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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50-58(284)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2025. 4. 20
사람은 자기 수준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고 그 수준에 따라 행동한다고 합니다. 저는 미술품을 전시하는 화랑에는 잘 가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름 나 있는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제 낮은 수준으로서는 걸려 있는 그림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작가 피카소의 그림을 보십시오. 그 그림 중에서 쉽게 이해되는 것이 있던가요?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입이 붙어 있고 입이 있는 자리에는 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어서 어떻게 그림을 감상해야 하는지 헛갈립니다. 그것이 바로 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영성>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직역하면 “영적인 성품”이라 할 수 있으나, 영성(靈性)이란 ‘예수님께 뿌리를 두는 것, 말씀에 뿌리는 두는 것, 생명에 뿌리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저 분은 참 영성이 깊다’라고 말할 때에, ‘그 분의 삶의 뿌리가 예수님에게 깊이 박혀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부산 앞 바다에 바람 쇠러 나가면, 종종 바다 위에 떠다니는 멋진 요트를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제법 부는 대도 요트는 개의치 않고 물 위를 생생 잘도 달립니다. 요트가 거센 풍랑에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 이유는, 무게 중심이 수면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해 배 중심에 무거운 것을 둡니다. 큰 화물선은 배의 특별한 공간에 물을 채우면서 무게중심을 낮춥니다. 이것을 “바닥짐”(ballast)이라고 합니다. 무게 중심이 낮아야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습니다.
외모만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형에만 신경 쓰는 사람은 수면 위를 꾸미는 사람입니다. 자꾸 장식과 과시에 집중합니다. 이런 사람은 풍랑에 쉽게 뒤집힙니다. 삶의 풍랑에 넘어지지 않는 든든한 인격이 되기 위해서는 영성의 바닥짐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망망 대해를 항해하는 여러분의 인생배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닥짐이 되어 큰 파도가 와도 뒤집어지지 아니하고, 무사히 목적지인 천국의 항구까지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활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부활 신앙은 최고의 기적이며 축복입니다. 오늘 부활 주일에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는 땅의 것과 함께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나 어울리는 육체를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로 죽어서 썩어져 없어져 버리는 이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새로운 몸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고 해도, 육의 몸이 영의 몸으로 바뀌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간의 방법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과 방식으로 처리해야만 이 문제는 풀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런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공감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① 정류장의 법칙그냥 지나칠 때는 자주 오던 버스도 타려고 기다리면 죽어도 안 온다.
② 신체의 법칙가려움은 손이 닿기 어려운 부위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③ 수입과 지출의 법칙뜻밖의 수입이 생기면 반드시 더 많은 뜻밖의 지출이 생긴다.
④ 세차의 법칙큰맘 먹고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온다.
⑤ 애프터 서비스의 법칙고장난 제품은 서비스 맨이 당도하면 정상으로 작동된다.
⑥ 시험의 법칙공부를 안 하면 몰라서 틀리고, 어느 정도 하면 헷갈려서 틀린다.
⑦ 택시의 법칙급해서 택시를 기다리면 빈 택시는 반대편에서만 나타난다. 기다리다 못해 건너가면 먼저 있던 쪽에 자주 온다.
⑧ 정리정돈의 법칙찾는 물건은 항상 마지막으로 찾아보는 장소에서 발견된다.
⑨ 동창회의 법칙동창회에 가면 좋아하는 사람은 결혼했고, 상관없는 사람들끼리만 2차를 간다.
⑩ 주유소의 법칙운전하다 기름이 바닥4을 보일 때 주유소를 더 찾으면 비싼 주유소만 나타난다.
⑪사고의 법칙보험에 들면 사고가 안난다.사고난 사람은 꼭 생명보험에 안 든 사람이다.
