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문명과 불교 - 현대사회와 불교의 역할
연기사상, 인간성 회복의 열쇠
인류가 직면한 분쟁 해결할 원리로 주목
김용정 교수 (동국대 명예교수 ·철학전공)
지난 20세기에 세계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문중의 하나는 심층심리학 분야이다. 프로이드와 융을 중심으로 일어난 심층심리학은 인간의 잠재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쳐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심층심리학의 영향으로 새로 탄생한
것이 정신분석학과 정신의학이다. 프로이드의 심층심리학이 탄생하기까지는 쇼펜하워, 니체, 도이센 등 일찍이 인도철학과 불교에 눈을 떴던 선배 철학자들의 영향이 컸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를 연구함으로서 심층심리학을 더욱
확대 발전시킨 사람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C.G.융이었다. 융은 1930년 그의 동양학의
벗인 빌헬름의 추도 강연에서 당시의 유럽의 정신적 위기의 원인을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상실에 있다고 보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동양 사상의 내향성, 즉 내면적 정신세계의 신비적 체험을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융은 심리학과 종교라는 저술에서 근원적인 종교체험은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는 물론
이슬람교나 조로아스터교, 기타 인도 내지 중앙아시아에 있는 모든 종교에 있어서 가능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융은 특히 요가의 수행법에 주목하였다.
이분법 한계, 통일적 사유로 전환시켜
인간은 요가의 실천에 의하여 그의 마음속에 흩어져 있는 무질서한 번뇌가 통제되고,
그 배후에 있는 통일적인 집합적 무의식의 세계가 노정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서 그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십육관법(十六觀法)을 들었다. 융 이후 정신분석학의 거두인 에리히 프롬은 선(禪)의 세계적 석학 스즈키 다이쎄쯔에게 선불교를 사사받고 그와 함께 선의 선풍을 일으키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가 20세기에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선불교이다. 이것은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반동 내지 정신적
위기를 극복해보려는 정신문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특히 선사상은 어떠한 종파도 어떠한 주의도 어떠한 패러다임도 초월한 절대적 자유의 사상이요 실천의 종교사상이었기 때문에 모든 세계인으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었다. 서양에서의 선의 확산은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인
존 네이스비트는 현대의 과학기술의 하이테크 시대에 인간성 회복운동으로서의 하이터치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 일례로써 초월적 명상, 요가, 선 등은 매우
하이터치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하이터치한 정신적 지혜가 없이는 인류는 구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미래사회로 갈수록, 다시 말해서 다기능의 컴퓨터 기기들과 나노과학을 비롯한 첨단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더 선불교적인 정신문화가 요구될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불교의 연기사상과 동양사상은 서양의 전통적인 선형적, 인과적, 환원주의적 사유방법의 한계를 자각하여 유기적인 전체론적 사유방법을 도입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특히 20세기 초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의 발견으로 인식론상 홀리즘적 사유방법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 것과도 연관된다. 그것은 주지하는바 현대 문명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극복할 수 있는 생태윤리학적 사유방법의
기틀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불교의 홀리즘적 연기사상이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정신문화가 배제된 현대 과학문명이 계속 이대로 발전해 간다면 앞으로 지구세계가 당면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간성의 몰락과 자연환경 파괴의 문제일 것이다.
암묵리에 주체적 인간은 망각한 채 과학기술 문명과 경제발전만이 인류가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연환경을 살리고 도덕적 인간을 회복한다고 하는 것은 환상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통일적 인식체계인 불교의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조화를 이룩하는 것만이 자연환경을
되살리고 참된 도덕적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루 속히 이분법적 사유방법의 한계를 자각하고 불교의 전체론적 중도사상만이 새로운 21세기를 열어갈 수 있다는 비젼을 강력하게 인류에게 계몽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문제는 현대인들이 주체로서의 존엄한 인격적 자아는 망각하고 대상화된 물건의
완성과 물건의 소유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시장
경제 원칙이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의한 소유에 기초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체적·인격적 인간이 존재하는 한에서 유효하다.
과학 발달할수록 불교 필요성도 커져
인간이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완성에 있다. 어떠한 고도의 과학기술도 어떠한
고가의 상품도 그것은 수단일 뿐 목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불교가 강력하게 제시해야 할 비전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삶의 목적이 인간 완성에 있다는 점을 보다 설득력 있게 계몽하는 일이다. 이것은 결코 과학문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존 네이스비트의 말대로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조화를 이룰 수 있으려면 먼저 지혜 있는 주체적 인간이 있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기술의 응용범위가 증대되고 있고,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정보기술의 구조와 다원화 된 현대사회에서 기존의 양자택일적인 이분법의 사고방법으로는 정당한 판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복잡다의한 사회현상을 전체적으로 내다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혜안과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지각, 포괄하면서 홀리즘적 사고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 통일적 사유방법이 불교의 연기사상 내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분쟁과 충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이
사유방법의 전환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2002. 5. 15 / 6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