膽臺를 비롯 전망대를 거치면서 돌아보았다. 스릴과 탄성 속에 영상을 담았는데 시종일관 손 에 땀을 쥐게 하는 절벽위의 길을 1시간여를 둘러본 샘이다. 아직도 일부 원주민들이 살면서 절벽 위 공터에는 호두나무를 심어 두었다. 3시에 왕망령(王莽嶺)으로 출발했다. 10여분 만에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에 도착하여 지프차로 갈아타고 산악 길과 터널을 통과 하여 3시 30분에 8km 떨어진 왕망령(王莽嶺) 주차장에 도착했다. 미니버스로 3시 37분에 왕망령 전망대로 올라갔다. 해발 1665m 정상에 3시 50분에 도착했다. 도중에 예비군복을 입은 군인 들 수백 명이 울창한 소나무 保育작업을 하고 있었다. 높고 낮은 50여 봉우리가 구성되어 있는 이곳은 일출과 운해로 유명하다고 했다. 수려한 경관을 영상으로 담고 하산 하였다. 왕망령 전경 다시 지프차로 갈아타고 4시 40분에 비내리길로 향했다. 1960년대 30년 동안 수직절벽에 1000m 굴을 뚫어 7.5km 절벽 길을 냈다. 이 터널을 조마조마 스릴 속에 헤매었는데 조금 넓은 도로에서 차를 세우고 되돌아보니 절벽에 사각형 창이 있는 곳을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지나온 것이다. 험준한 절벽 길 등을 영상으로 담고 하산하여 5시 10분에 萬人의 신선이 산다는 뜻의 萬仙山으로 향하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급경사 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니 수직 절벽에 13명이 5년 동안 공사하여 소형 자동차가 다니도록 77년도에 완공한 1,250m의 絶壁長廊 동굴통로를 지났다. 이어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만선산 郭亮村 풍경구가 나왔다. 곽량촌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길게 늘어선 상가들이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들이 모두가 한폭의 그림이었다. 곽곽량촌 5시 50분에 하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남평이라는 아담한 산골 마을이 나온다. 평평한 주차장이 있는 마을 앞에는 해, 별, 달이 하나의 돌에 새겨져 있는 천연석인 '일월성석(日月星石)'을 보면서 내려갔다. 6시 20분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호텔로 향했다. 호텔까지는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다. 저녁노을이 시골길을 물들이는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리다 7시 지나서야 4차선에 들어섰다. 어둠을 뚫고 임주시(하남성 林州市는 2,046㎢. 인구 110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에 도착했다.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양고기 구이로 저녁을 하고 9시 50분 경 ZHONGZOU YUFENG Internatinal 호텔 709호실에 투숙했다. 2016년 5월 19일(목) 맑음 아침 8시에 임주 대협곡 도화곡으로 향했다. 임주는 신흥도시라 신축건물이 많고 심천처럼 계획된 도시로 발전되고 있는 것 같았다. 임주시는 50평 아파트가 5천만 원원 정도로 가격이 싸다고 했다. 왕복 8차선 도로 중앙분리대의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면서 달린다. 도중에 토산품 판매장에 들린 후 9시 40분 2차선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갔다. 싱그러운 5월의 숲속 향기가 가득한 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수리나무와 아카시아가 자주 보였다. 한참을 올라와 되돌아보니 지나온 길은 푸른 숲속에 잠기고 흔적도 없었다. 막다른 절벽에 도착하니 2km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탄성의 풍광이 나타났다. 그리고 계곡 쪽으로 내려가니 대형주차장과 마을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석판암(石板岩) 마을은 장수촌으로 이름난 곳이라 하는데 심산협곡의 맑은 정기를 받은 결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주차장은 임주대협곡의 출발지 도화곡 주차장이다. 桃花谷은 엄동설한에도 복숭아꽃이 피는 곳으로 유래되었고 수억 만 년 동안 풍우와 유수의 침식으로 홍암석이 씻겨 나가면서 생긴 협곡으로 옥수가 흐르는 폭포와 연못이 산수화를 그리는 곳이다. 많은 원주민들이 1회용 나무 지팡이를 1개 천 원씩 부르는데 사는 사람이 많았다. 검표소를 지나 본격적인 1시간 30분 트레킹에 나셨다. 입구에서 현황판을 앞에 두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飛龍峽谷부터 그림 같은 풍광을 거느리고 대협곡으로 올라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좁고, 처다 보면 까마득한 하늘뿐인 협곡 곳곳에 폭포와 潭 들이 유혹하는 협곡의 푸른 옥수 물에 녹은 바람소리. 물소리에 신선이 된 기분으로 탐방을 계속했다. 계곡의 암반의 분홍빛 원석들이 발길을 가볍게 하고 길목마다 원주민들이 土産品을 팔려고 천 원 천원 외치고 있었다. 관광객이 상당히 있었지만 전부 한국인이라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비룡협곡 너무나 아름다웠다. 올라가다 뒤돌아보면 또 다른 풍경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숨이 차고 땀방울이 흘러도 새롭게 펼쳐지는 풍광에 피로한줄 몰랐다. 황룡담. 백룡담. 백용폭포. 이룡희주.(二龍戱珠) 구련폭포 등 풍경구마다 다양하게 명명한 지점을 지나 11시 35분경 한인이 경영하는 무릉원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랬다. 11시 40분 도화곡의 玉水 물 桃花塘도 지났다. 주위의 그림 같은 풍광을 영상을 담으면서 오르니 桃花洞이다. 