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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소학) 第六 善行(선행)2
曹爽從弟文叔妻(조상종제문숙처) : <조상>의 종제 문숙의 아내는
譙郡夏侯文寧之女(초군하후문녕지녀) : 초군하후 문녕의 딸이다
名令女(명영녀) : 이름은 영녀이다
文叔蚤死(문숙조사) : 문숙이 일직 죽으니
服闋(복결) : 복상을 마치고
自以年少無子(자이년소무자) : 자신이 나이가 젊고 자식이 없으니
恐家必嫁己(공가필가기) : 아마 친가에서 반드시 자기를 시집보낼 것이다 하여
乃斷髮爲信(내단발위신) : 이에 머리털을 잘라서 맹세하였다
其後家果欲嫁之(기후가과욕가지) : 그 뒤에 친가에서 과연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令女聞(영녀문) : 영녀가 듣고서
卽復以刀截兩耳(즉부이도절양이) : 곧 다시 칼로 두 귀를 베어 버리고
居止常依爽(거지상의상) : 생활하는 것을 항상 조상에게 의지하니
及爽被誅(급상피주) : 조상이 반역의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어
曹氏盡死(조씨진사) : 조씨의 일문이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令女叔父上書(영녀숙부상서) : 영녀의 숙부가 조정에 상서하여
與曹氏絶婚(여조씨절혼) : 조씨와의 혼인 관계를 끊고
彊迎令女歸(강영영녀귀) : 강제로 영녀를 친정으로 맞아 돌아오게 했다
時文寧爲梁相一作州(시문령위량상일작주) : 그때 문녕이 양주의 관원으로 있었는데
憐其少執義(련기소집의) : 그의 젊은 나이에 수절하는 것을 가엾게 여기고
又曹氏無遺類(우조씨무유류) : 또 조씨는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冀其意阻(기기의조) : 그의 수절하는 마음이 그치기를 바라면서
乃徵使人風之(내징사인풍지) : 이에 은미하게 사람을 시켜서 그의 마음을 움직여보게 하였다
令女嘆且泣曰(영녀탄차읍왈) : 영녀가 탄식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吾亦惟之(오역유지) : "나도 또한 생각하여 보니
許之是也(허지시야) : 허락하는 것이 옳겠다."고 했다
家以爲信(가이위신) : 집안에서는 이로써 믿고서
防之少懈(방지소해) : 감시하는 것을 조금 게을리 하였는데
令女於是竊入寢室(영녀어시절입침실) : 영녀가 이에 몰래 침실로 들어가
以刀斷鼻(이도단비) : 칼로 자기의 코를 베어 버리고
蒙席而臥(몽석이와) :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
其母呼與語(기모호여어) : 그의 어머니가 부르면서 말을 하였으나
不應(불응) : 대답이 없거늘
發被視之(발피시지) : 이불을 열고 보니
血流滿床席(혈류만상석) : 피가 흘러 침상과 자리에 가득하거늘
擧家驚惶(거가경황) : 온 집안이 놀라서
往視之(왕시지) : 가보고
莫不酸鼻(막불산비) :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或謂之曰(혹위지왈) :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人生世間(인생세간) : "사람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如輕塵棲弱草耳(여경진서약초이) : 가벼운 먼지가 약한 불에 붙은 것 같을 뿐인데
何辛苦乃爾(하신고내이) : 어찌 그렇게 고생을 하는가
且夫家夷滅已盡(차부가이멸이진) : 또 남편의 집은 이미 멸망하여 다 죽고 없으니
守此欲誰爲哉(수차욕수위재) : 이는 누구를 위하여 수절을 하려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令女曰(영녀왈) : 영녀가 말하기를
聞仁者(문인자) : "내가 들으니 어진 사람은
不以盛衰改節(불이성쇠개절) : 성쇠로써 절개를 고치지 않고
義者(의자) : 의로운 사람은
不以存亡易心(불이존망이심) : 존망으로써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曹氏全盛之時(조씨전성지시) : 조씨가 한창 왕성할 때라도
尙欲保終(상욕보종) : 오리려 끝까지 지조를 지키려고 하였는데
况今衰亡(황금쇠망) : 하물며 지금 그들이 쇠망하였으니
何忍棄之(하인기지) : 어찌 차마 버릴 수 있겠는가
禽獸之行(금수지행) : 금수와 같은 행위를
吾豈爲乎(오기위호) : 내가 어찌 하겠는가."고 했다
唐鄭義宗妻(당정의종처) : 당나라의 정의종의 처
盧氏略涉書史(노씨약섭서사) : 노씨는 경서와 사기를 대략 섭렵하고
事舅姑(사구고) :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김에
甚得婦道(심득부도) : 매우 며느리의 도리를 얻었다
嘗夜有强盜數十(상야유강도수십) : 일찍이 밤에 강도 수십 명이
持杖鼓噪(지장고조) : 몽둥이를 가지고 기세를 올려 떠들썩하면서
踰垣而入(유원이입) :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家人悉奔(가인실분서) : 집안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숨고
唯有姑自在室(유유고자재실) : 오직 시어머니만이 스스로 집에 남아 있는데
盧冒白刃(노모백인) : 노씨가 칼날을 무릅쓰고
往至姑側(왕지고측) : 다가가 시어머니 곁에 이르러
爲賊捶擊(위적추격) : 도둑에게 매를 맞아
幾死(기사) : 거의 죽게 되었다
賊去後家人問(적거후가인문) : 도둑이 물러간 뒤에 집안 사람들이 묻기를
何獨不懼(하독불구) : "어찌 혼자 겁내지 않았는가."하니
盧氏曰(노씨왈) : 노씨가 말하기를
人所以異於禽獸者(인소이이어금수자) : "사람이 금수와 다른 바는
以其有仁義也(이기유인의야) : 사람에게 인의가 있기 때문이다
隣里有急(인리유급) : 이웃에 급한 일이 있으면
尙相赴救(상상부구) : 오히려 서로 달려가 구해야 할 것인데
况在於姑(황재어고) : 하물며 시어머니가 계시는데
而可委棄乎(이가위기호) : 내 버려 둘 수 있겠는가
若萬一危禍(약만일위화) : 행여 만의 하나의 위험한 재앙이라도
豈宜獨生(기의독생) : 어찌 마땅히 나만이 홀로 사는 것이 마땅할까."라고 했다
唐奉天竇氏二女(당봉천두씨이녀) : 당나라 봉천 두씨의 두 딸은
生長草野(생장초야) : 시골에서 생장하였으나
