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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民族)정신과 전통의례문화 | 중국의 주자가례와 의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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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성(民族性) 우리민족은 자연민족으로 뿌리민족이다. 자연민족이란 자연의 순리(順利)에 순응(順應)하는 민족으로 신시 배달민족(新始 拜道民族) 동이민족(東夷民族), 조선민족(朝鮮民族), 백의민족(白衣民族)의 민족적인 개념에는 천손(天孫)의 자손 이라는 민족성이 들어 있으며, 그 민족은 자연민족이요 뿌리민족이다. 흰색을 근본으로 하는 시작하는 민족이다. 시작한다는 것은 민족정신인 것이다. 그 민족은 자연의 이치(理致)를 문자화(文字化)한 도학(道學)으로 모든 삶을 살아왔다. 도학은 자연의 본성을 우리의 생활과 연계시킨 학문이다.
그리므로 자연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주의란 만물(滿物)속에 인간이 일물(一物)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통치이념(統治理念)으로 하백제도(霞白制度)를 실시하여 백성(白性)을 위한 백성의 정치를 하였든 것이다. 뿌리민족의 특징은 하늘과 땅 그리고 시절의 삼재(森財,에 감토(感土)하며 순응(順應)하는 민족으로 만물의 위계(位階)를 삼재에 의해서 사람의 위계를 설정 하는데 그 기준이 나 자신인 백(白)에서 시작하는 민족이다 그리고 흰색을 민족정신으로 시작하는 민족이다. 시작하는 만족이란 인류의 시작을 뜻하고 문자의 시작을 뜻한다. 그리고 서쪽이 흰색으로 시작하는 방위로 우선(又先)이 되며 이것을 상석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열리는 숫자로서 열리는 품성과 열리는 운(雲)으로 살아가는 민족이 모든 의례문화(儀禮文化)에 홀수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민족성은 진실과 정직을 미덕으로 삼고 조상을 섬기고 하늘을 우르러 부끄럼 없이 살기를 기원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체질은 땅 체질로 음력을 사용하였으며, 배속의 아이도 한 살로 인정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 여기는 민족이다. 복식도 시절 따라 입는 민족이며, 음식도 의식이나 평상시에도 시절음식으로 한상에 차려 먹는 진설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절풍속으로 차사를 지내는 민족이다. 그리고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서 민족의 학문인 도학과 생활 문화의 근간으로 살아왔다. | 1. 민족성(民族性) 중국의 민족성은 생활민족으로 땅위의 보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 이 뜻은 자연보다는 사람을 위한 사람의 학문인 유학을 중시 여기는 인본주의 사상인 인문학(人文學)이 발달 된 민족으로 모든 문화가 은우법9隱喩法)과 비유법(比喩法)으로 형선 된 학문이므로 기준이 성인이 되고 성인이 전하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마다 다른 학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문헌이 학문의 근간이 된다. 그래서 주공의 주례(周禮)에 이어 주희의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성리학(性理學)의 발달을 가져온다. 그리고 중화민족의 뜻으로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민족으로서 다문화(多文化)를 인정하고 짝수를 민족성으로 쓰는 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대인으로 인정하는 민족이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서 일 년이 지나야 한 살을 인정하는 생활민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황재(黃帝)를 시조로 세우는 땅을 다스리는 민족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천자라 부르는 민족으로 붉은 색을 선호하는 생활민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천도사상으로 왕도정치를 통치이념으로 인민을 다스리는 민족이다. 이 뜻을 높은 사람을 상석으로 하는 위계의 문화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길사와 흉사에 대한 상대적인 예법을 달리하는 예의문화를 가지고 있다. 음식문화도 진찬례(進饌禮)나 코-스 요리로서 살아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생활에 편리하게 먹도록 하는 것이 이 민족의 식문화가 된다. 그리고 음양 오행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문화의 민족이다. 음양오행은 땅위의 문화로서 생활민족이 지향하는 문화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 모든 학문과 생활이 이분법적인 상대성 원리에 기준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의례문화와 차례는 체용(體用)법을 적용시켜 이 민족만의 특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음수(陰數)를 사용하는 국민성으로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폐쇄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민족과 중국인들은 반대의 성격과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민족성을 알고 상대한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 할 것이다. |
2. 수리(數理)의 사용법 우리민족은 열리는 숫자를 사용하였다. 열리는 숫자는 1 3 5 7 9 이다. 1 3 5 7 9를 양수(陽數)라고 표현 하지만 그것보다 열리는 운(雲)의 숫자로 의례문화(儀禮文化) 및 생활문화(生活文化)에 쓰이는 수리의 이치(理致)이다. 그래서 9의 숫자가 최고의 운을 가진 숫자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리 개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운을 열어가는 자연성(自然性)이 들어 있다. 이러한 자연 원리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 수리의 도학(道學)이다. 1) 열리는 수리문화(數理文化) (1) 할 수(數) 있다. (2) 갈 수(數) 있다. (3) 있을 수(數) 있다. (4) 열릴 수(數) 있다. 는 수(數)의 의미는 미래 가능성에 대한 운(雲)수리의 개념이다.
