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회 아이스케키 장사
“그만 하시고, 아이스케키나 주세유”
“먼저 돈을 내라 두 개에 일환이다, 1환씩 받으면 반은 남는 장사니까, 잘해봐, 여기 아이스케키 통이다.”
어깨에 걸 수 있는 끝이 달린 나무 상자 속에 얼음 조각과 아이스케이크 20개씩을 넣어 주었다.
동인동 로터리를 지나 3가 쪽으로 나송란히 걸었다.
한여름 날씨가 뜨거웠다.
철이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땀을 흘리면서 걸어가고 순이는 검정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철이 옆에 따라 붙어 걸었다.
철이가 아이스케키 상자를 두 개 들고 있었다.
“아이스케키 사려”
사람이 많은 곳을 찾으려 해도 환한 신작로만 펼쳐졌다.
동인동 4가 쯤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이제 막 학생들이 학교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이스케키”
철이가 큰소리를 지르자 학생들이 몰려왔다.
“야 시원하겠다. 하나 얼만 교”
“1환이다.”
“두개 주이소, 친구하고 먹구로요.”
“아나”
학생들이 우 몰려와서 금세 바닥이 났다.
둘은 신이 났다.
“와- 신난다.”
서로 얼싸 안고 춤을 추었다.
이 광경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벙거지를 쓴 남자가 쳐다보았다.
벙거지가 철이 쪽으로 왔다.
“너거들 여 잠간 와봐라, 남의 구역에서 아이스케키를 팔아?, 누구한테 허락 받았어?”
“아니유.....”
“그렇겠지, 앞으로 여서 장사 할라꼬 하면, 나 한태 하루에 10환씩 내야한다, 다 너거들 돌봐주는 값이다, 아니면 여서 장사 못한다, 알겠나?”
철이는 순이 손을 꼭 잡았다.
작은 눈이 옆으로 쪽 찢어지고 입술이 두툼하며 털이 많이 난 배불뚝이 아저씨가 큰소리치니 철이는 겁을 먹었다.
“야 – 여기 10환이유”
“알았다, 나는 장씨 어른이라꼬 한다, 장사 잘해서 매일 10환씩 내라”
“야 이제 가도 돼지유?”
“낼 보자”
철이는 등줄기에 식을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참고 있다가 얼른 순이와
도망쳤다.
첫날 벌은 10환만 들고 국수를 사서 저녁에 끓였다.
그리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었다.
모기가 물어도 땀이 흘러도 한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순이가 아침에도 국수를 삶아서 철이와 마주 앉아 먹었다.
“국수만 먹으니 금세 배고프다.”
순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알았다, 오늘 저녁에는 밥해먹자, 자 나가자”
둘이는 아이스케키 상자를 둘러매고, 어제 갔던 학교 앞으로 가지 못하고 칠성시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천동 방천을 끼고 한참을 걸으니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나왔다.
시장에는 시골에서 우마차를 끌고 올라와서 열무며, 시금치며, 파를 즉석에서 팔아 넘기는 사람들도 있고, 꽃나무와 모종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순이는 빨간 장미와 분홍 장미꽃에 눈이 꽂혀서 움직일 줄 몰랐다.
“순아 가자, 아이스케키 다 녹겠다.”
“장미가 얼마씩 해요, 제가 다 팔아드릴게요.”
순이는 꽃 장사에게 장미를 몽땅 샀다.
“그걸 어떻게 다 팔려고 해”
“자신 있어 두고 봐”
순이는 장미를 다발로 만들어서 세송이 씩 끈으로 묶었다.
82회 장미꽃집
“장미꽃 사세요, 향기를 사세요.”
아저씨가 순이 앞으로 다가왔다.
“장미 꽃 주소, 집에 가져가면 마누라가 좋아하겠다. 근데 아가씨도 장미꽃 같다.”
“감사 해유, 5환이유”
“충청도 아가씨구만”
“야 ”
“나도 상주 사람이라오, 마이 파슈”
“고맙습니다.”
순이는 꽃을 팔면서 생기를 얻었다.
아저씨들이 지나가면서 장미꽃 같은 아기씨가 꽃을 판다고 수군거렸다.
“저도 보고 꽃도 보고 사가요.”
“그러네! 아가씨가 더 예쁘다.”
“여기요.”
“아가씨 나도 하나도고, 장미는 집 안에다 갖다 놓으면 향기도 좋고 분위기도 살고 좋다. ♪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녀만 만나 면은 그녀만 만나 면은♬~~~”
자주 오는 아저씨들은 장미꽃을 들고 봉봉 사중창단이 부른 [꽃집의 아가씨]를 노래하면서 꽃을 사갔다.
아주머니들도 꽃을 사갔다.
순식간에 꽃을 다 팔고 100환을 벌었다.
철이도 아이스케키를 다 팔아서 매일 20 환씩을 남겼다.
“우리 돈 벌었으니 고기도 좀 사먹자.”
“그래”
순이와 철이는 연탄난로 위에 얹은 석쇠에서 지글 지글 굽히는 양념 고기를 시켜서 먹었다.
“햐 이제 눈이 떠진다.”
순이가 배를 만지면서 웃었다.
순이와 철이는 아이스케키 장사를 그만두고, 둘이 합해서 꽃 장사를 시작했다.
시장 통 길옆에 좌판을 깔고 꽃을 팔았다.
꽃을 받는 데로 다 파니 여기저기 꽃장수들이 경쟁적으로 생겨서 10여개가 되었다.
“여기 장미꽃 같은 아가씨가 파는 꽃이 젤 좋아”
사람들은 다투어 다녀갔다.
“집에 꽃을 가져가니 집사람이 엄청 좋아 하데”
“그럼, 집안도 환하고 말야, 아가씨 나도 한 다발 주구려”
술 한 잔씩 마신 아저씨들이 몰려들었다.
철이는 남자들이 ‘아가씨’ ‘아가씨’하면서 치근덕거려도 장사이기에 말을 못하고, 행여 순이가 남자들로 받는 추파를 호응이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 좌불안석이었다.