幼有志操(유유지조) : 어릴 때부터 지조가 있었다
永泰中群盜數千人(영태중군도수천인) : 영태 연간에 떼도둑 수천 명이
剽掠其村落(표략기촌락) : 그 촌락을 협박하여 빼앗았는데
二女皆有容色(이녀개유용색) : 두 딸은 다 얼굴이 예뻤는데
長者年十九(장자년십구) : 맏딸은 나이가 열아홉 살이고
幼者年十六(유자년십육) : 차녀는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다
匿巖穴間(익암혈간) : 바위 틈에 숨어 있으니
曳出之(예출지) : 도둑이 끌어내어
驅迫以前(구박이전) : 몰아가 앞세우고 가다가
臨壑谷深數百尺(임학곡심수백척) : 계곡의 깊이가 수백 척이나 되는 곳에 이르러
其姊先曰(기자선왈) : 그 중 맏딸이 먼저 말하기를
吾寧就死(오녕취사) : "내 차라리 죽음에 나갈지언정
義不受辱(의불수욕) : 의리에 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 하고
卽投崖下而死(즉투애하이사) : 곧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죽으니
盜方驚駭(도방경해) : 도둑들이 바야흐로 놀라고 있었는데
其妹繼之自投(기매계지자투) : 그의 둘째 동생이 계속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
折足破面流血(절족파면유혈) : 발이 부러지고 얼굴이 깨어져 피가 흐러
群盜乃捨之而去(군도내사지이거) : 도둑들이 드디어 버리고 갔다고 한다
京兆尹第五琦(경조윤제오기) : 경조윤 제오기가
嘉其貞烈(가기정렬) : 그들의 정렬을 가상히 여겨
奏之(주지) : 이것을 조정에 아뢰었다
詔旌表其門閭(조정표기문려) : 임금이 조서를 내려 그 동네의 거리에 정문을 세워 표상을 하고
永蠲其家丁役(영견기가정역) : 영구히 그 집의 부역을 면제했다
穆肜少孤(목융소고) : <목영>이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兄弟四人(형제사인) : 형제 4인은
皆同財業(개동재업) : 재산과 살림을 함께 했다가
及各取妻(급각취처) : 각각 아내를 맞이한 뒤에는
諸婦遂求分異(제부수구분이) : 여러 부인들이 드디어 재산을 나누고 살림을 따로 하기를 요구하고
又數有鬪爭之言(우삭유투쟁지언) : 또 자주 싸우고 다투는 말이 있어
肜深懷忿嘆(융심회분탄) : 목용이 깊이 분하고 한탄스러움을 품고서
乃掩戶自撾曰(내엄호자과왈) : 드디어 문을 달고 스스로 자신을 매질하여 말하기를
穆肜汝修身謹行(목융여수신근행) : "목용아 네가 몸을 닦고 행동을 삼가여
學聖人之法(학성인지법) : 성인의 법을 배우는 것은
將以齊整風俗(장이제정풍속) : 장차 나라의 풍속을 정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奈何不能正其家乎(내하불능정기가호) : 어째서 제 집안도 바로잡을 수 없는가."라고 하였다
弟及諸婦聞之(제급제부문지) : 아우와 여러 부인들이 듣고
悉叩頭謝罪(실고두사죄) :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여
遂更爲敦睦之行(수경위돈목지행) : 마침내 돈독하고 화목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蘇瓊除南淸河太守(소경제남청하태수) : <소경>이 남청하 태수가 되었는데
有百姓乙普明兄弟爭田(유백성을보명형제쟁전) :
관내의 백성에 을보명의 형제가 있어 형제간에 전지를 가지고 다투어
積年不斷(적년불단) : 여러 해를 소송이 끊이지 않아
各相援據(각상원거) : 서로 증인이 되었으니
乃至百人(내지백인) : 백 여 명에 이르렀다
瓊召普明兄弟(경소보명형제) : 소경이 보명 형제를 불러서
諭之曰(유지왈) : 타일러 말하기를
天下難得者兄弟(천하난득자형제) : "하늘 아래서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요
易求者田地(이구자전지) : 구하기 쉬운 것이 전지이다
假令得田地(가령득전지) : 설령 전지를 얻었다하더라도
失兄弟心(실형제심) : 형제의 마음을 잃는다면
如何(여하) : 어떻겠는가."라고 하고
因而下淚(인이하루) : 그 일로 눈물을 흘렸는데
諸證人莫不灑泣(제증인막불쇄읍) : 여러 증인이 눈물을 뿌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普明兄弟叩頭(보명형제고두) : 보명 형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乞外更思(걸외갱사) : 밖에 나가 다시 생각하겠다고 빌면서
分異十年(분이십년) : 분가하여 따로 산지 십 년만에
遂還同住(수환동주) : 마침내 도로 같이 살았다고 한다
王祥弟覽母朱氏(왕상제람모주씨) : <왕상>의 아우 남의 어머니 주씨가
遇祥無道(우상무도) : 왕상을 대우하는 것이 무도하였는데
覽年數歲(람년수세) : 남이 나이 두 살 때에
見祥被楚撻(견상피초달) : 상이 매맞는 것을 보고
輒涕泣抱持(첩체읍포지) : 문득 껴안고 울었다
至于成童(지우성동) : 15세 이상의 아이에 이르러서는
每諫其母(매간기모) : 늘 자기의 어머니에게 간언하니
其母少止凶虐(기모소지흉학) : 그 어머니가 조금 흉학함을 그쳤다
朱屢以非理使祥(주루이비리사상) : 주씨가 자주 무리한 일로써 왕상을 시키면
覽與祥俱(람여상구) : 남이 왕상과 더불어 함께 하고
又虐使祥妻(우학사상처) : 또 왕상의 아내를 학대하여 부리면
覽妻亦趨而共之(람처역추이공지) : 남의 아내가 도한 달려가서 함께 하니
朱患之(주환지) : 주씨가 그것을 근심하여
乃止(내지) : 곧 그쳤다고 한다
晉右僕射鄧攸永嘉末沒于石勒(진우복사등유영가말몰우석륵) :
진나라 상서성 차관 <등유>가 영가 말기에 <석륵>에게 포로가 되어
過泗水(과사수) : 사수를 지나갔는데
攸以牛馬負妻子而逃(유이우마부처자이도) : 등유가 우마로써 처자를 업고 도망하다가
又遇賊(우우적) : 또 도둑을 만나서
掠其牛馬(략기우마) : 그 소와 말을 약탈당하고
步走(보주) : 걸어서 도주하는데
擔其兒及其弟子綏(담기아급기제자수) : 그의 아이와 그의 아우의 아들 <수>를 짊어졌었다
度不能全(탁불능전) : 두 아이를 보전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乃謂其妻曰(내위기처왈) : 드디어 그의 아내에게 타일러 말하기를
吾弟早亡(오제조망) : "내 아우가 일찍 죽고
唯有一息(유유일식) : 오직 자식 하나가 있을 뿐이니
