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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정맥 16주차(고운동치 - 삼신봉 - 영신봉)
2004년 9월 5일
어둠이 완전히 내린 11시 50분, 세(?) 딸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서는데 집사람이 문을 다시 열며“이거 안 가져가요!” 신발 가방을 내민다.
휴일이나 여가를 아이들과 같이 하지 않는 다고 불만을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내 유일한 취미가 돼 버린 등산을 이제는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이다.
약속된 학성교 육교 아래 정류장에 도착하니 벌써 신영수 사장이 나와 계신다. 전 구간 종주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 한다고 빠졌던 3주차 냉정고개 - 용지봉 - 봉림산 - 신풍고개 21.3km의 멀고먼 구간을 개별종주로 그저께 목요일에 다녀오셔서 체력이 소진된 관계로 오늘은 쉬 치칠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지난주부터 참석하여 호남정맥 종주를 함께 하기로 한 삼산동 아줌마가 뒤따라 당도 하자, 남일관광 애마가 도착하는데 45인승으로 또 승격 되었다.
그동안 다소간 불편하였어도 경비를 생각하여 작은 차편을 이용하다가 오늘은 마지막 구간인 지리산 영신봉을 오르는 날이라 낙남을 시작하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박을 실시키로 하여 큰 차를 이용하나보다.
회장님의 안내로 애마에 오르니 두올 팀의 옥순, 차연, 만자 아줌마가 반갑게 맞아주고 철수, 이달영씨도 상기된 얼굴로 인사들을 나눈다. 길우와 그동안 건강이 좋지 못하여 장기간 요양을 했던 막내 상옥이도 건강한 웃음으로 환하게 인사한다.
동서 사거리에 당도하니, 우리 산악회의 고문으로 기둥이 되어 주시는 이수형님, 그리고 그의 천생배필 황순금여사 내외분은 오늘도 부엌살림이 많다. 낙남 종주를 시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의 즐거운 뒤풀이를 위하여 애를 쓰신다. 더구나 오늘은 조식까지 준비를 하셨을 것이다.
공업탑 로터리에서 꽃을 심는 남자 학순이 형님과 노총각 태영이가 타고, 법원 앞 옥동에서 사업차 중국을 오가며 바쁘신 와중에도 산악회 고문을 맡아 항상 우리들을 편안하게 이끌며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계신 동주형님, 그리고 악바리 감초 현자 아줌마가 오른다.
무거동에서 임 선생, 살림꾼 총무겸 산행대장 광율이와 그의 사랑하는 집사람이 합류를 하고 잠시간 달려서 반천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김내곤 선생이 오르자 애마가 가득 차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서울산 나들목에서 변함없이 경주대간 철자 아줌마가 합류를 하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를 지난다.
총무의 오늘 산행 일정과 1부, 2부 완주 기념행사의 설명이 이어지며 빡빡한 타임 스케줄에 적극적 동참을 유도하고는, 낙남을 통해서 인연을 맺은 애마의 기수인 이 전무에게 기념으로 마련한 티를 정정한다.
서울산 나들목에서 철자 아줌마의 배낭을 짐칸에 실어주면서 하산주로 마련한 캔 맥주를 슬쩍 하여 몰래 마시고, 부족한 수면을 위해 눈을 부치려 하지만 쉬 감기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여 살포시 눈을 감았나 했는데 새벽 4시10분이 막 지나며 벌써 들머리인 고운동치다.
캄캄한 고운동치 고개 이지만 지난주 다녀갔다고 눈에 익다. 익숙한 솜씨로 모두들 아침 식사 준비에 부산을 떨고, 입맛은 별로지만 긴 여정의 산행을 위해 이수형님 내외분이 마련한 얼큰한 된장국에 김치를 곁들여 뚝딱 2그릇을 해치우고 장비를 점검하니 헤드 랜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번 지리산 종주 때 비를 만나 습기에 차면서 건전지가 모두 방전이 되었다. 광율이에게 여분의 건전지를 얻어서 갈아 끼우니 다행히 불이 들어온다.
(고운동치에서 아침을 먹는 대원들)
*고운동치(05:00) - 삼신봉(08:34)
출발이다(05:00).