2) 생활(生活)부분에는 (1) 4층을 사용하지 않았든 사실, (2) 불전을 놓을 때 3자와 5자의 수리가 들어가게 놓았든 사실들이다. (3) 모든 언어와 말들이 홀수문화로 되어 있다. 노래 가락도 3박자, 5박자이자. 4박자일 때는 엇박자로 1박을 보충해서 5박자를 맞춘다. (4) 걸음걸이도 진보(進步)로 양발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한발 한발 걷는 것이 열리는 운의 걸음이다. (5) 체질성도 양수(子寅辰午戌)로 되어있는 것이 체질성을 열리는 체질성으로 운이 열린다. < 4자를 죽을 死자로 생각하여 쓰지 않을 수도 있으나 사실은 짝수로 운이 막히고 닫히는 숫자이기 때문에 쓰지 않았다. 운이 막하고 닫히는 짝수를 우리는 원래 쓰는 걸 꺼렸다. 지금은 우리도 생활문화로 살기 때문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 있다.> 3) 의례(儀禮)부분에는 (1) 혼사(昏祀)때 치마 조고리 한벌과 조고리 하나를 더한 사실, (2) 혼서지를 봉하지 않는 것도 숫자와 관계없다 하지만 운이 열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3) 제사상의 과실을 홀수로 놓는다.. (4) 함 끈을 멜 때 두 끝을 짝 맞추지 않는다. | 2. 숫자(數字)의 사용법 닫히고 막히는 숫자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닫히고 막히는 숫자는 2 4 6 8로 음수(陰數가 된다. 그래서 이들은 8의 숫자를 가장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생활문화(生活文化)와 의례 문화(儀禮文化)에 짝수를 쓰는 민족이다. 서양에서 7의 숫자를 행운(幸運)의 숫자로 쓰는 것도 그들의 운이 되고, 그 운(運)은 바로 국민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들의 운(運)은 우리민족과 같은 자연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성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운이란 잘살고 못사는 경제력을 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근본의 뜻이 되고, 인성의 가치기준이 되는 것이다. 1) 생활(生活)부분에는 (1) 날자를 정할 때 4자와 8자를 행운의 숫자로 사용한다. (2) 모든 언어와 말들은 짝수문화로 되어 있다. (3) 사물의 표현과 행동도 짝수로 되어 있다. 노래의 가락도 짝수이다. (4) 의식행사에는 합보(合步)로 발걸음을 짝을 맞춘다 (5) 체질성도 음양으로 짝을 맞추는 걸 원한다. 여기서 짝이란 서로를 보완하는걸 말한다. 2) 의례(儀禮)부분에는 (1) 혼인례(婚姻禮)에 대나무 소나무도 부부로 표현하여 짝을 맞춘다. (2) 존안례(尊雁禮)를 전안례(奠雁禮)라 하여 기러기를 두 마리로 부부라 하여 짝을 맞춘다. (3) 제사상의 과실도 지산(地産)이라 하여 짝수로 놓는다. (4) 모든 언어와 말들은 짝수로 쓰고 잇다. (5) 걸음걸이도 의식행사에는 합보(合步)라 하여 높은 뜻을 부여 한다. (6) 성격은 자기 마음을 열지 않는 음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
3.. 삼재의 색깔 적용 우리민족은 하늘과 땅 그리고 시절문화를 가지고 있다. 1) 하늘색은 푸른색 과 붉은색을 가지고 있다. (1) 푸른색은 푸른 하늘 그대로의 색이요. (2) 붉은 색은 아침저녁으로 불게 물든 노을의 색이 된다. 2) 땅색은 (1) 검은색이 된다. 3) 시절(時節)색은 (1) 흰색 (2) 노랑색 (3) 초록색 (4) 붉은색으로 되어 있다. | 3. 오방색(五方色) 적용 중국은 음양오행에 의한 오방색문화를 가지고 있다. 1) 음양(陰陽) 색은 양은 화(火)로 홍색이요. 음은 수(水)로 청색이다 2) 오방(五方)색은 (1) 동쪽은 봄으로 청색이요 (2) 남쪽은 여름으로 홍색이요 (3) 서쪽은 가을로 백색이요 (4) 북쪽은 겨울로 흑색이요. (5) 중앙은 땅으로 황색이다. |
4. 손의 위치 적용 사람에게 손짓은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든 행동이다. 우리민족의 손 적용은 자연(自然)그대로이다. 오른손은 바른손이 되므로 말 그대로 바른 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오른손을 쓰는 민족으로 모든 작용은 오른손으로 한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오른손을 바른손이라 한다. 1) 남자 여자 구별이 없다. 2) 길사(吉事) 훙사(凶事)에도 관계없이 오른손이 왼손위에 올려 잡는 것이다. 3) 때와 장소에 따른 구분 (1) 공수(拱手)자세 때, (2) 절을 할 때, (3) 혼례를 치를 때, (4) 제사를 지낼 때, (5) 상례를 치를 때 (6) 윗사람 앞에 서 있을 때 등의 모든 자세에 오른손인 바른손을 왼손 위에 올린다. | 4. 손의 위치 적용 중국의 의례문화는 생활의례(生活儀禮)이기 때문에 남자, 여자, 길사 흉사에 대한 구분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는 왼손이 오른손위에 올라가고, 여자는 오른손이 왼손위에 올라가서 잡는다. 1) 남자 여자에 따른 구분 (1) 남좌여우(男左女右)의 손위치 남자는 왼손이 여자는 오른손이 올라간다. 이것은 평상시(平常時) 혹은 길사(吉事) 때 하는 손의 위치다.. (2) 남우여좌(男右女左)의 손의 위치 남자가 오른손이 왼손위에 올라가고, 여자는 반대로 왼손이 오른손 위에 올려 간다. 이것은 흉사(凶事)때 하는 손의 위치이다. |