理不可絶(이불가절) : 도리상 후사를 끊을 수 없소
止應自棄我兒耳(지응자기아아이) : 다만 마땅히 스스로 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소
幸而得存(행이득존) : 다행히 생존하게 되면
我後當有子(아후당유자) : 우리는 후에 마땅히 자식이 있을 것이오."라고 하니
妻泣而從之(처읍이종지) : 아내가 울면서 따르니
乃棄其子而去之(내기기자이거지) : 드디어 그 자식을 버리고 가더니
卒以無嗣(졸이무사) : 끝내 이로써 후사가 없었다
時人義而哀之(시인의이애지) : 그때 사람들은 그를 의롭게 여기고 가엾게 여겨서
爲之語曰(위지어왈) : 그를 위하여 말하기를
天道無知(천도무지) : "천도가 아는 것이 없어
使鄧伯道無兒(사등백도무아) : 등백도로 하여금 자식이 없게 하였다."고 했다
弟子綏服攸喪三年(제자수복유상삼년) : 아우의 아들 수가 유의 상을 아버지의 상과 같이 삼 년을 복상하였다
晉咸寧中大疫(진함녕중대역) : 진나라 함녕 중에 크게 역질이 돌더니
庾袞二兄俱亡(유곤이형구망) : <유곤>의 두 형제가 함께 죽고
次兄毗復危殆(차형비복위태) : 그 다음 형 <비>가 다시 위태하여
癘氣方熾(려기방치) : 전염병의 기세가 한창 치열하거늘
父母諸弟皆出次于外(부모제제개출차우외) : 부모와 여러 아우가 다 집에서 나가 밖에서 거쳐하였는데
袞獨留不去(곤독유불거) : 곤이 홀로 머무르고 나가지 않거늘
諸父兄强之(제부형강지) : 여러 부형들이 나가라고 강권하였는데
乃曰(내왈) : 이에 말하기를
袞性不畏病(곤성불외병) : "곤이 천성이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遂親自扶持(수친자부지) : 드디어 친히 환자를 붙들어 간호하여
晝夜不眠(주야불면) : 밤낮으로 자기 않으며
其間復無柩(기간복무구) : 그 사이에 다시 두 형의 관을 어루만지며
哀臨不輟(애임불철) :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如此十有餘旬(여차십유여순) : 이와 같이 하기를 십여순이나 되어서
疫勢旣歇(역세기헐) : 전염병의 기세가 이미 그쳤다
家人乃反(가인내반) : 집사람들이 드디어 돌아오니
毗病得差(비병득차) : 비의 병이 차도가 있게 되고
袞亦無恙(곤역무양) : 곤도 역시 이상이 없었다
父老咸曰(부노함왈) : 부로들이 모두 말하기를
異哉(이재) : "기이하다
此子(차자) : 이 아이는
守人所不能守(수인소불능수) : 다른 사람이 지킬 수 없는 바를 지키며
行人所不能行(행인소불능행) : 다른 사람이 행할 수 없는 바를 행하니
歲寒(세한) : 해가 추워진 연후에야
然後知松柏之後凋(연후지송백지후조) :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잎이 뒤에 지는 것을 안다고 하더니
始知疫癘之不能相染也(시지역려지불능상염야) : 비로소 역질이 서로 전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楊播家世純厚(양파가세순후) : <양파>의 집안은 대대로 순후하여
並敦義讓(병돈의양) : 모두 예의와 겸양을 두터이 하여
昆季相事(곤계상사) : 형제가 서로 섬기기를
有如父子(유여부자) :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 같이 했다
椿津恭謙(춘진공겸) : 춘과 진이 온공하고 겸손하여
兄弟旦則聚於廳堂(형제단칙취어청당) : 형제가 아침이 되면 대청마루에 모여
終日相對(종일상대) : 온 종일 서로 마주 대하여
未嘗入內(미상입내) : 일찍이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有一美味(유일미미) : 한 가지 맛좋은 것이 있으면
不集不食(불집불식) : 형제가 같이 보이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廳堂間往往幃幔隔障(청당간왕왕위만격장) : 대청마루 사이에 가끔 장막으로 막아
爲寢息之所(위침식지소) : 잠자고 쉬는 곳으로 만들어
時就休偃(시취휴언) : 때때로 나아가 쉬고 즐기고
還共談笑(환공담소) : 돌아와 함께 말하고 웃었다
椿年老(춘연노) : 춘이 늙어서
曾他處醉歸(증타처취귀) : 일찍이 다른 곳에서 술에 취하여 돌아오면
津扶持還室(진부지환실) : 전이 붙들고 부축하여 방에 돌아와서 쉬게 한 후에
假寢閤前(가침합전) : 자신은 방문 앞에서 수잠을 자면서
承候安否(승후안부) : 형의 안부를 살폈다
椿津年過六十(춘진년과육십) : 춘과 진이 나이 60세가 넘어서
並登台鼎(병등태정) : 모두 삼공의 지위에 올랐지만
而津常旦莫參問(이진상단막참문) : 진이 항상 아침 저녁으로 뵙고 문안하면
子姪羅列階下(자질나열계하) : 자질들이 섬돌 아래에 벌려 섰는데
椿不命坐(춘불명좌) : 춘이 앉으라고 명령이 없으면
津不敢坐(진불감좌) : 진이 감히 앉지 않았다
椿每近出(춘매근출) : 춘이 항상 가까운 곳에 외출하여
或日斜不至(혹일사부지) : 혹 해가 기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津不先飯(진불선반) : 진이 먼저 밥을 먹지 않으면서
椿還然後共食(춘환연후공식) : 춘이 돌아온 연후에 함께 먹었다
食則津親授匙箸(식즉진친수시저) : 밥을 먹을 때에는 진이 친히 수저를 춘에게 울리며
味皆先嘗(미개선상) : 음식의 맛을 다 먼저 맛보고
椿命食然後食(춘명식연후식) : 춘이 먹으라고 명령한 연후에 먹었다
津爲肆州椿在京宅(진위사주춘재경택) : 진이 사주차사가 되었을 때에 춘이 서울의 자택에 있었다
每有四時嘉味(매유사시가미) : 늘 사철의 맛좋은 것이 있을 때에는
輒因使次(첩인사차) : 곧 공용의 사자 편에
附之(부지) : 부쳐 보냈고
若或未寄(약혹미기) : 만일 혹시 아직 부치지 못했으면
不先入口(불선입구) : 그것을 먼저 입에 넣지 않았다
一家之內男女百口(일가지내남녀백구) : 한 집안에 남녀의 식구 수가 백명이나 되었는데
緦服同爨(시복동찬) : 시복지친이 한 집에서 생계를 같이 했지만
庭無間言(정무간언) : 가정에는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隋吏部尙書牛弘弟弼(수이부상서우홍제필) : 수나라 이부상서 <우홍>의 아우 <필>이
好酒而酗(호주이후) : 술을 좋아하여 술주정을 좋아하였다
嘗醉(상취) : 일찍이 술에 취하여
射殺弘駕車牛(사살홍가차우) : 홍의 수레를 끄는 소를 쏘아 죽이었는데
弘還宅(홍환택) : 홍이 집으로 돌아오니
其妻迎謂弘曰(기처영위홍왈) : 그의 아내가 맞이하면서 홍에게 말하기를
