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날아온 짙은 황사와 오랜 가뭄으로 숨이 턱턱 막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을 즈음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김동문·하태권, 김동문·라경민 조 전영오픈 우승’, ‘이동수·유용성, 라경민·이경원, 김동문·라경민 조 스위스오픈 우승’, ‘김동문·하태권, 김동문·라경민 조 코리아오픈 우승, 손승모 준우승’, ‘이현일, 라경민·이경원, 김동문·라경민 조 일본오픈 우승’. 한국 복식이 다시 살아났다는 증거이며 김동문·라경민 조는 2년만에 다시 세계랭킹 1위를 탈환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97년 9월부터 함께 짝을 이룬 김동문·라경민 조는 3년간이나 세계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며 시드니올림픽에서 당연히 금메달 하나를 추가해줄 것으로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시 두 선수는 국제대회 51연승 11연속 우승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하지만 세계 정상의 자리는 그렇게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다. 시드니올림픽 8강에서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의 장 준·가오 링 조에게 0-2로 완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당시 그걸 지켜보던 전 국민은 물론 두 선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여파로 그 해 올림픽에서 효자종목이었던 배드민턴은 하나의 금메달도 따지 못해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침체해 있다는 평과 함께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어왔다. 그것은 그 동안 우리 선수들이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숫자로만 평가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이 흘린 땀방울을 생각할 때 조금은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씨앗은 싹을 틔운다. 김·라 조도 그러했다. 더 큰 나무가 되기 위해 잘못된 가지를 잘라내고 새로운 거름을 주는, 시드니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두 선수에게는 준비기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의 전성기’나 ‘부활’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주목을 받을 때나 그렇지 못했을 때나 초지일관 세계최강자의 그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성적이 나온 것도 평소 정성을 들인 농장물에서 좋은 열매가 맺는 것과 같은 당연한 결과이다.
4월 8일 오후 5시 30분, 한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일본오픈에서 좋은 소식들만을 가지고 귀국했다. 기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김동문·라경민 조를 취재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심 끝에 두 선수의 데이트로 컨셉을 정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그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리라던 기대와는 달리 두 선수는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 신세였다. 라경민 선수는 치료차 선수촌에서 나와 있었고 김동문 선수는 선수촌에서 또다시 훈련에 돌입해 있었다. 취재를 포기할까라고도 고민했었지만 그래도 두 선수를 꼭 취재하고 싶다는 마음에 따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같은 날 라경민 선수를 한체대에서 그리고 김동문 선수를 태릉선수촌에서 만날 수 있었다. 두 선수의 다정한 모습을 함께 보고 싶었던 기자는 끝내 ‘Cross Interview’를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다. 보통 인터뷰와는 달리 자신의 파트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빌려보았다. 함께 하는 인터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기자는 이렇게 각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인터뷰를 통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은 참 많이 닮았다. 다른 사람이지만 서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말을 하지 않아도 그리고 멀리 있어도 통한다는 쌍둥이처럼 말이다.
Cross Interview
월간 배드민턴(이하 배) 4연속 우승한신 것과 세계 랭킹 1위 다시 올라가신 것 축하드립니다. 간단하게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김동문(이하 김) 랭킹이 중요하지는 않아요, 시드배정을 좀 더 좋게 받을 수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예전에 처음으로 길영아 선수와 랭킹 1위에 올라갔을 때처럼 설레네요.
라경민(이하 라) 좋지만 유지하려니까 부담감도 있어요.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때까지는 계속 유지해 나가야죠.
배 두 선수가 호흡을 맞추고 처음 3년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강의 자리를 잘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김 전력노출이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흔히 저희 보고 혼합시스템에 가장 잘 맞는 팀이라고 하더라고요.
라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배 시드니올림픽 이후로 침체기에 빠졌는데 부상 때문인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그 외의 부진의 이유가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김 올림픽에 나가서 대진표를 보니 쉬웠어요. 그래서 별 걱정을 안 했고 남자복식에 주력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막상 시합에 들어가니까 그렇지 않더라구요. 8강에서 장 준·가오 링 조에게 진 여파가 다른 종목에까지 미친 거 같아요.
라 전력이 이미 다 노출되었던 거 같아요. 다른 선수들이 이미 준비를 많이 해 온거죠.
배 제2의 전성기라고까지 말하는 데 다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을 꼽는다면?
김 올림픽도 끝났으니까 여유가 좀 생겨서 치료에 중점을 두었어요. 예전에는 남자복식과 혼합복식 2종목씩 나가니까 무리가 있었어요. 근데 또 1종목씩 나가는 것도 현 상황에 잘 안 맞고 해서 한 대회는 2종목 출전하고 다음 대회에 1종목만 출전하고 하는 걸로 했어요.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라 부상치료에 집중했고 7점제로 변환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체력적인 면에서요.
배 시합에 이기고 나면 가장 떠오르는 사람은 누군가요?