5. 걸음걸이의 기준 우리민족은 진보(進步) 걷는 것이 원칙이다. 사람은 두 다리로 걷기 때문에 당연히 진보로 걷고 있다 1) 진보(進步)의 걸음걸이는 평상시(平常時)나 의식행사(儀式行事)나 똑 같다. 이러한 걸음을 우리는 열리는 걸음걸이라고 말한다. 2) 계단을 올라 갈 때와 내려 갈 때는, 오른 발이 먼져 올라가고, 내려 갈 때도 오른발이 먼저 내려간다. 이것은 진보(進步)의 원칙에서이며, 왼발이 먼저 움직일 때는 뒤로 물러 갈 때이다. 이것은 진퇴(進退)의 원칙이다 3) 원(圓)을 그리며 걸음을 걸을 때는 오른발이 먼저 나가서 원은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 즉 시계방향으로 걸어야 자연에 순응하는 방향이 된다. 전시회를 관람 할 때, 운동장을 돌때, 탑돌이를 할 때 등이다. | 5. 걸음걸이의 기준 사람은 어느 민족이든 두 다리로 걷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다를 리가 없다. 예기(禮記)에 의하면, 중국은 의식행사에는 합보(合步)로 걷는것을 격을 높이는 걸음걸이라 말한다. 이것은 음수문화를 지향하는 민족의 특수성이 된다. |
6. 위계질서 및 상하석의 기준 우리의 위계는 북쪽을 절대적인 상석으로 한다. 이것은 북방상천설(北方上天說)에 근거를 둔다. 북방상천설이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북극성(北極星)을 말한다. 1) 북쪽을 상석으로 기준석을 정한다. 그러나 북쪽을 상석으로 정할 때 자연방위인 동서남북의 북쪽이어야 한다. 2) 위계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 된다. 자기를 기준으로 윗대를 대(代)로 게산한다. 그래서 나에서 부모를 1대, 조부모를 2대, 증조부모를 3대로 계산하여 시조까지올라 간다. 그래서 세(世)보다 한 대가 적은 것이다. 그래서 가장 높은 제사는 부모가 된다. 3) 제사상의 대추는 서쪽에 놓는다. 서쪽은 흰색인대도 붉은 대추를 서쪽에놓는 이유는 붉은 것은 운(雲0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뿌리민족으로 뿌리는 땅속에서 시작하므로 서쪽이 우선(于先)이 되어 상석이 된다.. 대추는 최고의 운을 가진 과실이므로 상석에 놓는다. 4) 제관은 서쪽에서부터 차례로 선다. 서쪽이 상석이기 때문이다. | 6. 위계질서 및 상하석의 기준 위계의 상석을 북쪽으로 한다. 북방상천설(北方上天說)에 근거한다. 1) 북쪽을 상석으로 기준 석을 정한다. 자연의 동서남북으로 정하지 못할 때 예절의 방위를 설정하여 북쪽으로 설정한다. 그러므로 어는 방향이든 사람이 북쪽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2) 위계의 기준을 윗대인 시조로부터 세(世)로 계산한다. 시조 혹은 중시조로부터 1세, 그다음을 2세, 다음을 3세, 등의 계산법을 천도사상이라 한다. 그래서 가장 높은 제사는 시조제가 된다. 3) 제사상의 대추는 동쪽에 놓는다. 생활민족은 땅위에서 시작하므로 동쪽이 입춘으로 상석이 된다. 그러므로 대추를 동쪽에 놓는다. 4) 제관은 중앙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남자제관들이 중앙을 중심으로 선다 서쪽에는 여자제관들이 중앙을 중심으로 서쪽에 선다. 제사는 길사(吉事)라하여 평상시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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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정의례(家庭儀禮) 우리민족의 가정의례는 현재 배우고 있는 예절 책은 모두 주자가례를 번역한 가례집람(家禮輯覽),사례편람(四禮便覽)에 자기 집안의 절차를 혼합한 것이다. 책으로 배움으로 오히려 전통 의례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학문과 문화는 자연원리를 근간으로 한 유학(儒學)과 도학(道學)을 함께 알아야만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원리로 되어있는 가정의례은 통과의례(通過儀禮)로서 출생부터 돌, 혼사(昏祀) 환갑(環甲)흉사(凶事), 제사(祭祀) 로 구분할 수 있다, 가정의례란 현대적인 용어이며, 통과의례도 말 그대로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거쳐야하는 단계이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가정의례의 내용은 도학을 모르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주자가례의 의례와 우리집안에서 내려오는 의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혼례(昏禮), 상례(喪禮), 제례(祭禮)라 하지만 도학으로는 모든 의식에 사(祀)를 붙여 정성으로 행한 의식에는 복을 부른다는 뜻의 용어로 사(祀)자를 붙였다. 사(祀)자는 볼示 +뱀巳로서 용이 승천하는 듯을 지닌다. 그래서 혼사(昏祀), 상사(喪祀), 제사(祭祀)로서 용어 그대로를 사용하였으며, 길사(吉事), 흉사(凶事)로 나누어 쓰지 않았다. 1) 우리민족은 성인식(成人式)이 없다. 우리민족은 성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다. 성인의 기준은 혼례(昏禮)을 올리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1) 혼사(昏祀)를 하기위해 성인의 기준을 성인식으로 한다고 지금은 주자가례의 생활의식을 답습하고 있다.