叔射殺牛(숙사살우) : "서숙이 소를 쏘아 죽였습니다."고 하였다
弘聞(홍문) : 홀이 듣고
無所怪問(무소괴문) : 괴이하게 여겨 묻는 바 없이
直答曰(직답왈) : 곧 대답하여 말하기를
作脯(작포) : "포를 뜨게 하라."고 했다
坐定(좌정) : 홍이 앉음을 정하거늘
其妻又曰(기처우왈) : 그 아내가 또 말하기를
叔射殺牛(숙사살우) : "시숙이 소를 쏘아 죽였으니
大是異事(대시이사) : 매우 이것은 괴이한 일입니다."고 했다
弘曰(홍왈) : 홍이 말하기를
已知(이지) : '이미 알았소."라고 하고
顔色自若(안색자약) : 얼굴빛이 태연자약하여
讀書不輟(독서불철) : 글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唐英公李勣(당영공이적) : 당나라 영공 <이적>은
貴爲僕射(귀위복야) : 벼슬이 귀하여 복야가 되었으며
其姊病(기자병) : 그의 누님이 병이 들면
必親爲然火煮粥(필친위연화자죽) : 반드시 친히 불을 때서 죽을 끓이더니
火焚其鬚(화분기수) : 불에 그 수염을 태웠다
姊曰(자왈) : 누님이 말하기를
僕妾多矣(복첩다의) : "종과 서녀가 많은데
何爲自若如此(하위자약여차) : 어째서 스스로 이와 같이 한단 말이오."하니
勣曰(적왈) : 적이 말하기를
豈爲無人耶(기위무인야) : "어찌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顧今姊年老(고금자연로) : 지금 돌아보니 누님의 나이 늙었고
勣亦老(적역노) : 적이 또한 늙었으니
雖欲數爲姊煮粥(수욕삭위자자죽) : 비록 자주 누님을 위하여 죽을 쓰고자 해도
復可得乎(복가득호) : 다시 할 수 있겠습니까."고 했다
司馬溫公與其兄伯康(사마온공여기형백강) : 사마온공이 그의 형 백강과 더불어
友愛尤篤(우애우독) : 우애가 더욱 깊더니
伯康年將八十(백강년장팔십) : 백강의 나이 장차 18세가 되었다
公奉之如嚴父(공봉지여엄부) : 사마온공이 그를 받들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여
保之如嬰兒(보지여영아) : 그를 보호하기를 어린애를 보호하듯 하여
每食少頃則問曰(매식소경즉문왈) : 매양 밥먹은 뒤에 조금 있으면 물어 말하기를
得無饑乎(득무기호) : "배고프지 않습니가."하며
天少冷則拊其背曰(천소냉칙부기배왈) : 천기가 조금 차가우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衣得無薄乎(의득무박호) : "옷이 엷지 않습니까."고 했다
近世故家惟晁氏(근세고가유조씨) : 근세의 고가들 중에는 오직 조씨의 집안이
因以道申戒子弟(인이도신계자제) : 이도의 자제들에 대한 거듭 훈계로 인하여
皆有法度(개유법도) : 행동이 다 법도가 있으니
群居相呼(군거상호) : 여러 집을 살면서 서로 부를 때에
外姓尊長(외성존장) : 외성의 존장이라면
必曰(필왈) : 반드시 말하기를
某姓第幾叔若兄(모성제기숙약형) : "무슨 성 제 몇째 아저씨 또는 제 몇째 영이라."라고 하며
諸姑尊姑之夫(제고존고지부) : 여러 고모`존고모의 남편이면
必曰(필왈) : 반드시 말하기를
某姓姑夫某姓尊姑夫(모성고부모성존고부) : "무슨 성 고무부 무슨 성 존고모부라."라고
未嘗敢呼字也(미상감호자야) :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으며
其言父黨交游必曰(기언부당교유필왈) : 그가 아버지의 친구를 말할 때에는 반드시 말하기를
某姓幾丈(모성기장) : "무슨 성 몇째 어른이다."라고 하고
亦未嘗敢呼字也(역미상감호자야) : 또한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아니하니
當時故家舊族(당시고가구족) : 그때의 고가구족이
皆不能若是(개불능약시) : 다 이와 같이 할 수 없었다
包孝肅公尹京時(포효숙공윤경시) : 포효숙공이 서울의 윤으로 있을 때에
民有自言(민유자언) : 한 백성이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以白金百兩(이백금백양) : "은 백량을
寄我者死矣(기아자사의) : 나에게 맡겨온 자가 죽었는데
予其子(여기자) : 그의 아들에게 돌려 주니
不肯受(불긍수) : 즐겨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願召其子(원소기자) : 원컨대 그의 아들을 불러서
予之(여지) : 돌려 주십시오."라고 했다
尹召其子(윤소기자) : 부윤이 그의 아들을 불렀는데
辭曰(사왈) : 사양하여 말하기를
亡父未嘗以白金委人也(망부미상이백금위인야) :
"죽은 아버지가 일찍이 은으로써 남에게 맡긴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兩人相讓久之(양인상양구지) :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기를 오래 하였다
呂滎公聞之曰(여형공문지왈) : 여형공이 이것을 듣고 말하기를
世人喜言無好人三字者(세인희언무호인삼자자) : "세상 사람들이 '무호인'이라는 석 자를 즐겨 말하는 자는
可謂自賊者矣(가위자적자의) :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으나
古人言(고인언) : 옛 사람이 말하기를
人皆可以爲堯舜(인개가이위요순) : '사람이 다 이로써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더니
蓋觀於此而知之(개관어차이지지) : 대개 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고 했다
萬石君石奮歸老于家(만석군석분귀노우가) : 만석군인 <석분>이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있었는데
過宮門關(과궁문관) : 궁궐의 문을 지나면
必下車趨(필하거추) : 반드시 수레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걸어
見路馬(견로마) : 노마를 보고는
必軾焉(필식언) : 반드시 수레의 가로대 나무를 잡고 몸을 굽히어 경의를 표했다
子孫爲小吏來歸謁(자손위소리래귀알) : 자손이 작은관리가 되어 돌아와 뵈면
萬石君必朝服見之(만석군필조복견지) : 만석군은 반드시 조복을 입고서 보았고
不名(불명) :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子孫有過失(자손유과실) : 자손이 과실이 있을 때에는