많은 차량이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식당에 손님이 많아 기다렸다가 12시 조금 지나 “청정 소한마리 식당”에서 불고기로 점심을 했다. 12시 57분 태항천로(太行天路) 관광길에 나섰다. 산허리 꼬부랑길을 달리는데 순박한 원주민들의 낡은 집들이 자주 나타났다. 꼬부랑길을 20여분 달렸을까 天境 전망대에 도착 하차하여 험난한 지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원주민들의 주택들과 조화를 이루는 꾸불꾸불 2차선 포장길이 눈 아래 풍광을 그리고 있는 것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다시 전동카(15인승)에 올라 아래로 내려가 달리다가 제2전망대 平步靑雲 이라는 투명유리위로 안내했다. 고소공포증이나 소심한 사람은 발조차 들이지 못하는 곳에서 부근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았다. 오후 1시 40분 버스는 몽환의 골짜기로 안내했다. 夢幻之谷 전망대에서 주위의 산세는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다워 필설로는 표현을 못할 정도여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담고 또 담았다.
그리고 발아래로는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협곡의 규모는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부를 만 했다. 골짜기 평지에 인가들이 아득하게 멀어 보였다. 2시에 버스에 올라 가까이에 있는 종점 浮雲頂에서 내렸다. 왕상암의 명물인 높이 88m. 직경 3m. 331개의 계단의 원통형 사다리(?) 마전통제로 가기위해 2시 15분에 출발했다. 일행 중 몇 분은 포기하고 버스(전동카)에 타고 되돌아갔다. 꼬불꼬불 절벽 길을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려갔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맞은편 절벽 잔도 끝에 벽릉공이라는 아찔한 집과 그 아래 황금빛으로 뻔쩍이는 옥황상제를 모셨다는 玉皇閣이 나왔다. 이곳에서 다시 우측 수평으로 낸 암벽 잔도 길을 걸어갔다 때로는 허리를 굽히기도 하고 더 낮은 곳은 오리걸음으로 긴 통로를 지났다.. 더디어 매스컴 상 보도되는 유명한 원형 스쿠류 마전통제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출입구에 逆行禁止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돌고 돌아 철계단(발판은 나무)을 내려가는데 관광객 때문에 영상을 담느라 애를 먹었다. 원통형 마전통제 숲속 길을 조금 내려가니 계곡 옆 매점이 있는 곳에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땀방울을 걷어내고 숲속 하산 길로 들어섰다. 곳곳에 관광객의 피로한 발을 지압으로 풀 수 있도록 자갈로 포장을 해두어 상쾌한 숲속 길을 콧노래로 지나갔다. 끝없는 돌계단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 하염없이 내려왔다. 곳곳에 현지인들이 토산품을 팔고 있었다. 3시 30분 드디어 王相岩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위의 수려한 풍광을 부지런히 영상에 담고 3시 45분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앞으로 40분이면 임주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험산 협곡을 잠시 내려오니 아침에 우리가 출발했던 석판암 마을의 대형 주차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태항산을 하루 종일 한 바퀴 돌아온 샘이다. 다시 아침에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가서 2km 터널을 지나 울창한 숲속 길로 하산 하였다. 그리고 조금 이른 저녁을 삼겹살로 한 후 오후 6시경 지난밤 투숙했던 호텔로 돌아왔다. 휴대폰 만보계를 보니 오늘은 13,600걸음. 9.2km의 축하 메시지가 떠올랐다. 2016년 5월 20일(금) 맑음 아침 8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通天峡大峽谷으로 향했다. 도중에 대나무 제품 매장에 들렸다가 9시에 출발했다. 6차선 도로에 사람과 차량이 무질서하게 다니고 있어 교통사고라도 날까 염려스러웠다. 도로변에는 다양한 색상의 화사한 접시꽃이 만개를 하여 시선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9시 30분부터는 야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林相은 좋지 않아 다소 황량해 보였다. 태항산의 하이라이트 가는 길 9시 40분에 대협곡이 68km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초여름 날씨 약간 무덥기는 해도 날씨가 맑아 기분이 한결 좋았다. 험산의 자태가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通天峽은 산서성과 하남성 경계에 있지만 산서성의 남태항산에 위치한다. 협곡의 길이가 25km 수직절벽의 웅장함과 수려함을 자랑한다고 했다. 이 대협곡을 개인이 조 단위로 투자 개발하여 관광객을 받아 들인지가 2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상당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2곳에서 공안 경찰이 관광버스를 세우고 점검단속을 하는데 안전을 위한 것이라 했다. 험산 협곡 산악지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이태리 지중해 연안에서 모나코 가는 고속도로처럼 터널과 교량이 교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10시 15분 통천문 매표소에 도착 하였다. 관리 건물이 상당히 크고 시설을 잘해 두었다. 