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군북(郡北) 천제봉(고문서 및 고지도 ; 天帝峯: 현지도 ; 天祭峰, 233m) 산하(山下) 유현(柳峴) 평촌(平村) 큰등골(大登谷) 선산 벌초를 했다. 옛날 1970년대까지는 농경시대인지라 매년 어른들이 음력 7월 그믐(음력으로 달의 마지막 날인 29일 또는 30일을 뜻한다) 전에는 벌초를 마쳤다. 음력 8.15 한가위 추석(秋夕)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돌본다는 벌초(伐草)와 성묘(省墓)의 오랜 풍습이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음력 7월 그믐(올해는 음력 7.29, 양력 9.19)에서 1~2주 당겨서 토요일에 시행했는 데, 올해는 토, 일은 고속도로나 지방도로 정체도 심하여 비켜서 평일인 오늘 9.18(월)에 무사히 마쳤다.
서울 정창영 형님, 유현 정태영 동생(예초기 추가 1대 지참), 인천 정병권 장조카, 김해 장유 나, 예초기 기능 일꾼 마영한 지인(김해 장유 거주) 투입으로 5인이 아침 7시 경부터 작업 개시, 오후 2시경 완료 후 장지리 기사뷔페식당에서 점심 식사(평촌 이을순 관동 형수, 인천 최귀옥 질부도 합류, 평촌 조정자 계림 형수는 2박3일 교회수련회 일정관계로 이번에는 불참)를 했다.
선산에서 저 멀리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먼산 봉우리는 진주(舊, 진양) 접경의 군북면 원북리와 하림리에 걸쳐 있는 괘방산(掛傍山, 이칭 ; 작은방어산:小防禦山, 하림방어산:下林防禦山, 함주지 ; 어속현:於束峴: 현 어시재 지칭, 457m)이다. 괘방산에서 북쪽방향(우리 묘지에서는 우측 방향)으로 길게 주산(主山)인 방어산(防禦山, 530m)으로 이어진다. 대, 소(大, 小) 방어산 사이의 방어산재(고개)골에 마애사(摩崖寺)가 있고, 방어산 중턱에는 보물 제159호인 마애삼존불(이칭 ; 약사삼존불,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이 있다.
유현 큰등골 선산에는 양증조부모(生 증조부의 弟), 조부, 부모, 윗분 형제 등 3대의 묘지이다. 참가하지 못한 젊은 후손 세대 《초계정씨 유은후손종중:草溪鄭氏 柳隱後孫宗中》에 공지하는 의미에서, 평촌 큰등골 선산 벌초와 성묘 사진을 올린다.
註 ; 천제봉(天帝峯) 고지명(古地名) 찾기로 조선 인조 때 인물인 지지헌(止知軒) 홍석과(洪碩果) 묘지(墓地) 유현산도(柳峴山圖) 사진을 말미에 첨부한다.
註 ; 조선 인조, 효종, 현종 때의 학자인 남양홍씨 홍석과(洪碩果), 자(子)는 자인(子仁), 호(號)는 지지헌(止知軒)의 묘(墓) 유현산도(柳峴山圖)에도 천제봉(天帝峯)으로 표기되고, 《함안의 지명유래 : 咸安의 地名由來》집에도 천제봉(天帝峯 : 233m)으로 나온다. 홍석과의 《지지헌(止知軒) 홍선생(洪先生) 유적비(遺蹟碑)》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학자로 『취정록(就正錄)』과『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등을 편찬한 조임도(趙任道), 호 간송당(澗松堂), 1585(선조 18)~1664(현종 5)의 문하로 사사 했으나 스승처럼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조임도(趙任道)가 은거, 수학한 곳인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용화산(龍華山) 기슭에 1633년(인조 11)에 건립한 조선시대 누정인 합강정(合江亭)이 있다. 홍석과의 후손되는 일족(一族)은 군북면 유현리 덕재마을에 1960년대에 10여 가구가 살았고, 함안면 파수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평암리 등에 산거한다. 함안면 파수리는 조선시대 곶감산지로 유명하여 나라에 진상(進上)하기도 했다고 한다.
벌초 성묘일 ; 2017.9.18(월)
첫댓글 2017.9.21 자,
'창원박물연' 이정식님의 그룹카톡 댓글입니다.
☆☆☆
'당연히 할일을 하셨지만
고생하신 만큼 보람과 기쁨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창원박물연' 이정식님의 격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KBS 아침 프로 '인간극장'처럼 살아가는 소시민 민초의 사소한 일상사 글입니다.
선산의 벌초 및 성묘 내용은 간략히 기술하고, 천제봉(天帝峯, 현지도는 天祭峰)의 고지명(古地名) 찾기 사료와, 저 멀리 바라보이는 안산(案山: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인 괘방산(掛傍山)을 소개하여 후손들이 선산 주변의 현대적인 산세 지리를 알고 익히도록 한 것입니다.
2017.9.18 자,
서울 정희태 조카의 '민초나라' 밴드 댓글입니다.
☆☆☆
'깨끗하게 벌초가 되었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작은 인원으로 일을 반나절에 끝낸 것은 예초기 기능 일꾼 마영한씨를 용역으로 투입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1명 용역을 투입할 예정이다.
땀은 좀 흘렸지만 벌초를 깔금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관심을 갖고 밴드를 읽어준 서울 서경대 정희태 교수 조카에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