不誚讓(불초양) : 꾸지지 아니하고
爲便坐(위편좌): 가에 앉아서
對案不食(대안불식) : 밥상을 대하여도 먹지 않으며
然後諸子相責(연후제자상책) : 그런 후에야 여러 자식들이 서로 허물을 꾸짖어서
因長老(인장노) : 족친 중의 나이 많은 어른을 통하여
肉袒(육단) : 웃옷을 소매를 걷고 어깨를 들어내고
固謝罪改之(고사죄개지) : 두 세 번 사죄하고 허물을 고쳐야
乃許(내허) : 비로소 허용했다
子孫勝冠者在側(자손승관자재측) : 자손 중 성년이 갓을 쓴 자가 곁에 있으면
雖燕必冠(수연필관) : 비록 한가해도 반드시 갓을 썼고
申申如也(신신여야) : 화순한 모양으로 있었으나
僮僕訢訢如也(동복흔흔여야) : 하인들에게는 부드럽고 기쁜 모습으로 대하였으되
唯謹(유근) : 오직 조심하였다
上時賜食於家(상시사식어가) : 임금이 때때로 집으로 음식을 내려주시면
必稽首俯伏而食(필계수부복이식) : 반드시 머리를 조아려 엎드려 먹으면서
如在上前(여재상전) : 임금의 앞에 있는 것같이 하며
其執喪哀戚甚(기집상애척심) : 그가 거상할 적에 슬퍼서 서러워하는 것이 심했다
子孫遵敎(자손준교) : 자손들이 그의 가르침을 준수하여
亦如之(역여지) : 또한 그와 같게 하였다
萬石君家以孝謹(만석군가이효근) : 만석군의 집안이 효도하고 삼가는 것으로써
聞乎郡國(문호군국) : 군과 나라에 소문이 났다
雖齊魯諸儒(수제노제유) : 제나라나 노나라의 선배일지라도
質行皆自以爲不及也(질행개자이위불급야) : 질박한 행실은 다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長子建爲郞中令(장자건위랑중령) : 맏아들 <건>은 난중령이 되었고
少子慶爲內史(소자경위내사) : 작은 아들 <경>은 내사가 되었다
建老白首(건노백수) : <건>이 늙어서 백발이 되었으나
萬石君尙無恙(만석군상무양) : 만석군은 오히려 아무 이상이 없었다
每五日洗沐歸謁(매오일세목귀알) : 건이 매양 5일마다의 세목 휴가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뵙고
親入子舍(친입자사) : 친히 침실 대기실인 작은 방에 들어가서
竊問侍者(절문시자) : 모시는 자에게 몰래 물어서
取親中裙厠牏(취친중군측투) : 아버지의 이랫 내의와 속적삼을 가져다가
身自浣滌(신자완척) : 자신이 몸소 세탁을 하여
每與侍者言(매여시자언) : 늘 모시는 자에게 주면서 말하길를
不敢令萬石君知之以爲常(불감령만석군지지이위상) :
감히 만석군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상례로 했다
內史慶醉歸(내사경취귀) : 내사 경이 술에 취하여 귀가할 때
入外門(입외문) : 바깥 문을 들어오면서
不下車(불하거) :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는데
萬石君聞之(만석군문지) : 만석군이 듣고
不食(불식) : 밥을 먹지 않거늘
慶恐(경공) : 경이 두려워서
肉袒謝罪(육단사죄) : 웃옷 소매를 걷고 살을 드러내고 사죄하였는데
不許(불허) : 허용하지 않거늘
擧宗及兄建肉袒(거종급형건육단) : 온 문중 및 형 건이 웃옷 소매를 걷고 살을 드러내었는데
萬石君讓曰(만석군양왈) : 만석군이 꾸짖어 말하기를
內史貴人(내사귀인) : "내사는 귀한 사람이다
入閭里(입여리) : 마을에 들어오면
里中長老皆走匿(이중장노개주익) : 마을 안의 어른들과 늙은이들이 모두 달아나 숨는데
而內史坐車中自如(이내사좌거중자여) : 내사께서 수레 안에 의젓이 앉아 있음은
固當(고당) : 본래부터 당연한 일이다."고 했다
乃謝罷慶(내사파경) : 비로소 경을 나가라고 하니
慶及諸子入里門(경급제자입리문) : 경 및 여러 아들들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趨至家(추지가) : 수레에서 내려 바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疏廣爲太子太傳(소광위태자태전) : <소광>이 태자태부가 되더니
上疏乞骸骨(상소걸해골) : 상소하여 늙었으니 치사해 줄 것을 빌었는데
加賜黃金二十斤(가사황금이십근) : 임금이 노퇴하는 소광에게 황금 20 근을 특별히 더 하사하고
太子贈五十斤(태자증오십근) : 태자가 50근을 증여하였다
歸鄕里(귀향리) : 향리에 돌아와서
日令家供具設酒食(일영가공구설주식) :
매일 집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갖추어 공궤하고 술과 음식을 진설하여
請族人故舊賓客(청족인고구빈객) : 족인과 친구와 빈객을 청하여
相與娛樂(상여오락) : 서로 함께 즐겼으며
數問其家(수문기가) : 자주 그의 집 사람에게 묻기를
金餘尙有幾斤(금여상유기근) : "금이 남은 것이 아직 몇 근이나 있느냐
趣賣以供具(취매이공구) : 빨리 팔아서 이로써 술과 음식을 갖추어 공궤하라."고 했다
居歲餘廣子孫(거세여광자손) : 그러면서 살기 일년 되었을 때에 소광의 자손들이
竊謂其昆弟老人廣所信愛者(절위기곤제노인광소신애자) :
몰래 그의 형제 항렬인 노인에게 소광이 평소에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
曰子孫冀及君時(왈자손기급군시) : 말하기를 "자손들은 가군이 계실 때에
頗立産業基址(파립산업기지) : 조금 사람의 밑천을 세우려고 하였더니
今日飮食費且盡(금일음식비차진) : 오늘에 음식비용으로 황금도 다 없어져 갑니다
宜從丈人所(의종장인소) : 마땅히 어른께서 기회를 따라
勸說君(권세군) : 가군께 권하고 달래어
置田宅(치전택) : 전지와 주택을 설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老人卽以閒暇時爲廣言此計(노인즉이한가시위광언차계) :
노인이 즉시 한가한 때로 광을 위하여 이 계획을 말했다
廣曰(광왈) : 광이 말하기를
吾豈老悖(오기노패) : "내 어찌 노망하여서
不念子孫哉(불념자손재) : 자손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顧自有舊田廬(고자유구전려) : 돌아보건대 스스로 옛날의 전지와 초막이 있으니
令子孫勤力其中(령자손근력기중) : 자손들로 하여금 거기에서 부지런히 힘쓰면
足以共衣食(족이공의식) : 이로써 입고 먹는 것을 공급하기에는 넉넉하여
與凡人齊(여범인제) : 일반인으로 같을 것이다
今復增益之(금복증익지) : 이제 다시 더 보태어 주어서
以爲嬴餘(이위영여) : 이로써 여유가 있게 한다면
但敎子孫怠惰耳(단교자손태타이) : 다만 자손들에게 게으름을 가르칠 뿐이다