김 코치님, 감독님, 파트너예요. 우승을 하고 나면 힘들게 운동한 게 생각이 많이 나요. 그때 연습했던 것이 경기에서 잘 되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거거든요.
라 엄마요. 제가 시합에 나가면 집에서 항상 가슴을 졸이신다고 해요. 이제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셨으면 해요.
배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은?
김 96년도 올림픽에서는 서로 적이었어요. 그때 제가 길영아 선수랑 팀이었고 라경민 선수랑 박주봉 선수가 한 팀이었는데 결승에서 만났죠. 그리고 나서 길영아 선수가 은퇴하고 저는 다른 복식 선수를 찾고 있었고 라경민 선수는 단식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고 있었어요. 근데 라경민 선수가 부상을 당해서 단식이 힘들어져 복식을 하게 되면서 한 팀을 이루게 되었죠. 그리고 얼마 안 돼서 혼합단체전에 나가서 8강에서 탈락했죠. 둘 다 말이 없어서 참 어색했어요. 그래서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서 챙겨주려고 했어요. 근데 저나 라경민 선수나 둘 다 선배랑 운동해서 제가 리드하는 게 어려웠어요.
라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12∼13년 동안 함께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어요(이상 라경민 선수도 김동문 선수와 같은 말을 했다).
배 서로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말해본다면?
김 라경민 선수는 여자팀 막내였는데 96년 올림픽 이후 선배들이 다 은퇴하면서 갑자기 주장이 되었어요. 본인도 힘들었을 때인데도 후배 관리를 참 잘 했어요. 단점은 글쎄요. 다른 복식조는 트러블이 한 번씩은 꼭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없었어요. 서로 말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이것도 칭찬이네요. 그런데 좀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에요.
라 말이 없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예요. 게임이 안 풀릴 때는 서로 말로 풀어야 하는 데 그럴 때도 말을 잘 안해요. 그럴 때 말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이 부분에서도 두 선수의 의견은 일치했다).
배 파트너의 성격은 어떤 편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조용해요. 속으로 생각을 많이 해요. 생각이 깊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완벽해요. 선수로서도 그렇고, 팀의 맏언니로서도 그래요. 너무 잘 해서 충고를 못하겠어요. 그래도 속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팀 내에서는 마땅히 털어놓을 사람이 없거든요.
라 내성적이고 장난도 별로 안 해요. 하지만 따뜻한 사람이에요. 점심시간 같은 때 게임에 들어갈 때같이 밥 먹기가 좀 그럴 때면 뭐 먹어가면서 하라고 챙겨주고 그래요.
배 선수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어릴 때 봤을 때는 한 살밖에 안 어린 데도 굉장히 어린 것 같았지만 잘하는 거 보고 대견스러웠어요. 여자복식에서도 잘 하고 완벽해요. 그런 점에서 부럽기도 해요. 고참으로 선수로 그리고 소속팀에서도 잘 하고 있고 열심히 하니까요. 사실 라경민 선수랑은 오랜 동안 함께 했지만 사적인 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도 잘은 몰라요.
라 친구들이 많아요.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예요.
배 이 점은 꼭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김 쫓기지 말았으면 해요. 나이도 있고 하니까 즐기면서 했으면 해요. 질 수도 있다는 편안한 생각에서 훈련이나 시합에 임했으면 해요. 코트 안에서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 게임이 안 풀릴 때 말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배 서로에게 바라는 점은?
김 쫓기는 생활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낼 기회가 별로 없어요. 제가 원래 파트너를 잘 챙기는 편인데 힘든 일이 있으면 상의했으면 좋겠어요.
라 아프지 말고 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길 바래요.
배 앞으로의 꿈은?
김 저는 앞으로 공부를 좀 더 준비해서 아테네올림픽 이후에 박사과정을 밟으려고 해요. 그래서 대학교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라 아직은 아무 것도 결정한 게 없어요. 아시아경기대회 끝나고 공부를 더 하든 운동을 하든 그때 가서 결정하려고 해요.
배 서로의 팬들에게 한 마디씩?
김 시합장에서 남자팬들이 와서 응원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뒤에서 몰래 응원하지 말고 직접 찾아와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해요.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팬이 되었으면 합니다.
라 지금까지 오빠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변함 없었으면 좋겠어요.
Profile
김동문 라경민
생년월일 : 1975년 9월 22일
신장 : 194cm
체중 : 77kg
생년월일 : 1976년 11월25일
신장 : 175cm
체중 : 65kg
김동문·라경민 조 주요 전적
1997 미국오픈 우승, 홍콩오픈 우승, 중국오픈 우승
1998 일본오픈 우승, 요넥스 전영오픈 우승, 스웨덴오픈 우승, 아시아선수권 우승,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우승, 그랑프리파이널즈 우승, 1999 코리아오픈 우승, 스웨덴오픈 우승, 전영오픈 우승, 제11회 세계개인선수권대회 우승, 싱가폴오픈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