그래도 순이가 꽃을 잘 다듬고 멋을 내서 한 다발씩 꽃을 팔고, 돈 통 가득 돈이 쌓이면 저녁에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우선 가게부터 얻고, 집을 사야지”
순이는 저녁마다 돈을 세면서 다짐했다.
“나중에 돈을 더 벌면 시골에 너희 집과 우리 집도 다시 짓고 해서 나도 효도해야지”
철이는 집에 돌아와서 방바닥에 순이 옆에 비스듬히 누워서 발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왜 재수 없게 발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누워있어, 얼른 돈을 잘 보관이나 해, 나 밥 할게”
철이는 딱히 돈을 보관할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벽에 바른 벽지를 찢고 그 속에다 돈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작은 가게를 얻어서 간판을 달았다.
[장미 꽃집]
가게 옆으로 난 길에도 장미를 다발로 묶어서 내놓았다.
칠성동 시장의 명물이 된 [장미 꽃집]에서 교동에서 칠성동 시장으로 가는 길은 온통 장미의 거리가 되었다.
하다못해 철로 밑 터널에도 좁은 통로 잡상인 거리에도 꽃장사가 생겼다.
철로 밑 질퍽거리는 [후미끼리] 통로에는 사람들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에 양쪽으로 미군용 품이나, 껌이나 과자류, 주방기구, 바늘류, 구두, 튀김류 등을 파는 장사치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칠성동 시장에서 동인동 로터리나 양키(교동)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람마다 장미 한 송이씩 들고 다녔다.
“야, 장미 봐라.”
“어디서 샀어요.”
“칠성동 장미 꽃집에서…….”
학생들은 학교가 파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미를 한 송이씩 사들고 집으로 갔다.
저녁때면 아저씨들이 장미를 사들고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철이와 순이는 가게도 커지고, 순식간에 집을 사고 땅 살돈도 생겼다.
저녁마다 돈을 가마니에 담아서 집으로 들고 갔다.
단칸방에 어디 돈을 숨길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서 집을 사기로 했다.
83회 노래기 벌레
벽지를 찢고 돈을 꺼내니 초가집에 기생하는 노래기 벌레가 줄줄이 나왔다.
천정으로 기어 올라간 노래기가 순이 가슴위로 탁- 떨어졌다.
“엄마 내 가슴에 벌레가 들어갔어, 꺼내 줘”
순이는 철이에게 소리쳤다.
철이는 순이 블라우스를 벗기고 노래기를 털어냈다.
“새댁 무슨 일 났어?”
주인집 할머니가 고개를 부엌으로 들이 밀면서 물었다.
“아니유 벌레가 가슴으로 ....”
“안 물어, 털어내면 돼, 냄새는 심하지, 참 겁은 많아서 히 히”
할머니가 ‘히히’ 하며 무심하게 웃었다.
“우리 정말 이사 가자 응?”
순이는 벌레가 징그럽고 무서워서 말했다.
“그랴, 돈 쌓을 곳도 없는 데 가자 ”
순이는 첫 경험의 낯선 대구생활의 두려움에 과감하게 맞서서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철이는 동인동 3가에 방이 세 개이고, 우물이 있고, 마당에 화단이 있고 감나무와 포도나무가 있는 작은 기와집을 샀다.
집 둘레 담은 시골의 쥐똥나무 울타리가 아닌 송판으로 되어 있었다.
꽃집에서 가져오는 돈은 안방 다락에 쌓았다.
순이네 장미 꽃집이 사람들로 북적이니 도매상으로 변경했다.
시골에 기별해서 송 사리가 찾아왔다.
송 사리는 성공 해가는 철이네 부부 집에 찾아와서 둘을 앞에 앉혀두고 말했다.
“사람 사는 게 별거여, 니들 잘 살아 봐”
흐뭇한 표정으로 다녀갔다.
송 사리가 집에 돌아갔다.
“여보, 아이들 찾았어.”
“어디서요, 대구에서 집까지 사고 꽃집도 하며 성공해서 잘 살고 있더라고...”
“그랴? 걱정 했는데 잘 됐네, 당장 다시 가봅시다.”
“가자구, 근데 저녁인데?”
“우리 아기 순이가 집 나가고 3년이 다돼서 보고 싶은데, 저녁이면 대수요, 당신 차도 있는데”
“가자”
송 사리 는 단숨에 간난 네와 동행해서 대구로 향했다.
“여보 잘됐다, 그치”
“암”
간난 네는 참 좋았다.
보은에서 밤새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새벽 3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대문을 두드리니 철이가 부수수 일어나서 문 앞으로 나왔다.
“이 새벽에 누구세유”
“나다. 순이 아버지여”
“엄마도 있고”
“누구라구? 엄마”
순이는 맨발에 잠 웃을 걸치고 나왔다.
“엄마 미안해, 흐 흐 흑”
간난 네는 한 팔로 순이를 덥석 안고 울면서 말했다.
“가시나 죽은 중 알았다. 흐 흐 흑”
“반갑지? 걱정 했는데, 철이 하고 이렇게 성공 했으니 정말 장하다.
이제 아이 낳고 잘살면 다 묻히는 거지”
“그러게 말유”
“어여 방안으로 들어가세 유”“엄마, 배고프지 내가 밥 하께”
“아 좀 더 자고”“아니유, 이제 일어나서 시장도 가야 하니 께, 좀 만 기다리세 유”순이는 번개 같이 밥하고 생선 굽고 된장 끓여서 밥상을 내왔다.
“우리 딸한테 밥을 다 얻어먹네! 엉 엉”“고마 우소”
송 사리가 간난 네 등을 쓸었다.
이불을 한쪽으로 밀고 놓은 밥상 앞에서 순이도 마주 앉아서 울었다.
“엄마, 어여 먹어”
“그랴, 고맙다 배 서방도 먹세”
84회 배서방
어느새 철이는 배서방이 되었다.
장미 꽃집에 들른 송 사리와 간난 네는 연신 기분이 좋았다.
간난네가 보기에 아직은 설 차린 꽃가게여서 변변한 의자도 없었지만, 화분위에 걸터앉아서 꽃다발이 하나씩 팔려나가는 모습에 너무나 즐거웠다.
송 사리와 간난 네가 순이가 사준 옷을 한 벌씩 입고 쥐똥마을로 돌아왔다.
