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산 마애삼존불 사진자료[제40차 탐방자료(전각을 걷어낸 이후 자료) 참조]
서산마애삼존불이 처음 발견된 것이 1959년이다. 바로 위에 있는 보원사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이 마애불이 갚은 산골짜기인 데다가 길에서는 바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부여 박물관장이신 흥사준선생과 문화재위원인 황수영박사 등 일행이 보원사지의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지나가던 나무꾼에게 무심히 던진 질문 한마디가 빌미가되어 찾아내게 된 것이다.
흥사준선생이 나무꾼에게 물어보기를 “이 근처에 불상이나 사람이 새겨진 바위가 없습니까?” 나무꾼이 대답하기를 “바로 저 위의 큰 바위에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있는데 가운데는 남편 같고, 왼쪽은 본부인, 오른쪽은 샛부인 같습니다.”
흥사준선생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왔으나 마침 비가 오고 있어서 자세한 조사를 뒤로 미루었는데 촬영한 사진 한 장을 며칠 후에 확인하게 된 황수영박사는 너무나 놀라워 하였다고 한다. 곧바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국보로 지정하기에 이르니, 이것이 바로 백제 최고의 걸작으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 또 이런 문화유산들이 숨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 마애불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가야산의 한 계곡, 속칭 인바위[印岩]라는 천연의 절벽에 새겨져 있다. 절벽은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방향이 그 앞을 통과하는 길과 반대방향이어서 나무꾼들이야 으레 알고 있었지만 늘상 그 앞을 지나다니던 전문가들의 눈에는 뜨이지 않았던 것이다. 서산마애불은 중앙에 여래상을 두고 그 좌우에 보살상을 모신 삼존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래상은 키가 2.8m나 되는 거구로 광배는 두광만을 갖추고 있다.
두광(頭光)은 머리를 중심으로 둥그런 연화문을 조각하고 그 주위를 화염문으로 잠식하였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위를 뾰죽하게 한 보주형이다. 머리에 비하여 상당히 크게 한것은 신광(身光)이나 거신광(擧身光) 등 다른 광배를 생략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머리를 반듯하게 세워서 훤출하면서도 밝은 미소가 넘치고있다. 크게 뜬 두눈과 넓은 코, 그리고 양끝이 살짝 올라간 입가에서 풍기는 미소가 인상적이다. 이 미소를 두고 이른바 백제의 미소라 부른다.
ㅇ 용현리 석불입상(龍賢里 石佛立像 - 彌勒石長丞)
서산에서 32번 국도를 따라 당진 방면으로 가다보면 운산면 소재지가 있고, 다시 해미방면으로 가다가 고풍저수지 방면으로 약 3km정도 가면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보원사지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석불입상은 마애삼존불상으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에 위치한다.
원래는 고풍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 그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옮겨진 것이다.
석불은 높이 216cm, 어깨 폭은 65cm, 두께 25cm의 크기이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석불의 머리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오른팔은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 위에 오도록 조각하였다. 마모가 심하여 잘 나타나지 않으며 상반신의 일부는 깨어져 덧붙여 세웠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 석불은 서해를 통하여 출입국하는 중국 사신이나 옛 선조들이 내륙을 통하는 옛 길 옆에 세워 행인들의 무사고를 빌었다고도 하며 옛 보원사의 수호를 기원하는 비보장승으로 세웠다는 말도 전 해진다. 주민들은 석불을 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고려 말 조선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장승의 발이 본체에서 떨어져 돌들 사이에 있어 복원이 필요하다.
3. 태안 마애삼존불 사진자료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서해가 내려다 보이는 백화산의 돌출한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는 이 마애불은 백제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위를 파서 감실모양을 이루면서 부조된 이 불상은 우선 중국의 석굴 바깥벽에 새겨진 불상들과 닮았기 때문에 중국문화와 해상교류의 흔적 내지는 중국 석굴의 영향이 보이는 최초의 예로서 주목되고 있다.
또한 석주에 새긴 예산 사방불을 제외하고는 돌에 새긴 불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도 중시되어왔다. 이 불상의 팽이모양의 육계, 강건한 얼굴, 당당한 신체와 묵중한 법의 등은 6세기 후반기의 백제불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걸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발견된 세계 유일의 예로, 강건하면서도 세련된 백제불상 양식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함께 이 불상의 진가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보살은 양 손으로 보주를 받들고 머리에 삼산보관을 쓰고, 양의 불상은 바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약합을 들었고, 어깨는 넓고 목에는 삼도가 없으며, 장방형의 얼굴에 귀가 길어 어깨에 닿았고, 머리는 소발에 육계가 표현되었다.
[일소계와 태을동천암(김해 김씨 족보 보관암)]
[태을동천암 위에 새겨진 바둑판]
[태안 안흥 신진도 어시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