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번개산행기
2006-01-04 19:55:56
새해 첫날, 광교산
일시 : 2006년 1월 1일, 10시 30분 토월약수터 출발
코스 : 토월 약수터 - 시루봉 - 형제봉 - 도마치 고개 두부집(오후 3시 도착)
참가 : 인식, 길래, 재봉, 인섭, 상국, 문수 내외. 총 7명
1.
이번 겨울 방학 동안 보충 수업도 없겠다, 당직 이틀을 빼면 40일이 온통 내 시간.
방학 계획표? 원칙?
복잡한 건 싫고 간단하게, ‘빈둥빈둥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기야 여태 내가 선생이 되어 맞이한 마흔 몇 개의 방학 중, 방안에서 빈둥거리고 보낸 방학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믿어줄라나?
12월 29, 30일은 안면도로 단체 연수를 떠났었다.
요즘은 어느 학교건 옛날과는 달리 교무실이 몇 개로 나뉘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일년 동안 한 울타리에서 지내도 서로 말 한 마디 나눠보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 이런 기회를 틈타 직원들 간에 유대감을 형성하고, 일년간 학사일정에 바삐 내몰린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그런 자리라 보면 된다.
어디 가든 나이 들면 나이 값 하느라 조심해야 한다. 벌써 나도 그런 나이가 되었다.
내가 교직을 처음 시작했던 무렵의 연수, 술이 취해 주임선생님(지금의 부장선생님)에게 장난삼아 대들었다.
“주임이 벼슬이가?”
술 많이 먹고, 사투리 많이 쓰고, 몸 굵은, 주임선생님은 하극상의 발언에 기가 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는 상황이라 화를 누를 수밖에 없었고, 도리어 껄걸 웃으며
“그래그래. 주임, 배슬 아이다. 내가 잘 못 했심다. 서샘, 화 푸이소. 자, 여게 술 한 잔 받으소.”
그 장면을 목격했던 다른 주임선생님들 입을 통해 다음날부터 학교에 소문이 나기를
“야... 상국이 절마, 새파란 놈이 무섭더라. 저거 주임보고, 주임이 벼슬이가? 그라면서 덤비는 것 있제? 절마... 물건이던데... 학교에 물건 하나 들어왔어”
술김에 툭! 공개적으로 뱉었다가 그 해의 명언이 된 “주임이 벼슬이가?”라는 말은 100명을 넘는 전 교직원들에게 번져 교무실이고 휴게실, 퇴근 후 술자리에서까지 참 많이도 입에 오르내렸었다.
나이 값 하는 것도 힘들지만
나이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이들과 보조 맞춰 놀아주는 것도 어려운 법.
횟집에서의 소주와 백세주로 입을 적시다가 급기야 파도 타기에 합세,
나이트에서 돌고 돌고,
당구장에서 좀 놀다가, 다시 컵라면을 놓고 소주와 맥주.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내 방에 돌아와 3시간 반, 잠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시원한 반지락국이 좋아 간단히 해장을 한다는 게 소주 반병, 점심은 삽교천에서 조개해물탕으로 속을 풀고, 남은 일정을 아무 탈 없이 소화했다.(솔직히 말하자면 교장선생님이 나를 따라다니며 당신 옷 찾아내라고, 세상에 교장 옷을 홀딱 뱃기는 선생이 어디 있어? 옷 찾아내지 못하면 파주나 포천으로 멀리 발령내야 하겠다는 엄포를 종일 들었지만, ㅋㅋ)
2. 12. 31일
딸아이를 구슬러 자전거를 타고 탄천을 달렸다.
내친 김에 이매동 너머까지 갔다 왔다. 걸으면 괜찮은데 자전거로 달리면 겨울바람이 얼굴에 매섭게 몰아친다. 다리가 아프다느니, 춥다느니, 어르고 달래 약 두 시간 달렸다.
집에 오니 다리가 뻐근하다.
‘새해 아침, 날씨가 흐려 해맞이는 어렵다 그러고, 어디 산에나 다녀올까?’
블러그에 광교산 간다는 번개 산행 공지를 올렸다. 김총이 바로 약수터에서 보자는 전갈이 뜬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새해 첫날이라 조용한가보다. 안되면 둘만 가지, 뭐.
뜻밖에 펭귄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 지금 내가 관악산 갔다 내려오는 길인데... 길래랑 진홍이, 그라고 ㅆㅂ 경도, 니 알제? 횡설수설."
