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구 제5시조집, 『노송의 계절』, 열린출판, 2024.
仁松 朴喆求 선생 약력
1939년 9월 5일생
경북 경산시 자인면 남신리 출생
문화제육관광부 부이사관 정년퇴임
서울 충현교회 은퇴 장로
1996년 《시조생활》 신인문학상
-경북 중‧고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국문과에서 수학함.
-연시조집임 (180편)
-현 85세
명성황후 조난지에서
기운 달도 고개 돌려 서산 넘어 숨었다
옥호루 고요한 침상 찬바람에 날아가고
서릿발 잔인한 칼날 목련꽃을 꺾었다.
뒤집힌 붉는 눈매 칼날 속 번뜩이고
아늑한 구중궁궐 아수라장 되었다
눈 감고 못 잊을 한을 녹산 뜰에 묻었다.
찬 서리 내린 새벽 불꽃 속 피는 원한
한 민족 가슴마다 이글이글 타로른다
원삼圓衫에 뿌려진 눈물 향원지에 넘실댄다.
□ 옥호루는 황후 침실. 원삼은 황후가 입던 옷.
한가위 보름달
남산 위의 보름달 유난히도 둥근달
지구촌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으신다
때때로 쳐다보면서 평화롭게 살란다.
한강 위의 보름달 유별나게 밝은 달
한반도 내려다보며 광채를 발하신다
이제는 하나가 되어 부강국가 이루란다.
빌딩 위의 보름달 말없이 흘러간다
미움과 다툼 벌이고 뜨겁게 사랑하며
인생은 유한하니라 둥글둥글 살란다.
한국 전쟁 지게 부대
철저한 준비 속에 일요일 기습 남친
무방비 혼란 속에 수도 서울 빼앗기고
낙동강 최후전선에 풍전등화 조국 운명.
익숙한 산악전에 경험 많은 괴뢰군
낮에는 숲에 숨고 밤에는 나타나는
게릴라 전술 속에서 속수무책 유엔군.
아들은 총칼 들고 아버지는 지게 지도
포탄은 저 나르며 보급품 조달하여
유엔군 감동시키며 참전했는 지게 부대.
비 오듯 퍼붓는 포탄 눈 하나 깜짝 않고
비분의 불퇴전 용기 하늘이 감동했다
이 나라 후손들이여 이분들을 잊지 말자.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최후의 결전을 치를 때 전선이 대부분 산악전이라 차량을 이용한 보급을 하지 못할 때 30세에서 50세 이하 장년들로 지게 부대를 창설 각종 보급품과 탄약, 주먹밥, 포탄을 지게로 운반하고 적으로부터 빼앗은 무리들을 회수하여 후방으로 이송함. 약 2,850여 명의 부대원들이 전사함.
물처럼 살다 가자
막히면 돌아가고 갇히면 나눠주고
빨리 가도 자랑 않고 늦다고 서둘지 말고
자리를 다투지 않고 더불어 흘러간다.
받은 만큼 나누고 나눈 만큼 받아주고
조급해 하지 않고 순서도 괘념 찮고
미움도 아픔마저도 그냥 흘러 보낸다.
강처럼 도도하다가 바다같이 넓은 마음
가는 세월 망각하고 마음 짐 훌훌 벗고
고통 짐 벗어버리고 유유히 흘러간다.
모두를 주고 가자
빈손으로 왔다가 가야 하는 인생길
보고 듣고 느끼고 풍기는 향기까지
모두를 다 주고 가자 어차피 빈손이다.
한없이 사랑해도 순간에 사라지고
바동거려 움켜쥔들 처참한 모양새로
가을철 낙엽이 되어 사람에게 짓밟힌다.
빈손으로 왔으니 갈 때도 빈손이다
아껴서 남겨 논들 다툼만 일으킨다
모두를 나누어 주고 홀가분히 떠나자.
면앙정俛仰亭에서
가파른 돌층계를 땀흘려 올라가니
옛 선비 시인들이 모여서 토론하던
면앙정 정자 건물이 말없이 맞아준다.
호남 가단 일으킨 시가 문학 개철자
면앙의 시의 산실 호남 시단 요람지
모두들 어디로 가고 바람만 남아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곳 정자는 초라해도
후세의 문인들이 때때로 찾아와서
선비들 고결한 인품 추모하며 기린다.
아웅 산 테러 40년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대참사가
아까운 인재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악랄한 북한 정권의 실체가 드러났다.
방심하면 안 된다 지금도 전쟁이다
무서운 핵무기로 완전무장 하여 놓고
기회만 노리고 있다 저 북쪽 망나니들.
