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유가족들은 어디로 가고 싶어할 것 같아요?"
2017년, 용산지역에서 진행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서 예은아빠 유경근님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사고 전날이나, 사고당일 아침을 생각했지만 답은 달랐습니다.
"배가 침몰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 사고는 언제든 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아이에게 배 밖으로 나오라고 하지 못해서 그 말을 못해 아이를 죽게 한 것 같아 너무 괴롭습니다. 마지막 생존자인 1반의 아이의 경우 아이 아빠가 당장 나오라고 했는데 아이가 기다리라고 방송이 나오고 있고 다른 아이들도 배 안에 있어서 어떻게 나가냐고 했더니 그럼 친구들 다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반 아이들 중 생존자가 많았어요."
다른 어떤 것 보다 그 순간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가장 힘들다고 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안산에 와서 심리치료를 했지만, 아이들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주변에서 하지만, 부모들은 이미 아이들과 함께 죽은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유가족들은 5.18 유가족들이 말없이 안아주면서 '그 마음 다 안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자식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도 진상규명 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마음이 이어졌겠지요.
그런 슬픈 일은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참사는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4월 7일에는 지역에서 10.29 참사 고 이지한님의 부모님과 유족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지한님은 아이돌 캐스팅이 된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쌀밥도 먹지 않고 철저히 관리를 했다고 합니다. 햄버거라도 먹으면 2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고.
"지한이는 저녁 때 밥을 먹으러 이태원에 갔어요.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 예쁘고 상처 하나 없는 낯선 청년이 누워 있더라구요. 아직 34도의 따듯한 체온에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어요. 단, 그날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아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마약 검사를 한 이후의 지한이는 화난 얼굴로 변해있었고 옷은 다 찢겨져 나가다 못해 찢어진 옷들이 구석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얼굴이 보라색이 되어 있거나 두 배로 부어있거나 엉망으로 훼손되어있었습니다. 유족의 동의 없이 마약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변사자로 해야 하는데, 그렇게 취급했더라구요. 희생자 전원을 대상으로 금융조사까지 했어요."
119 구급대의 기록을 보면 용산 다목적 체육관에서 발가벗겨진 상태에서도 희생자들은 체온이 34도였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멀리서 볼 뿐 아이들을 만질 수 없었고, 마약 검사를 한다고 몸에 여기저기 칼자국을 낸 것을 나중에 알았는데, 경황이 없어 빨리 장례를 치룬 것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현장의 경찰들도 울었지만 국가는 잊혀지기만 바라고 있는 것에 비통해 했습니다. 유족들은 이태원 상인들도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는데 서울시는 이태원 상인들에게 (이태원 광장에 있던) 시민분향소를 몰아내라고 이간질을 하고 시청 앞으로 이전한 시민분향소를 철거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 하고있다 합니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지만 그런 사과를 하는 순간, 권력을 잃고 정권이 붕괴 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 희생자 관계자들이 유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며 그들에게는 사과와 배상을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이란의 생존자가 한국에 들어올 때 유족들을 만나지 말고 대사관으로 바로 오라고 했고, 소송을 준비하던 외국인 유족들도 더 이상 이슈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고 이지한님의 부모님은 매일 새벽 2시에 귀가하던 아들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고,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아이를 기다리며 문을 열고 사는 유족도 있다고 했습니다. 노인을 찾는 문자는 그렇게 많이 보내면서 93번이나 구해달라고 한 신고는 묵살 되어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가장 패륜적인 일이며 명백한 159명 개개인에 대한 살인이라고 울분을 표현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 일요일(4/9) 오후 제가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에서 서명을 받는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앞을 지나가는 일부의 사람들은 "치워라!" "빨갱이!" "놀러갔다 죽었는데 뭐가 당당해!" "천안함 희생자들을 추모해라!" 등등 치욕적인 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슬픔을 추모하는 행위조차 지겹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고 있거나 공감능력의 범위가 넓지 못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10.29 참사의 유족들 또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랬던 것 처럼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고 이지한 배우님의 아버지는 세월호 당시에는 자신도 그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며 잊지 않는 일일 겁니다. 아픔을 당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때 까지 말이죠. 물론, 이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런 큰 사건이 아니어도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모두 책임져야 하냐고 모진 말을 합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고 이지한 배우님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호소했습니다.
"설교로, 노래로, 시로, 글로, 표창장 거부로, 시국선언으로,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순리대로 일을 풀지 않고 자기 자리 지키기 급급한 그들을 각자의 있는 자리에서 혼내주길 바랍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부모들의 인터뷰를 실으셔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전달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긴 글인데도 계속 몰입됐어요 그 힘이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계속 이야기하고 계속 들어야할텐데요. 늦은 걸음이라도 따라가고 싶네요.
귀한 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