출입구를 지나니 전동카가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처음 보는 높은 수직 절벽 길을 돌고 돌아 15분 정도 올라가니 정상을 오르내리는 붉은 케이블카가 허공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좁은 협곡에는 입목이 비교적 무성하여 그늘을 내어주고 사방으로 하늘만 보이는 100m(?) 이상 되어 보이는 수직 절벽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다. 케이블카 이용요금은 편도 60위안(한화 11천원). 왕복 100위안(한화 19천원)이였다. 6인승 케이블카로 올라가 인접한 식당 겸 휴게실인 凌空閣에서 모여 좁은 암벽 길 아찔한 능선의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발밑이 간질간질한 天路臺 유리전망대에서 사방의 수려한 험산협곡 등 산세를 한눈에 바라보면서 영상으로 담고 되돌아와 凌空閣에서 점심을 했다. 사진 중앙에 유리전망대가 보임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하산하여 90도 절벽의 좁은 길을 따라 우측으로 한참을 가니 通天洞이란 커다란 간판이 붙은 石窟을 어두운 조명 속에 300여m 통과하니 좁은 협곡에 댐을 만들어 수척의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주위 풍광은 말문이 막힐 정도의 색다른 풍광 이였다. 잠시 주위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유람선(승선인원 25명)에 올랐다. 수심 30m의 짙푸른 물위로 소리 없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극히 좁은 (폭 5~20m)협곡의 높이 100m 이상 되어 보이는 수직 절벽 사이로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물길을 굽이굽이 돌아가고 있었다. 2km를 운행하는데 눈길 가는 곳마다 신비스러운 기운이 넘쳐났다. 탄성 속에 모두들 영상에 담느라고 야단 법석 이었다. 물론 동영상은 전경을 담아내지만 사진은 불가능했다. 흥분 속에 20여분을 유람하고 하선하여 출렁이는 부표다리를 200여m 지나 계곡 폭 5~10m의 협곡을 다시 1km 정도를 탄성 속에 걸으면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수직절벽의 진수를 맛보았다. 페루의 마추픽추로 가는 철로 변 산세보다 더 수직 절벽이고 일본의 구로베 협곡보다도 경사가 급하고 높았다. 시종 감탄 속에 둘러보았다. 시간관계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되돌아와 다시 유람선을 타고 충발지로 돌아오는데 조금 전과는 또 다른 풍광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하선하여 댐 아래로 내려오니 좁은 협곡에 30~40m나 되어 보이는 댐이 눈앞을 가로 막았다, 다시 하류로 험산협곡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내려갔다. 도중에 신귀호(神龜湖)玉水 물에 손을 씻고 협곡 주위의 풍광을 즐기면서 30여분 내려가니 원숭이 촌에 있는 푸른 호수에는 비단잉어 등 물고기들이 유영을 하고 있는 반원형 목조다리 2개를 지났다. 호수 건너편에 나무위로 원숭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동카를 타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통천협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3시 10분 승차하여 한단시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예상이다. 임주시까지는 주위에 야산이 많았다. 4시 5분에 휴게소에 들렸다. 땅이 넓은 중국답게 휴게소 면적도 넓었다. 편도 4차선의 경우 1. 2차선은 소형 승용차가 3. 4차선은 버스와 추력이 나니는데 단속이 얼마나 심한지 차선을 위반하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5시 30분에 나타나는 이정표에는 한단시 까지는 31km, 석가장시 까지는 200km 남았다. 농가도 잘 보이지 않는 들판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밀밭의 풍성함이 초여름 날을 적시고 있었다. 중국이 인구가 많기는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면적에 한 평도 휴경지가 없을 정도로 경작을 하고 있었다. 한단시가 가까워지자 고속도로변에는 거의 과수원 이였다. 5시 50분 버스는 고속도로에서 한단시내(남부)로 내려서고 있었다. 한단시내에는 마침 퇴근하는 시간이라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 현지식으로 저녁을 하고 나오니 시내는 어둠이 깔리고 높은 건물에는 네온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첫날 투숙했던 호텔 康業裕豊 국제호텔 1127호실에 마지막 여장을 풀었다. 2016년 5월 21일 (토) 맑음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다. 아침 7시 50분에 석가장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는 3시간 소요 예상이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11시 55분에 타승을 시작하여 12시 40분에 제주항공(7c8852)편으로 이륙했다. 기내식이 없었다. 다행히 기내 비빔밥을 팔고 있어 1인당 5천 원씩 주고 사먹을 수 있었다. 커다란 김부각 한 봉지. 간단한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을 밀봉한 것을 하나씩 따끈한 밥에 비벼서 점심을 했는데 먹을 만했다. 비행시간이 2시간 30분 이였으나 조금 빠르게 한국시간 오후 3시 50분에 무사히 도착했다. 끝 가져온 글 http://blog.daum.net/sosahn/1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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