賢而多財(현이다재) : 어진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則損其志(즉손기지) : 그의 뜻을 손상하고
愚而多財(우이다재) :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則益其過(즉익기과) : 그의허물을 더하는 것이다
且夫富者(차부부자) : 또 대체로 부라는 것은
衆之怨也(중지원야) : 여러 사람들이 원망하는 것이니
吾旣無以敎化子孫(오기무이교화자손) : 내가 이미 자손들에게 교화로써 못하였다
不欲益其過而生怨(불욕익기과이생원) : 그러니 재물을 더하여 그들에게 허물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又此金者(우차금자) : 또 대체로 황금이라는 것은
聖主所以惠養老臣也(성주소이혜양노신야) : 임금께서 늦은 신하를 은혜로 기르신 것이다
故樂與鄕黨宗族(고낙여향당종족) : 그러므로 향당과 종족으로 더불어
共享其賜(공향기사) : 그 하사하신 은혜를 함께 누리어
以盡吾餘日(이진오여일) :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 하는 것이니
不亦可乎(불역가호) : 또한 옳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龐公未嘗入城府(방공미상입성부) : 방공이 아직 일찍이 성부에 들어간 일이 없었고
夫妻相敬如賓(부처상경여빈) : 부주가 서로 공경하기를 귀빈을 대하는 것처럼 하였다
劉表候之(유표후지) : 유표가 찾아가니
龐公釋耕於壟上(방공석경어롱상) : 방공이 둔덕 위에서 밭갈던 일을 놓고 손님을 맞았고
而妻子耘於前(이처자운어전) : 처자는 그 앞에서 김을 매거늘
表指而問曰(표지이문왈) : 표가 가리키면서 물어 이르기를
先生若居畎畝而不肯官祿(선생약거견무이불긍관록) : "선생이 고생스럽게 견묘에 살면서 관록을 즐기지 않으니
後世何以遺子孫乎(후세하이유자손호) : 후세에 무엇으로 자손에게 남겨 주려고 하십니까."라고 하니
龐公曰(방공왈) : 방공이 말하기를
世人皆遺之以危(세인개유지이위) : "세상 사람들은 다 위태한 것으로써 남겨주거늘
今獨遺之以安(금독유지이안) : 이제 나는 홀로 편안한 것으로서 남겨주려고 하니
雖所遺不同(수소유부동) : 비록 남겨주는 바가 같지는 않으나
未爲無所遺也(미위무소유야) : 남겨주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는데
表嘆息而去(표탄식이거) : 표가 탄식하고 돌아갔다
陶淵明爲彭澤令(도연명위팽택령) : 도연명이 평택령이 되어서
不以家累自隨(불이가루자수) : 가족으로써 스스로 따라가지 않았는데
送一力(송일력) : 한 종을 보내어
給其子(급기자) : 그의 아들에게 주고
書曰(서왈) : 편지에 이르기를
汝旦夕之費(여단석지비) : "네가 날마다 생활비에 있어서
自給爲難(자급위난) : 자력으로 공급하기가 어려울 것이어서
今遺此力(금유차력) : 이제 이 종을 보내어
助汝薪水之勞(조여신수지로) : 너의 땔나무하고 물 긷는 괴로움을 돕게 한다
此亦人子也(차역인자야) : 이 종도 또한 사람의 지식이니
可善遇之(가선우지) : 잘 대우하여라."고 했다
崔孝芬兄弟(최효분형제) : 최효분의 형제는
孝義慈厚(효의자후) : 효도하고 의롭고 자애하고 순후하였다
弟孝暐等奉孝芬(제효위등봉효분) : 아우 <효위> 등이 <효분>을 받들되
盡恭順之禮(진공순지례) : 공순한 예도를 다하여
坐食進退(좌식진퇴) : 앉는 것 밥먹는 것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것에
孝芬不命則不敢也(효분불명즉불감야) : 효분이 명령하지 않으면 감히 자의로 하지 않았으며
鷄鳴而起(계명이기) :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且溫顔色(차온안색) : 또 얼굴빛을 온순하게 하며
一錢尺帛(일전척백) : 한 잎의 돈과 한 자의 명주를
不入私房(불입사방) : 자기들의 사사로운 방에 들여가는 일이 없고
吉凶有須(길흉유수) : 길흉사 때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聚對分給(취대분급) : 모여 앉아서 나누어 주었더니
諸婦亦相親愛(제부역상친애) : 여러 부인들도 또한 서로 친애하면서
有無共之(유무공지) : 있고 없는 것을 함께 하였다
孝芬叔振旣亡後(효분숙진기망후) : 효분의 숙부 진이 이미 죽은 뒤에
孝芬等承奉叔母李氏(효분등승봉숙모이씨) : 효분 등이 숙모 이씨를 승봉함을
若事所生(약사소생) : 마치 섬기기를 친어머니처럼 하여
旦夕溫凊(단석온청) :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려 겨울에는 따뜻한가 여름에는 서늘한가를 물으며
出入啓覲(출입계근) : 나갈 째는 나간다고 아뢰고 돌아와서는 가 뵈이며
家事巨細一以咨決(가사거세일이자결) : 집안 일의 크고 작은 것을 한결같이 모두 물어서 결정하며
每兄弟出行(매형제출행) : 매양 형제가 나다닐 때에
有獲則尺寸以上皆入李之庫(유획즉척촌이상개입이지고) :
얻은 것이 있으면 한 자 한 치 이상의 것을 다 이씨의 고방에 넣고
四時分賚李氏自裁之(사시분뢰이씨자재지) : 사계절의 의복감을 나누어 줄 때에는 이씨가 스스로 결정하였다
如此二十餘歲(여차이십여세) : 이와 같이 함이 20여년이었다
王凝常居慄如也(왕응상거율여야) : 왕응은 평상시에 있을 때에도 엄숙하였다
子弟非公服(자제비공복) : 자제들이 공복이 아니면
不見(불현) : 감히 뵙지 못하여
閨門之內若朝廷焉(규문지내약조정언) : 가정 안에 있는 것이 조종에 있는 것처럼 엄숙하였다
御家以四敎(어가이사교) : 집안을 다스리는데 4 가지의 가르침으로써 했으니
勤儉恭恕(근검공서) :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공순하고 관용하는 것이고
正家以四禮(정가이사례) : 집안을 바로잡기를 4 가지 예로써 하니
冠婚喪祭(관혼상제) : 관례 혼례 상례 제례이다
聖人之書及公服禮器不假(성인지서급공복예기불가) :
성인의 말씀이 적혀 있는 서적과 공복과 예기를 남에게서 빌어오지 않으며
垣屋什物必堅朴(원옥십물필견박) : 담장과 가옥과 기물 등을 반드시 견고하고 검박하게 하여
曰無苟費也(왈무구비야) : 이르기를 "쓸데없는 비용을 없게 해야 한다."고 하며
門巷果木必方列(문항과목필방렬) : 문호와 과일나무의 심기를 반드시 바르게 하여