지리산 영신봉을 향한 낙남종주의 232km의 대장정 마지막 구간의 들머리를 22명의 “울산 참고래 산악회”대원들이 어둠을 뚫고 지리산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농장의 출입문 같은 철망 문을 왼쪽으로 돌아 국립공원 경계표시인 철망 울타리를 넘으니 등로가 희미하게 두 갈래다. 오른쪽으로 울타리를 계속 따르는 길과 왼쪽으로 등성이로 오르는 희미한 길이다. 울타리를 따르던 선발대가 잠시간 앞서다 표지기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뒤돌아와 왼쪽 등성이로 다시 선발대 김 선생, 광율 대장이 잡초와 잡목을 헤치고 먼저 나간다. 2,3분후 선발대의 신호로 대기 중이던 본진이 본격적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억새와 싸리 사이를 잠시 지나니 잡목속의 등로는 희미한 우리들의 전등불 아래서도 걷기에 좋은 육산 길의 오르막이다. 하지만 환한 대낮에 견주지는 못하리라.
등로의 방향은 북진에 가깝고 왼쪽은 하동군 청암면 이고 오른쪽은 산청군 시천면으로 군 경계를 이룬다. 선발대와 간격이 차츰 벌어진다. 말은 없어도 오늘의 일정상 아마 빡시게 훌치려나 보다. “선두!.... 반보!” 뒤따르는 대원들 간에도 간격이 벌어지면 등로를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봐 후미에서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다. 앞 사람과의 간격을 최대한 가깝게 유지를 해야 하는 야간 산행의 철칙을 우리 모두는 마지막 구간 이라는 설렘으로 잠시 잊었는 갑다.
“어! 차 기자가 선두면 취재는 우짜노” 학순이 형님이 나를 놀린다. 들머리에서 출발을 한 후 얼마 만에 선두 그룹이 뒤돌아섰던 관계로 내가 선두가 되었다. 흐흐흐 나도 선두를 한번 서 보는 구나.
“깜깜한 밤에 머가 보이야 취재를 하죠! 형님!”
점점 고도를 높이자 간간이 산죽이 나타나고 장애물도 나타난다. 넘어지거나 부러진 나뭇가지가 방해를 하면 “머리 조심!” 산죽 사이로 협소한 길을 가다 왼쪽이 낭떠러지면 “왼쪽 조심!”을 외친다.
선발대의 불빛이 시야에서 영영 사라졌다. 다행이 등로는 옆길이 없다. 아마 이 길은 낙남을 종주하는 등산객이 아니면 찾지 않는 코스이리라.
그의 북진을 하던 등로가 등성이에 올라 살짝 왼쪽으로 휘어지며 완만하게 오르막에 올라서니 980봉 이다. 동그란 삼각점이 있다 했는데 이 어둠에 혼자 찾느라 호들갑을 떨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그러다 처음 서 보는 선두를 뻬끼면 안 된다 아이가’
방향은 이제 서북진이다. 산죽의 출현도 잦다. 헤드 랜턴으로 발 앞을 내려 비추며 묵묵히 걷기만 한다. 야간 산행은 이래서 조금은 지루하다. 왼쪽아래에서 산죽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묵계리 마을 인가의 불빛이리라. 다행으로 산죽의 기세가 지난 구간 보다는 그리 억세지는 않다.
오른쪽으로 어둠을 뚫고 동녘이 밝아 온다. 구름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뭐니 뭐니 해도 무박의 묘미는 일출을 보는 것 인데 오늘따라 구름이 많다. “에이! 오랜만에 무박을 왔는데 와 이러노”
서서히 키만 한 산죽 사이로 내리막인가 하는데 웅덩이처럼 파인 곳을 미처 모르고 내려가다 미끄러지며 기어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이건 머야? 선두라고 좋다고 깝죽대다가 꼬시다!’
흐흐흐 교훈을 하나 얻는다. ‘선두도 까불면 다! 친! 다!’
마저 내려서니 안부인 묵계치에서 선발대가 쉬고 있다(05:58 810m).
(묵계치에서 휴식을 하는 대원들)
(묵계치에 당도 하는 기획을 맡고 계신 김내곤 선생과 상옥이: 상옥이도선발대 였나보네?)
