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19)
2019-02-26 10:52:50
제 736차 인릉산 정기산행기(시산제)
1. 2019.2.23(토) 인릉산
2. 참가: 거훈, 민영, 길수, 광호, 재일, 은수, 병효, 상국, 영인, 효용, 경호, 진운, 유, 해정, 길래(15명) + 뒷풀이 진수, 일기 (총 17명)
30산우회 1년 임기의 산행대장을 누가 맡든, 세 번의 고개를 넘는다. 시산제, 기념 산행, 송년회가 그것인데 올해 산행대장 또5공의 첫 고개 시산제를 인릉산에서 올렸다. 제 736차 정기산행이다.
2006년부터 매년 예봉산에서 올리던 시산제를 이번에 인릉산으로 바꿨다. 신령님에게 밉보여 좋은 것 없어 산을 바꾼다는 것 그리 쉬운 게 아니지만, 십 수 년 동안 산우회 친구들의 노화가 눈에 뛸 만큼 진행되었으니 예봉산 신령님도 충분히 이해해 주셨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간 예봉산에서 시산제 하는데 물심양면 큰 도움을 줬던, 예봉산 산신령 친척인 재봉이 빽도 상당히 작용했다. 재봉아 고마워~
2006년 1월 15일 시산제가 처음 열렸던 제 75차 예봉산 정기산행기를 읽어보았다. 許샘 포함 19명이 재미나게 산을 탔다. 아... 지난 1월 우리 곁을 떠나 멀리 가버린 펭귄이 컨디션 난조로 숨을 가삐 쉬면서 “ㅆㅂ ㅆㅂ... ㅈㄸ...”를 반복하고 있는 사진도 있고, 아랫도리 내복 입고 왔던 진홍이는 내복을 벗으며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19禁 얘기로 바빴다. 그날 재봉 사무실에 집결해서 커피 한잔씩 마시고 9시 30분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에 또5공이 올린 산행 공고, ‘옛골 버스종점에 9시 30분 집결’
그리운 許샘은 없고, 성씨만 같고 능글맞은 許유가 “쫌 늦차주이소~” 태클을 건다.
또5공, 10시로 늦춰줬더니 거기서 또 10분을 쪼른다.
결국 10시 10분. 許유가 윗옷을 들춰 허연 배를 실실 문지르면서 박카스 두 통 들고 왔다.
10시 10분, 쌍십 시분이라... 파고다 공원 아닌 옛골 종점에서 우리들은 박카스 한 병씩 마시고 인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우회에서 얼마 전에 한 번 다녀왔다지만 나는 인릉산이 처음이다.
앞서가던 박식한 또5공이 설명한다. 인릉(仁陵)은 조선 순조와 그 왕후가 합장 된 능이고, 헌릉(獻陵)은 태종과 왕후가 묻힌 능이다. 보통 둘을 합쳐 헌인릉(獻仁陵)이라고도 부른단다.
뒤따라 가다가 내가 중얼거렸다.
“태종과 순조라... 왕권으로 보면 참... 극과 극이네.”
그 말에 흘낏 나를 뒤돌아보던 또5공, 갑자기 생각난 듯, “이번 산행기... 좀 써소!”
미세먼지가 많이 끼어 그렇나, 세상은 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산행기에 참조하려고 컴퓨터로 인릉산을 찾아보니 ‘이름은 인릉의 朝山(신하 산)에서 유래되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천림산(天臨山)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높이 326.5m)’라고 되어 있다.
태종이 순조보다 400년 이상의 윗대 어른이고 능(陵)도 먼저 들어섰는데, 그리고 대동여지도(1861)는 인릉(1857년 합장)보다 늦은 것을 감안하면 내가 풍수에 무지해서인지 몰라도 인릉산 이름의 유래가 왠지 모르게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맞지 않는 게 어디 그뿐이랴.
그래도 산은 잘 올랐다. 인릉산 정상석이 있는 곳에 자리를 펴고, 키 큰 친구들이 나뭇가지 잡아당겨 천상운집 기(旗)를 걸고, 아직도 담배 피우는 친구들 라이터를 빌려 향 피우고 촛불 올리고, 효용 진운 은수 민영 영인이 준비한 제물. 옥로주, 사과, 배, 귤, 북어, 오징어, 곶감에 또4공 재일이가 가져온 뜨끈한 시루떡까지 푸짐하게 올려놓고 제주(祭主)인 또5공이 소리 높여 인릉산 산신령을 불러 모셔 축문을 읽고, 영원한 집사 길래가 제를 진행했다. 돼지저금통이 없어 효용이 컵을 돈통으로 삼았을 뿐, 인간퇴주잔들은 예나 지금이나 역할이 같았다.