온 동네가 궁금하던 차에 간난 네로 모였다.
“다 잘 된 일이여 축하하네, 한 점수가 와서 말했다”
그 사이에 배 강복이는 권 수인과 함께 대구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야들아, 여서 뭐하는 거여”
“죄송해요. 말씀 못 드려서요.”
철이는 무릎 꿇고 말했다.
“일어나라 괜찮다, 행복하게 살면 된다, 고맙다,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권 수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철이를 손을 잡고 일으키며 안아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살아주면 된다.”
배 강복이도 순이의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잘살겠습니다.”
철이는 순이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순이는 한상 가득 생선구이며, 불고기로 점심 식사를 차려나왔다.
배 강복이와 권 수인이 기쁨과 행복이 담긴 밥상을 대하고 평화롭게 수저를 들었다. 그날 또 송 사리가 간난 네를 트럭에 실고 찾아왔다.
“송서방 반갑소.”
“강복이 형 이렇게 된 바에 아예 여기서 혼례식을 치룹시다요.”
“그라지 뭐, 남들 보기도 그렇고....”
그 길로 송 사리는 차를 몰고 영천 은혜사로 가서 서호 주지 스님 앞에서
혼례를 치렀다.
절간의 향은 결혼식의 시작부터 내내 향기로웠다.
“스님 이제 아이들 짝을 지었으니 잘되라고 빌어주세요.”
하면서 양가에서 권 수인과 간난 네가 부처님 앞으로 나와서 돈 봉투를 올렸다.
“싸워도 배신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두 사람의 피가 섞여 있으니, 썩지 않도록 불도를 잘 이행하고 기도를 많이 하소”
서호 주지스님은 왜 피가 썩는지는 알 수 없는 말을 말했다.
하지만 양가는 아이들이 야반도주했다는 풍문을 해소하게 되고, 빠르게 성공하여 잘 살고 결혼식까지 올렸으니 이제는 떳떳하고, 하나도 꿀릴 것이 없었다.
철이와 순이는 양쪽 부모님을 모시고 칠성시장 소고기 석쇠구이 집으로 갔다.
“어서 오이소, 부모님 모시고 왔는교,”
“야 ”
철이는 고기 집 사장이 물어봐도 신이 난다.
“오늘은 무슨 고기로 드릴까요?”
“오늘은 소고기로 주세요. 부모님이 오셨으니께”
고기가 익는 동안 간난 네는 연신 눈물을 흘린다.
집 떠나기 전에 무너매 어미가 ‘큰일 났어, 큰일이여’ 하던 소리가 내내 맘속에 켕기고 있었다.
간난 네가 봐도 순이와 철이는 잘 맞는 짝 같았다.
둘이 도망쳐 나왔어도 맨손으로 자수성가해서 부모를 불러 내리고, 거기다
돌이네 과수원 뒤에 있는 깨밭을 사도록 돈까지 집으로 보낸 것을 생각만 해도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그뿐이랴!
순이네 만이 아니라, 철이는 아버지에게 석이가 공부하는 토굴을 사드렸다.
폐금강 토굴은 나중에라도 금이 나오면 투자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금광도 사주었지 허 허 ”
배 강복이가 철이가 최고라고 추겨주었다.
그 말에 권 수인은 눈물이 났다.
늘 구박만 받던 철이가 칭찬을 들으니 말이었다.
“이 존날 왜 울고 그랴?”
“아니여 아니여라”
권 수인은 손을 흔들었다.
85회 꽃 도매상
“아니긴 뭐가 아니여, 어머이는 뭔 생각이 그리 많아 유? 고기 타는 구먼 유, 어여 잡셔유”
순이는 시엄마가 고기를 집어 먹도록 접시에 구운 고기를 연신 날랐다.
“아버님, 우리가 꽃집 도매상을 열 태니까, 아버님은 꽃 배달이나 도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아 그랴, 내가 고향에다 꽃 재배도 하고, 여기 저기 소매상에 꽃 배달도 도와주지 암”
송 사리도 기뻤다.
“사돈이 도와주면 좋지요.“
배 강복이가 힘이 났다.
“이제는 자식들이나 사돈끼리 손발이 척척 맞는 구먼요.”
간난 네는 왼손을 안으로 꼬면서 말했다.
건너편 자리에서 칠득이 이복 동생 설 빙수가 식탁을 집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아니 여까정, 웬일들 이슈?”
“아 오늘 철이 하고 순이가 결혼식을 해서 양가가 합창해서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왔지”
“강복이 형, 송 기사 형 축하 드려유, 아들이 아직 나이가 이르긴 해도 나이가 대수여 결혼하고 잘살면 되지”
설 빙수는 낡은 군복을 입고 건장한 모습으로 철이와 순이의 결혼을 축하하며 웃었다.
칠득이 보다는 똑똑한 설 빙수지만, 남한테 도움은 받고는 나 몰라라 하며, 쥐똥마을보다 도시로 싸돌다가 군에 갔다 온 느낌을 받았고, 돈도 없는 초라한 차림이라 얼른 보내고 싶었다.
“군에는 갔다 왔는가?”
송 사리는 눈치가 빨랐다.
“야 제대한지 반년은 되었슈”
“자네 밥값도 내가 내고 감세”
송 사리는 얼른 말하고 설 빙수가 빨리 가기를 채근했다.
“고맙습니다. 또 봐유”
설 빙수가 나가고 난 뒤에 소리쳤다.
“보기는 뭘 또 보냐?”
이번에는 배 강복이가 말했다.
“저 사람은 만나봐야 도움이 안돼”
“그렇지 유”
권 수인도 한마디 했다.
“철아 조심혀”
간난 네도 거들었다.
배 강복이와 권 수인이 석이 뒷바라지하러 먼저 쥐똥마을로 올라갔다.
권 수인은 송 사리를 만나면 마음이 켕기기도 하고, 사돈끼리 한집에 머물며 씻고 벗기가 남사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송 사리는 남의 남자지만, 몸에 감각이 남아 있는 상대였다.
간난 네 보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순이네 새집에 남은 부모에게 순이가 재롱을 떨었다.