(묵계치에 골인 하는 대원들 : 총무가 촬영)
왼쪽으로는 하동군 청암면 원묵계로 오른쪽으로는 산청군 시천면 내대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길의 흔적이 사라지고 헬기장도 만들어져 있으나 억새와 산죽만이 무성하다.
서서히 어둠은 밀려나고 새벽이 밝아 있다. 삼산동 아줌마의 꿀물을 한잔 얻어 마시고 야간 장비를 철수를 하고는 다시 전진이다.
등로는 직진으로 묵계치를 가로 질러 급한 오르막을 이제 자라기 시작하는 잣나무와 잡목 사이를 오르더니 잠시 평탄하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에 산죽길이 이어진다. 여기도 산죽의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간간이 바위와 함께한다. 산죽을 헤치고 바위사이를 가파르게 오르니 전망대 바위가 있는 1,055봉이다(06:38).
(조망권을 감상하고 계시는 조동주 고문님)
(1055봉에서 조망을 하는 대원들)
조망이 시원하다. 왼쪽 계곡으로 원묵계리의 몇 가구씩 흩어진 집과 밭들이 보이고 새벽의 짖은 녹음들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바위를 내려서니 다시 산죽이 철쭉과 어우러져 등로를 감싼다. 왼쪽으로 큰 바위 봉우리를 두고 우회하고 듬성듬성 바위들이 길을 막는 느들지대다. 완만하게 오르막을 오르니 1,160봉 이다(07:12). 산세와 등로는 지난 차주와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바위 봉우리가 등로를 우회하게 하는가 하면 잠시 안부를 돌아가게 하고 좁은 등로는 뚜렷하나 산죽에 쌓여진 느들지대가 많다. 안부에 내려서니 희미하지만 갈림길이다. “슬기야 와 걸로 가노 올라 온나” 뒤따르던 회장님이 불러 새운다. 어느새 난 선두를 내 주고 후미의 전통을 잇고 있다. 다시 큰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앉아있다. 이제는 정말 외삼신봉 이려니 하며 힘들게 올라보지만 1,235봉이다(07:33). 그러면 저만치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외삼신봉 이리라. 잠시 안부에 내려서서 바윗길을 완만하게 올라 우회로를 지나니 큰 바위가 가로막고 바위들 사이로 로프가 내려져 있다. ‘아휴 로프면 난 노이로제가 있는데! 그러타고 달리 방도는 없지 않는가’ 로프를 최소한으로 이용하며 짧은 다리를 최대한 벌려서 네 발로 오른다. 뒤따르던 여성대원들을 도우며 겨우 올라서니 먼저 당도한 선두들이 평평한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다시 바위사이로 험로를 따라 올라서니 외삼신봉 정상비가 대원들과 함께 쉬고 있다(07:50 1,288m).
(외삼신봉을 향한 집념 : 암벽을 오르는 현자, 차연 아줌마)
(권이수 고문님)
(꽃을 심는 남자 학순이 형님)
(막내 상옥이)
(길우야! 이리좀 차라바라)
(신영수 대원님)
(삼신 할멈 3인방?)
(날 건더리지 마! 지금은 기도중? : 경주대간 철자 아줌마)
(언제나 마음은 소녀?)
(청학호와 마을)
검은 대리석의 정상비에는 ‘서기일천구백구십이년유월13일’이라고 옆면에 세로로 새겨져 있다.
한발 건너에 삼신봉이 솟아 있으며 왼쪽 골짜기로 청학동 마을의 자락들이 보이고 아직 만수까지는 담수가 되어있지 않은 쪽빛의 청학호도 가물가물 내려다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천왕봉과 제석봉의 자태와 거림 계곡을 본다. 조망을 하며 간식들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친다.
“야! 무지개다!”
서쪽으로 노고단쯤의 하늘에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산에서 보는 무지개, 일출만큼이나 보기가 귀한 것 일 것이다.
지리산이 우리 ‘울산참고래 산악회’에게 주는 이 축복을 영원토록 잊지 말고 산을 사랑 하며, 그리하여 서로들 아끼고 위하며 오래오래 산을 찾으라는 게시이리라.