바축된 살인 무기 비밀리에 수출하고
최첨단 무기 기슬 공공연히 제공 받아
한반도 초토화 계획 몰두하는 붉은 무리.
<해설>
평범 속의 진실이 반짝이는 노송老松의 향기
-박철구 시조집 『노송의 기도』
이광녕
(문학박사, 문학창작지도교수)
박철구 시인의 아호는 ‘인송(仁松)’이다.
인송 선생의 인품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심을 바탕으로 남에게 신뢰감을 주며 진실하고 올곧아서 모든 이의 삶의 사표가 된다. 그는 참으로 이 시대의 모범 작가요 시민으로서 우러러 본받을 만한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일찍이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문과를 수학하고 국가 고급공무원을 거친 그는 시인이요 장로로서 반듯한 인생을 살아온 삶의 궤적이 그의 전체 글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정통 관료 출신에대 문인이 된 인송 선생은 타고난 성실성에다 국가문화에 대한 애호와 충효예 정신, 그리고 탐구 정신과 학구열로 ‘우리 전통 시조’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앞섰는데, 그는 일찍이 시조단에서 필자와 함께 시조 부흥에 앞장섰으며, 우리의 전통문학 시조를 통하여 문인의 반열에 올라 문명文名을 널리 떨치었다.
1. 신실한 믿음 생활과 구도자의 길
문학과 종교는 인류의 삶의 역사에 크게 작용하였다. 예를 들면, 중세 후기의 프랑스 문학은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한 문학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성경 이야기와 그에 따른 성인들의 삶을 주체로 한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작품 성향은 교리적인 교훈을 전달하고 만인들에게 도덕적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19세기에 등장한 즉흥적, 감상적, 공상적인 것을 선호하는 낭만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박철구 시인의 신앙적 글들을 대하면 교훈성을 강조하는 고전적인 풍류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신앙적 믿음을 바탕으로 국가와 현실에 충실하고 올곧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의지가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 치하와 6‧25동란, 그리고 민주화의 시대를 거친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해서 문학의 효용론적 가치를 중시해서 그러리라 판단된다.
쓰라린 지난 세월 뼛속 깊이 회개하고
두껍게 쌓아 올린 마음의 담 허물고
불같은 뜨거운 사랑 나누면서 살리라
성도들 열심 내고 중직자 하나 되어
간절한 기도로써 목회자 도와주고
말씀에 기초를 두고 새 역사를 쓰리라
빛 잃은 한국교회 희망의 불 밝혀주고
분단된 조국 강토 복음으로 통일하여
지구촌 성령의 불길 활활 타게 하리라.
-「새 역사를 쓰리라」 전문
이 글에는 쓰라린 지난 세월을 회개하고 서로 벽을 허물어 사랑을 나누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기도하며 ‘복음으로 하나가 되어 새 역사를 쓰리라’하는 간절한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이 여타 다른 이들의 글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기도하며 목회자를 도와주고, 복음으로 전파하여 지구촌을 성령의 불길로 타오르게 하자는 것이다. 시상의 관점이 경제발전이나 국가 건설에 있지 않고 영적인 개혁과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일은 영적인 기초가 없는 육적인 성장은 모래성과 같은 것이기에, 신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이 선명히 드러난 연시조다.
2. 아름다운 우리 강산 예찬과 애국정신
한반도 한복판에 구름처럼 우뚝 솟아
수도 서울 감싸주며 늠름하게 지켜주니
한양의 진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백두산 맑은 정기 태백산맥 줄기 타고
한반도 중간에서 다시 한번 솟구치니
하늘을 떠받치면서 신선처럼 솟아있다.
-「수려한 북한산」 전문
이 글은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에 관한 예찬의 글이다. 북한산 높이는 835.5m로 서울시 인근에서 가장 높으며,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하여 북쪽 인수봉과 남쪽 만경대 3봉이 삼각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능선에는 숙종 때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다. 화계사와 같은 유서 깊은 사찰들과 유물 유적이 많으며,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등이 남아 있다.