“아부지 어머이, 우리 옷 사러 가요.”
“저번에도 사주었잖아, 이대로 좋아”
간난 네는 자기가 입은 옥양목 치마 고리를 흩어보면서 말했다.
“그건 그거고요, 너무 시골스러워서 내가 어머이 한복하고, 아부지 신사복을 사드리려고 하는 겨”
“아 실없다, 관도”
“아버님 가세유”
철이가 송 사리 손을 잡고 앞섰다.
양복점에서 기성복 신사복을 사 입고 나니, 송 사리의 얼굴이 환했다.
간난 네도 한복집에서 황금색 공단한복 한 벌을 사 입고 날라 갈 듯이 기뻤다.
“근데 어쩌다 이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된거여?”
송 사리 는 거침없이 돈을 쓰는 철이 내외에게 물었다.
“꽃보다 더 예쁜 순이 덕이지유 뭐, 순이가 꽃이유 꽃!”
“그럼요, 내가 꽃이지 예쁜 꽃, 어머이 아부지 이쁘게 낳아 주셔서 고마워유.”
순이는 모두의 시선을 의식하고 환하게 웃었다.
순이네 꽃은 관공서의 승진 행사는 물론 결혼식장, 장례식장, 행사장 등에도 팔려나갔다.
잔머리가 잘 도는 철이는 그런 쪽으로 사업을 넓혀 나갔다.
철이는 미 8군에서 중고 자동차를 사서 몰았다.
송 사리 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돈이 있는 표를 내고 다녔다.
철이는 이미 부자가 된 것처럼 행동해서 부자가 된 것으로 알고 어리석게 살았다.
86회 도박
배려심이 없으면 늘 부러워하면서 산다
어린시절 내가 감기에 걸려서
'에취' 하고 재체기를 했습니다.
충청도 보은 우리 마을에서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하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옆에 앉으신 어른이
"못된 감기는 저 건너 [장한 선종]이네로 썩- 나가라" 했습니다.
어린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습니다.
왜 재체기가 장한 선종이네로 가야 할까요 !
마을의 장한 선종이네는 집이 99칸인 부자집이고,
대대로 벼술을 한 마을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취 저 건너 선종이네로 썩 나가라'
하며 선종이네를 부러워 했습니다.
사람들은 부러운 그 속네를 나쁘게 표현하면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다행이도 선종이네는 못된 마을 사람들의 험담에도 끄떡도 하지 않고
대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남이 잘 되면 비웃고 부러워 이죽거리는 사람들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
불쌍한 머슴들이 몰려서 주인을 아무리 험담하더라도
주인은 늘 잘되게 마련입니다.
냐하면 주인들은 항상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못된 머슴들에게 몽둥이를 칠 준비가 항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험담하기보다 남을 축하하고 축복하면
그 복이 오히려 자기에게 돌아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축복하는 쉬운 방법을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홀로 청렴하게 사는 대통령을 그 인권도 무시한체 집안 곡간
쌀 뒤주까지 뒤지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기도 망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
국가가 다른 나라와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부디 이웃과 남을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순이는 꽃 장사 5년 만에 대구에 집을 세 개나 사들였다.
철이나 순이가 다니는 음식점과 미용원에서 왕처럼 대접 받았다.
“배사장님 이발 끝났어요.”
“자, 이건 팁이유”
“아이고 사장님 팁을 20환씩이나 주시니 고맙습니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만지니 슬슬 시 건방이 들었다.
철이가 돈 벌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골 사람들이 찾아왔다.
촌놈들이 너도나도 값싼 고구마나 못난 곶감 한 자루씩 이고지고 찾아왔다.
“아 장한 철이네, 장미꽃집에 가봤나?”
그런 말 한마디면 온 동네 사람들이 철이네 집으로 꼬여들었다.
이 동주가 찾아 온 날은 철이가 자동차로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다.
경주로 가서 불국사 구경도 시켜주고 생선회도 사주었다.
“철아 고마워 내 돈 안 갚아도 되야”
“아니유 이모 돈은 갚아야유, 지가 빌린거잖아유”
“아니야, 안 갚아도 된다니까, 내 돈이 네 돈이고, 내 집이 네 집이지 안그랴? 그냥 나를 만나줘”
집에 돌아온 저녁에 이 동주는 잠을 자지 않고 철이와 노닥거렸다.
순이는 느낌이 이상했지만, 가게를 가야하기에 먼저 잠이 들었다.
이 동주는 마루에서 철이를 만지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 동주는 잠은 자지 않고 철이 내외가 자는 방을 끼웃거리다가 문소리를 냈다.
“무슨 소리야”
순이가 잠결에 일어났다.
“배가 불러서 소화시키느라고 그랬어, 잘 자 ”
이 동주가 문 앞에서 말했다.
“잘 주무세요.”
그렇게 말하고 철이도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 동주는 철이가 그냥 자니 너무 서운했다.
“이모 그만 가요, 순이가 아무래도”
“그랴, 그래도 네가 그리워서 흐 흐 흑”“울면 어떻게 해요, 저도 곤란해요”“알았어”
이튿날 이 동주가 눈에 눈물을 달고 떠났다.
“너는 왜 이 동주에게 그리 살갑게 구는 겨?”
순이가 차갑게 철이에게 따졌다.
“아녀, 나 한태 잘 하쟎여”
“잘하는 정도가 넘는 것 같어!”
순이는 가게 먼지를 털면서 투덜거렸다.
하기야 돌이가 찾아와서 하루 밤 자고 간 날은, 철이가 순이에게 사사건건이 시비를 걸어서 질투하는 구나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찾아와서 자고 가는 일이 빈번하니 밥하는 아주머니를 구해야 했다.
시골사람들이 들이 닥치면 먹고 싸고 그냥들 몰려갔다.
공연히 평소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굉장히 친한척하고, 먹고 자고 하면서 며칠을 지내다가 가기도 했다.
그렇게 시골에서 들락날락 사람들이 오가면 옷에서 이가 떨어지고 ,머리에도 이가 돌아 다녀서 창피하기도 했다.
순이가 잘산다는 소문에 쥐똥나무 마을이 온통 철이와 순이에게 쏠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샘도 나고 질투가 심해서 서로 지지고 볶았다.