펭귄 말은 정신을 잘 차리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다. 결론은 내일 광교산에 합류하겠다는 뜻이다. 그냥 ‘가께’ 그러면 될 걸, 무슨 원수 갚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목숨 걸고 38선을 넘어가는지 산행에 참가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다.
‘아, 내일 조심해야겠네. 펭귄이 이빨 갈고 오면 시껍하는데... 새해 첫날부터 펭귄한테 물리몬 신세 조진다. 조심, 조심!’
3. 새해 첫날
집을 나서는데 길래가 버스타고 바로 약수터로 간다는 전화, 이어 재봉 선사가 차를 미금역에 대겠다는 전화. 10시 10분 미금역, 쪼껨 늦겠다는 펭귄의 전화. 그럼 5명이구나. 새해 아침, 번개치곤 제법 많네?
그래도 생각보단 많이 늦지 않고 모습을 나타낸 펭귄, 바로 입에서 ㅆㅂ, ㅈㄷ를 연방 뱉어 놓는다.
“어이 펭귄, 니는 무슨 원한이 맺힜낄레 새해 첫날 아침부터 욕이 그리 마이 터지 나오노? 고마 해라.”
“그기 아이고, ㅆㅂ, 내가 ㅈㄷ...”
‘물 반, 고기 반’이 아니고 ‘욕 반, 말 반’이라 긴장하지 않으면 해석이 어렵다.
펭귄은 토월약수터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어제 관악산 산행의 승전보(?)를 토해낸다.
“아, 내가 어제 관악산 탔다 아이가? 근데 ㅆㅂ 경도가 왔대? 카카. 글마는 내가 송년회에서 처음 본 기라. 그래서 내가 만만하게 보고 군기 좀 잡을라 하다가 ㅆㅂ ㅈ대뿠다. ㅆㅂ 글마, 산에서 처음 보는데, 머가 그리 빠르노? 걸어가는 데 발이 안 보여, 발이. ㅆㅂ 내가 ㅈㄷ...”
약수터 앞에 차를 대고나니 각각 버스로 온 김총과 길래선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30분에 도착한다. 펭귄은 어제 관악에 같이 올랐던 길래를 보고 좋아서 또 ㅆㅂ, ㅈㄷ를 뿜어놓는다.
10시 30분, 약수터 출발, 날씨가 많이 풀렸다. 30분 오르다가 벤치에 쉬며 옷을 하나 벗었다. 재봉선사는 아예 바지를 벗는다. 기능성 내의를 처음 입고 온 모양인데 그걸 벗으려니 잠시 팬티바람이 된다. 기능성 내의가 어찌 생긴 건지 뒤집고 구경을 한다. 옷을 갈아입고 기다려도 펭귄이 쉽게 나타나질 않는다. 한참 있다 나타난 펭귄, 자기 딴엔 죽을힘을 다해 따라가고 있다는데, 어찌 하산을 강요하랴?
중간에 두 번, 펭귄 기다린다고 많이 쉬었다.
“펭귄이 해 내겠나?”
우리끼리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고민도 제법 했지만, 날씨도 많이 풀렸고 끝까지 산행을 고집하는 본인의 의지를 믿기로 했다.
시루봉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남들 사진도 찍어주고 시간을 제법 보냈다. 형제봉에 닿았다는 문수의 전화가 왔다. 아직 펭귄은 안 왔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펭귄을 두고 형제봉까지 바로 치고 내려갈 수도 없었다. 문수한테 시루봉으로 찾아오라하고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요기를 하기로 했다.
아침을 안 먹고 나온 길래가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더니, 갖고 온 떡을 재봉이랑 나눠 먹더니만 “떡은 떡인데 빵 같은 떡”이라며 아주 맛있게 먹는다.
오늘 산행은 광교산, 자주 오던 산이라 얕봐서 그런지 술도 없고 달랑 내가 갖고 간 컵 라면 두 개가 전부다. 컵 라면 두개로 넷이 나눠 먹고, 다시 커피를 다 마셔가는데 저기 내려오는 펭귄이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아, 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왔다. 너그 지금 뭐 묵노? 커피? ㅆㅂ 내도 쫌 도!”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차고 한참 내려갔다.
토끼재 앞에서 문수와 만날 수 있었다. 예쁜 여인네가 곁에 섰다.
재봉선사가 눈이 똥그래져 물었댔나?
“문수야, 너그 애인이가?”
과묵한 문수, 씨익 웃으며
“무슨 그런 말을... 우리 집사람.”
문수 혼자 오는 줄 알았는데 동부인해 경기대쪽에서 형제봉을 치고 올라왔고, 다시 시루봉으로 이동 중에 우릴 만난 것이다.