曰無苟亂也(왈무구난야) : 말하기를 "구차스럽고 어지럽게 함이 없게 해야 한다."고 했다
張公藝九世同居(장공예구세동거) :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살았는데
北齊隋唐(북제수당) : 북제와 수와 당이
皆旌表其門(개정표기문) : 모두 그 집에 정문을 세워 표창했다
麟德中(인덕중) : 당나라 인덕 연간에
高宗封泰山(고종봉태산) : 고종이 태산에 봉선하고
幸其宅(행기택) : 장공예의 집에 가서
召見公藝(소견공예) : 공예를 불러 보고서
問其所以能睦族之道(문기소이능목족지도) : 그가 종족 사이를 화목하게 할 수 있었던 도리를 물었는데
公藝請紙筆以對(공예청지필이대) : 공예가 종이와 붓을 청하여 글씨를 써서 대답하였는데
乃書忍字百餘以進(내서인자백여이진) : 이에 참을 인자를 백여 글자를 써서 올렸다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기의이위종족소이불협) : 그 뜻은 생각하건데 종족이 화목하지 않은 까닭은
由尊長衣食(유존장의식) : 존장에 대한 의복과 음식이
或有不均(혹유불균) : 혹시나 고르지 못함이 있고
卑幼禮節(비유예절) : 항렬이 낮고 나이 어린 사람들이 지켜야 할 예절이
或有不備(혹유불비) : 혹시 불비한 점이 있으면
更相責望(갱상책망) : 번갈아 서로 책망해서
遂爲乖爭(수위괴쟁) : 드디어 사이가 벌어져 다투게 되는 것이다
苟能相與忍之(구능상여인지) : 진실로 능히 서로 더불어 참는다면
則家道雍睦矣(즉가도옹목의) : 집안의 도리는 화목하게 된다고 했다
韓文公作董生行曰(한문공작동생행왈) : 한문공이 <동생행>을 지어 이르기를
淮水出桐栢山(회수출동백산) : "회수가 동백산에서 출원하여
東馳遙遙(동치요요) : 동쪽으로 멀리멀리 흘러서
千里不能休(천리불능휴) : 천리를 쉬지 못하고
淝水出其側(비수출기측) : 비수가 그 곁에서 출원하여
不能千里(불능천리) : 천리를 흐르지 못하여
百里入淮流(백리입회류) : 백리에서 회수로 들어가 흐르는구나
壽州屬縣有安豊(수주속현유안풍) : 수주의 속현에 안풍이 있으니
唐貞元年時(당정원년시) : 당나라 정원 때에
縣人董生召南(현인동생소남) : 고을 사람 <동소남>이
隱居行義於其中(은거행의어기중) : 그 속에 숨어 살면서 의로운 행동을 행하였다
刺史不能薦(자사불능천) : 자사가 능히 천거하지 못하였으니
天子不聞名聲(천자불문명성) : 천자가 그의 명성을 듣지 못했다
爵祿不及門(작록불급문) : 벼슬과 봉록이 그의 집 문에 이르지 않고
門外惟有吏(문외유유리) : 문 밖에는 오직 아전들이 나타나
日來徵租更索錢(일래징조갱색전) : 날마다 몰려와 조세를 물리며 또 돈을 토색질하네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朝出耕(조출경) : 아침에 나가서는 밭을 갈고
夜歸讀古人書(야귀독고인서) : 밤에 돌아와서는 옛사람의 글을 읽네
盡日不得息(진일불득식) : 온 종일 쉬지 못한채
或山而樵(혹산이초) : 혹은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며
或水而漁(혹수이어) : 혹은 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구나
入廚具甘旨(입주구감지) : 부엌에 들어가서 맛좋은 음식을 마련하고
上堂問起居(상당문기거) : 마루에 올라가서 부모의 안부를 물으니
父母不慼慼(부모불척척) : 부모는 근심하고 슬퍼하지 않으며
妻子不咨咨(처자불자자) : 처자는 탄식하고 원망하지 않네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孝且慈人不識(효차자인불식) : 효도하고 또 인자함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唯有天翁知(유유천옹지) : 오직 하늘만은 알고 있어
生祥下瑞無時期(생상하서무시기) : 상서를 내고 내리기를 때도 없이 하였네
家有狗乳出求食(가유구유출구식) : 집안에 새끼 낳은 개가 있어 나가 먹을 것을 구하니
雞來哺其兒(계래포기아) : 닭이 와서 그 새끼에게 먹이는데
啄啄庭中拾蟲蟻(탁탁정중십충의) : 뜰에서 쪼아다 벌레와 개미를 주어서 먹여도
哺之不食鳴聲悲(포지불식명성비) : 먹지 않으니 우는 소리 슬퍼서
彷徨躑躅久不去(방황척촉구불거) : 차마 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머뭇거리며 서성거리고
以翼來覆待狗歸(이익래복대구귀) : 날개로써 와 덮어주면서 어미 개가 오기를 기다렸다네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誰將與儔(수장여주) : 뉘와 장차 더불어 짝하리오
時之人夫妻相虐(시지인부처상학) : 시속의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학대하며
兄弟爲讎(형제위수) : 형제가 원수가 되어
食君之祿(식군지록) : 임금의 봉록을 먹으면서도
而令父母愁(이령부모수) : 부모를 근심하게 하니
亦獨何心(역독하심) : 또한 홀로 무슨 마음일까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無與儔(무여주) : 함께 짝할 사람이 없구나
唐河東節度使柳公綽在公卿間(당하동절도사유공작재공경간) :
당나라 하동절도사 유공작이 공경들 사이에 있어서
最名有家法(최명유가법) : 가장 집안에 법도 있다고 이름이 났다
中門東有小齋(중문동유소재) : 중문 동쪽에 작은 집이 있었다
自非朝謁之日(자비조알지일) : 스스로 조회하는 날이 아니면
每平旦輒出至小齋(매평단첩출지소재) : 언제나 이른 아침에 문득 작은 집에 나가고
諸子仲郢皆束帶(제자중영개속대) : 모든 아들들과 중영 등이 다 의관을 정제하고서
晨省於中文之北(신성어중문지북) : 중문의 북쪽에서 새벽 문안을 드렸다
公綽決私事(공작결사사) : 공작이 집안 일을 결재하며
接賓客(접빈객) : 빈객을 접대하고
與弟公權及群從弟再會食(여제공권급군종제재회식) : 아우 공권과 여러 종제와 함께 두 번 회식하여
自朝至莫不離小齋(자조지막불리소재) :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작은 집을 떠나지 않고
燭至則命一人子弟(촉지칙명일인자제) : 촛불이 들어오면 자제 한 사람에게 명하여
執經史(집경사) : 경서나 사서를 가져오게 하여
躬讀一過訖(궁독일과흘) : 자신이 한 번 훑어 읽기를 마치고
乃講議居官治家之法(내강의거관치가지법) : 비로소 벼슬사는 도리 집을 다스리는 법을 간론하며