설 빙수도 마찬가지였다.
군대 갔다 와서,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도 떡집 과부 김 소운을 꼬드겨서 결혼하여 덕분에 밥술이나 얻어먹고 살면서 노름판이나 찾아다녔다.
노름꾼들이 장미꽃 가게 옆에 좌판을 만들고 화투치기를 했다.
오다가다 만난 건달 장씨를 끌어들인 것도 설 빙수의 못된 잔재주였다.
노름꾼들은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철이집 앞에서 돈을 주고받았다.
설 빙수는 따는 돈을 모두 금덩어리와 바꾸기 시작했다.
만약에 경찰에 걸리더라도 아내 김 소운에게 주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형을 마치고 다시 일어서면 된다는 얄팍한 수단이었다.
철이 내외가 장사하기도 바쁜데 매일 똑같은 사람들이 가게 주변에서 노름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여서 했다.
드디어 철이도 오다가다 한 번씩 눈여겨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노름꾼들은 철이 눈에 보이도록 화투의 패를 속이며, 유혹의 미끼를 던지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스케키 팔 때 돈 뺏어 가던 장 씨도 그 속에 끼어있었다.
철이는 선입견이 있어서 장씨를 마주치는 것 마저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설 빙수가 장씨와 가까운 듯 했다.
“아저씨는 여그 웬 일이유?”
“나? 심심해서 친구들하고 있지!”
설 빙수는 노름에 빠진척하며 철이 내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설 빙수는 철이가 보도록 화투를 속이면서 쳤다.
“속인다.”
철이 입에서 무심결에 말이 툭 튀어나왔다.
“뭐 속여? 누가? 너 죽어봐라”
하면서 노름꾼 두 명이 철이에게 달려들어서 밀고 당겼다.
패거리들은 철이를 꼬드기려고 훈수를 두도록 홀렸는데, 철이가 딱 걸려들었다.
장씨가 기회를 꽉 틀어잡고 말했다.
“잘못 봤어유, 이거 놓슈”
“느그들 와 이라노, 배사장이 뭘 잘못했는데?”
그 순간에 옆집 이발사가 달려왔다.
“그기 아이고 훈수를 잘못두면 안 된다, 카이 끼내, 뭐 배사장이라 했는 교?”
“우리 형님이 말리니 내가 이번만 넘어 갈 끼요, 화투에 관심이 많은 것 같으니 여기 앉아보소”
장씨가 느물느물 말하고 설 빙수도 한 수 거들었다.
87회 훈수
“잼나 한번 혀봐”
드디어 철이가 화투장을 잡았다.
순이가 아기를 배서 무거운 몸으로 꽃집을 운영하는 데, 철이는 노름판에 한눈을 팔고 있었다.
“여보 배달 좀 다녀와요.”
“아 씨, 판이 깨지는데, 돈 좀 따는 순간에 어딜 가라고? 네가 다녀와”
“나는 배가 무겁잖아”
“아 시발 더럽게 칭칭 대네, 잠깐 다녀 오께요.”
“야 새꺄, 돈 따서 도망치려고 하는 거야? 안 돼야 앉아! 너 죽인다.”
노름꾼들은 한패거리나 마찬가지로 철이를 윽박질렀다.
점심도 앉은 자리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저녁에 날이 어두워도 계속했다.
“여보 집에 가자, 노름 좀 고만해라”
건달들은 철이에게 돈을 계속 잃어 주었다.
“조금만 기다려, 지금 돈 따고 있는데 말야”
“조금만 조금만하다 날 새겠다. 안 오면 먼저 간다, 나 집에 먼저 간다.”
순이가 무거운 몸으로 먼저 떠나고 철이는 노름판에 붙어 앉아 있었다.
“날이 어두워 화투장이 잘 안 보이네 우리 장소를 옮기자”
“어디로?”
장씨가 물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설 빙수가 자기 집으로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뒷골목 설 빙수의 집에는 술상도 차려져 있고 저녁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철이는 하루 종일 노름을 했더니 피곤했다.
거기다 술도 한잔해서 졸렸다.
“자지 마, 한판 돌리면 잠이 확 깬다.”
설 빙수가 말했다.
“뭐 여기 자려왔나? 기분 전환 겸 한판 돌리고 설 서방 뭐 하노, 술 한 잔 더하자”
건달 장씨가 말했다.
설 빙수 부인이 술상을 다시 내오고, 새 판을 돌렸다.
설 빙수는 샘나는 참에 철이를 꾀어 가진 재산을 거덜 내고 싶었다.
설 빙수 마누라 김 소운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철이는 잠이 자꾸 쏟아져서 화투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저는 한숨자고 할 께요.”
“야 새꺄, 혼자 돈 다 따 묵고 잠잔다고? 우린 열 받아서 잠이고 뭐고 없다. 패 돌리라”
그렇게 시작한 야간 화투판에서 철이는 들어왔던 돈이 싹-다 나가고 이제는 빌려서 하게 되었다.
이즈음 잠이 확 달아났다.
벌써 새벽이 오고 낮이 되었다.
노름판은 잠도 자지 않고 또 저녁이 되었다.
철이는 집 한 채 값을 다 잃었다.
“철아 가자, 그만해”
순이가 배를 불쑥 내민 채 설 빙수 집 마당에서 소리쳤다.
“잠시만 곧 가께”
순이는 배가 아파서 집으로 향했다. 철이는 점점 돈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틀째 되는 날에는 집 세 채가 노름판에서 다 날라 갔다.
뚝심이 샌 장씨가 슬슬 졸린다면서 꽁지를 빼려고 했다.
설 빙수 부인 김 소운이가 밤참과 술상을 내왔다.
철이는 술을 연거 퍼 마시면서 패를 봐도 설 빙수와 장씨가 속이는지 패가 좋지를 않았다.
장씨와 설 빙수가 짜고 치고 있었다.
“장땡이다.”
철이가 장땡을 잡고 손을 내밀어서 담요 위의 돈 무더기를 앞으로 잡아 당겼다.
“가만 ”
장씨가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패를 보이면서
“나는 광땡이란다, 젊은 사장님”
그리고는 앞에 있는 돈을 죄다 가져갔다.