(2)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미혼 일 때는 성인이라 인정 하지 않는다. 일정한 나이가 되어 혼사를 치르고 나면 당사자는 가정과 사회의 책무를 다하고 주의의 친인척들은 성인으로 대우를 해 준다. 우리도 고려 광종 때 성년례에 대한기록이 있지만 백성들은 행하여지지않았다. 혼사를 치르므로 어른이 되었다. (3) 혼례을 올리지 않으면 사후(死後)에도 무덤을 만들지 아니하거나 돌무덤을 만들었다. 부모의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 그리고 제사도 정식으로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자식을 먼저 보내면 부모의 부덕이요 부모가 일찍 돌아가심도 자식의 불효가 된다. 는 논리로서 부모와 자식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유전적 개념이 있었다. (4) 미혼 때의 범절 혼인을 하지 않는 미혼 일 때는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훈육과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독립된 인권은 인정되지 않으므로 모든 행동과 예법은 부모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혹은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부모께서 상대와 관계를 항렬과 촌수를 알려주고 거기에 합당한 예법까지 듣고 행한다. 혼자 일 때도 미리 부모가 어떻게 하라는 당부의 말씀대로 하고, 집안이나 남남 간에도 부모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자기 의사를 전한다. 2) 혼사(昏祀) 우리민족은 남자가 장가(丈家)가고 여자가 시집(始地)가는 행위를 혼사(昏祀)라 한다. 그래서 날저물 혼(昏)자를 써서 저녁 무렵에 혼례를 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저녁에 치른다고 해석하지만 사실은 남녀의 합궁을 근거로 한 명칭이 될 것이다. 명칭은 자연의 원리인 도학(道學)에 근거를 두지만 실제행위는 생활에 의해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사를 치르는 의식의 절차를 혼례(昏禮)라 한다. 남자가 장가들기 위해 신부 집 처마 밑에 방을 짓고 살았다는 서옥제(壻屋制)가 있었다. 그래서 신부 부모의 허락이 나면 대례상을 차리고 혼례를 올렸다 한다. 이것을 장가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은 약혼이란 과정이 없는 것이다. 약혼은 들어온 문화다. 우리민족은 운 문화(雲文化)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풍습이 있었다. 신행할 때 짚불을 넘고 대문에 들어서는가문도 있고, 바가지를 발아서 큰소리를 울리면서 들어가는 가문이 있는가하면, 물을 떠서 가지고 가서 시댁의 우물에 붇는다는 풍습도 있다. 이러한 모든 풍습은 모두 운(雲)을 받기위한 우리의 전통문화(傳統文化)인 것이다. (1) 혼인의조건 ① 한해에 자매가 두 번 혼사를 하지 않는다. ② 근친 상중에는 하지 않는다. ※ 혼사를 받아놓고 남의 혼사나 상(喪)에 가지 않는다. (2) 혼례(昏禮)의 절차 우리는 혼인 육례(六禮)를 올렸다. ① 혼담(昏談) 중매하는 사람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양가의 혼사를 의논하는 절차를 말한다. ② 사주(四柱) 신부 쪽에서 혼사를 허락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남자 쪽에서 신랑의 출생 연월일시를 적은 사주를 보낸다. ③ 택일(擇日) 신랑 쪽에서 보낸 사주에 의해서 혼례를 올릴 길일을 택해서 보내는 절차를 말한다. ④ 함보내기 신랑쪽에서 신부쪽에 신부의 예물을 보내는 절차이다. 현1단 훈1단과 혼서지 물목기 등을 오낭과 함께 혼함에 넣어 혼례 치르기 전에 신부쪽에 날자를 상의해서 보내도 좋다. 일반적으로 잔치를 치르도록 날을 정하는 것이다. ⑤ 대례식(大禮式) 신랑이 신부집에서 올리는 에식의 절차이다. - 교배례(交拜禮) - 신랑 신부가 맞절을 3번 해야 한다. 신부는 평좌배로 한다. 남녀가 혼례를 올리는 것은 하나가 되는 이치이므로 맞절로서 하늘과 땅과 시절(신랑 신부)에게 고(告)하는 예로서 3번 한다. 술잔을 들고 이마까지 올린다. 이것은 천지신명에게 예로서 고(告)하는 것이다. 술잔의 술을 반을 마시고 나머지 반을 상대에게 마시게 한다. 이것은 신랑 신부당사자에게 평생 변함없는 마음의 다짐으로 고하는 예를 올린다. ⑥ 신행(始行) 신부집에서 대례를 올리고 신부 집에 3일간 머무르다가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을 신행이라 한다. 이것을 3일대반이라 한다. 가장 근대적인 예가 되는 것이다. 고래는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들어 일년이든 5년이든 기간의 제한 없이 자녀를 몇을 낳든 상황에 따라 본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혼사풍습은 모든 결정권이 여자 쪽에 있었다. (혼사를 결정하는 것, 혼례 날자를 결정하는 것, 신행하는 날을 결정하는 것)
3) 환갑(還甲) 환갑은 61세의 나이가 돌아오면 갑자년이라 하여 잔치를 열고 일가 친적들이 축하를 해주는 생자의례이다. 『고려사』에 보면 충렬왕 22년(1296)조에 “ 術者가 환갑이 액년이란 말을 하기에 은혜를 베풀어 죄인을 풀어주고 용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액년이란 것은 환갑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체질성이 막히고 닫히는 체질성은 굳이 그것을 찬치로서 알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1) 환갑(還甲)잔치 잔치 때 필요한 옷과 먹을거리 음식 및 기념품, 그리고 손님을 맞을 공간 확보 등 모든 준비를 한다. 10일 전쯤 멀리 있는 친지와 친척은 3일전 혹은 1일전 쯤 청첩한다.
헌수상(獻壽床)을 준비 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헌수례(獻壽禮)에 준하는 절차를 거친다.
헌수례를 하는 공간은 흔히 환갑주가 거처하든 안방이나 대청 혹은 마당에서 한다. 환갑상은 제상이나 혼례상의 큰상과 비슷한 진설 법을 따르되 호화롭게 차리는 것이다., 환갑주 부부 앞에 망상과 교자상을 차리는 것이 제상이나 혼례상과 다르다.
(2) 헌수례의 절차 ① 환갑주 부부가 자리에 앉으면 자식들서 서열대로 북향으로 선다 ② 먼저 장남부부가 재배하고 집사자로부터 술잔을 받아서 부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잔을 올린 뒤 읍하고 물러나온다. ③ 다음은 차남부부 삼남부부 등의 순서로 헌수하고, 미혼의 아들과 딸은 기혼의 딸과 사위가 헌수한 다음에 헌수한다. <헌수 때 아들과 사위는 아버지께, 며느리 와 딸은 어머니께 술잔을 올린다.> ④ 다음은 방계친척 가운데 환갑주 보다 낮은 항렬의 사람들이 헌수하고, 가까운 친척들 가운데 친밀한 관계의 비속자(卑屬者)들이 헌수한다. 이때 헌수, 축사, 축가, 축무 등을 행한다. 이러한 행위는 환갑주의 친구나 그 자식들이 행한다. 또 환갑주가 직접 수연가를 지어 부르기도 한다. 고래 헌수를 할 때 부유한 가정에서는 기생을 불러 권주가를 부르게 하고 갖가지 흥미롭고 웃기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헌수가 끝나면 환갑주는 도포나 원삼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갑놀이에 참여 한다. 환갑놀이는 풍물과 춤, 노래 등이 종합적으로 연행(演行)되는 집단적인 놀이로서 연령계층 별로 따로 행하여진다. (3) 환갑놀이 처음에는 환갑주의 친구들이 풍물놀이를 시작하면 환갑주의 자녀와 친구들이 환갑주를 무등를 태우거나 사다리 또는 지르메(길마)를 태운다. 사다리나 지르메를 타는 것은 마치 남녀(가마)를 타는 모습과 비슷하다. (4) 환갑선물 선물은 한복의 바지 조고리 마고자 도포 시계 반지 구두 이불 담요 양말 등이 있었다. 잔치 음식 부조는 묵 감주 흰떡 인절미 절편 사과 배 술 한지 등이 있었다. 환갑주의 부모가 살아계시면 오색반난지경(五色班爛之慶)이라 하여 환갑주가 그의 부모 앞에 환갑상을 차려드리고 색동옷을 입거나 붉은 띠를 허리에 매고 어린애처럼 꾸며서 울음소리도 내며 웃기면서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린다.