이러한 북한산을 작가는 태백산 줄기 타고 한반도 한복판에 우뚝 솟아 서울을 감싸주며 진산 역할을 하고 하늘을 떠받치면서 신선처럼 솟구치고 있다고 예찬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의 사물에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해 주는 존재다. 그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보고寶庫 북한산이 인송 시인의 시적 정서를 통하여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5. 계절의 감각과 이상향에 대한 희구(希求)
인송 시인의 글은 대체로 개성적인 내면세계의 표출보다는 부딪친 환경이나 외부 세계의 상황 묘사나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들이 많다. 오랜 세월 동안 겪어온 고령의 인생 체험 속에서 마주친 외부 세계와의 끊임없는 관계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시적 정서의 뿌리는 전통적인 선비정신에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시적 풍류와 자연 예찬 등은 글 쓰는 선비들의 주된 일상이었다. 인송 시인의 글 속에도 이러한 선비다운 자연 감각과 가정을 통한 이상 세계를 그려낸 작품들이 자주 눈길을 끈다.
솜털 같은 흰 구름 산등성 넘어가고
넓게 처진 소나무 푸른 기운 감도는데
산철쭉 꽃망울마다 앞다투며 터진다.
굳게 닫힌 전각문들 환하게 열어놓고
속세에 쌓인 먼지 봄바람에 털어내니
비구니 환한 얼굴이 태양처럼 빛난다.
울창한 노송들은 푸른 얼 깃들었고
흐르는 계곡물은 거울같이 맑은데
범종의 은은한 소리 내 마음을 맑게 한다.
-「운문사의 봄」 전문
운문사는 경북 청도에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 글은 봄철에 운문사를 탐방하고 그 감회를 쓴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 작가의 아호인 ‘仁松’을 떠올리는 ‘소나무’가 등장하는데, 제1연의 ‘소나무의 푸른 윤기’, 제3연의 ‘푸른 얼 깃든 노송老松’이다. 지작가는 이 사찰의 ‘노송’에서 시조집 제목의 영감도 떠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솜털같은 흰 구름 넘어가는 산등성 아래, 소나무 윤기 감도는 속에 산철쭉이 앞다투어 피어 있다. 비구니는 전각문을 환하게 열어놓고 봄바람에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니 환한 얼굴이 태양처럶 빛난단다. 그리고 작가의 마음도 노송의 푸른 얼과 거욹같이 맑은 계곡물, 그리고 은은한 범종 소리에 녹아 마음마저 정화되어 맑아졌단다.
아름다운 정경의 운문사에 느낀 정서를 아주 세련미 있게 정서적으로 잘 묘사해낸 훌륭한 작품이다. 배경 묘사가 뛰어나고 시상의 전개도 자연스러워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티 없는 가을 하늘 임의 성품 대변하고
좌청룡 우백호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강직한 선비 기상은 사당 안에 가득하다.
사화에 휘말리어 유배 생활 겪었어도
장원급제 동량재는 재상으로 발탁되어
청렴한 공직생활로 한평생을 빛냈다.
타고난 문장력은 가사 문학 대가로서
수많은 창작품이 감동으로 전달되고
찬란한 별빛이 되어 역사에 비춘다.
-「송강 정철 사당에서」 전문
이 글은 진천에 있는 정송강사鄭松江祠를 탐방하고 그 감회를 적은 글이다. 문인이 어찌 선대의 뿌리를 모르고 오늘의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송강은 가사와 시조로 우리 국문학의 꽃을 피운 문장의 대가이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의 유적지를 찾아 그 자취를 밟아보고 문인 정신을 본받는 일은 문인으로서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철이 비록 정치적 역풍에 휘말리어 곱지 못한 평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강직한 선비 기상과 청렴성, 그리고 문학의 귀재다운 면모를 찬양하면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별빛으로 비추고 있다고 예찬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은 인송 시인이, 앞서간 선인들의 예술 예술의 향기와 그 자취를 본받고자 하는 문인 정신이 발현된 것이며, 그러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선비정신이 오늘날의 많은 문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위에서 박철구 시인의 시조집 『노송의 기도』에 상재될 작품들을 읽고 그 대표가 될 만한 작품을 선정하여 주제별로 살펴보았다.
인송仁松 박철구 시인은 장로님으로 그 품성이 올곧고 겸손하며 긍정적 사고를 지닌 영적 시인이다. 그는 신앙인이요 시인으로서 시조 창작에 있어서도 남다른 열정으로 모법을 보여, 그 의지와 노익장의 푸르른 기상이 돋보이기에 ‘노송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이번에 상재되는 시조집 『노송의 기도』에는 영혼의 평안과 교감하는 지성과 실존의 미학이 중심을 이루며, 주변 관찰을 바탕으로 한 예리한 현실 인식과 자성自省, 그리고 농축된 인생 경륜이 사금파리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큰 감명을 준다. 이 시조집을 통하여 발현된 인송 시인 특유의 해맑은 영혼의 목소리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서, 잠든 영혼들을 흔을어 깨워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