그러면서 설 빙수에게 눈짓을 하면서 화투를 돌렸다.
“야 또 장땡이다.”
“잠간만! 성미가 급해, 광땡이라니까.”
철이는 그제야 서로 눈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손도 빠르게 오르내리는 것을 눈치 챘다.
“이거 뭐야! 둘이 짜고 치는 거요?”
“이싹갸, 뭘 짜고 쳐, 잘 하란 말이다, 네 집은 모두 우리 꺼야, 너는 돈도 없잖아, 그만 하자”
장씨가 한마디 했다.
“내 돈 다 따고 안한다고 안하면 다 죽여 버릴 거야”
철이는 약이 올라서 소리 쳤다.
장씨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서 철이 가슴에 가져다 댔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감히 내가 누구라고”
“아이스케키 장사꾼들 돈이나 뺏는 놈이지 누구긴 누구야”
“죽어라 ”
장씨는 철이의 허벅지를 칼로 찔렸다.
“아이쿠”
철이는 허벅지 통증에 아파하면서 몸을 돌려 일어나며 장씨의 칼을 내리 쳤다.
얼마나 세게 칼을 내려쳤는지 칼이 방바닥에 떨어졌다가 튀어 오르면서 장씨의 목에 가서 찔렸다.
철이가 일어나면서 장씨의 머리를 발로 찾다.
장씨는 칼이 목에 찔린 체 방바닥에서 꼼짝도 안하고 피는 온 방안에 튀겻다.
김 소운이 경찰을 부르고 경찰이 철이의 손에 수갑을 채워서 경찰서로 끌고 갔다.
순이는 그 사실도 모르고 병원에 혼자 가서 송이를 낳았다.
차가운 병실 침대에 누워서 김 소운이가 꾸며낸 목소리로 다정하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 흘리면서 있어야 했다.
간난 네가 달려와서 산후 수발을 들었다.
송 사리가 경찰서에 가니 철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님 제가 칼로 찌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설 빙수는 네가 칼로 찔렀다는 군, 아직 장씨가 죽지는 않았으니까
형량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당분간 내가 순이를 보살피고 장사는 그대로 하게 해달라고 가게 집주인에게 말했다.“
“집은 요?”
“집은 이미 다 넘어 갔어, 이놈들 둘이 짜고 한 모양이야”
“지도 늦게 알고 달려들다가 고만”
“알았어. 변호사에게 말하지, 근데 집을 다 노름판에서 넘겼다며?”
“그리 됐어요. 죄송해요.”
“죄송하고 말고. 이미 다 앞질려진 건데”
철이는 운이 나쁜지만 잘 극복해나가는 것이 참다운 인생인데, 갑자기 부자가 되니 시 건방이 들어서 남들에게 안하무인으로 처신하다, 인생이 꼬이게 되었다.
88회 다시 고향으로
“망했다, 망했다.”
칠득이가 소리치며 느티나무 아래로 지나갔다.
“저놈이 또 뭐라는 겨?”
정동 노인이 말했다.
“철이가 설 빙수일당에게 노름으로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망했다는 그 말이지, 재수 없는 놈이여, 참 더러워”
갑동 노인이 혀를 찾다.
우 민자 먼 걸음으로 칠득이 따라 오다가 도무지 창피하고 망신스러워서 피했다.
철이가 노름으로 순식간에 재산을 다 날리고 교도소에 들어간 사이에 순이는 혼자 어린 송이를 데리고 대구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철이 부부가 어렵게 모은 돈을 잘 지키지 못하니 순식간에 다 날라 갔다.
순이는 엄마 손잡고 쥐똥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고향은 힘들면 다시 찾아오는 곳이고, 안정을 찾고 재활 할 수가 있는 곳이었다.
“하이고 우리 철이는 어쩌고 너만 왔어 흐 흐 흑”
권 수인은 아기 안고 마을로 들어오는 순이를 잡고 울었다.
거기다 이 동주가 순이 손을 잡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손 놔유”
순이는 이 동주가 자기 손 잡고 우는 것은 마땅찮았다.
“야가 와 이리야”
“힘들어서 그 래유”
“힘들다 잔아”
돌이 엄마 서 영은이 말했다.
순식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복이나 분이도 속이 상했다.
순이가 도망가 있을 동안은 궁금했지만, 서로 말을 꺼내려 하질 않았다.
철이를 바라만 보던 여자들이어서 마음이 썩 좋지를 않았다.
순이는 머리카락이 젖은 체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가서 안방에 누웠다.
철이가 순식간에 그 많은 재산을 눈 깜짝 할세 노름으로 다 날려 버린 것이 꿈만 같았다.
순이는 갓 20대에 송이를 안고 옛집으로 돌아오니 힘이 죽 빠졌다.
베개를 베고 누운 순이 가슴께로 송이가 파고들면서 젖을 보챘다.
송이라는 새 생명의 만남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간난 네는 심하게 다리를 절며 딸에게 밥을 챙겨 내왔다.
간난 네도 힘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설 빙수 내 놔”
송 사리는 홧김에 칠득이 집으로 가서 설 빙수를 내놓으라고 집안의 가재도구를 때려 부수며 분탕질을 해댔다.
“나를 쳐, 나를”
칠득이는 원인도 모르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니 놀라면서도 나를 치라고 했다.
우 민자도 송 사리를 잡고 울면서 말했다.
“딸이 설 빙수에게 당한 것을 여그 와서 분탕질을 하면 어쩌란거요, 나를 죽여라, 이 나쁜 오입쟁이야, 온 동네 여자들 하고 놀아난 나쁜 놈아”
송 사리가 그 간 동네에서 여자들을 저질러도 큰소리 한번 안 났는데, 우 민자는 시숙 설 빙수 때문에 당하게 되니 오기가 생겨서 다 털어 놓았다.
“내가 뭘 너 하고도 한번 붙어볼까?”
송 사리는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바지춤을 내리면서 말했다.
칠득이는 광에서 낮을 들고 나와서 휘두르며 소리쳤다.
“경찰들 한태 이를 겨, 다물어내”
송 사리는 칠득이가 휘두르는 낮을 보고 그냥 도망쳤다.