(지리산 무지개)
바위를 내려와 잠시 만에 삼거리 안부에 이르니 왼쪽이면 도인 촌이 있는 청학동(2km)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직진이면 세석산장(8km)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08:23).
직진 길은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이지만 좁았던 지금까지의 등로에 비하면 고속도로같이 넓다. 청학동에서 삼신봉을 지나 세석에 이르는 유일한 등산로 이므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키 작은 산죽과 바위틈을 지나 서서히 올라서니 여기도 삼거리에 잡목들과 산죽에 어우러져 청학동 2.5km, 쌍계사 8.9km, 세석대피소 7.5km라고 방향과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오른쪽으로 바위를 오르니 마당같이 넓은 터에 제단을 만들어 놓았고 그 위에 검은 대리석에 ‘三神峰'이라고 새긴 정상비가 있다. 아이를 점지 한다는 삼신할머니의 전설이 있다는 삼신봉이다(08:34 1,284m).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지만 서쪽의 노고단부터 반야봉, 토끼봉등 여름휴가 때 광율이와 같이 했던 종주의 주릉들이 하늘선을 광활하게 그려놓는다. 정 북쪽에 자리한 신을 맞이한다는 영신봉이 우리의 대장정 종착지며 동쪽으로 연화봉, 제석봉, 천왕봉의 웅장한 자태도 더욱 가깝다. 행정적으로는 하동군 화개면, 청암면 그리고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꼭짓점이다.
(삼신봉 삼신 할머니가 공인한 원앙부부 총무 및 이수형님 내외)
(삼신봉에서 바라본 천왕산쪽 하늘선)
(삼신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반야봉 하늘선)
(삼신봉을 오르는 현자 아줌마, 총무댁, 임선생)
*삼신봉(08:50) - 영신봉(12:16)
정상의 바위를 내려서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지며 느들지대에 이르니 비박장비까지 꾸려진 배낭을 메고 오는 젊은 새댁인지 아니면 나이 많은 노처녀인지 흰색에 검은 체크무늬의 남방을 입은 한분과 조우를 한다.
산에서 저런 사람을 만나면 참 아름답게 보인다. 그리고 여성이면서도 혼자서 산행을 하는 그 대단한 용기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이제 등로는 북진에 가깝고 왼쪽으로 하동군의 화개면과 오른쪽으로는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를 이룬다. 오른쪽으로는 고사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기어이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산지대의 불순한 일기가 염려된다.
다시 산죽과 작은 바위들이 지천인 등로를 오르내리다 세석 6.5km 이정표를 막 지나(09:05) 는데 여러 명이 마주해 오고 있다. 그중 주황색의 티를 입은 건장하게 생긴 아줌마 한분이 내 앞에 이르러 “나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면서 수첩 같은 것을 하나 선물이라며 주시고 가신다. 국립공원의 관리요원이며 주고 간 선물은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국립공원 지리산 전도’였다.
“아줌마 너무 너무 고마워요 사랑 많~이 받으세요!”
가벼운 흥분 속에 발걸음도 가볍다. ‘저런 인간성 하고는! 여자한테 쪼끔한 선물 하나 받았다고 어쩔 줄을 모르네’
얼마 만에 또 세석 5.5km 이정표들 지나는데 앞에서 이번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온다. 몇 분과 인사를 하며 지나치는데 그중 한분의 등산복 티에 ‘거인산악회’라 새겨져있다. 뒤돌아서며
“저 거인 산악회면 연숙이...........”
“내 맞습니다. 앞선 분들과도 많은 이야기 했습니다. 새로이 낙남 종주를 시작합니다”라며 지나친다.
그녀의 책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왠지 숙연해 진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많은 산 꾼들의 귀감이 되고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바위능선을 우회도 하며 몇 번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산죽의 푸른 잎이 무성하게 등로를 감싸고 있어 앞서가는 만자 아줌마와 총무 댁을 불러 새우고 사진을 찍으려 하지만 이기 또 사달이 났다. 사진기가 맛이 갔다. 건전지 량도 아직 충분하다고 표시 되는데도 작동을 멈추었다. 꼭 오늘 같은 결정적인 날 와이카노?
산죽이 병풍을 두른 한벗샘에 이르니 선두그룹이 쉬고 있다(09:43).
