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지(李釋之) : 영양군(永陽君) 6세손(六世孫)으로, 위위시(衛尉侍) 판사(判事) 휘 송현(松賢) 할아버지의 손자이시고, 경덕재(經德齋)출신이며, 증판도판서(版圖判書) 휘 흡(洽) 할아버지의 아들이시다. 남곡공파(南谷公派) 파조(派祖)가 되시며, 호는 남곡(南谷),
1341년(충혜왕11,辛巳)에 목은(牧隱) 이색(李穡)등과 함께 진사에 급제하시고,
1347년(충목왕3,丁亥)에 문과에 급제하셨다.
1357년(공민왕6년) 할아버지께서 정언(正言)이 되셨을 때 전녹생(田祿生)․정추(鄭樞)․ 이색(李穡)등과 더불어 염철별감(鹽鐵別監)의 폐지에 관하여 논하시다가 재상(권귀(權貴))에게 미움을 받아 밀성(密城:현 密陽)의 외직으로 옮겨졌었고, 고려말에는 보문각 제학(提學:종2품) 판도판서의 벼슬을 지내셨다.
고려가 망하고 이태조가 등극한 뒤 할아버지의 인품을 아껴서 여러 차례로 벼슬을 내리려 하였으나 할아버지는 끝까지 이에 응하지 않으시고,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한 절의(節義)의 표상인 두문충현(杜門忠賢) 72人중의 한 분이시다. 따라서, 벼슬에서 물러나 용인남곡(龍仁南谷)에 은둔하시며 충절(忠節)을 지키신 분으로, 충정(忠貞)이란 시호(諡號)를 받으셨다. 영천읍 쌍계동 구인사(求仁祠)에 서파 안유(西坡案柔) 할아버지, 쌍계 영근(雙溪榮根) 할아버지와 함께 배향되셨다.(영양군 남곡공파)
【참고문헌】부조현록(不朝峴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여조충렬록(麗朝忠 烈錄)용인읍지, 광주읍지, 남곡기(南谷記)
첫댓글 남곡 할배께서는 출사하지 않으셔도 자손들의출사는 막지 않으셨는것으로 압니다. 그후 서파공께서 영천 서파로 가시어 낙향하여 서파의 진출이 약해전 것아닐까합니다. 그렇게 보면 그래도 서울 일대에 근거를 두신 집안의 후손들이 등용잘 된것 같아요. 그러나 또 큰 인물은 시골에서 배출되니 역사의 아이러니 ...
서파공 후손 문중산은 없는가요 제가 모르고 있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