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의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아련하게 떠올려보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 가면서 엄마라는 이름을 늘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 아뻐지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난,엄마라고 이름을 불러보지 못하고 어린시절을 보내야했다.
엄마가 해준 그 무엇도 받을 수 없었던 미완의 시간들...
그 님의 따사로운 품을 기억조차 모르고
님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시간들...
서울 어딘가 살고 있지만 어떻게 생긴 분인지 조차도 몰랐던 시간들...
혹여 교회에 다니던 하양 저고리 입으신 분이라도 언덕길위로 걸어 간다면
울 엄마라는 착각속에 숨어서 그의 뒷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다 본 기억들...
친구들의 엄마 아버지들이 들어오는 저녁시간엔 난 외롭기가 두배나 되었다.
그들에겐 기다리는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있었지만 난 늘... 혼자였다.
엄마 없는 하늘아래 살던 나는 고아처럼 외롭게 자라던 시간들이었다.
국민학교적...
아침 일찍 아버지는 칼국수를 끓여 놓은체 장사를 나가신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지만 라듸오는 있었다.
누가 깨우는것도 아닌데 자동으로
눈을 비비며 잠에서 일어나서 국수를 허겁지겁 퍼 먹고는 학교로 향한다.
명절날 쌀밥에 고깃국 먹는게 유일한 나의 소원이었고 먹어보질 못한 음식이었다.
어느해 겨울...울 아버지가 돼지 비개를 공짜로 얻어 온적이 있는데
어느 식당에서 먹지못해 버려둔것을 싸오신 모양이다.
자식 사랑하는 맘으로 배부른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 많이도 싸왔다.
소금만 넣고 푹 삶아서 기름끼가 둥싱둥실 보리밥 한 그릇을 잔뜩 말아 먹고는
배가 부르긴 하였지만,속이 끓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설사로 화장실을 얼마나 많이 왕래했던지 거기가 헐었을 지경이다.
처음 먹어본 고깃국의 기름에 내 속은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나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는가 보다.
그시절...
엄마가 없던 나의 가난은 뼈저리도록 아픈 상처요 수모였다.
학교를 함께 다니던 친구들은 나의 가난을 잘 몰랐을게다.
나름데로는 깔끔했던 기억을 한다.
나의 옷 맵시며,하얀 피부색이며,머릿결이며,
나의 겉 모습만 보아서는
내가 가난했는지 엄마가 없었는줄..
누구랑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몰랐을 것이다.
달동네의 가난한 마을에 살았는지...관심이 없었으며
하물며 선생님이란 분도 나에게 무관심 했었다.
선생님들도 나름데로의 직업의 삶을 영위하려면
가르치던 제자이지만 남인데 궂이 신경 쓸 필요가 있었겠는가??
어린 나였지만 자존심만큼은 강했으므로...
남에게는 나의 비밀을 감추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해질무렵...
금수장 역전에서 기적소리가 들리면
서울사는 울 엄마가 어린자식인 날 찾아 오는 소리로 들렸다.
엄마가 늘... 그리워하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 ...
울 엄마는 언제까지나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매일 그시간이면 기적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려진다.
기적소리는 울리건만 울 엄마는 보이질 않았다.
비오는 여름날이면 비를 맞으며 넓다란 학교 마당엘 가서
나만의 물길을 만들면서
하루종일 비와함께 놀았던 기억이난다.
우리집 비가 새는 지붕에는 양동이를 두고 떨어지는 낙수 소리에
화음을 맞추어 섬집아기,아빠하고 나하고,반달,서정적 노래를 불러보곤했다.
늘 나에겐 엄마라는 그리움만이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님의 정감어린 자장가 노래를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어릴적 시간들...
참으로 애처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때, 엄마도 없고 가난했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았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살아가고 있었다.
해가지고 어스름한 저녁무렵...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또래 아이들을 향해
보경아~!!서현아~밥먹어~!!라며 엄마가 형이 누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함께 뛰어놀던 녀석들은 때를맞춰 집으로 휭하니 돌아갈때엔
넓은 학교 운동장엔 나만 덩그러니 갈곳을 찾아 길을 나서질 못하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가곤 했었다.
집엔 돌아온 나는 언제나 혼자였으며
저녁꺼리라고는 보이질 않으니 늘 배고픈 상태였다.
동네에 텔레비젼 있는 집으로 가끔 놀러가곤 했는데...
그들은 늦게까지 일을하시고 돌아온지라...
밥을 먹는 시간대여서 말은 하지 않지만
국아~~밥좀 먹어라고 말해 주었음 하는 바램을 가지곤 하였다.
그렇게 하는 시간도 하루이틀...주면 먹고 안주면 안먹고...
동네 아주머님은 나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던때라...
그 시절 배고플때도 도둑질 한번 안했던 것이 기특하고도 남을만하다.
지금도 아무거나 다 잘 먹는게 바로 그때 굶기를 밥 먹듯이 한 덕분이다.
어떤 음식에도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 되었다.
아버지의 말씀....
가난했지만,바로 새겨들은 나였기에 가능했으리라...
김해김씨 양반...김수로왕 자손...아버지 고향 함경도는 만석군집...
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난 배고팠지만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것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울 아버지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들어오신다.
언제나 술에 취한체 짐 자전거를 이끌고 집에 들어오신다.
저 만큼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숨을 죽이고 자는척을 해야만 했다.
그때 울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는 딱 구별이 되곤 하였다.
가끔 아버지의 주정을 보아온 나로서는 자는척 하는게 상책이었다.
아버지는 자고 있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옆에서 가만히 눈을 붙이며 자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말은 안했지만 아버지는 날 얼마나 불쌍하게 여기셨을까??
엄마 없이 날 키워주신 아버지
비록 가난했지만,그래도 날 끝까지 키워주신 울 아버지...
당신 고향을 북녘에 두고 통일 될 날만 그리워하던 아버지...
범이 지 자식 잡아 먹으리까~!!라며,갈 사람은 가라 하면서
이혼은 절대로 안돼!!하면서 끝까지 아버지는 날 지켜 주셨다.
비록 지금 세상엔 없으시지만 난 언제나 아버지의 따듯했던 가슴을 기억한다.
아버지...정말 눈물나도록 그리운 울 아버지...
올 한해도 그곳에서 평안히 영면하실줄 믿습니다.
한식때나 이제 찾아 뵈어야 할겁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세요^^
어머님...나를 버리고 갔던...
그땐 왜그랬는지요 어머님의 따듯한 밥 한그릇 먹어보질 못해서
도시락 한번 싸주질 않아서...운동회날 하얀 스타킹 한번 신어보질 못해서...
생일날이 어떤날인지 미역국이 어떤 맛인지...
그땐 나에겐 배 부르고 등 따시면 되었지 음식의 맛의 의미는 몰랐으니까요
그래도 어쩌겠나요...
미워도 안타깝기만 할 뿐 어디에서 하소연을 할까요??
누구라도 곁에 나의 하소연을 푸념을 들어 줄 이가 있어야 할 텐데요...
지금은 모두를 용서합니다.
어머님의 삶이 어땠을까도 구별은 가지만 용서합니다.
모두를 용서했습니다.
어린 나에게 상처를 주고,어머님의 사랑을 받아보질 못해서,
정말루 서글펐구요...다시 가라면 나는 절대 그 시절로 갈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누구도 모르던 나만의 소중한 경험이었답니다.
이젠...나도 어른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