5) 환갑 후 예우 (1) 환갑잔치를 지낸 노인은 경노회(敬老會)에 가입 할 수 있으며 또한 마을의 경노 잔치에 참가 할 수 있다. (2) 지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공동체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다. 항상 우선적으로 상석을 배정하고 인사를 드린다. 현대사회에서도 계승되어 기차나 버스의 탑승, 목욕탕, 공원 등의 입장 때 요금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3) 마을의 대동회의(大同會議)때 발언권이 우선으로 주어진다. 6) 만갑 잔치(挽甲잔치) 만갑 잔치는 환갑이 돌아온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차리는 잔치이다. 만갑 잔치의 준비와 청첩의 과정은 환갑잔치와 꼭 같다. 3) 제사(祭祀) 제사(祭祀)는 돌아가신 당사자를 모시는 기일제(忌日祭)를 두고 실제 제사를 지내는 진설부터 음복까지를 제사라 한다. (1) 제사지내는 날자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말에 살아 계신날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그래서 돌아가신 하루 전이라 한다. 그것은 돌아가신 당일 날을 두고 살아계신 날이라 기복에 의미로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는 입제(入祭)가 있고 자시(子時)에 제사를 지내고 날이 밝으면 파제(破祭)날이 된다. 15일나 돌아가시면 14일이 입제요 15일 자시에 제사를 모시고 그리고 15일은 파제 날이 된다. 이것을 3일이라 한다. 예를 들면) 15일날 낮9시에 돌아가셨으면, 15일 자정(子正)부터 지내야 된다. 자시(子時)라하여 14일 11시부터 지나면 안 된다. 그래서 15일 자정부터 돌아가신 9시까지는 살아계셨으므로 살아계신 날 지낸다고 말한 것을 하루전날로 이해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초저녁 제사를 지날 때는 15일 초저녁에 지내면 된다. 자정에 지내는 이유는 15일 중에 가장 깨끗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좋지 못한 일이나 말들이나 행위들이 발생 하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고래는 궐명(厥明/먼동이 틀 때) 에 시작하여 질명(質明/날이 밝아오면)에 끝낸다고 하였다. 그래서 제사지내는 시각은 중요하지 아니한 것이다. 밤에 연혼이 찾아온다는 말은 맞지 않다. 항상 정성으로 청하면 되는 것이다. 현대에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정확한 제삿날에 의견이 많기 때문에 소상히 설명한다. ※ 제사 지내는 날자를 고칠 때는 제삿날 조상에게 사유를 고하여 알리면 된다. (2) 합설(合設)의 상차림 우리민족은 자연민족이므로 합설(合設)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합설는 할아버지 제삿날 할머니를 같이 모시고 할머니 제삿날 할아버지를 같이모시는 것을 말한다. 이유는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돌아가시는 날이 달라도 항상 같이 모시는 것이 자연민족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3) 상차림은 진설(陳設)로 한다. 우리의 제사 상차림은 한 번에 모두 차려 지내는 진설(陳設)이다. (4) 상차림의 특징 ① 시절 물(時節物)로 차린다. ② 홀수로 놓는다. - 과실은 홀수로 놓는다. ③ 운의 순서로 놓는다. -조율시이(棗栗柿梨) 홍동백서(紅東白西) - 나물을 한 접시에 담는다. 나물은 세 가지, 다섯 가지 등, 가지 수대로 한 접시에 담는다. -고기는 도적에 한꺼번에 쌓는다. 육적 어적 계적의 순으로 쌓는다. ④ 과실 놓는 것은 법이 있다. 조율시이와 홍동백서로 놓는다. ⑤ 대추는 서쪽에서부터 차례로 놓는다. (5) 제수물(祭需物)의 해석 제상은 5열로서 시절상이다. 제수물의 해석은 도학으로 자연의 원리인 기복으로 해석 하였다. ① 소고기(釗高己) 소고기는 쇠(釗)고기 이다. 소가 힘을 쓰는 동물이므로 힘쓸 쇠(釗)로 해석하여 힘있는 가문에 되라는 뜻이다. ② 닭(道) 닭은 시작할 도(道)로 해석하여 도적의 맨 아래 놓는 것이지만, 달구비슬(道九飛乙)의 뜻을 응용하는 집안에는 맨 위에 놓기도 한다. ③ 문어(門魚) 문어는 문어(門魚)의 해석이다. 모든 제수물의 기복을 담기위해 문을 연다는 뜻이다. 재물이 들어오는 문이 되겠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전통으로 지내는 제사에는 반듯이 쓰고 있는 제수물이다. ④ 조기(朝己) 조기(朝己)가 도학의 해석은 아침의 붉은 운(雲)을 받는 몸이다. ⑤ 돈배기(豚拜開) 돈배기(豚拜開)는 돈배개로 재물을 배고 있다는 뜻이다. 상어, 방어등 꼬지를 만 들어 도적의 제일 중심에 놓는다. ⑥ 복어(復魚) 복어(復魚)는 시절 복(復)으로 제사상에 진설된 기복의 제수와 시절을 같이 하는 제수이다. <복어는 제사나 고사, 일반인에게도 몸이 안 좋을 때 끓여 먹고 하는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인 것이다. 