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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작아종이’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이런 전화를 받은 지 11년. <작아>가 종이를 만드는 제지회사가 아니건만 사람들은 <작아>의 본문용지로 쓰는 중질만화지를 ‘작아종이’라 부른다. 재생지나 재생지로 만든 공책 한 권 사서 쓰는 일이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 돼가는 세상에서 골목모퉁이의 복덕방처럼 ‘재생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주는 일은 보람되었다. 하지만 ‘특별주문’으로 받을 수 있는 ‘재생종이’가 아닌 동네 문방구나 가게에서 쉽게 재생종이상품을 살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가기만 했다. 아무튼 ‘작아종이’를 찾는 사람들의 물음에 대답을 하려다보니, 국내 재생종이 시장 속으로 물어물어 찾아가게 되었다.
[특집] 재생종이
즐거운 재생종이의 나라로 - 허구한 날 기분 좋은 재생종이쓰기에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
정리·편집부
9월 ‘종이’특집에서 만났던 그 열정의 사나이를 기억하는가? 재생복사지를 찾아 결국은 공장까지 찾아가 갱지 한 상자 어깨에 짊어지고 돌아온 분의 열정만큼은 아니어도 재생종이를 쓰는 이유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쉽게 재생지를 만날 수 있다면 다른 문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허구한 날’이라는 조금은 부정의 느낌이 드는 시간과 헌 것을 다시 만든 것에 대한 비호감을 기?좋게, 편안하게 바꿀 수만 있다면 다시 살아난 종이처럼, 우리 일상도 그리고 우리 앞의 미래도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시작한 <작아>의 재생종이 쓰기 운동에 함께한 분들이 놀랍게도 곳곳에서 즐거운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은 재생종이쓰기에 날개를 달아준 분들에 대한 기록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재생종이로!
창간 11년이 시작되는 올 해 1월, 작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복사지나 인쇄종이이다. 녹색연합에선 분리수거는 물론 이면지복사도 열심이지만 복사기 옆에 쌓인 하얀 복사지들을 볼 때면 편치만은 않았다. 재생복사지 어디 없나? 찾다가 횡재라도 한 듯 발견한 100퍼센트 국내재생복사지는 고속복사기에 걸리기도 하고 양이 많을 때는 휘기도 했지만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생산중단으로 구할 수 없게 되자 40퍼센트 고지가 들어간 하얀 재생복사지로 바꾸어 썼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겉으로는 재생복사지인지 모르겠어요’ 다들 작은 변화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올 초 명함을 새로 만들면서 아예 ‘작아종이’로 만들어 썼다. 그동안 재생종이라 알고 써왔던 종이가 재생종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함종이는 두껍고 딱딱한 종이를 흔히 쓰지만, 얇고 부드러우면 어떤가, 재생종이도 알리고 <작아>도 알리는 ‘작아의 얼굴’로 충분하다. 충무로 인쇄거리에서 재생종이로 명함을 찍는 뒤 느낌도 좋다며 녹색연합의 전문기구에서 같은 재생지로 명함을 만들었다. 4월 지구의 날엔 ‘종이는 숲이다’라는 제목으로 ‘작아’의 재생종이쓰기운동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누런 판지 위에 초록크레파스로 저마다 푸르른 나무와 숲을 그렸다. 그 다음은 발송봉투였다. 몇 년 전부터 발송업체에서 자체 제작해 쓰던 하얀 봉투를 국산폐지 90퍼센트가 들어간 누런 재생봉투로 바꾸었다. 겉은 보통 봉투처럼 매끈하지만 속은 투박한 것이 따뜻한 느낌이었다. 바뀐 봉투가 ‘멋지다’는 반응이었다. ‘재생’의 가치를 아는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새삼스레 더 멋져 보였다. 가을부터는 부산녹색연합, 광주녹색연합, 인천녹색연합과 대전녹색연합이 함께 이 재생봉투에 소식지를 담아 보낸다.
재생종이, 날개를 달다
환경운동가이며 그린디자이너이신 국민대 윤호섭 교수님께 100퍼센트 재생복사지를 보여드리니 반가와 하시며 그 자리에서 본인의 명함을 만드셨다. “얼마나 예뻐요. 명함이 이만 하면 되지.” 명함에는 지구온난화위기의 슬픈 상징, 펭귄이 담겨있다. 4월엔 어느 구청 홍보담당 공무원이 구청 홍보책자를 재생종이로 만들고 싶다며 ‘작아’사무실로 찾아왔다. 여러 차례 말이 오갔지만 결국 윗분들이 빤짝거리는 고급종이에 인쇄하기를 바란다는 연락이 왔다. 누구를 위한 홍보책자인데 화려하고 고급스럽게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환경을 배려한 종이를 선택하고 내용도 정직하게,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담는다면 시민들은 더 좋은 느낌을 받을 텐데 아쉬운 선택이었다. 날이 갈수록 <작아>에 소개된 재생복사지를 다시 구할 수 없냐는 문의가 잇따랐다. 에코붓다와 인드라망 같은 환경관련 단체뿐만이 아니었다. 뜨거워지는 여름날엔 희망제작소 사무국에서 재생복사지를 쓰겠다며 박은주 님이 이면지로 만든 ‘에코오피스’ 지침서와 공책, 손수 바느질한 손수건을 들고 <작아>를 찾아왔다. 녹색연합이 펼치고 있는 ‘그린오피스’의 반가운 동행자였다. 달마다 이천만 통의 요금청구서를 발행하는 공기업에서도 관심을 보여 왔다. 에이포 크기의 요금청구서 이천만 통을 달마다 재생종이로 바꾸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나무와 숲을 살리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때를 더 기다려야 하나? 아직도 100퍼센트 펄프로 만든 새하얀 종이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 올 가을엔 녹색연합이 2004년 처음으로 해리포터 한국판의 재생종이출판캠페인을 펼쳤고 올 봄부터 힘을 모아 펼쳐왔던 ‘해리포터 7권 한국판 재생종이출판캠페인’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었다. 고지 20퍼센트가 들어간 재생종이로 출판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영어교과서를 만드는 곳에서 재생종이와 <작아>의 재생공책을 담는다는 연락이 왔다. 그 교과서종이가 재생종이라면 더 좋을텐데….
