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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부정에서 해방 되려면 (막 5:25-34)
이 시간 "죄의 부정에서 해방 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범죄 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인간의 최대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죄의 부정에서 해방되고 영생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낸 죄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인간의 그 어떤 문제가 있어도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다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믿음이 없어 주님과 연합된 삶을 알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본문의 혈루증 앓는 여인이 고침 받은 이야기 역시 그렇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옷가를 만져 고침 받은 이 이야기는 죄로 말미암아 부정하여지고 고통당하는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죄의 부정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기 부정을 알아야 합니다.
25절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라고 했습니다. 혈루증이란 여성이 만성적인 하혈병으로 여성의 생식 계통에 이상이 생겨 피가 유출되는 병입니다. 이 병은 당시 의술로는 불치의 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레15:19-33 등의 율법에 보면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서 이 환자를 만져도 안 되며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부정한 병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계속하여 피가 나올 때 얼마나 부정하겠습니까? 치아에서 피가 나도 대인기피증이 생기지 않습니까? 부인과 질환을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요실금만 가지고도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런데 물도 부족한 중동지방에서 하혈하는 혈루증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무려 열두 해 동안, 몸은 해골처럼 마르고 남편도 떠나고 가족도 떠나고 친구도 이웃도 그를 멀리하여 움막에 처하며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두 해를 앓았으니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부정합니다. 죄가 심령을 더럽게 합니다. 마음에 죄가 있으면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평안도 떠나고 기쁨도 떠나고 가족도 떠나고 이웃도 떠납니다. 죄가 심령을 마르게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를 받습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고 불신하면 지옥에 영원히 격리되고 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이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속히 회개하여 예수 믿어 죄에서 구원 받기 바랍니다.
2.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26절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그래도 이 여인이 다행인 것은 가산은 좀 있었던지 의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의원들에게 많은 고통만 받고 병은 더욱 중하여져 갔습니다. 그러기를 열두 해,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고통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부정하다고 다 그를 멀리하고 얼마나 불쌍한 여인입니까? 그러나 요즘 병들어도 교회에서 와서 기도해 주잖아요? 그러나 당시 유출병이 들면 율법에 의해 제사장들까지도 그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죄가 그렇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율법으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킬 인간이 무능하고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율법을 지키다가 도리어 율법의 정죄 받습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사는 길을 찾다가 도리어 이렇게 맞고 저렇게 맞고 온갖 상처투성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을 보세요. 율법이 주어진 후부터 그들은 맹렬한 율법의 심판을 받습니다. 불이 나와서 사르는가 하면, 땅이 입을 벌려 산채로 매장을 시키고, 불뱀이 나타나 물고, 온역이 생겨 고통을 당합니다. 이처럼 율법은 살리는 의원이 아니라 죽이는 의원입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돈이 있을 때는 희망을 가지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았지만 이제는 돈도 떨어지고 그럴 힘도 없습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는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숫자에 의미를 주기를 좋아했습니다. 대개 12는 완전수 3에다 모든 방향을 망라한 수 4를 곱한 수로서 세상 방법으로는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도 만난 후에도 이 깨달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만난 후에도 내가 스스로 죄를 이기려고 할 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복음의 진리로 충만해야 합니다.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불치의 병도 낫고 죽은 자도 살리신다는 소문입니다. 주님이 손만 얹으시면 낫지 못할 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치유와 간증을 보고 들었습니다. 이 소문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소문입니다. 여인의 마음에 의심 한 점 없는 그 믿음의 비밀이 바로 소문에 있었습니다. 여인은 너무나 확실한 사실들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문이 여인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께로 가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나의 구주이신 것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이야기도 들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행복한 이야기도 들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능력 받은 이야기, 예수 믿고 크게 쓰임 받은 이야기도 늘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영의 양식 먹은 것이 없이 어찌 믿음이 생깁니까? 영의 양식 잘 먹어야 영이 건강해지고, 육신의 양식도 잘 먹어야 육신도 건강해집니다.
그래서 가려서 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귀를 함부로 빌려주면 큰일 납니다. 아이들 학교 선택도 중요합니다. 타 종교에서 하는 학교에 보내면 뇌의 논리구조가 바뀌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로마인들을 만나면 대화하지 않았고, 히브리인 역시 로마인과 헬라인을 만나면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고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논리에 가득찬 로마와 헬라인 두뇌에 어떻게 하늘의 이치인 영의 히브리식의 사고가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사람의 지혜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신 복음을 증거하되 큰 능력과 성령의 나타나심의 도움을 받아서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늘 들으면 그 때 믿음이 생겨납니다. 예수 믿으면 되겠구나, 예수 만나면 되겠구나, 성령 받으면 되겠구나,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늘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믿음에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이 생겼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신은 부정한 사람이라서 율법에 의해 사람들 속에 갈 수 없었고 주님을 직접 만질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더 중요합니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율법보다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율법은 좋지만 율법주의자는 되지 마세요.