或論文(혹논문) : 혹은 문학을 논하여
或聽琴(혹청금) : 혹은 거문고를 듣다가
至人定鍾(지인정종) : 통행금지의 종소리가 들린
然後歸寢(연후귀침) : 뒤에 침실로 돌아가면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제자부혼정어중문지북) : 모든 아들들이 또 중문의 북쪽에서 저녁 문안을 드렸다
凡二十餘年(범이십여년) : 무릇 20여년에
未嘗一日變易(미상일일변이) : 일찍이 하루도 고치지 아니 하였다
其遇飢歲(기우기세) : 그 흉년을 나나면
則諸子皆蔬食(즉제자개소식) : 모든 아들들은 나물 음식을 먹게 하고
曰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왈석오형제시선군위단주자사) :
말하기를 "옛날 우리 형제가 선군을 모실 때에 선군께서 단주자사로 계셨는데
以學業未成不聽食肉(이학업미성불청식육) :
우리들의 학업이 이루지 못하였음으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吾不敢忘也(오불감망야) : 나는 그 일을 감히 잊지 못한다."고 했다
姑姊妹姪有孤嫠者(고자매질유고리자) : 고모나 자매나 질녀 중에 아버지가 없거나 남편이 없으면
雖疎遠(수소원) : 비록 촌수가 멀지라도
必爲擇壻嫁之(필위택서가지) : 반드시 사위감을 골라서 시집보내되
皆用刻木粧奩(개용각목장렴) : 모두 나무에 초각한 화장대를 썼으며
纈文絹爲資裝(힐문견위자장) : 묶어서 물들인 무늬 있는 비단으로 자장하였다
常言(상언) : 항상 말하기를
必待資粧豐備(필대자장풍비) : "반드시 자장이 풍부하게 갖추기를 기다리기보다는
何如嫁不失時(하여가불실시) : 시집갈 시기를 잃지 않은 것이 어떠냐."라고 하였다
及公綽卒(급공작졸) : 공작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仲郢一遵其法(중영일준기법) : 중영이 한결같이 공작의 법을 준수하여
事公權如事公綽(사공권여사공작) : 공권을 섬기되 공작을 섬기는 것같이 하여
非甚病(비심병) : 심한 병이 아니면
見公權未嘗不束帶(현공권미상불속대) : 공권을 뵐 때에 아직 일찍이 의관을 정제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爲京兆尹鹽鐵使(위경조윤염철사) : 중영이 경조윤 염철사가 되어서
出遇公權於通衢(출우공권어통구) : 나가 공권을 거리에서 만남에
必下馬端笏立(필하마단홀립) : 반드시 말에서 내려 단정히 홀을 갖고 서서
候公權過(후공권과) : 공권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
乃上馬(내상마) : 비로소 말을 타며
公權莫歸(공권막귀) : 공권이 저물 게 돌아오면
必束帶迎候於馬首(필속대영후어마수) :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말머리에 맞이하여 기다리니
公權屢以爲言(공권루이위언) : 공권이 여러 번 이로써 말하였으되
中郢終不以官達有小改(중영종불이관달유소개) :
중영이 끝끝내 자신이 벼슬의 현달로써 조금도 고치는 것이 없었다
公綽妻韓氏相國休之曾孫(공작처한씨상국휴지증손) : 공작의 아내 한씨는 상국 <한휴>의 증손녀이다
家法嚴肅儉約(가법엄숙검약) : 그 집의 법도가 엄숙하고 검약하여
爲搢紳家楷範(위진신가해범) : 사대부집들의 모범이 되더니
歸柳氏三年無少長未嘗見其啓齒(귀유씨삼년무소장미상견기계치) :
유씨 집안에 시집 간 뒤 3년에 어린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아직 일찍이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常衣絹素(상의견소) : 항상 무늬없는 깁옷을 입었고
不用綾羅錦繡(불용능라금수) : 능라금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每歸覲不乘金碧輿(매귀근불승금벽여) :
친정에 근친하려 갈 때마다 황금과 벽옥으로 꾸민 가마를 타지 않았고
祗乘竹兜子(지승죽두자) : 오직 죽교자를 타고서
二靑衣(이청의) : 두 사람의 하인이
步屣以隨(보사이수) : 걸어서 이로써 따르게 하였다
常命粉苦蔘黃連熊膽(상명분고삼황연웅담) : 항상 고삼과 황련과 웅담을 가루로 만들어 섞어서
和爲丸(화위환) : 환을 만들게 명하여
賜諸子(사제자) : 모든 아들에게 주어
每永夜習學含之(매영야습학함지) : 오래 밤에 공부할 때마다 입에 머금게 하여
以資勤苦(이자근고) : 이로서 부지런히 애쓰는 일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江州陳氏(강주진씨) : 강주 진씨는
宗族七百口(종족칠백구) : 종족 700 여 명이 한 집에 살았는데
每食設廣席(매식설광석) : 식사 때마다 넓은 자리를 마련하고
長幼以次坐(장유이차좌) : 어른과 아이들이 차례로써 앉아 함께 먹었다
而共食之(이공식지) : 그 집에 기르는 개
有畜犬百餘(유축견백여) : 백여 마리가 있었는데
共一牢食(공일뢰식) : 함께 한 우리 안에서 길렀다
一犬不志(일견불지) : 한 마리 개라도 오지 않으면
諸犬爲之不食(제견위지불식) : 모든 개들이 이 때문에 먹지 않았다
溫公曰(온공왈) : 온공이 말하기를
國朝公卿能守先法(국조공경능수선법) : "우리나라의 공경이 능히 선대의 예법을 지켜서
久而不衰者(구이불쇠자) : 오래도록 쇠퇴하지 않는 이는
唯故李相家(유고이상가) : 오직 죽은 이상국의 집안 뿐이다
子孫數世至二百餘口(자손수세지이백여구) : 자손이 수대에 200여 명에 이르렀으되
猶同居共爨(유동거공찬) : 오히려 한 집에서 살며 함께 취사하면서
田園邸舍所收及有官者俸祿(전원저사소수급유관자봉록) : 전지와 집세의 수입과 관직에 있는 자의 봉록을
皆聚之一庫(개취지일고) : 모두 한 창고에 모아서
計口日給餉(계구일급향) : 식구의 수로 계산하여 날마다 식량을 지급하며
婚姻喪葬所費(혼인상장소비) : 혼인과 장사의 소요 비용은
皆有常數(개유상수) : 다 일정한 액수가 있어서
分命子弟(분명자제) : 일을 나누어서 자제들에게 명령하여
掌其事(장기사) : 그 일을 관장하게 하니
其規模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기규모대저출어한림학사종악소제야) :
그 법이 대개가 한림학사 <종악>이 제정한 것이다."라고 했다
右實明倫(우실명륜) : 이상은 명륜편을 실례로 부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