(한벗샘 삼거리에서의 휴식)
“샘이 어디 있노?” “저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있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 등로로 ‘샘터 140m’라는 이정표가 있다. 광율이 상옥이 길우가 물통을 가득 들고 산죽을 헤치며 나타난다.
배낭을 내리고 태영이 옆에 앉는데 “사람들이 와 그러노 아직도 신찬은 아를 보내면 우짜노” 혼자 중얼 그린다. 샘터가 조금 멀리 있다 보니 상옥 이와 길우 그리고 광율 이가 대표해서 여러 물통을 거두어서 물을 받으로 갔나 보다. 힘이 들면 같이 힘 던데 나이 많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어린 동생들을 보낸 것이 못마땅하나 보다. ‘그래 태영이 니 말도 맞다. 그러나 우리 내 풍토에는 장유유서도 있다 아이가 니가 조금만 이해를 하거라’ 맛이 간 사진기 사정을 이야기 하고 총무의 사진기를 건네받고는 일어선다.
5분여를 산죽과 같이 등로를 따르니 세석 4.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헬기장이다(10:01). 다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번엔 제법 내릴 것 같아 배낭에 카바를 덮는다. 산죽의 터널을 잠시 내려서 느들지대의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오른쪽에 바위 봉우리를 두고 왼쪽에도 바위가 있는 낙타의 등모양을 한 특이한 형상을 한 안부에서 쉰다(10:18).
(낙타 안부(?)에서 휴식을 하는 대원들)
여기가 지리산의 관문이라는 석문인가? 다행히 더 이상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아 배낭 카바를 벗긴다.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고 다시 경사가 심한 느들지대 오르막을 오르니 부서진 이정표가 기둥만 외롭고 왼쪽 산사면 으로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자리를 잡고 옆으로 누운 소나무를 그 바위가 받치고 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마저 올라서니 등로가 완만해 지면서 오른쪽의 거림계곡 아래로 빨간 지붕을 한 농가의 집 몇 채가 보인다. 산 사면의 등로가 등성이를 넘었다가 다시 사면 길로 이어지다 다시 등성이를 넘으며 작은 안부에 이르니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고 서있다. 바위의 틈새로 직사각형의 길이 연결 되니 아 이게 석문이구나(10:54).
앞서가는 여성대원들에게 기념사진을 남겨주고 오르막의 석문으로 들어서니 정말 궁궐의 대문 같다. 뒤따르는 대원들의 기념사진을 남겨 주고자 잠시 기다리며 쉰다. 경주대간 철자 아줌마, 임 선생, 동주형님, 회장님이 차례로 들어와 지나간다. 한참을 기다려도 후미가 나타나질 않아 너무 뒤쳐지는 것 같아 그냥 오른다.
(두올 3인방 석문을 통과하며)
(경주대간 철자 아줌마)
(하루동안 걸음 수를 세며 산행을 하는 수학담당 임채중 선생)
(조동주 고문님)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모두 바위 지대다. 등성이에 오라섰다 다시 느들지대의 급한 내리막이다. 웅장한 산답게 급한 오르막 내리막에 바위들이 많다. 오른쪽으로는 뾰족하게 솟아있는 촛대봉이 보인다. 안부에 이르니 왼쪽으로 대성교 6.2km 갈림길임과 세석이 2.2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다(11:14).
잠시 오르니 사방이 환해지면서 등로의 분위가 변해있다. 느들지대 이지만 이제 경사는 심하지 않고 완만하다. 어느새 날씨는 완전히 개여서 햇볕을 쏟고 있다. 왼쪽으로 통나무 울타리가 출입을 통제하는 등로를 따르다 울타리가 끝날 쯤에 잡목아래 이끼긴 물이 담긴 호박돌이 놓여있다(11:35).
내 어릴 적에 우리 집 우물가에 있던 것과 꼭 같다. 울 엄마가 움푹 파인 호박돌에 동글동글한 주먹보다 조금 큰 돌로 마늘을 찍고 빨간 고추를 빻아서 즉석에 정구지등 채소를 무쳐서 밥상에 올린 그때 그 겉절이 맛을 이제는 어디에서 먹어볼 수 있을까?
