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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불」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무심히 받는다.
“여보세요?”
“야! 너 엄마한테 전화 좀 빨리 드려봐라”
다급한 언니의 목소리, 또 다시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왜 또 오, 무슨 일 있어?”
“엄마가 또 다치셨나봐,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집에 전화 드려본지도 며칠 되고 해서 전화를 걸어봤더니 엄마가 기운이 하나도 없이 받으시더라. 어디 편찮으시냐고 했더니 어제 읍내에 나가시다가 넘어 지셔서 오른쪽 팔이 부러 졌단다. 어쩐다니?“
병원에 근무하는 나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시댁이든 친정이든 누가 환절기에 고뿔만 들려도 불러내는 119다. 오라버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 길로 오빠의 차를 타고 급히 내려가 보니 통나무처럼 부어있는 환자의 팔에는 허술한 붕대만 칭칭 감겨져 있었다. 넘어진 지가 이틀이 되었다고 한다. 이틀 동안 식사도 못하고 아파서 쩔쩔매고 계셨다.
혼자 사시는 분이 팔까지 부러졌으니 밥을 해다 바쳐도 못 드실 판에 당신이 조석을 끓여 잡숫는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당뇨와 혈압 중복환자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다. 식사를 하지 않았을 때 저혈당으로 혼수가 올 수 있고 그 상태에서 혈압은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므로 곧 응급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내가 못 살어! 이 상황이 됐는데 전화를 안 하면 어떻게 해. 엄마가 자식이 없어?”
“뼈가 부러진 줄 알았간디? 읍내 병원에 갔더니 뿌러졌다잖여.”
“그럼 바로 서울로 전화를 하셨어야지 여태 그냥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이 팔로 혼자 조석해서 잡숫겄다고? 내가 속상해서 죽겠어.”
“느이들 걱정할까봐… 처음에는 부러진 줄 모르고 침이나 맞어 볼라고 한약방을 갔었는디….”
“그런디. 한의사가 침이나 맞으면 낫것다고 허든감유?”
“암말도 안하고 침만 놔 주길래 집에 왔는디 밤새 여간 아퍼야지. 그래서 오늘은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니께 부러졌다잖여.”
“그 빌어먹을 돌 파리 한의사 고발해 버릴까부다. 이렇게 퉁퉁 부었으면 골절 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어 봐야지 어이구, 촌사람들 불쌍혀. 가만, 지금 내가 성질만 부리고 있을 때가 아녀.”
서둘러 간단하게 요기부터 하시게 했다. 그때가 밤 열한시다.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검사를 해보니 혈압이 210까지 올라 있고 당수치가 400 이 넘었다. 곧바로 응급조치에 들어간다. 부기가 빠지는 동안 혈압과 당뇨조절을 하고 일주일 만에 수술을 했다. 이것이 네 번째의 골절이다. 사지가 돌아가면서 한 번씩 모두 골절상을 당한 것이다.
“팔다리가 네 개였기에 망정이지 아마도 다섯 개였다면 아직 한번이 더 남았을 거구먼유.”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에야 우리 형제들은 비로소 어머니와 농담들을 할 수 있었다.
팔십을 넘긴 어머니는 종가 집 종부다. 십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선산을 지키면서 지금껏 혼자 살고 계신다. 그 큰 종갓집을 팔순노인 혼자서 건수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에 성품까지 급하신지라 팔십이 넘어서도 늘 기차시간 임박한 사람처럼 서두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덕 사나운 시골길에 잘 넘어지고 골다공증이 심한 노인의 뼈는 그때마다 즉시 골절로 반응을 했다. 사지가 모조리 한 번씩 골절상을 입었다면 알만한 일이 아닌가.
그래도 여전히 혼자 사시는 것을 고집했다. 병원에서도 박박순 할머니는 유명했다. 직원 어머니이기 이전에 이름도 특이했고 여러 번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도 유명해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기억들을 한다.
나는 근무시간 틈틈이 짬 을 내어 올라가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어머니 대 소변을 받아냈다. 어머니는 방금 회진을 마치고 돌아서는 의사를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아주 민망한 듯이 웃는다. 부끄럼 타는 처녀같이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저 의사는 나만 보면 저렇게 피식피식 웃어야. 내가 하도 입원을 자주 하니께 저 늙은이 또 왔구나 하고 웃네비여.”