한편 순이네 집 안마당으로 돌이가 들어섰다.
“아주머이 순이 왔시유?”
“그랴, 들어가 봐”
돌이는 순이가 누워있는 안방마루턱에 걸터앉아서 하늘을 보고 한숨을 푹푹하고 내쉬었다.
얼마나 사랑하는 순이던가!
돌이는 그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마이 보고 싶었다,”
“뭐를?”
순이가 저고리 고름을 여미면서 곧추앉았다.
“너를 푸-”
돌이는 하늘로 숨을 풀어냈다.
“자- 지금 보면 돼지”
“옛날 너 말여”
“나는 변함없어!”“하지만 잘 돌아왔다.”
“가서 일햐, 나는 좀 누울게”
순이는 돌이를 보고 있으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돌이는 손을 내밀었다.
“손 좀 만져보자”
“안 되야, 나는 유부녀 라구”
순이는 싫지는 않지만 안 되는 일이었다.
“방에 들어가지 않고 왜 마루에 있어?”
간난 네가 물 한 잔 가져오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나중에 오께요, 들에 가봐야 하니께 유”
“또 놀러 와”
간난 네는 돌이가 돌아서 나가는 뒤태를 보면서 돌이가 순이의 진정한 짝인데 했다.
89회 돌이가 짝인데
돌이는 순이를 생각하면 화가 나서 맹탕개울로 나서서 하루 종일 낚시를 하면서 시름에 잠겼다.
제비가 지나가면서 돌이 이마에 똥을 갈겼다.
돌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올라 그대로 물속으로 잠수를 했다.
물속에서 다시 솟구쳐 오르면서 소리쳤다.
“야 새끼들아, 나는 네 똥이나 먹냐!”
그 말은 제비에게 하는 것인지 철이에게 하는 것이 몰랐다.
그래도 낚시로 잡은 매기와 가물치를 들고 순이네 집으로 향했다.
하기야 순이네를 지나야 돌이네 배나무 과수원으로 들어 갈 수가 있었다.
“이게 뭐여?”
“아주머이 지가 잡았구먼유, 가물치는 순이 달여 주세유”
“뭘 이런 걸 또 가지고 와, 도로 가져가서 어머니 하고 먹지”
간난 네는 고맙긴 해도 덥석 받기가 민망스러웠다.
“돌이구나 또 왔어?”
순이는 돌이가 다시 반가웠다.
“송이 보는데 힘들지? 가물치는 아가리를 벌리고 입속에 참기름을 들이부어서 푹 고아 먹으면 보신이 된다.”
“돌이는 모르는 게 없네, 여자들이 출산했을 때, 그렇게 해먹는 겨, 호 호”
간난 네는 웃으면서 말했다.
간난 네가 웃고, 순이가 반겨도 돌이는 허전했다.
“순아, 나 간다.”
돌이가 삽짝을 나서자 순이도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 돌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순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야릇했다.
남편이 아닌데 말이다.
남편 철이는 그즈음 안양교도소로 이전해 있었고, 교도소 내에서 다툼이 있어서 형량이 더 늘어나 있었다.
“여보 송이가 왔어요.”순이가 송이와 함께 면회를 가서 처음 보여주었다.
“송이는 너처럼 예쁘다.”
“언제 나와?”“........”
“말해”
“다친 사람이 안 죽었지만, 정당방위로 판정이 났어, 앞으로 3년만 기다려”
“아~~~ 나는~~~ 송이 하고.......”
순이가 이 말을 하고 송이를 의자에 두고 바닥으로 쓸어졌다.
“순아 정신 차려”
창살 너머로 철이는 고함을 지르고, 의사가 오고, 순이는 송이와 실려 나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돌이가 병실에서 순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순이를 따라 온 모양이었다.
저녁이 되어서 송 사리와 간난 네가 달려왔다.
송 사리가 송이를 안고, 간난 네와 같이 순이를 간호했다.
“아 ~~!”
“이제 정신이 나는 거야?”
“응 앞으로 3년 이래”
“누가 ?”
“배 서방이 ..., 칼로 찌른 장씨가 사경을 헤매나봐 유”
“아니 일을 저질러도 가족을 생각하면서 해야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되야? 흐 흐 흑”
간난 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이가 삼일 입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돌이가 동행하고 있었다.
“뭘 하려고 병원까지와”
“복이도 왔어”
“괜찮아?”
복이가 순이에게 물었다.
“복아! 바쁘지 않아?”
순이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철이는 어때?”
복이가 물었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순이는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고함을 질렀다.
“아니 뭐”
평소 복이가 철이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을 순이는 눈치 채고 있었다.
“아냐, 복이는 내가 같이 가자고 해서 왔어”
돌이는 병색이 완연한 순이가 큰눈을 허옇게 치뜨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문병 와서 같이 갈려고 하는 데, 너는 왜 성질을 내냐?”
간난 네가 안타까워서 말했다.
“네가 아프니께 걱정도 되고 말여”
돌이는 이때다 싶어서 말했다.
복이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땅만 보고 서있었다.
그러면서 창피했다.
철이나 돌이나 동네 사내들은 모두 순이에게 빠져있으니 서러웠다.
복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먼저 나서서 걸었다.
“야 같이 가”
돌이가 소리쳤다.
복이는 모른 체 달리듯이 걸었다.
차를 타고 걸어서 쥐똥나무 길로 들어서는 길이 왜 그리 먼지, 복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밟으며 걸었다.
순이는 친구가 아니라 연적이었다.
복이는 이참에 수녀가 되어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비틀 거리며 마을 느티나무 아래 도착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복이 아녀?”
병동 노인이 말했다.
“그려, 복이 구만 왜 자꾸 비틀거리지? 복아 정신 차려!”
정동 노인이 소리 쳤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이젠”
복이는 잘못된 연적의 마음을 빨리 정리 하고 싶었다.
90회 수녀
복이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들어서서는 복이가 바로 짐을 쌌다.
복이는 평소에 알아둔 수녀원에 가기 전에 편지 한 장 달랑 밥상위에 두었다.