시절을 같이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원만하게 해 준다는 뜻이다.> ⑦ 두부(石間抱) 두부는 석간포로서 알고 모르고 지은 죄를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제수이다. ⑧ 떡(德) 떡은 덕(德)을 강하게 발음한 것이다. ⑨ 흰콩 시루떡(始壘德) 제사에는 흰콩 시루떡을 쓴다. 땅의 공덕(空德)으로 시절과 같이 하는 시작을 의미 한다. ⑩ 국시(九始) 국시는 파뿌리에서 해석 한다. 땅속의 시작을 의미하고, 실타래와 같은 뜻이다. ⑪ 도라지(道羅地) 도라지(道羅地)는 길道자에 시절羅자에 땅地로 되어 있다. 땅속의 움직임을 시작하는 대표의 나물이다. ⑫ 미나리(未羅里) 미나리(米羅里)는 빠른 성장을 의미한다. < 시금치, 배추 등도 푸른나물도 사용하지만 그 중에도 가장 빠른 성장은 미나리이다. > ⑫ 고사리(高四里) 고사리(高四里)는 높은 직위를 뜻한다. <삼색(三色(나물의 뜻은> 삼색 나물은 한 접시에 담아야 하며, 도라지(道羅地),미나리(未羅里),고사리(高四里)로서 운(雲)의 순서대로 땅속에 뿌리를 내려 박고, 땅위의 성장을 빠르게 하여 높은 직위로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는 뜻이 된다. < 양념을 쓰지 않는 이유> 나물에 고추가루, 파, 마늘은 쓰지 않는다. 양념의 강한 맛으로 몸과 마음이 역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사상에 쓰는 마물은 자연물과 순응하는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을 해야 한다.> ⑬ 대추(道崷) 대추는 과실 중에 최고의 운(雲)을 가진 것으로 여의주의 운을 뜻한다. ⑭ 밤(湴) 밤은 땅이다 음이라는 뜻이다. ⑮ 감(感) 제사에 쓰는 감은 가을에 붉게 익어 가는 홍시(紅柿)를 말한다. 감은 감응(感應)한다는 뜻이다. <곳감(高感)은 여자의 자궁인 속곳과 감응한다는 뜻으로 곳감이라 한다. 홍시가 없는 계절에는 곳감을 쓴다.> ⑯ 배(拜) 배는 절拜자로 감토의 뜻이다. < 조 율 시 이의 뜻은 > 대추(道崷)의 뜻인 월계관, 여의주의 높은 직위레 오르려면, 밤(湴)인 땅에, 감(感)으로 감응하여 감토(感土)하고, 배(拜)의 뜻은 감토하는 방법이 절(拜)을 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⑰ 사과(四柯) 사과(四柯)는 따뜻한 마음이 시작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⑱ 술(戌) 술(戌)은 지지(地支)의 11번째 자인 개(開)을 도학(道學)으로 마시는 술(戌)이라 한다. 술은 땅에서 지상으로 순응 하여 올라가는 것이다. 즉 개(開)에서 용(龍)으로 승천(昇天)하는데 목적이 있다. ⑲ 향(向) 향은 향(香)이 나니까 향이라 한다. 도학으로 향(向)은 바라볼 향(向)으로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재물과 직위로서 가문의 번창을 의미한다. 향 연기에는 생물성산소가 많이 들어있다.
<제사상에 놓지 않는 과실> ① 복숭아(復崇訝) 복숭아를 제사상에 쓰지 않은 이유는 제사상에는 시절과실을 놓아야 하는데 복숭아는 하늘 과실이므로 쓰지 않는다. ② 팥 시루떡 팥과 팥 시루떡을 제사에 쓰지 않는 것은, 복숭아와 같이 하늘의 곡물이므로 고유에는 쓰지만 제사에는 쓰지 않는다. <팥은 도학으로 파‘破’자로 해석하여 름 보내야 하는 것은 다 보내고 높은 직위를 얻는다는 뜻이다.> <팥을 벽사라 하여 귀신 쫒는다는 뜻으로는 우리전통문화를 바로 알 수 없고, 이러한 자연물이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인데도 결과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 7. 가정의례(家庭儀禮) 주자학(朱子學)과 주자가례(朱子家禮)는 고려 말 안향선생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 자연원리를 학문화한 도학(道學)에 의해서 살아온 우리민족이 생활민족인 중국의 영향을 학문과 문화전반에 걸쳐 퍼지게 된다. 주자가례는 사계의 가례집람과 이재의 사례편람으로 번역 되에 지금까지 우리의 학문처럼 알고 있는 것이다. 주자가례는 사례(四禮)로서 성년례 혼인례, 상장례 제의례 등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주자가례는 주나라의 주공에 의한 주례(周禮)에 근본을 두고 있다. 주공(周公)의 주례(周禮)는 사 상견례(士相見禮), 향음주례(鄕飮酒禮)와 더불어 사관례(士冠禮) 사 혼례(士昏禮) ,사 상례(士喪禮), 사 헌례(士獻禮)의 육례로서 선비들만이 할 수 있는 예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제례규정에도 명시된바와 같이 제사도 직급 따라 몇 대를 지내야하는 규정이 있다. 이러한 것이 생활민족의 예법이다. 그래서 생활민족은 관 계례(冠笄禮,) 혼인례(婚姻禮), 제의례(祭儀禮)를 길사(吉事)로 정하고 상장례(喪葬禮)를 훙사(凶事)로 규정 하여 모든 예법이 그 규정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다.