“어 얼래, 저 선생님 인상이 원래 웃는 인상이거든?”
이번에도 어머니는 팔십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회복이 빨라 다시 그리던 고향으로 모셔다 드렸고 형제들은 매주 번갈아 가며 내려가 뵙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해 오월 어느 날, 저녁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전화기를 드는데 또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
“야! 너 놀래지 말어. 엄마가 산불을 냈단다.”
“뭐? 산불이 왜 났는데?”
“뒤꼍에서 낙엽을 태웠다는데 다 꺼진 줄 알고 들어 왔다는데 그 불씨하나가 산으로 올라갔던 가봐. 119가 와서 방금 끄고 갔단다.”
“엄마는? 다친데 없어? 괜찮어?”
“당신은 괜찮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노인네가 놀랬지 싶어. 니가 전화 좀 드려봐.”
“알았어.”
이번에는 뒤란 언덕에서 겨우내 말라 죽은 낙엽을 긁어모아 태웠던가 보다. 보이지 않는 불씨하나가 담장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조상님을 모신 선산으로 옮겨 가고 있었는데 연기가 나는 것을 본 동네사람들이 119 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노인은 심하게 놀랬을 것이고 혈압환자인 어머니의 상태를 고려하여 내가 먼저 그 길로 내려갔다. 다른 형제들은 다음날 놀래고 허할 때 먹는다는 한약을 지어가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들 왔다. 내려오는 길로 아들은 군청에 들러 벌금을 해결 하고 딸들은 음식을 만들고 하여 오랜만에 자식들에 둘러싸인 어머니는 산불커녕 성냥불도 보지 않은 분 같았다. 여전히 당당했고 자식들 얼굴을 보니 마냥 좋으신가보다.
“어머니! 자식들이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다고 하쇼. 괜히 애매한 팔다리나 부러뜨리고 산에 불이나 질러서 내려오게 만들지 말고오….”
환갑이 지난 오빠가 농을 치는 바람에 웃음바다가 된다.
그리고 꼭 일 년이 지났다. 화창한 오월 어느 날, 퇴근을 하여 막 집에 도착하니 전화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내 가슴은 또 다시 천 길 낭떠러지다. 또 산불이란다. 이번에는 선산을 모두 태우고 산 너머 마을까지 타들어 가기 직전에 119가 와서 불길을 잡았다는데 그것이 어제 일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또 걱정이었다. 요즘에는 농촌에도 집집마다 LPG가스통에다 보일러 기름통들을 매달고 있는 판에 불길이 마을을 덮쳤더라면 그 화마를 어쩔 뻔 했을까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다른 형제들은 다음날 내려오기로 하고 119인 내가 먼저 내려 가 보니 세상에, 어머니는 탄광에 매몰되었다가 방금 꺼내놓은 사람 같았다, 세수도 못했는지 머리는 산발하여 두억시니 같고 손목은 때가 꼬질꼬질한 붕대로 칭칭 동여매져 있는 것이다. 기상이 바싹 틀려버린 어머니, 두 눈은 쾡 하니 심리는 들어가고 눈알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힘들어 했다.
“느이들 걱정 할 것 같어서 안 알리려고 했는디….”
“어이구! 자식들 놀란 가슴이 가라앉을 새도 없이 온통 일만 저지르는 양반이 하는 소리 보소….”
