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가은장터
문경시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가은읍은 7~80년대 은성광업소가 활발하게 가동될 즈음에는 인구가 한량없던 고을이었습니다. 은성광업소 직원들만 해도 6천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합니다. 당시 가은초등학교는 세계적인 규모의 학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초등학교가 대구 신암초등학교였고, 그 다음이 가은초등이었다고 합니다. 70명씩 8개 반이었으니 학생수가 3천 명에 이르는 굉장한 학교였습니다. 이만큼 주민들이 많다보니 가은장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산이 문을 닫고 순수 농촌으로 변하면서 생계를 위하여 사람들의 이농 현상이 계속되다 보니, 인구가 급격히 줄어 지금은 장터마저 초라하게 변하였습니다.
가은역에서 파출소 삼거리 중간의 버스터미널 근처의 장터에 들어서니 커다란 렌즈를 끼운 사진작가들이 서너 분 계셨습니다. 이분들이 어떤 광경을 촬영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벌써 이 가은장이 돌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수백 년 내려운 이 장터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이십 년만 지나가더라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정경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처음 만난 장꾼은 찹쌀을 파는 노부부였습니다. 찹쌀을 사러 나온 할머니와의 대화를 잠시 엿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은은 ‘~여.’ 문화권이라 어미가 ‘~여’로 끝납니다.
“찹쌀 요새 얼마 해여?”
“사천 원! 우리가 농사지은 거라 싸게 줄게, 얼릉 사소.”
“쌀이 남아 자꾸 값이 니리는데, 와 이리 비싸게 받노?” 할아버지가 거듭니다.
“모리는 소리 하지 마소. 올해 농사가 피농이라 앞으로 자꾸 오를팅께 얼릉 사소.”
“그라만 그랠까? 한 되만 주소. 고봉으로 담아 봐여.”
찹쌀을 가지고 나온 노인은 고봉으로 한 되를 되어 비닐 봉지에 부어넣고는 두 움큼이나 더 퍼서 넣어주었습니다. 사 가시는 할머니도 그제사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입니다. 거래 과정이 쌀값이 자꾸 떨어진다는 매수인의 논리를 올해 흉년 들었다는 논리로 금방 뒤집어엎은 노부부의 승리였지만 사 가는 분도 아주 기분 좋은 거래였습니다.
다음은 마늘을 반 접 사가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분을 보고 말을 거는 할머니는 이웃 동네 동무인가 봅니다.
“자네 장에 나왔는가? 뭘 좀 샀는가베?”
“응 그래, 자네도 나왔는가? 마늘 반 접 샀제. 혼자 살아도 김장은 해야잖는가?”
먼저 물어본 할머니는 이 할머니의 검은 비닐봉지를 잡아채 열어봅니다.
“이기 반 접이가? 양이 디기 많다. 나는 잘못 샀는갑따. 한 접을 샀는데도 요고밖에 안 되니 말이다.”
“양이 뭔 문제가 되노? 마늘 알이 굵고 질이 좋아야제. 자네 물견이 훨씬 낫구마는.”
이렇게 좀 비싸게 산 듯한 친구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마늘 알이 굵고 좋다고 위로를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금세 흡족한 얼굴이 됩니다. 역시 친한 친구에게서 받는 위로가 가장 안심되는가 봅니다.
공판장 건물 모퉁이에서 온갖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왼쪽 무릎이 관절염인지 조금 절뚝이지만 동작은 재바르십니다. 취급하는 품목이 수십여 가지가 넘습니다. 그런데 대파 당파 시금치 묶음 단을 쉴 새 없이 뒤집습니다. 직접 물어보려다가 참았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할머니가 묻습니다.
“당파 그거 와 이리 자꼬 뒤집노? 기냥 놔두지.”
“그케! 나도 기냥 둘라 하는데, 찬바람이 자꾸 부니 마르지 않으요?”
아하 이제 알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대파나 당파나 시금치를 자꾸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중년 아줌마 한 분이 생강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보고 묻습니다.
“생강은 얼마씩 해요?”
“젤 작은 기 이천 원, 중간 끼 삼천 원, 큰 기 오천 원, 이짝에 큰 건 만 원이여.”
“이천 원짜리 하나 조요.”
“아 좀 마이 사지, 이천 원어치 사다가 머할라꼬?”
“식구가 없으니 많이 사봤자 씰 데가 없어요.”
“아이고 이렇게 팔아봤자 남는 거도 없고, 떠는 값도 안 나오네. 에따 가져가소.”
이러면서 이천 원짜리 바구니를 비닐봉지에 쏟아붓고는 작은 생강 알 두 개를 더 넣어 줍니다. 재래 장터는 이렇듯이 항상 덤이 있어서 사가는 사람도 기분이 좋습니다.
갑자기 먼 곳에서 젊은 장꾼 아줌마가 한분 뛰어옵니다.
“할매, 할매 우벙 남은 거 있능교? 단골이 왔는데 해필 우벙만 떨어져서…….”
“그래? 이거 두 단 남았다. 가주 가거라. 단골한테는 물건 떨주만 안 되제.”
선뜻 우엉 두 단을 내주십니다. 값이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얼마를 달라지도 않는 걸 보니 이 장 저 장을 같이 보고 다니는 같은 장꾼인가 봅니다. 어디 누구에게 가져다 주는지 궁금해서 따라가 보았습니다. 젊은 아줌마는 우엉 두 단을 들고 달려가서는 더 젊은 아줌마에게 전해 줍니다. 그 아줌마는 우엉을 받아 내려 놓고는 농협 공판장으로 들어갑니다. 짐작컨대 식당을 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장을 본 꾸러미들의 양이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찌개와 손두부를 안주로 하여 술판을 벌이는 할아버지들 세 분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심정으로 장터를 떠나왔습니다.
카페글에서 옮긴 글과 사진인데 ...
재미있지~~~
김천장날에도 꼭 이사진처럼 풍경이 비슷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