1) 관 계례(冠笄禮) 관 계례는 주자가례의 번역에 의해 가례집람, 사례편람등으로 우리나라에서 예서로 만들어졌다 관 계례를 치르는 목적은 어른의 책무을 일깨우는 책성인지례(責成人之禮)이다. 성인의 도리를 다하고자 선언하는 의식이 된다. 그러므로 성년례는 혼인을 하기 위한 절차인 것이다. (1) 관례의 조건 ① 나이는 15세에서 20세가 되어야한다. ② 당사자 부모의 상기(喪期)가 1년 이상이면 행할 수 없다. ③ 대공복(大功服/9개월복)을 입는 상(喪)을 당하여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을 경우에도 의식을 치를 수 없다. (2) 관례(冠禮)의 절차 ① 시 가례(始加禮) 관례 당사자가 미혼이므로 머리를 땋아 내리고 샤규삼과 금박이 찍힌 복건을 쓰고 나온다. 그리고 평상복인 심의로 갈아입고 머리는 상투를 틀어 올려 복건를 쓴다. ② 재 가례(再加禮) 출입복인 조삼으로 갈아입고 모자 혹은 갓을 쓴다. ③ 삼 가례(三加禮) 예복인 관복으로 난삼을 갈아입고 복두를 쓴다. ④ 내 초례(乃醮禮)는 어른 앞에서 술 마시는 예법이다. ⑤ 명 자례(名字禮)는 자(字)를 지어주는 절차이다 자는 윗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3) 계례(笄禮)의 절차 계례는 여자의 성년례로서 비녀 계(笄)자를 써서 계례(笄禮)라 한다. 계례는 초 가례(初加禮)즉 시 가례(始加禮)의식으로 한번의 복식을 바꾸어 입으면 되는 것이다. 복식은 예복인 당의(唐衣)나 배자를 입고 머리를 올려 비녀를 찌르는 것이다. (4) 관 계례 후의 성인으로의 대접 ① 말씨를 해라에서 하게로 반 높임말을 쓴다. ② 아명이나 관명을 부르지 않고 자(字)를 부른다. ③ 절을 하면 답배를 하여야 한다. ④ 성인의 품 삵을 준다 2) 혼인례(婚姻禮) 혼인례(婚姻禮)는 남자가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간다는 뜻이다. 부부가 평등함의 뜻이 있다. 그래서 부모에게 교훈을 받고, 천지신명에게 맹세하고, 부부인 자신들에게 한평생 잘살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중심의 생활문화인 것이다. (1) 혼인의 조건 ① 반드시 이성간의 결합이어야 한다. ② 적령기의 나이가 되어야 한다. ③ 근친 상(喪)에는 혼인 할 수 없다. (2) 혼인의 절차 주자가례는 혼인 사례(四禮)의 절차가 있다. ① 의혼(議婚) 혼인을 의논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사실은 남자측에서 결정하여 정하는 것을 말한다. 주자가례의 결정은 신랑 쪽에 있는 것이다. ② 납채(納采) 남자측에서 며느리로 채택했음을 알리는 절차이다. ③ 납폐(納幣) 남자측에서 여자측 신부에게 예물을 보내는 절차이다. ④ 친영(親迎) 신부를 데려다 남자집에서 에식을 올리는 절차이다. - 교배례(交拜禮) - 신부가 2번 이슬굴배로 큰절을 하면, 신랑이 답배를 1번 한다. 이때 신부의 절이 45도 가량이면 숙이면된다 . 이유는 족두리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절의 횟수는 음양의 숫자에 근거한다. 천지신명에게 맹세하는 예(禮)를 술잔을 이마까지 올린다. 신랑 신부 자신들에게 평생 잘살자는 맹세의 술을 번쯤마시고 상대레게 마시게 한다. 주자가례의 혼인례는 사례(四禮)의 절차가 있다. 우리민족은 남귀여가(男歸女家)로서 여자집에서 예식을 올리지만, 주자가례는 친영제(親迎制)로서 신부를 데려다가 신랑 집에서 예식을 올리는 풍습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바가지를 합하므로 부부가 하나가 되는 의식의 예를 합근례(合巹禮라)라 한다. 주자가례에는 바가지가 하나가되는 의미를 부부에 은유하는 예로 근배례(巹杯禮)라 한다. 혼인 한 후 친정에서 시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민족은 신행(始行)이라 한다. 그리고 주자가례는 우귀례가 혼인절차에 없다. 이유는 친영제로서 이미 신부를 데려다 신랑집에서 예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주자가례의 혼인은 모든 결정권이 남자측에 있었다. (혼인을 결정하는 것 혼인 날자를 결정하는 것,) 3) 수연례(壽筵禮) 주자가례의 사례에는 환갑의례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연례라 하여 의례보다는 61세의 큰 생일로서 잔치를 연다는 뜻이다. 그래서 특수한 숫자의 생일에 뜻을 두어 축하하는 것이다. 웃어른의 생신에 자제(子弟)들이 술을 올리며 장수를 비는 의식이 수연이므로 아랫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수연례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1) 육순(六旬): 60세 때의 생신이다. 육순이란 열(旬)이 여섯(六)이라는 말이고, 육십갑자(干支六甲)를 모두 누리는 마지막 나이이다. (2) 회갑·환갑(回甲·還甲):61세 때의 생신이다. 60갑자를 다 지내고 다시 낳은 해의 간지가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3) 진갑(陳·進甲): 62세 때의 생신이다. 한 번 더 60갑자를 살아간다는 뜻이다. (4) 미수(美壽):66세 때의 생신이다. 옛날에는 66세의 미수를 별로 의식하지 않았으나 77세(희수喜壽)·88세(미수米壽)·99세(백수白壽)와 같이 같은 숫자가 겹치는 생신을 이름붙히면서 66세의 이름을 붙힌 것이다. (5) 희수·칠순(稀壽·七旬): 70세 때의 생신이다. 옛글에 "사람이 70세까지 살기는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는 데서 희수란 말이 생겼다. 