작년에 산불을 낸 것도 꼭 오월 이때였다. 오월 한낮에는 불길이 보였다 안보였다 해서 ‘여수불’ 이라고 한다. 낙엽을 태우다보면 여수 불씨 놓치기가 십상이고 그런 이유로 시골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낙엽을 태우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번에도 노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씨 하나가 담장사이로 뱀이 빠져 나가듯이 빠져나가 말라버린 나뭇잎에 옮겨 붙어 순식간에 화마로 변해 버린 것이다. 갑자기 불이 번지자 놀랜 어머니는 얼떨결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었고, 번져가는 불길을, 그것도 맨 손으로 어찌 해 보겠다고 한 것이 나중에 보니 손가락 두개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나는 먼저 어머니의 상처를 보기위해 붕대를 풀어보았다. 그런데 이런, 보기도 끔찍할 만큼 손등이 말갛게 부어있었다. 화상을 입은 두 손가락이 썩어 가는지 까맣게 착색되어 있고 상처에는 누런 고름에 쌓여 심한 염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그만 비명을 질렀고 딸을 안심시킨다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제 119가 불을 끄고 간 뒤 동네 이장이 어머니의 상처를 보고 서둘러 자기 차에 태워 병원에 갔었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화상처치와 항생제 주사도 한 대 맞고 돌아왔다. 그런데 마을에는 어머니 보다 세 네살 아래인 먼 집안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그 분은 당뇨합병증으로 잘 걷지 못하는 분이다. 보행기를 의지하여 마당을 한번 내려오려면 한나절이 걸리는 노인이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그 노인에게 가서 말벗도 해주고 은행일도 보아주고 택시를 불러 병원에도 데리고 다녔다. 장날이면 필요한 물건도 사다주고, 노인으로서 나름대로 그 할머니에게 기꺼이 봉사를 하고 있었다. ‘나 같은 늙은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 감사하다.’ 하시면서.
어제도 병원에 다녀온 어머니는 많이 진정도 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할 겸 그 할머니 집에 갔던가 보다. 그 분 역시 양반 댁 종부로서 옛날부터 집안일 동네일 간섭 안하는 것이 없는 분이다. 좌정천리라고 걷지도 못하는 분이 모르는 것이 없고 지금까지도 당당하기가 대나무 같은 분이다. 그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아이고 큰일 나유. 병원에 다녀봐야 고생만 허지 낫지도 않고 말짱 헛거유. 잘못 허면 손가락 병신 되유. 화상에는 뭐니 뭐니 혀도 그저 간장에 담그는 것이 제일 속혀유. 나도 소싯적에 끓는 물을 허벅지에 몽땅 쏟아서 한쪽 다리가 꽈리처럼 부풀고 진물이 나고 했지만 간장에 담그고 나서 그 다음 날 부터는 밭에 나가서 밭일도 하고 그 많은 집안일을 다 했슈.”
걷지도 못하는 양반이 앉아서 뭉그적 뭉그적, 씽크대로 가더니 큰 대접에 간장을 쭐쭐쭐 붓더란다. 닭 모가지 비틀 때 닭 의사를 묻지 않듯 어머니에게 다가 와서는 어머니 의사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병원 치료를 받은 붕대를 거침없이 풀어 제치더란다. 처음에는 어머니도 완강히 버티다가 너무나 확신에 차서 덤비는 노인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나.
상처가 간장에 닿자 쩌르르 살을 도려내는 듯 하고 팔목을 둔탁한 몽둥이로 내려치는 듯한 통증에 소리를 지르며 잡아 뺏더니 노인네는 길거리에서 맞닥트린 빚쟁이 옷자락 움켜잡듯이 어머니의 팔을 단단히 움켜잡고는,
“냘이면 끄들끄들 해 지고 다 나슬텐디 조금만 참어유우.”
간장 속에서 팔을 빼지 못하게 온 힘을 다 해 붙들고는 안 놔 주더라고 했다. 그날 밤, 그러니까 어제 밤, 어머니는 밤새도록 팔 전체가 송곳으로 도려내듯이 쑤시고 뼈가 녹는 것 같은 통증으로 밤을 꼴딱 새우다가 새벽에야 통증이 조금 가라앉아서 잠을 잠깐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심하게 아프지 않아서 살 것 같다나?