모두들 엎드려 절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죄다 뱃살이 나와서 몸이 잘 접히질 않았다. 게다가 땅이 약간 밑으로 기울어 억지로 절을 하다 보니 앞으로 굴러갈 판이다.
세월이 변했다. 몸이 노화되고 마음도 느슨해졌다. 머리숱은 빠지고, 말은 많아졌다. 눈 밑은 쳐지고, 말 할 때 눈꼬리가 올라갔다. 쓸 데 없는 일도 눈에 쌍심지를 켜다보니 주름이 늘어나고 고집도 세졌다. 아랫도리 힘 빠진 대신 양기가 온통 입으로 올랐다. 말(言)로는 뭔들 못 하랴,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범바위 쉼터에서 맞은편 헌인릉과 국정원을 본다. 몇몇은 철봉에 매달려 끙끙댄다. FM대로는 못 하더라도 배치기는 될 줄 알았는데, 무리하게 배치기 하다가는 허리 나가는 수가 있어 죄다 꼬랑지를 내렸다. 구경하던 모두, 화려했던 옛날을 생각한다. 그래도 턱걸이를 제대로 하는 친구가 있었으니, 병효 3개, 재일이 4개. 박수를 받았다. 병효는 요즘도 가끔 인공 암벽 등반장을 찾아 손가락 끝 힘을 기르는 덕에 긴 팔 원숭이처럼 한 손으로 철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린다. 할리 오토바이도 타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멋진 친구다.
많이 걸었다.
버스를 타고 뒤풀이 장소인 자곡로 201 ‘메밀마루’ 2층으로 갔다. 진수와 일기가 마치 어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반겨준다. 마음씨 좋아 뵈는 돌부처가 되어간다.
낙지볶음, 만둣국, 메밀전병, 맨 끝에 나온 묵사발까지... 깔끔하고 맛있었다.
민영이 가져온 45도 짜리 옥로주를 다 비웠는데 길수가 빈병을 청한다. 거기다 소주를 부어 흔들었다. 헹궈 마신 셈인데 그래도 향이 남아있다고 좋아했다. 내 앞자리에 앉은 길수가 하는 말, “나는 직장 댕길 때, 내 잔에 술 비었는데 안 따라주는 놈이 제일 밉더라.”
아이고, 내가 미운 놈 안 될라고 자주 부었다. 그러다보니 길수가 술에 묵사발 되어 완전 가삤다.
내 옆에는 許샘 아닌 許유가 앉았다. 술은 안 마시면서 옷을 걷어놓고 배를 슬슬 문지른다. 시계방향으로 돌렸다가, 반대로 돌렸다가, 손바닥이 닳는 지, 뱃가죽이 닳는 지, 손바닥을 돌리는 지, 맷돌을 돌리는 지, 술은 입에도 안 대면서 정신이 없다. 아무튼 틈나면 비타민 먹고 맷돌(?) 돌리기 좋아하는 許유가 갑자기 카톡의 사진을 보더니 흥분한다. 들머리에서 찍은 단체사진에 자기 얼굴이 반쪽만 나왔다고, 누가 찍었냐며 고함을 친다. 전에는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왔다고 난리더니...
얼마 전에 아들 혼사를 치른 상정이가 시산제에 보태라며 산우회에 30만원을 보내왔다. 모두들 상정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묵사발 날 때까지 배부르게 잘 먹었다.
수서역까지 걸어와 헤어졌다. 영감들 가봤자 뻔하다. 시계방향은 집이고, 반대방향은 당구장에 노래방 아니면 술집이다. 죽전은 시계방향에 있었다.
아참, 다음 주 산행은 강화도에 1박2일 간다더라. 아까 뒤풀이 할 때 또5공이 왕년에 검사 땟갈 포띠 내더라.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들며 물었다.
“그래서... 가나? 안 가나?”
아이고 무서버라. 맷돌 許는 이리 들리더란다.
"했나? 안 했나?"
許, 조심하래이. 맷돌 자루 빠지몬 우찌 되는 지 알제? 어처구니 없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