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외출문화(MBC 여성시대 2015. 2.1 방송/ 아직 따끈따끈한 글)
친구들과 실로 오랜만에 사당역에서 12시 30분에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사는 동네 김포에서 서울 사당역까지 12시 30분에 도착하려면 넉넉잡아 김포에서 2 시간 전에 출발해야한다.
경기도민이 된 내가 서울 시내로 나가는 일은 별로 없다.
경조사나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내로 출행하는 것은 번거롭게 생각하는 터다.
그리고 조용한 이동을 좋아 한다.
집 부근에서는 이동할 때는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하며 차안에서 FM 라디오방송이나 클래식을 듣는 편이다.
이번에는 번거롭게 생각하는 시내외출에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게 되니 마음이 답답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10시 반에 김포 사우동에서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만원이다.
버스 속에서는 사람 냄새, 옆 사람 입 냄새가 역해서 코가 막힌다.
길게 눈을 돌려봐도 자리가 없다.
마침 앞자리에 빈자리가 하나 있어서 꾸겨져 앉았다.
꾸겨져 앉는다는 말은 그 자리가 다리를 공중으로 치켜서 앉아야 하는 버스바퀴 윗자리이다.
웅크리고 앉은 내 꼴이 우습다.
일어날까!
거기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사우동에서 전화를 시작해서 고촌까지 7-8분 동안 큰소리로 전화를 했다.
참다가 고촌 정류장에서 드디어 일어나 뒤로 가서 섰다.
좀 편하다,
젠장, 거기서도 웬 남자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전화의 폭력에 근 한 시간을 시달려서 전철 2호선 당산역에 도착했다.
사당으로 가는 도중에도 전철 안 여기저기에서 서로 다투어가면서 전화를 해댔다.
조용히 야인 생활에 젖어 사는 내게는 공해나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사당역이다.
근데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서 나처럼 늙어가는 사람들이 두세 명씩 모여서 약속한 다른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종로 3가로 갈 길을 사당역으로 잘못 찾아온 것인지 착각이들 정도로 남녀 실버클럽 멤버들이 모여 있다니 말이다.
30분 정도 미리 도착했기에 지하철에서 노인들을 구경하고, 그들도 나를 구경하며 시선이 서로 엉켜서 서성거렸다.
겨울이라 지하도는 춥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니 만나자는 친구 Y가 햇볕 아래서 10여분을 미리 와서 돌아다녔다고 한다.
지하철 위의 거리나 빵가게나 음식점에도 노인들로 북적였다.
“왜 이렇게 사당역이 변했어?”
“내 말이 그 말이야, 소일거리가 없으니 사당역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들 가는 거야, 말세야”
“일본 여행가면 공원을 뒤덮던 수년전의 노인들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는 구나”
“좋은 것을 따라해야 하는데”
10분을 넘겨서 마지막 친구 L이 왔다.
“신사가 지각을 하다니…….”
“손자가 보채서 달래고 오느라 늦었다.”
“다들 손주들 봐주는 재미로 사는 군”
“하 하 그럼 아기들이 꽃이고 보는 재미가 솔솔 하지! 근데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만나자고 했어, 노인들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만나야 민폐를 안 끼치는 거야“
L이 말했다.
“무슨 …….”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몰려나오지, 노인들이 몰려오지! 식당에 한자리 찾아 앉기가 힘들어, 야튼 가보자구, 늦게 왔으니 내가 낼 태니까.”
L 말이 옳았다.
식당은 모두 만원이고 먹고 싶은 것을 찾아먹으려면 많이 기다려야 했다.
“아이고, 오는 날이 장날이구먼!”
기다리기 싫었다.
“여긴 맨날 그래”
“나이가 들어서 어디를 다니려면 실버문화를 알고 다녀야 해”
Y가 말했다.
“실버문화라니?”
“민폐를 안 끼치고 다녀야하는 몇 가지가 있어.
첫 번째, 직장인들이 모이는 시간을 피하고, 직장인들이 퇴근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두 번째, 버스나 전철에서 대우 받으려 하지 말고 서서 다니고
세 번째, 주변이 전화로 시끄럽더라도 귀 막고 다니고
네 번째, 좁은 공간에서 젊은 여자들 자세히 쳐다보지 말고
다섯 번째, 아무나 붙잡고 내가, 옛날에, 그 시절 하고 잔소리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야“
“허 허 허 눈, 코, 귀, 입 막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군. 무슨 시집살이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 늙는 게 시집살이야! 나이가 들면 조심해야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고 산다구”
“그래서 조물주가 인간은 나이가 들면 눈이 점점 흐릿하게 돼 가고, 귀가 잘 안 들리고, 입안에 혀가 꼬이는 구나.”
“말 된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직장인들이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여기저기서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친구들도 오랜만에 거기에 한 수 거들어서 웃고 떠들었다.
70 노인들끼리만 모이니 20대로 돌아가서 깔깔거렸다.
집으로 돌아 올 때는 나라에서 공짜로 태워주는 전철에 올라 귀에 리시버를 끼고 미안한 마음으로 서서 왔다.
친구들만 아니면 별로 시내로 나들이 가고 싶지 않다.
그놈의 실버외출문화까지 챙겨야 한다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다시 사는 시집살이다.
첫댓글 문화 차이란게 정말 무섭다. 일본인은 남에게 폐끼치지 않을려고 애쓰는 문화란다.
전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떠드는 사람도 없고, 걷다가 어깨를 부디쳐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들이지...
민주화 이력이 짧아서인지 자유만 주장하지 남에게 폐끼쳐도 너무 스스럼없어 하는 나라가 우리문화야!
차차 개선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친구야 !
당연히 고맙습니다.
후보생 시절에 병관이 챙기느라
또 대열 중간에 있어서 내가 못챙겨도
우수한 성적으로 임관하신 후보생님
늘 감사해요 ^^*
친구분이 말씀한 실버문화 우리가 잘 익혀 따라해야 할 사항이라 생각합니다.
대중교통 안에서 핸드폰 소리는 정말 짜증나지요. 내가 왜 그걸 들어야하는지? 그래서 저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피합니다.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동을 거쳐 전세계를
주름 잡으며 나라의 경제를 일구워 낸
똑똑한 임경호 후보생 말입니다 .
이명수님께 대하여 필승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