당뇨나 혈압 환자가 외상을 입거나 감기라도 걸려 컨디션이 나쁘면 혈압 당뇨의 수치가 극도로 상승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응급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당뇨환자는 혈액이 탁해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관계로 말초신경염이라도 생기게 되면 치료가 잘 안되어 손가락을 절단하는 극한 상황까지도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상처의 균이 혈관에라도 침입했다면 어쩔 것인가. 기가 막혔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화를 내고 있기에는 너무 늦었다 싶어 부랴부랴 어머니를 차에 태워 다시 병원으로 갔다. 어제 다녀간 환자를 알고 있던 의사가 상처를 보더니 나 보다 더 놀랜다. 씩씩거리는 딸한테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
“아이고 참. 할머니 팔 하나 자르고 싶어서 그래요? 할머니 같은 당뇨 환자는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데 큰일 날라고 왜 그랬어요?”
아직도 그런 무지몽매한 할머니가 있단 말이냐, 그런 무식한 할머니 말을 믿고 화상 입은 상처를 간장에 담군 할머니도 한심하다, 상당히 아팠을 것인데 어떻게 밤새 참으셨냐. 잘 못하면 팔을 자를 수도 있다, 어떤 노인은 자기가 당뇨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밭고랑에 박혀있는 유리에 발가락을 다쳤는데 당뇨가 있어서 잘 낫지 않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가 감염이 되어 패혈증으로 죽었다, 할머니도 까딱했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의사는 상처를 치료 하면서 나보다 더 잔소리를 했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뭐….”
시무룩한 어머니는 누굴 원망 할 수 있느냐며 어리석은 당신 자신한테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다. 다행히도 열은 아직 없으니 입원까지는 하지 않고 응급 처치와 항생제 주사를 놓아 주며 의사가 하는 말이, 집에 가셨다가 혹시 밤에라도 열이 오를지 모르니 열이 있으면 곧바로 모시고 와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환자의 상처를 본 의사는 어제 자기가 화상치료를 소홀히 한 결과가 아닌가하고 심히 놀랬던가 보다. 그런데 그 원인이 환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임을 알고 지금은 응급실문을 나서는 환자의 등을 어루만지며 주의를 주는 표정에는 자만심이 그득하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저녁거리 팔아 떡 사먹은 며느리 나무라듯 마음 놓고 어머니한테 핀잔을 했다.
“옛날에 중학교 까지나 나왔다는 양반이 그래 그 일자 무식쟁이 앉은뱅이 늙은이한테 붙잡혀서 상처 난 손가락을 간장에 절구고 있었어? 장조림처럼 불에다 조리자고는 안합디까? 죽은 사람도 살리고 사람도 만든다는 요즘 같은 문명시대에 상처 난 손가락을 간장에 절궜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까? 창피하지도 않어?. 어휴 속 터져, 정말. 그 빌어먹을 노인네가 자기 혼자만 앉은뱅이 된 것이 억울한 가베. 멀쩡한 사람 팔 하나 잘리는 것 볼려고 그러나? 다시는 그 노인네한테 가지 말어. 그 동안 봉사해준 대가가 그래 겨우 멀쩡하게 치료받고 온 상처 풀어 헤쳐 간장에 절궈서 죽기 직전까지 가게 해?”
“너무 그러지 말어. 그 할머니도 빨리 낫게 해 줄라고 그런 것이지 일부러 그랬것냐. 다 내가 어리석어서 그랬지.”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기는 알겄슈? 팔 하나 잘린 다음에나 알줄 알았더니.”
삼일동안 계속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치료를 하니 이제 그 기승을 부리던 염증이 한풀 꺾인 듯 위기는 모면한 것 같았다. 아무튼 주말을 끼고 형제들이 내려왔다.
이번에도 군청에 들러 벌금을 내고 대문을 들어서던 작은 아들이 어머니 손을 잡고는 킬킬거린다,
“박 박순씨! 방화범 전과자로 올라갔더구먼. 어머니는 ‘요 관리 대상자’ 로 군청에서 따로 관리 헌댜.”
형제들은 폭소를 터트리는데 박 박순씨 태연하게,
“그려? 재범이라 벌금도 많지야?”
“다 우리 선 후배들이여, 다음에 술 한 잔 먹기로 했으니 걱정 마슈.”
아들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더니 우리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이 백 만원 들었다고. 아들은 다시 어머니 손을 잡더니,
“전과자 박 박순씨! 아버지 산소도 다 탔겄네?”
“아녀. 느이 아버지 산소는 용케 피했다야.”