⑫화장실의 법칙공중 화장실에서 제일 짧은 줄에 서면 꼭 안의 사람이 큰일을 보는지 오래 걸린다.(은행 자동창구의 법칙)
제가 방금 말씀드린 10여가지의 법칙을 잘 몰라도 인생 살아가는데 불편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법칙만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혈과 육을 가진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며, 썩어질 몸을 가지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꿀 수 없다는 말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거나, 후일에 나에게 죽음이 찾아 왔을 때에 내가 영생의 부활을 맛보지 못한다면, 나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최고의 영광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본문에 나오는 <이김, 헬 니코스>는 “정복하다, 극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57절 본문을 한 번 더 자세히 보십시오.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긴다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죽음을 극복하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사망의 어두운 그늘을 이길 수 있으며, 예수님 때문에 나같이 연약한 자라도 부활에 동참한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나 또한 죽음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참된 의미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로또복권 1등 당첨은 인생에 있어서 두 번 찾아오기 힘든 대박’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로또 1등 당첨보다 더 큰 대박이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과 죽음을 이긴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또 복권은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먼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작은 불평과 실패 때문에 큰 하나님의 감사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이클 그리피스(Michael Griffiths)라는 분이 있습니다. OMF 일본 주재 선교사와 국제 총재를 역임했으며, 신학자와 기독교 작가 등으로 활동하였던 뷴입니다. 그리피스가 선교사 나간다고 했을 때, 그에게 와서 겁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에스키모로 선교를 가겠다고 했더니 ‘북극 가면 얼어죽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더운 나라로 가겠다고 하면 ‘거기가면 콜레라 같은 전염병으로 죽는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미 아마존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마존에는 식인 물고기가 있어서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럼 미국에서 선교하겠다고 했더니 ‘미국에는 권총 강도가 많아서 총에 맞아 죽어’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죽는다는 이야기밖에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리피스에게 이런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여러 번 죽을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사고로 죽던, 또는 늙어 죽던, 아니면 총에 맞아 죽던, 한 번 죽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피스는 담대히 선교사로 나가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을 겁냅니까? 성도들을 공격하는 마귀를 보면, 죽을 수 있는 20가지, 30가지의 길을 이야기하면서 위축시킵니다.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30가지로 여러 번 죽는 사람 있습니까? 내 주변에 많은 문제가 나를 덮쳐서 내 숨통을 옥 조아 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제에 다 내가 죽는 게 아닙니다. 안 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다한 다음에 한 가지 방법으로 단 한 번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제 아무리 악한 마귀가 이런 저런 죽음의 길을 보여주면서 나를 괴롭게 하여도, 마귀는 내 생명을 건드릴 권한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을 보십시오. 얼마나 모진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난을 겪어도 욥에게 죽음은 찾아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욥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 주시기 때문이며, 마귀가 갖은 장난질을 친다고 해도, 욥의 생명을 빼앗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 부활주일에는 부활절헌금이라 정하여 하나님에게 따로 드립니까? 바로 이런 뜻이 있기에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부활절 헌금입니다. 어떤 분은 왜 부활절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 왜 부활절에 특별히 감사하여야 알지 못하고 부활절 헌금을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이제는 똑바로 알고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승리가 있었던 것 같이, 믿는 성도에게도 고통과 승리는 반드시 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사탄은 성도를 방해하고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어떠한 일에든지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버립시다. 부활의 큰 믿음과 승리의 믿음으로 충만 합시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제가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고린도전서 15장은 어떤 장으로 불리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까? 15장 전체가 부활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이기에 <부활장>이라고 알려드렸습니다. 15장 전체를 곰곰이 훓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 바울은 때로 열광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활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로막는 사람들과 싸우는 사변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5장안에는 부활교리를 수호하는 바울의 말에서 칼과 창이 부딛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잇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말하기를 “고전 15장은 부활에 관한 전투기록”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격정적인 내용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15장을 마무리하는 58절을 보십시오. 부활에 대한 바울의 진술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로 종결되어집니다. 거짓교사들과 거짓선지자들에 둘러 쌓여 있고, 적그리스도가 유혹하고 있는 상태에서, 바울은 말을 던집니다.
58절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①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도의 생활이 항상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믿음 위에 서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트위스트 원반>이라는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접시처럼 생긴 둥근 원반이 이리 저리 요동치면서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을 마구 흔들어댑니다. 제 아무리 똑바로 서 있고자 해도 놀이기구에 탐승한 이상, 기구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난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라는 말을 이 놀이기구를 연상하며 의미를 깨닫기 바랍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을 의지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요동치며 흔들립니다. 그러나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뿌리는 내리고 있는 성도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주의 이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그 부활을 앞으로 나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잘난 것 때문에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는 성도라면, 더욱 더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충대충 신앙생활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복음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이 하시기 바랍니다.
인도에 파송된 선교사가 그 지역 힌두교인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힌두교 지도자인 구루에게 ‘그 지방 말을 배우고 싶으니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구루가 정중하게 거절을 하는 거예요. 선물을 준비하여 찾아가기도 하였지만, 몇 번을 이야기해도 자꾸만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공짜로 배우지 않고 사례비도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거절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계속 부탁을 하자, 힌두교 구루는 아주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기독교인이 되고 말 것이란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들어 그래서 거절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제가 전도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이렇게 말합니다. 전도는 절대 안 할 테니까 다만 그 지방 말만 좀 가르쳐달라고 다시 부탁합니다. 그러자, 그 힌두교 구루가 다시 말하기를 ‘안 됩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내가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말하고 떠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미 있는 말이 아닙니까? 힌두교의 영적 지도자인 구루가 선교사에게서 얼마나 큰 영적인 힘을 보았기에,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하면서 떠나갔을까요? 선교사님이 가지고 있는 이런 영적인 힘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힘은 특정한 어떤 사람만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삼고 그리스에게 매여 있으며, 반석 되신 그리스도를 인생의 전부로 삼고 살아가는 성도는 이런 영적인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 전에 불렀던 복음 송 중에 송명희 씨가 작사한 <주님의 고통>이란 아름다운 찬양이 있었습니다. 노랫말은 ‘주님이 결박당하실 때 나의 마음 괴로웠고, 주님이 매 맞고 능욕 당하실 때 나 어찌할 줄 몰랐으며, 주님이 채찍으로 맞으실 때 내 눈에 눈물이 고여 흐름이여, 주님이 못 박힐 때 내가 흔들림이여 흔들림이여’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노랫말 끝 부분에 보면,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요. 그의 죽음 내 죽음이라. 그러기에 그의 부활도 내 부활이네. 그러기에 그의 부활도 내 부활이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통이 내 고통이요,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요,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라는 신앙고백이 여러분의 입에서 진실되게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을 결단하며, 부활하신 주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