사람에게 생명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사는 길이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 사람이 덜 아프니까 쓰다 달다 그런 소리하지 진짜 아프면 뱀도 잡아서 먹어요. 어느 성도님이 침을 맞는데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잘 맞기에 물으니 “병들어 아픈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러시더군요. 추한 것도 없어요. 진짜 아프면 개똥이 약이라면 먹습니다. 창피한 것도 없어요. 두려운 것도 없어요. 이처럼 여인은 혈루증으로 온갖 고통을 당해 봤기에 사람의 두려움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 틈에 끼어 주님 뒤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이 그래요. 담대한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율법이 여인의 접근을 방해한 것처럼 지금도 율법은 예수께로 나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어도 그 사실과 지식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혈을 말씀할 때 언제나 담대히 믿을 것을 말씀합니다. 율법의 정죄가 그만큼 강하고 사단의 정죄가 그만큼 강합니다. 그러므로 저지른 죄보다 주님의 보혈이 더 강하고 더 진리라는 확신 가져야 비로소 평안이옵니다.
그 뿐 아니라 연약함과 병을 담당하신 치유의 복음 역시 그렇습니다. 생명 걸고 믿으세요. 눈을 부릅뜨고 내 병은 주님이 담당하셨다고 병을 향해 불호령을 내리세요. 나는 병자가 아니라고 병을 꾸짖으세요. 조금도 꿀리지 말고 평안을 갖고 웃으세요. 그리고 고통의 현실을 향해서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세요. 주님이 십자가로 승리했다고 끝난 것 아닙니다. 승리의 터전에 서서 강하게 선포하고 승리를 확신하세요. 강하고 담대한 믿음 없이는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이 시간에 여인의 담대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5. 성령으로 주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28절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어떻습니까?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 믿음 좋지요? 예수님의 옷만 닿아도 낫겠다는 믿음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런 믿음을 어떻게 가질까 다들 자신감부터 사라지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솔직히 여인의 믿음 좋지만 그녀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좋은 약이나 음식 권할 때 당장 효과 없다고 버리지 말고 믿고 꾸준히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믿고 주님을 체험해 보세요. 성령으로 체험해 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진 것입니다.
그럼 옷 가라도 만지면 낳겠다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머리 위로 고압의 전기가 흐르는 전선이 있습니다. 그걸 만지면 감전이 됩니다. 그걸 믿는 것은 간단한 상식입니다. 그러나 전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 말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전되어 죽은 사람을 보거나 감전을 경험한 사람은 전기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전압이 세면 장갑을 끼고 만져도 감전이 됩니다. 전선이 옷에 닿아도 감전이 됩니다.
잠시 주님을 전기로 비유해 본 것입니다. 주님을 만지면 생명의 전기가 옵니다. 주님의 전기는 세기 때문에 옷만 만져도 감전이 됩니다. 여인은 주님의 소문을 들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에 주님의 옷 가라도 만지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여인의 믿음도 위대하지만 그보다 주님이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주님을 성령 안에서 경험하세요. 주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삭개오도 변했습니다. 바울도 변했습니다. 김익두도 변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바꾸실 능력이 옵니다. 성령을 이길 죄는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세요. 그러면 죄의 부정은 사라지고 성령의 열매로 새 것이 됩니다.
6. 신령과 진정으로 만나야 합니다.
29-31절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이 구절에서 이해 못할 일이 있지요? 인산인해로 주님을 만진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왜 고침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아와 예배하지만 주님을 진정 만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지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교훈입니다. 모두 함께 말씀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 감동도 없습니다. 기도도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위에 있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을 경험치 못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차이입니다.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믿음으로는 결코 주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혹은 조금 체험할 듯하면 끝내버립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만이 진정 주님을 경험하고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어느 성도는 주님께서 택해 주신 은혜가 감사하여 교회를 나오면서도 기어서 나오다시피 합니다. 너무 감사하고 감격하여 견딜 수 없답니다. 그는 예배 순서 순서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설교가 은혜가 있니 없니 하지만 이 분은 항상 강단에서 폭포수 같은 생명수가 쏟아짐을 경험합니다. 어떤 차이입니까? 믿음의 차이입니다.
7.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32-34절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셨습니다.
여인은 군중 속에 스며들어 치유 받고는 조용히 사라져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율법을 무시하고 나아왔는데 주님에게까지 들켰으니 큰 벌을 받을 것만 같아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을 바라보시고 “딸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이 얼마나 따뜻한 표현입니까? 그러시고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셨습니다. 여기 “평안히 가라”는 헬라어 원문은 "딸아, 평안을 향하여 가라" 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평안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서 여인은 새로운 사실을 체험합니다. 벌 받을 줄 알았는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고가 바뀌어야 합니다. 율법적 사고를 가지면 언제고 다시 부패에 떨어집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고 늘 안심하며 두려운 마음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고침 받고 몰래 빠져나갈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앞에 머물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포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힘들고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주님께 멀어지는 순간 우리는 실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정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믿고 그 안에서 하나 된 자는 영원한 영광을 구원과 함께 받게 하셨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가능합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혈루증 여인과 같은 믿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모든 부정한 죄악과 저주를 다 벗고 항상 예배하며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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