“허허, 열녀문 새워야 겄네. 젊어서 어머니 속 썩힌 생각 허면 아버지 산소만 홀딱 태워버렸다고 해도 어머니헌티 말할 사람 아무도 읎는디?”
어머니를 놀리는 작은 아들의 느물거리는 소리에 큰아들은 장남답게 비식비식 웃기는 하지만 장남으로서의 깊은 책임을 통감하는지 어머니 얼굴에서 눈을 거두지 못한다. 나는 깔깔거리면서도 간장에 담갔던 상처가 어쩌면 잘못되었을 수 도 있었을 상황을 떠 올리고,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현장으로 올라가 보았다. 붉은 진달래가 불붙듯 화려하고 이름 모를 들꽃들의 잔치가 한창일 뒷산에는 흡사 검은 보자기를 펼쳐 놓은 것 같이 깜깜했다. 머리를 까맣게 끄슬린 조상님들이 죄다 쳐다보며 ‘너희들 왔냐?’ 하신다. 정말 용케도 말짱한 아버지 산소가 오히려 면구스러워서 조상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리 조상님들, 종부덕분에 머리나 끄슬르고 수난이 말이 아니시구먼유.”
작은아들이 느물거리고 곧이어 방화범 전과자 박 박순께서 한마디 하신다.
“벌레 들이 다 죽어서 잔디는 잘 자랄껴.”
“벌레 두 번만 죽이다가는 자식들이 놀래서 먼저 죽겄슈.”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입을 비쭉거리는 아들, 또 한바탕 폭소,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에서는 불길이 넘어 올 것을 대비하여 물동이에 물을 담아 놓고 전쟁터에서 발사 명령을 기다리는 화살부대처럼 포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저녁상을 물리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무사한 어머니와 담소를 할 만큼 마음이 놓인 형제들은 상처 난 손가락을 간장에 절군 사연을 듣더니 각자가 터트리는 분통으로 흡사 서로를 할퀴는 싸움판을 방불케 했다.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다시 길길이 뛰었고 상처를 풀어헤친 그 노인에게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뱉어내기까지 했다. 그때 식은 찌개를 데워 상에 올리던 언니가 한마디 한다.
“그 노인 원망 할 것 없다. 걸음도 못 걷는 앉은뱅이 노인이 도망가는 엄마 쫓아와서 붙잡은 것도 아니고 그래 두 다리 멀쩡해 가지고 앉은뱅이 노인한테 붙잡혀서 간장에 담그란다고 담그는 엄마가 어리석지 뭐냐?”
어머니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자 주위가 잠시 조용해진다. 그래도 나는 상처를 처음 목격했던 만큼 좀 체로 진정치 못하고 다시는 그 노인한테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언니가 또 한마디 한다.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 어쩌면 엄마가 그 동안 그 할머니한테 봉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렇게 금방 낫게 해 주신 거라고 믿어, 분명 앞으로도 계속 보살펴 주라는 하느님 뜻이 있으실 거야.”
“그람 그람, 나 같은 늙은이를 누가 불러 주것냐, 그래도 이 늙은 나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는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다.”
“그러슈, 가셔서 간장독에 몸이라도 담그라면 또 푹 담그고 기슈.”
행여 잘못 되었을 수 도 있었던 상황을 털어내지 못한 나는 계속 어머니를 향한 핀잔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문제의 그 할머니는 일자무식답지 않게 배짱도 두둑하고 얼굴도 잘 생긴 정경부인감이다. 젊어서부터 고집과 대가 세기로 유명해서 영감님은 물론 문중 사람들 누구도 그 양반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었다. 늙고 병이 들어 앉은뱅이가 된 지금까지도 고집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여전했다.
작년에는 그 할머니 집안에 초상이 났었다. 망인이 시아버지의 소실 소생 이었지만 어떻든 시동생이었다. 망인의 아들이 종중산에 마땅한 자리를 잡아놓고 종부인 큰어머니를 찾아와서 그 자리에 묘를 쓰겠노라고 했다.
“이? 그 자리는 내 자리여 내가 들어갈 자리란 말여 안 되야.”