여기가 사람이 살았던 민가 터는 아닐 테고 절터였나? 사진으로 남기려하나 광율이 사진기도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만 뜨고 찍히지를 않는다.
오늘 머가 이르노! 개똥이다!
“어! 울산 참고래 아저씨! 회장님은요? 우리는 묵계초등학교서 쫑파티 합니다. 후딱 댕겨오소” 지난주 고운동치서 우리들 막걸리를 얻어 마신 ‘진주 자연산악회’ 분이다. 그들은 마지막 구간을 영신봉에서 내려오며 역으로 하나보다.
평평한 사면에 큰 바위가 자리해 있고 틈새로 샘물이 솟아나는 이름도 특이한 음양수다(11:40). 그야말로 석간수다. 음양수로 목을 축이며 기를 듬뿍 받아 보려 하지만 나는 양이면 그러면 음은? 뒤미처 부부로 보이는 두 팀이 올라와 남자분이 샘물을 마시자 “저것보소! 혼자서 먹기는 둘이 나누워 마셔야지!” 음인 부인이 양인 남편에게 타박을 한다. 흐흐흐 음양이 같이 나누워 마셔야 기를 받는 음양수이거늘..... 샘 위의 바위 마당에는 바위의 틈새에 자갈로 메워서 제단을 만들어 두었다.
애석하다. 여기서부터 낙남의 마루금이 우회를 해야 한다. 왼쪽 등성이로 영신봉으로 곧장 향해야 하나 자연 휴식 년으로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다. 애타는 마음을 달래며 1.2km 남은 세석산장으로 가는 등로를 따라 오른다.
이제 평원에 굵은 나무들이 곧게 하늘로 뻗쳐있는 밀림지대 같다. 전나무며 낙엽송이며 잘 자라고 있다. 이래서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부쳐졌나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오늘의 하산길인 거림 마을로 가는 삼거리다. 삼거리를 지나니 작은 개울의 나무다리를 건넌다. 가슴 아프다. 낙남정맥을 종주 하면서 다리를 건너야 하다니. 이것이 음양수에서 영신봉으로 곧장 오르지 못하고 우회하는 설움이리라.
눈에 익은 산장의 지붕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의 평원에는 아담한 갖가지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자연의 섭리이리라. 한달 하고도 2일 전인 8월 4일 종주 때 이곳을 지날 때는 온통 푸른 옷만 걸치고 있었는데 그새 연하지만 노라코 빨가케 변해간다. 산장은 벌써 겨울을 날 차비를 하는지 외벽을 수리하느라 어수선 하다.
대원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곧장 영신봉으로 향한다. 영신봉 아래 헬기장이 있는 안부에 이르니 먼저 당도한 대원들이 점심을 먹을 준비들 하고 있다.
종주 산행은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12:16). 경남의 하동군 화개면과 산청군 시천면, 함양군 마천면의 꼭짓점인 영신봉. 지리산에 왕림하는 신을 맞이한다는 영신봉을 그 턱밑의 안부에서 바라만 보고 우리의 기나긴 낙남정맥 232km 여정의 종지부를 찍는다.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호남정맥! 그 시작이 우리를 가슴 부풀게 한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울산 참고래 산악회 파이팅!”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질 않겠지만 하산 길 2시간이 넘는 여정을 위해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회장님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1부 행사가 진행된다. 중헌이가 제작을 찬조해 보냈다는 현수막을 전 대원들 앞에 세우고 기념사진을 전문가 이달영씨가 촬영을 하고, 개근 완주를 한 기획 김내곤 선생과 황순금 여사에게 수고의 힘찬 박수를 보내고 황순금 여사에게는 기념품으로 금반지를 증정한다. 비록 개별종주지만 완주를 마친 회장님, 신영수 사장, 학순이 형님, 철수와 나 그리고 두 분 개근완주대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다.
(황순금 여사에게 개근 완주 기념품 전달하시는 회장님)
자 이제 낙남과는 이별의 시간이다. 회자정리라 했던가,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한다고. 우린 호남정맥을 만날 것이며 저 멀리는 조국 대한의 백두대간과 나머지 정맥들을 만날 것 이다.
또 내 짝사랑 지리산을 통해서 자주 만나자 영신봉아!
