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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공부 60회
10. 하나님의 아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For all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되고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쓰카모토)
1) 하나님의 아들
14절은 12절과 13절에서 말한 내용의 까닭이면서 또 다른 중요한 주제의 시작이 된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지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시키는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고 연결된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이란 '우리 집 아이'라고 할 때의 '아이, 자녀'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이'다.
에베소서에 보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1:4-5)'고 나와 있다.
언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영광을 받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목적이 무엇인가?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려고다.
그런데 이 모든 시나리오가 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즉 기뻐하며 세우신 계획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만남으로 나의 안과 밖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아이, 자녀다. 하나님의 가족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적절하게 하나님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까지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이로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여 사람들이 우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도록 살아야’(마5:16) 한다. 우리의 행실, 대화, 살아가는 모양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좀더 확실하게 기독교의 엄격한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치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신다.’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다. 그러나 모든 인류를 다 하나님의 자녀로 보지는 않는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요즘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자신이 창조한 인류가 영원토록 저주받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다든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며, 인류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모두가 형제라는 논리를 편다. 이 만인 구원론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 얼핏 듣기에는 타당해 보인다. 또한 유일신 하나님의 좁은 영역에서 벗어난 열린 해석이라고 환영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요한복음 17장 9절,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확실하다. ‘내가 그들은 위해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말씀에서 분명한 한계선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외워오던 요한복음 3장 16절에 그 모든 진리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준다. ‘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인류 모두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든지 아니면 진노의 자식이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에게 대단히 불쾌한 진리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가려는 생각에서 만인구원론도 이야기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휴머니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이는 단호히 잘라야 할 사상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전해야 한다. 쓰카모토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두 다"라는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자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또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기만 하면 다른 것은 필요없고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아들 되는, 즉 크리스천되는 조건은 오직 한 가지! 이것뿐이다.
혹시 이것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 있어도, 아무리 훌륭한 성인이라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그 한 가지 조건에 의해 영원한 생명의 길과 죄와 사망의 길로 나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기독교의 진리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하면서 만인구원에 대해 동의를 구한다.
“아들과 딸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부모는 결국 용서한다.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인간도 자기 자녀를 향해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이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야 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회를 인간이 죽을 때까지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분이다. 십자가 위의 강도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어 들어오면 된다. 그러나 이를 저버리고 스스로 딴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이 주어지지 못한다. 이는 슬픈 일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죽기까지 자기 민족의 구원을 소원하였다.
2) 성령의 인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고 할 때 ‘인도’를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령이 우리의 의지를 꺾고 운전자가 되어서 이리저리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를 설득해서, 확신을 줌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행동하게 한다.
사실 우리는 인생길을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선택의 순간을 맞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시를 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내가 너를 지도하여 제 갈 길을 가르치고 너를 지켜보며 인도하리라.’(시32:8)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바른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면 ‘너희는 바른 길이 여기 있다. 이 길을 걸어라’ 하고 너희 뒤에서 말씀하시는 그의 음성을 듣게 될 것”(사 30:21)이라고 약속하셨다.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와 지시를 받는 우리의 삶이 완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아니다. 내 삶의 주도로(主道路, main road)는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는 길이다. 나는 곁길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향해가는 길의 목적지는 영원한 생명이 준비된 곳이다.
그런데 이 성령의 인도에 대해 주변에서 난감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성령께서 그때마다 할 말을 알려주신다는 설교자도 있고, 기도를 하다보면 환상중에(또는 꿈에서) 이러이러한 지시가 있었는데 이는 성령의 역사라고 하며 신비스런 이야기들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중 몇몇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이 아닌 경우도 있어 혼란스러운 일도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다른 영들, 즉 거짓된 영들의 활동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들을 분별하라’, ‘영들을 시험해 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 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1) 하고 경계하고 있다. 성령 외에 우리를 이끌고자 애쓰는 다른 영들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어떻게 거짓된 영과 참된 영을 구별하는가? 너무나 간단하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요일 4:2)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구속을 인정하지 않는 영은 거짓이다. 주의 말씀에 비추어 늘 근신하며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 그는 우리의 마음에 깃들어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한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신다. 사람의 생각을 그 속에 있는 영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았다(고전2:10-11).” 하나님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루디아에 대해 누가는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16:14-15) 하고 썼다. 루디아는 전에 예수나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게 하였다. 바울 사도에게서 말씀을 들은 이들은 많았으나 「마음을 열어 주시는」은혜를 받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마음을 열도록 해주는 것이 성령의 일이다.
