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음력으로 9월 13일, 어머님의 생신 날이다.
1911년 생이시니 한국 나이로 102세이시고 만으로는 101세가 되신다.
남쪽의 더운 공기와 북쪽의 찬 공기가 만나
가을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오겠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11시 30분 경 형제들이 속속 요양원으로 모여들었다.
일전에 내가 쇠고기와 미역을 사 들여놓고,
어머님은 잘 못 잡수시겠지만 생신 날 아침에는
미역국을 끓여 어르신들 대접을 해 드리라고 부탁을 한 바 있다.
이 날은 시동생 내외가 떡과 케익, 과일을 준비해 왔다.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별실에 준비해 간 음식을 차려놓고
어머님을 누우신 침대째로 모셔왔다.
1911년 생이시니 한국 나이로 102세이시고 만으로는 101세가 되신다.
남쪽의 더운 공기와 북쪽의 찬 공기가 만나
가을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오겠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11시 30분 경 형제들이 속속 요양원으로 모여들었다.
일전에 내가 쇠고기와 미역을 사 들여놓고,
어머님은 잘 못 잡수시겠지만 생신 날 아침에는
미역국을 끓여 어르신들 대접을 해 드리라고 부탁을 한 바 있다.
이 날은 시동생 내외가 떡과 케익, 과일을 준비해 왔다.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별실에 준비해 간 음식을 차려놓고
어머님을 누우신 침대째로 모셔왔다.
-아드님 형제와 사위가 상을 차리고 있다. 왼쪽으로 부터 작은 아들, 넷째 사위, 큰 아들(우리 남편)-
떡과 과일, 케잌이 차려진 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어머니께
"오늘이 어머님 생신이에요." 말씀드렸더니
"오늘이 구월 열 사흗 날이냐?" 말씀하신다.
체력은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기억력은 아직 건재하시다.
케잌에 춧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린 후
(초가 너무 많아 큰 것 하나에 작은 것 두개를 켰다.)
마지막 생신을 보내고 계심이 분명한 어머님 뒤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점심 식사를 한 '송추 가마골 송우리 점' 어머님 침대 옆 창문에서 내려다 보인다-
어머님은 모인 당신의 자손들에게 '참을 인(忍)자를 마음에 새기고
화목하게 살라는 말씀을 누누히 하셨다.
우르르 왔다가 한꺼번에 나가는 발걸음이 모두 무거웠지만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요양원을 나서
바로 옆에 있는 고기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에 차려진 떡과 과일은 그곳에 계신 분들 몫으로 두고 나옸다.
이 날은 시동생 내외가 형제들에게 점심을 내는 날이었다.
실은 동갑내기인 시동생 내외가 8월에 환갑을 맞았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폭염이 계속되던 시기인데다
집안에 우환이 겹쳐 차일피일 하다 보니 두 달이 지나도록
식사 한 번 나누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 해가 다 해 가는 마당에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고
하루 삼시 죽만 잡숫고 계신 어머님 계신 곳에 와서
거창하게 벌리는 것도 자식된 도리로 죄송스러운 일이니
간단한 식사로 회갑 모임을 떼우기로 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어머님은 모인 당신의 자손들에게 '참을 인(忍)자를 마음에 새기고
화목하게 살라는 말씀을 누누히 하셨다.
우르르 왔다가 한꺼번에 나가는 발걸음이 모두 무거웠지만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요양원을 나서
바로 옆에 있는 고기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에 차려진 떡과 과일은 그곳에 계신 분들 몫으로 두고 나옸다.
이 날은 시동생 내외가 형제들에게 점심을 내는 날이었다.
실은 동갑내기인 시동생 내외가 8월에 환갑을 맞았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폭염이 계속되던 시기인데다
집안에 우환이 겹쳐 차일피일 하다 보니 두 달이 지나도록
식사 한 번 나누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 해가 다 해 가는 마당에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고
하루 삼시 죽만 잡숫고 계신 어머님 계신 곳에 와서
거창하게 벌리는 것도 자식된 도리로 죄송스러운 일이니
간단한 식사로 회갑 모임을 떼우기로 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식사후 헤어져 집에 돌아 오는 길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연세실버요양원',
송우택지지구 내에 있어 도시가 정돈되어 있고
환경도 쾌적하지만 집에서 먼 것이 문제이다.
자주 들여다 뵐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 모시고도 싶지만
겨우 그곳 사람들과 눈을 익히고 적응 중이신 분을
다시 옮기는 것이 과연 어떨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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