“큰 엄니도 참, 돌아가시지도 않으신 양반이 무슨 묘 자리를 잡아 놓구 그런데유?”
“왜 못혀. 나도 금방 갈틴디. 그 자리는 절대 안 되야.”
죽은 사람이 임자라는 종중산인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당신 자리라니, 어이가 없는 망인의 아들은 늙은이 노망이려니 하고 무시해 버렸다.
다음날, 아직 어둠이 머물러 있어 사람을 분간키 어려울 첫 새벽에 포크레인을 불러 올라 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 허연 할머니가 실바람에 흰머리를 나풀나풀 날리면서 떡 버티고 앉아 있더란다. 그 새벽에.
귀신인줄 알고 혼비백산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국은 그 자리를 피해서 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산을 내려 올 때는 망인 자손의 등에 업혀서 내려 왔다. 걸음도 걷지 못하는 노인이 아무리 뒷산이라지만 평지도 아닌 곳을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 갈수 있었을까. 보행기에 의지해서 마당에 한번 내려오려면 한나절이 걸리는 노인이 말이다. 동네사람들은 혀를 내 둘렀다. 아마도 초저녁부터 오르기 시작했으리라는 추측들이다. 그렇게 집요한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의 자식들은 성장하면서 거역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있었다면 곧 형틀에 묶지만 않았을 뿐 태형으로 다스렸다. 허옇게 늙어가는 자손들은 지금까지도 그 어머니의 뜻을 거역할 줄 모른다. 사람들은 그것도 할머니의 복이려니 한다.
농업이 산업화로 바뀐 현대의 농촌에는 집집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노인들이 소나무 껍데기 같은 얼굴을 하고 유령처럼 지키고 있는 시골은 대 낮인데도 동네가 텅 빈 것이 마치 죽은 마을 같다. 기력이 쇠한 노인들이 밖에 나오지 못하고 울안에서만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대로에는 개들이 자기 집 마당쯤으로 아는지 배 깔고 한가롭게 누워서 자동차가 다가와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犬)님께서 비켜주기를 기다리다 못한 자동차가 급기야 ‘빵’ 경적을 울리면 마지못해 일어나기는 하는데 그것도 냉큼 비키지 않는다. 몸을 한 번 부르르 털고, 가볍게 목 운동도 한 번 하고, 그리고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왜 일어나야 하는지 모른다는 무심한 표정이다.
“충청도는 개도 느려.”
친정 나들이 할 때마다 하는 소리다.
이렇게 노인들만 살고 있는 시골에서는 크고 작은 산불이 왕왕 일어나고 있었다. 눈이 어두운 노인들이 울안에 있는 마른낙엽을 태우다가 불씨를 놓치기 때문이다. 자손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 것이 또한 낙엽 태우는 일이다.
울안에서만 생활하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낙엽들을 긁어모아 태우는 일이 뭐 그리 어렵냐는 것이다.
아랫말 어떤 집 노인도 우리 어머니처럼 낙엽을 태우다가 산불을 내고 말았다. 자손들은 다시는 낙엽을 태우지 못하도록 경고 한답시고 아버지에게 벌금이 오백만원이나 나왔다고 부풀려 버렸다. 노인은 산불에 놀란 데다 그 많은 벌금까지 나왔다고 하자 기가 팍 죽어서 몇날며칠을 속으로만 끙끙 앓더니 결국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두 번씩이나 벌금을 내고도 어머니 마음 헤아려 술 한 잔 먹기로 했다고 둘러대는 동생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다음날 아침에 산불과 관련된 직원 하나가 ‘산불조심’ 이란 빨간 어깨띠를 두르고 선하게 웃으며 대문을 들어선다.
“할머니! 별일 없으시쥬?”
‘요 관리 대상자’인 전과자를 관리하기 위해 나온 산불 담당자였다. 우리는 직원의 손을 붙잡고 음료수를 대접하면서 고맙고 미안함을 전한다.
올해도 계절의 오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천상의 신비를 세상에 뿜어내는데 나에게는 여전히 머리를 까맣게 그을리고 앉아있던 조상님들 묘만 생생하다. 끝.
세화 김 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