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들은 잘 보내셨는지요? 지난 글들이 숫자를 나열한 교과서 같아서 오늘부터는 좀 재미있는,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희망사항) 글들을 올리려 노력해 보겠읍니다. '칼럼'이라는 이름에는 좀 안맞을지도 모르겠읍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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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연구소 뒷편으로는 작은 숲이 있다. 인터넷과 친구하여 점심을 먹고 나면 언제나 산책하는 숲이다. 이 숲 안에는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이 있고 겨울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길이 사람을 기다린다. 눈이 쌓인 날 처음으로 발자욱을 찍으려고 서둘러 급히 길을 나서면 벌써 다람쥐들이 어지러운 행보를 남긴 날도 있고 사슴이 저만치에서 입김을 내기도 하는 곳이다. 지금은 깊은 그림자가 드리우던 초록을 내리고 단풍으로 막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조깅족, 산책족 해서 인적도 제법 있는 이곳에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지 참 신비스럽다. 다람쥐는 붓두막의 생쥐들처럼 흔하고 겁먹은 토끼와 우아한 사슴들도 무리 지어 다닌다. 꼬리가 긴 여우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다. 급기야는 광견병이 든 것 같은 오소리가 돌아다니니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붙은 적도 있었으며, 아침부터 경찰차 싸이렌이 요란해서 물어보았더니, 누가 주차장 옆으로 지나가는 곰을 보고 신고했단다. 애그 무시라!
이 숲은 사람이 좀 드문 때면 나의 노래방 연습장이 되기도 하고 어릴 적 추억을 꺼내 싱긋이 웃게도 해주는, 말하자면 '마음의 앨범'이요, '영혼의 쉼터'인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숲을 산책하다가 정말 괴상한 놈을 만난다. 좁은 자갈길 옆에 꼼짝 않고 있는 거북이를 본 것이다. 크기는 어른 큰 손바닥만 한 녀석인데, 등의 무늬가 고상하고 거의 반구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서 얄팍한 자라와는 격이 다른 녀석이였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몇 번 발로 차 건드려 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잠시 갈등하다가 조심스럽게 들어서 갑옷 안쪽, 움추린 녀석의 무심한 얼굴과 눈을 맞춘다. 등거죽과 다리 사이에 낀 강아지 풀을 빼주고는 길에서 훨씬 들어간 곳 시냇물 가에 두고 또 멀리서 한참 지켜본다. 녀석은 역시 반응이 없다. 이제는 괜한 상상을 해본다. '길한 동물이니 길조일게야! 뭐 좋은 일이 있을려나?' 꿈은 개꿈이어도 해몽이 좋으면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오후 내내 기분이 좋다. 퇴근 후에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애들도 좋아할 터인데 집으로 가져오지 그랬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제가 애들이 애완 동물을 하나 키우자고 성화를 부렸던 기억이 난다. 'We want a puppy!'라고 쓴 피켓을 들고 집안을 돌며 데모를 했던 적이 있었다. '참나, TV를 보고 별 걸 다 배우네!' 애완견은 가족이다. 엄청난 책임감과 죽었을 때의 상실감을 어쩔래? 등등 을 내세워 끝까지 결제를 미룬 것이 얼마 전이다. 다음날, 거북이를 입양할 목적으로 그 숲으로 황급히 차를 몬다. '아직 그 자리에 있을려나?' 초조한 마음에 차를 세우기 바쁘게 뛰어간다. 조심스럽게 시냇가를 본다. 하지만 진흙 바닥에 육각형의 자국만 남았다! 인근을 샅샅이 뒤지지만 녀석의 흔적이라곤 없다. 이런 제길!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맞다! 느린 걸음이지만 하루동안 부지런히 걸었다면 벌써 1킬로미터는 갔을 것이다. 녀석은 그 시냇가 저쪽 조그만 터널을 통해 인적이 쉽게 닿기 어려운 피안의 세상으로 가버렸을까? 그곳에 갔다면 이쪽에서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는 그 녀석을 만날 수 없을까?
인간은 육식을 한다. 몸에 좋다면, 특히 정력에 좋다면 남아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때, 즉 신과의 계율을 어기지 않았을 때 인간은 동물과 친구였다. 낙원에서 추방된 후 인간은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었다. 폭군으로 변하여 정글을 자기 마음대로 요리했다. 그래서 더 포만감과 행복을 느껴야 하지만 이제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한쪽에서 굶어죽을 때 다른 쪽에서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세상이다. 나도 육식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수족과 장기가 얼마나 인간과 비슷한 지를 가끔 생각하게 될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인간들끼리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동물사랑을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가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면 하등동물을 생각하는 마음은, 바쁠 때 하늘의 별을 한번 우러러보는 것 만큼이나 마음의 지평을 넓히는 일일지 모른다. '새대가리'라는 욕의 주인공 새들은 아마 우리를 보고 '저 인간들 땅에 바짝 붙어서 한평생 아둥바둥 싸우다 죽는 놈들이니 그냥 내버려 둬!'라고 지네들끼리 종알거릴지 모른다.
오늘도 산책길에 서서 일과처럼 거북이를 불러본다. 혹시 한국말을 모를까봐 발음에 신경 써가며 'Hey Turtle!'이라고도 해봤지만, 녀석은 정말 다른 곳으로 떠났는지 대답이 없다. 아니면 욕심에 찌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안가리는 잔인한 인간들, 너와는 놀기 싫다고 어느 구석에서 모르는 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04년 10월 초하루를 몇 분 앞두고,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전창훈 씀
첫댓글 주변에 자연을 함께할 수 있는 건 큰 행복이지요. 'Hey Turtle!'하며 산책하시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재미있고, 많이 생각케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