재생종이를 찾는 사람들
언제부턴가 ‘○○를 찾는 사람들’ 이란 간판을 많이 본다. 이상한 이름들 가운데서 ‘재생지를 찾는 사람들’ 한 분 한 분은 찾아야 할 것을 제대로 찾는 반가운 사람들이다. 어느 선생님은 대안학교를 위한 재생종이공책을 만들고 싶다 하셔서 ‘견적서’를 뽑아드렸다. 황은식 읽새님은 재생종이로 만든 초대장이 없냐고 물어와 알아봤지만 구할 수 없었다. 김용님 화가는 도록을 재생지로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떤 재생지가 있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초대장, 도록에 쓰이는 고급재생종이는 수입한 것밖에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상품으로 나온 게 없어 전지를 사다 일일이 잘라 인쇄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 소량인쇄를 하는 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서범석 읽새님은 일하는 연구소에서 재생복사용지로 바꾸고 싶다고 했고, 정원주 님은 딸 지원이가 환경독후감대회에서 1등을 했는데 재생공책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올해부터 녹색연합 협동처장으로 함께 하시는 최봉석 교수님은 500쪽에 이르는 환경법학회 학술지를 ‘작아종이’로 제작하시겠다고 했다. 함평 읽새 키미 님은 생태교육관 알림장과 명함을 찍으시겠다고 서울로 직접 올라오셨다. 지방에는 재생종이를 구하는 것도 인쇄하는 것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란다. 박진영 님은 ‘아이가 그림 그리려고 하는데’ 하시며 재생종이를 물으셨다. 9월에는 송파경찰서에서 근무하시는 문성임 읽새님이 <작아>에서 ‘교과서를 재생종이로 만들자’는 캠페인을 보시고는 정책개선을 위해 재생종이쓰기를 제안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경찰서와 재생종이라? “6학년 아이가 재생종이교과서캠페인에 대해 ‘엄마, 당연한 거 아니야? 6개월 밖에 안쓰는데…’ 하는 거예요. 우리 예전에는 재생종이로 공부했잖아요.” 그뿐인가. 후배들에게 물려준다고 교과서에 있는 연필자국을 지우개로 열심히도 지웠다. 물려받고 물려주고, 되살려 쓰는 생활은 가난한 시절을 살아가는 생존전략이었지만, 나의 소비가 국경을 넘어 원시림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진 요즘엔 나만의 생존을 넘어 우리의 생존전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9월 <작아> 식구들이 종이공장을 견학하고 돌아오는 길,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저, 청첩장을 재생종이로 만들고 싶어서요.” 이쯤에선 금박과 은박으로 치장한 고급펄프 청첩장 대신 나무와 숲을 살리는 재생지청첩장을 선택한 이 예비신혼부부를 위해서라도 <작아>가 기획사로 변신해 아름다운 재생지 청첩장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재생지청첩장을 일반 청첩장처럼 쉽게 고를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으련만. 마감하는데 재생종이를 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온나나 프로젝트’가 ‘얼음 땡, 지구 땡’ 콘서트 순서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 가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제는 정부나 환경단체가 나서지 않아도 시민들이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에 대해 더 잘 압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빠져있어요.” 토론자의 말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토론회장을 둘러보니 자리에는 늘 그랬듯 고급펄프로 만든 자료집과 생수병이 놓여있고, 대낮인데도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우리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이 맞나?
재생종이쓰기운동 십일 년, 그리고 ‘허구한 날 기분 좋은 재생종이쓰기 캠페인’ 아홉 달, 우리가 확인한 것은 ‘재생종이’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 알더라도 재생지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 구했더라도 인쇄물로 만들려고 하면 인쇄를 한다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종이 한 장 바꾸려다 보니 이게 종이 한 장의 가벼움이 아니라, 묵직한 철판 몇 장을 들어 올리는 수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이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운좋게(?) 작아를 만나 재생지에 대한 정보도 얻고 재생지를 선택한 많은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런 용감한 분들 말고도 보통사람들이 정말 허구한 날 기분 좋게 재생종이를 쓰기 위해서라면 좀 덜 수고스럽지 않아야 한다. 재생종이쓰기가 ‘쇼를 해라’가 아닌 기후변화시대의 삶의 양식과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종이 한 장,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 ‘작아’ 편집실에 어떤 전화가 울릴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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