열이 일곱이라 는 뜻인'칠순(七旬)'이 더 좋다. (6) 희수(喜壽): 77세 때의 생신이다. '喜'자를 초서로 쓰면 七十七이 되는 데서 유래되었다. (7) 팔순(八旬):80세 때의 생신이다. 열이 열덟이라는 말이다. (8) 미수(米壽):88세 때의 생신이다. '米'자가 八十八을 뒤집고 바르게 쓴 데서 유래되었다. (9) 졸수·구순(卒壽·九旬):90세 때의 생신이다. '卒'자를 초서로 쓰면 九十이라 쓰여지는 데서 유래되어 졸수라 한다., '졸(卒)'이란 끝나다·마치다의 뜻이다. 열이 아홉이라는 '구순(九旬)'이 좋다. (10) 백수(白壽):99세 때의 생신이다. '白'자가 '百'자에서 '一(하나)'를 뺀 글자이기 때문에 99로 의제해서 말하는 것이다. 자손들이 어른의 생일을 맞아 상을 차려드리고 술을 올리며 장수하시기를 축원하는 의식이다. 이들을 헌수가장례(獻壽家長禮)라고도 한다. 3). 수연례의 명칭 (1) 생일 : 매년 돌아오는 태어난 날이다. (2) 수연(晬宴) : 30세 이후 10년마다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이다. (3) 수연(壽筵) : 60세 이상 된 어른의 잔치이다. (4) 탄일(誕日), 탄신(誕辰) : 왕이나 성인의 생일을 일컫는다. (5) 노사(耆社), 노사소(耆老所) : 조선 태조 때 노신 예우(老臣禮遇) 제도로, 정2품 이상의 문과를 거친 문관을 지내고 참석하였다 70세 이상 노인의 모임으로 왕도 늙으면 동참하였다. 3월 삼짇날과 9월 9일에 국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耆老宴, 耆英會 무관과 음관(蔭官)은 가입이 불가했다.<族譜回想40年史, 官職의 一般常識> (6) 수직(壽職) : 매년 정월 80세 이상 관리와 90세 이상 백성에게 은전(恩典)으로 벼슬을 주었다. 人生十年曰 幼學, 二十曰弱冠, 三十曰 壯有室, 四十曰 强而仕, 五十曰 艾服官政, 六十曰 耆指使, 七十曰 老而傳, 八十 九十曰 耄, 七年曰 悼, 悼與耄 雖有罪 不加刑焉, 百年曰 期, 頤 < 禮記, 曲禮 上>
3) 제의례(祭儀禮) 제의례는 제사를 모시기 3일전부터 출입을 삼가고 제사 지낼 준비를 하는 것부터 파제후 모든 기물까지 갈무리하는 것까지모든 의례를 제의례라 한다. (1) 제사 지내는 날자 예서(禮書)에 의하면 휘일불임(諱日復臨)이라 하여 돌아가신 당일 날 지낸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돌아가신 15일을 두고 살아있는 날이라 하고 돌아가신 날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문화와 생활문화의 차이점이 된다. (2) 각설(各設)의 상차림 각설(各設)은 가문의 선택에 따라 행하는 상차림이 된다. 예서에는 합설과 각설이 각각 그려져 있다. 각설은 돌아가신 분만 모시는 제사 상차림이다. 명절 때도 윗 대부터 한분씩 각각 상을 차리는 제사 상차림이다. (3) 상차림을 진찬(進饌)으로 한다. 진찬은 초헌을 하기위해 육적을 올리고, 아헌을 하기위해 육적을 내리고 어적을 올리고, 종헌을 하기위해 어적을 내리고 계적을 올린다. 이렇듯 술을 마시면 안주를 올리듯 하는 절차를 진찬례라 한다.
(4) 상차림의 특징 ① 천산 지산으로 음양에 근거를 둔다 - 과실은 지산이라 짝수로 놓고 - 닭은 천산이라 홀수로 놓는다. ② 짝수로 놓는다. ③ 먹기에 편하게 놓는다. 평소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든 음식을 놓는다. ④ 후식으로 과실 놓는 법이 없다. 그래서 과 과 과 과로 놓는다고 한다. ⑤ 대추는 동쪽에서부터 차례로 놓는다. (5) 제수물(祭需物)의 놓는 방법 ① 좌반우갱(左飯右羹) 왼쪽은 밥(메)을 놓고 오른쪽에 국(갱)을 놓는다. ② 어동육서(魚東肉西) 어적은 동쪽에 놓고 육적은 서쪽에 놓는다. ③ 동두서미(東頭西尾) 머리는 동쪽으로 놓고 꼬리는 서쪽으로 놓는다. ④ 좌포우혜(左鮑右醯) 왼쪽에 포(脯)를 놓고, 오른쪽에 식혜를 놓는다. ⑤ 조율시이(棗栗枾梨) 오른쪽부터 대추, 밤 ,감, 배순으로 놓는다. 조율이시로 놓는 것이나 조율시이로 놓는 것이나 해석은 같은 것이다 <조율이시(棗栗梨柿)는> 대추(道崷)의 높은 직위를 얻으려면, 밤(湴/땅)에 절(拜)을하여 감(感)으로 감토(感土)한다는 뜻이다. <조율시이(棗栗柿梨)는> 대추의 높은 직위를 얻으려면 밥(땅)에 감토하고, 감토하는 방법으로 절을 한다.
⑥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실인 대추와 감은 동쪽에 놓고 밤과 배는 깍아서 서쪽에 놓는다. < 조율시이와 홍동백서는 우리민족의 자연성9自然性)을 운(雲)의 순서로 놓은 것인데, 주자가례에는 과일, 과일로 과일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예절책을 쓰는 사람들이 가문에서 내려오는 확실한 용어이므로 그낭 썩어 셨든 것이다.> < 과실(果實)은 도학의 용어고, 과일(果日)은 유학의 용어가 된다.> ⑦ 육적, 어적, 계적은 따로따로 담아놓는다. ⑧ 나물도 도라지, 시름치. 고사리를 따로따로 한 접시씩 담아 놓는다. 접시 수가 많을수록 높은 직위의 사람이다. 이것이 인본주의의 생활민족의 특징이다. ⑨ 주자가례에는 두부나 문어는 놓지 않는다. 그것은 운을 일으키는 제수물이기 때문이다 생활민족은 사람다운 도리를 다하는 것이 제사를 지내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추양계효(追養繼孝)라 하여 살아 계실 때와 같이 모셔라하여 조상이 편소 좋아하든 음식을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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