3)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말씀에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명쾌한 정의가 나와 있다. '하나님의 아들 =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공식이다. 다른 데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살고 있어 지배권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움직인다. 속에서부터 감동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노평구 선생은 '내적 지배'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육을 죽이는 생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의 생활이 내적인 영적 충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상 성령의 인도는 때로는 자모의 사랑으로 순순히, 또 때로는 엄부의 위엄으로 엄혹하게 우리를 육의 유혹에서, 죄의 접근에서 쫓아 이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또 우리의 생의 방향, 혹은 생 전체를 하나님의 뜻대로 지배한다.
루터는 이 「인도, 지배」를 treiben(쫓는다)으로 번역했다. 이는 성령의 강력한 힘의 발동을 뜻한다. 루터의 생애자체가 성령의 이 강력한 지배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루터를 둘러싸고 있던 당시의 사회는 막강한 카톨릭의 조직과 권력의 서슬에 숨을 죽이고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루터에게 있어 거대한 권력과 조직에 감히 대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 강력한 성령의 힘이었다.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일 수 있었던 용기도 옳은 길을 지도해주는 성령의 힘에서 나왔다. 또한 "멧돼지 한 마리가 주의 포도원을 망쳤다."는 말로 시작하여 60일내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위협했던 교황청의 교서를 불태울 수 있었던 담대함도 모두 성령의 인도함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제후들 앞에서 오히려 큰 소리로 "성서야말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기록이므로 이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인도가 있어 그릇 이해될 염려가 조금도 없는데 도리어 교황주의가 이를 막았다."고 당당하게 외쳤고, 기꺼이 사형선고나 같았던 파문을 당하였다. 루터도 그러한 상황에서 두려움이나 공포가 없을 수 없었으나 성령이 그를 참진리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비록 루터의 싸움에 미치지는 못하나 나름대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근 선생은 '인도함을 받는 자들의 생활'은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기쁨으로 따라가는 생활이라고 말하였다. 사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으로 중생한 크리스천은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의 손을 잡고 맘놓고 따라 가는 것처럼, 성령의 이끄심에 진심으로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설사, 성도가 때로는 잠시 불타는 육신의 정욕을 억제하려고 고투하고, 폭발하려는 감정적인 분노를 참느라고 이를 악무는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따르면, 결국 후회없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런 성도의 생활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된 자들로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또한 그리스도의 형제가 된 사람들로 하나님의 나라의 후사(後嗣)가 될 영원한 영광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아들’ 쪽이 더 높고 성숙하고 지각있는 하나님의 가족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알포드, 필립피)도 있다(갈 4:1-6).
야나이하라 선생의 의견을 읽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죄를 짓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에 인도되어 살아가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에 인도되고 있지만 완전하게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인도하시는 이는 완전하지만 인도되는 우리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이 내 속에 살아서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세키네 선생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을 '성령에 의해 몰아가는' 것으로 해석하여 좀더 강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성령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성령이 우리를 몰이꾼이 토끼를 몰듯 생명의 길로 몰아간다는 뜻이다. 그것도 노예의 처지에서 벌벌 떨면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아들되는 신분으로 보호받으면서 생명의 길로 가지않을 수 없게 우리를 몰아가는 역할을 성령이 하고 있다는 것이니 감사할 뿐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자고 현자고 유덕자고 선인이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다만 인간의 자식으로 위대할 뿐이니 부럽지 않다. "성령이 나를 인도하시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인자(人子)와 신자(神子), 현세와 천국, 생과 사를 분명히 구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