“우짜꼬?”
우리들은 잠시 망설였다.
김총, 판단이 빠르다.
“토끼재 계단으로 내려가면 길은 아주 쉬운데 산행 코스가 짧고, 두부집에서 뒤풀이 할 예정도 있었으니 처음 계획한대로 밀고 나가자.”
형제봉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문수 내외는 새해 첫날에 형제봉을 두 번 오른 셈이다. 형제봉에서 문수 사진을 찍어주고 시간을 보내도 후미가 오지 않는다. 펭귄은 길래 선사가 책임지고 데리고 올 거니까 결국 우리가 먼저 내려왔다. 형제봉에서 도마치 고개로 내려오는 하산길이 참 좋다. 낙엽이랑 갈비(떨어진 솔잎)가 카펫처럼 쌓인 한적한 길, 이 길이 좋아 광교산은 올해 몇 번 더 올 것 같다.
4.
두부집에 손님이 많다.
두부김치 두 개에 도토리전, 그리고 동동주와 잔치국수로 뒤풀이를 했다.
펭귄도 두부김치 맛에 홀딱 반했다.
“야, 진짜 맛있네? 어제 관악산 그거는 여게 쨉도 안 되겠네?”
펭귄 앞자리에 낱담배가 수북해 재봉이가 물었다.
“그기 머꼬?”
“아니 나는 재봉이 니가 담배 안 피우는 줄 알고, 담배는 떨어졌제. 그래서 주인한테 가서 얻어왔다 아이가. 캭캭.”
“나이 좀 돼 보이제, 말끝 이상하게 흐리면서 담배 좀 돌라카는데, 안 줄 수 있겠나? 하이튼 펭귄, 재주 좋다.”
마을버스 타는 데 까지 길이 제법 되는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버스가 한 대 온다. 김총이 달려가 버스를 잡고, 나머지 모두 펭귄 말대로라면 뭐 빠지게 달려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수원에 가야할 문수내외랑 인섭이는 방향이 같고, 재봉이 차로 길래와 펭귄 서현까지 갈 수 있으니 다들 중간에 내리고 혼자 미금역까지 와서 집에 왔다. 그러니까 2차가 없어 간만에 깔끔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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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는 끝났고
사족으로, 살아가는 근황을 대충 전하면
♣ 1월 2일,
아침 10시 30분에 혼자 배낭을 메고 자전거 출발.
탄천을 달려 한강까지 갔다.
돌아오며 벤치에 앉아 잠시 컵라면 하나 끓여먹고, 열심히 저어오니 왕복 54Km, 4시간 8분 걸렸다. 찬 바람을 맞아 그런지 입술 한 쪽이 터질 것 같다.
1월 2일 밤.
몸이 피곤한 아내가 내일, 친정 엄마 모시고 찜질방에 갔으면 한다.
'아, 나는 찜질방에 가도 오래 못 있는데....' 갑자기 골치가 아프기 시작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더니
“안양에 재래식으로 하는 한증막이 있다는데... 한증막 앞에 수리산인가 뭔가 등산로가 있다네?”
"뭐라?"
갑자기 머리가 개운해진다. 타협을 했다.
“그럼, 당신이 장모님이랑 초아를 데리고 한증막에 가있을 동안, 나는 산에 갔다 오면 되겠네? 4시간 정도 산행하면 되겠제?”
♣ 1월 3일 수리산.
안양 <병목안>동네, <수리산 한증막>에 여자 셋을 맡겨놓고(?) 12시에 혼자 산에 올랐다.
관모봉, 태을봉을 거쳐 수리봉 조금 못 미친 곳 까지 가서 하산을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오니 딱 3시간 40분 걸렸다. 수안봉인지 수암봉인지 거기가 좋다던데 거길 다녀오려니 시간이 안 맞는다며 산에서 만난 사람이 말린 까닭이다. 언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 1월 4일.
결국 한쪽 입술이 터졌다.
오늘은 자전거로 2시간 코스, 모란까지 다녀오다.
자전거를 타니 얼마나 추운지 얼굴도 따갑고, 발이 시리고, 손도 시려 혼났다.
‘복면 마스크를 하고 올 걸’ 후회를 많이 했다.
내일 아침 7시 30분, 강원도 횡성 어답산에 따라가기로 했다.
새해 광교산에 갔다가 산악회 게시판을 보니
바로 우리 집 앞에 산악회 관광차가 선다는데, 우찌 안 가 보겠노?
날이 많이 추워진다던데, 갔다 와서 토요일
잠실에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