(집행부(?) : 총무, 권고문님, 조고문님. 회장님, 기획)
2월 15일 김해 메리 삼거리를 출발하여 여기까지의 긴 노정의 추억들을 되새기며 거림으로 향한다.
동신어산 정상에서 시산제를 마치고 먹었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고물 시루떡 맛이 아직도 입에 남아있는 듯 하고, 낙원고개를 앞두고 게으름을 피우다 엄청 돌아서 고생했던 일, 천주산을 두 번 올랐던 날, 무학산, 대산의 진달래, 혼자서 밤을 지낸 진동의 수궁 찜질방에서의 추억, 낙남을 통해서 봄을 맞이했고 여름의 폭염과 싸웠던 일, 태극기가 펄럭이던 장화석님의 산불 감시초소, 가까이에는 혼자서 땜빵을 하다가 고라니와 뱀에게 놀랐던 일, 그리고 이름도 몰랐던 야생화들, 대원들과의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를 개설하여 신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과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한사람과의 만남 아마 이 모든 것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달콤할 것 이다.
2부 행사가 진행된다. 우리도 쫑파티다. 이동중 마신 맥주에 반쯤은 취해서 도착을 하였으나 그래도 술은 술술 넘어간다. 그래서 술 인기라 꺼~억......
이수형님 형수에게 그동안 하산주 뒤풀이에 쏟은 노고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겠지만 작은 정성들을 모아 대원들을 대표해서 고문이신 동주형님이 선물을 증증하고, 기획으로 산행을 이끌며 개근 완주를 하신 김내곤 선생에게는 VIP회원이신 학순이 형님이 증증하고, 그리고 또 한분의 고문 이신 이수형님이 일어 나 시드니 나를 호명한다. 어! 내가 무었을 했다고? 용감하고 줄기차게 꼬바리를 했다고? 카페를 개설하여 산행기를 빠짐없이 올렸다는 노고에 대한 답례란다.
이건 아이다. 모두가 누구하나 고생안한 대원 있나? 차라리 저 멀리 경주에서 첫차 타고 새벽밥해서 묵고 열심히 참석하다 딸레미 시집보낸다고 한번 빠진 경주대간 철자 아줌마 같은 사람이 받아야 되는 기라!
겸양도 도가 지나치며 결례란다. 그러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산행기 읽어 주시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우리 산악회 대원들이 있었기에 저도 오늘까지 완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도 울 마눌 에게 체면치리 하게 되었구먼요.
어 이기 무슨 소리고! 술이 확 깨네!
내일 술에 깨서 오리발 내미는 소리는 아이지요?
“호남정맥종주의 큰 시작을 앞두고 백만원 찬조 하겠습니다” 신영수회원님의 외침에 모두들 감격의 환호성과 박수로 대환영한다. 그리고 종주자 끼리의 사진을 담아 기념패를 만들어 주겠단다.
돈이 문제이겠냐 만은 종주의 매력에 빠져서 함께 힘내자는 의미일 것 이다. 참 그라고 황권배 퀴즈 한마당 하기로 안했는가요? 와 거 하산주 메뉴 알아맞히기!
참 좋다.
산도 좋지만, 산행도 좋았지만, 우리들 회원님들의 우정이 좋다.
“위하여!”
“호남정맥 종주를 위하여!”
“파이팅!”
“울산 참고래 산악회 파이팅!”
그동안 산행기 읽어준 모든 분들 “♡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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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낙남종주기 올린다고 정말 고생많이 했다 보는 이이는 즐거웠지만 생활에 활력소 되었지..
형님들의 산악회에 대한 애정과 아우들에게 주시는 사랑은 언제나 가슴 깊이 새기고 고개 숙이게합니다.
2월15일 동신어산에서 무사산행을 위한 제를 지낸것이 엊그제 같은데...어짜든동 여러분들 욕바심더 그라고 차기자는 전업?을 해야되겠따... 아프로 내 이바구를 좀더 마니 올리주소.... 산행기슨다꼬 진짜 욕바따...야중에 소주곱빼기로 주께...이상
회원가입하여 즐감하고 감니다 낙남정맥 종주계획 예정이라 많은 도움 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