신 순자는 복이가 ‘나를 찾지 마 엄마’라고 쓴 메모 하나 써놓고 사라진 후, 시름에 젖고 머리가 아파서 늘 하얀 저고리 고름을 머리에 동이고 살았다.
그런 순간에 우체부에게 편지 한통을 받았다.
발신 : 서울 수녀원 이복이
수신 : 엄마
편지를 집어 들고 손이 달달 떨려서 도무지 봉투를 열지 못했다.
마침 집에 놀러 온 이 동주에게 부탁했다.
“여기 복이가 뭐라고 쓴지 읽어주소, 손이 떨려서 .....,”
“수녀원에 있으니 나를 찾지 마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 말 밖에 없네!
이 동주가 말했다.
“수녀원이 뭐하는 곳이여?”
“아 수녀라고 여승처럼 혼자 사는 것을 말하는 거여, 잘 있구먼. 이제 걱정노소”
“아니 울 아가가 수녀가 되어서 여승처럼 산다는데 걱정을 노라니, 뭔 말이여? 시방, 여자는 시집을 가야지”
“어디서는 밥 먹고 잘 지내면 되얐지, 예수님 하고 결혼 한다 던 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남의 오간장을 뭉개는 거여, 뭐여 과부주제에”
“과부 좋아 하네, 지도 과부잖아, 과부끼리 그러는 게 아니야! 남자가 군에 가서 죽던지, 마을 일보다 지쳐서 죽던지 해서 혼자 사는 여자는 다 과부제”
“이런 우라질 인간하고 오죽하면 과부여”
“오죽하면 수녀가 되려고 갔을 까? 난 몰러 정신을 차리든지, 아님 딸 찾아 삼만리를 하던지”
이 동주는 치마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가버렸다.
복이 엄마 신순자은 그냥 마루에 주저앉아서 동구 밖으로 목을 빼고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 복이는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 수건을 두르고 수녀원에서 주님께 평생을 바치겠다고 고백했다.
복이는 선배 수녀들 앞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여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수녀로서 모든 과정을 소화해 나가면서 6년여를 지나야 비로소 서원 식을 치르고, 같은 가족으로 받아 준다고 했다.
복이는 그 길 초입에 들어섰다.
갑자기 없어진 복이 일로 마을이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졌다.
철이와 순이 사건 이후에 동네는 서로 감시하듯이 지났지만, 복이 일이 또 터졌다.
젊은이들은 이리저리 사랑에 엮여서 어디를 갈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다 돌아와!”
병동 노인이 말했다.
“암 살아서 안 오면 죽어서도 오는 것이 고향이여”
갑동 노인이 담뱃대를 평상에 탁 하니 털면서 말했다.
“아 암, 복이도 올껴”
정동 노인도 담뱃대를 털었다.
“옛적에 야반도주한 연인들이 좀 있었어?”
을동 노인도 거들었다.
“그 시절에는 을동이 너부터 시작 했잖아”
갑동 노인이 껴들었다.
“뭐를 ?”
“아 네가 마님을 모시고 갔잖아”
“그 마님이야 개울을 건널 때 참~~! 말해야하는 겨 마는 겨, 케액 콱““말햐! 이제 와서 무서울 게 뭐 있어”“대감마님이 삭탈관직을 당해서 고향에 올 때, 마님이 먼저 내려와서 내가 맹탕개울을 건너는데”“을동아! 마져 혀, 큰물이 났었지, 그 때 업고 건넜나?”
병동 노인이 말참견을 했다.
“그려, 아 근디, 개울을 건너는데 한가운데서 갑자기 마님이 소피가 마렵다고 해서........, ”
“우짜스까? 그래서”
“참내 말해야 하나! 내 등에 싸셔유 했지”
“쌌어?”
“등이 갑자기 뜨근 뜨근 했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뜨겁고 아팟든겨?”
노인들 세 명은 평상에서 을동이 입 앞으로 모여서 쪼그리고 앉았다.
“야튼 쌌다구, 나도 싸고”“어디? 마님 속에다?”
“업었는데 어느 속이여?”“내렸지, 발이 미끄럽고 물살이 세서 물에 첨벙하고 나자빠지면서 마님을 안게 되었어, 그러니께 옷이 다 젖어서 개울 건너에서 벗고 말리는 데 말여, 아래가 다보이지 안겠어?”
“꼴깍! 그 그래서 안았어?”
“마님이 ‘이러면 안 되야’ 하지 않겠어?”
“그 그래서 빨리 좀 말해라”
“나도 몰러 언제 무슨 일이 났는지, 그냥 바지를 입고 일어났어.”
“휴~ 그랬구나! 그 속 아니면 무슨 속이 였을까? 설 빙수가 거기서 나왔어?”
“아니야, 그 속은!”
“송 명월이지?”
갑동 노인이 웃었다.
“그래서 마님이 도망가자고 해서 수원까지 올라갔다가 마님 친정에서 몸종 하던 송 명월이를 데리고 돌아왔지”
“그래서 네가 돌아왔고, 복이도 돌아오고, 철이도, 순이도 다들 돌아온다는 그 말이지?”
“그럼 두고 봐”병동 노인이 말했다.
“그 것이 고향인거여”
갑동 노인이 말했다.
송 명월이는 한말에 선 대감댁 정부인이었던 손 춘자의 몸종이었다.
한때 참판으로 있던 선 춘수가 역모 죄로 몰려서 사형당하고, 손 춘자는 몸종 송 명월이를 데리고 보은 속리산으로 피신했었다.
설 을동은 손 춘자의 머슴으로 일을 봐주었다.
손 춘자 마님이 늙어 병사하기 전에 믿고 살았던 머슴 설 을동에게 송 명월이를 맡겼다.
손 춘자가 명월이에게 남겨준 금비녀와 금반지로 맹탕개울 건너 마을에 땅을 사서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제기랄 을동이 너는 송 명월이 만나서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사는 구먼, 우린 뭐여?”
병동 노인이 말했다.
“우린 구경꾼이지 뭐, 허 허 허, 그만들 혀, 사람 사는 거, 다 그렇지 아니?”
갑동 노인이 말 매듭을 지었다.
그 즈음 돌이는 복이가 떠난 한 쪽 구석이 또 시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