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가 천추의 한을 품고 순국한 만주 뤼순(旅順)감옥.
여기의 사진들은 뤼순감옥의 입구에서 부터 한바퀴 돌아나오기까지 감옥의 구석구석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특히 이 사진 가운데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안의사 순국 현장 건물 모습,
일반 교수형 형장 내부, 사형수의 시신을 담았던 목제 통, 고문기구 등 귀중한 자료들도 포함돼 있다.
사형수의 시신을 담았던 목제 통 중에
어느 통에 안중근 의사의 시신이 들어 갔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뤼순 감옥의 사형수들에게
사형이 집행되고 사망이 확인되면
그 통에 넣어 사진에서 보이는 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사진 속에 통들이 노출되어 보이는 것은
전시용으로 땅을 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진들에 대해 안중근의사 기념관 최명수씨는
"뤼순 감옥은 외국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으로
최근 일부 공개된 곳도 있지만, 사형집행실 등의 사진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안중근의사의 시신과 관련해
"뤼순감옥에 수감된 잡범들은 통관에 담겨 매장되었으나,
안중근 의사는 '국사범'이기 때문에 사망 진단후
소나무 관에 담겨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장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채호선생 안중근 열사가 잠드신 중국 여순감옥
중국인들은 이 치욕스럽고 잔인한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며, 후대의 교훈으로 물려주고 있다.
이 감옥은 러시아가 만들었지만, 러일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이 뤼순감옥을 사용하게 되었다.
▼뤼순감옥의 본관 정면 모습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것이다.
벽에 이 뤼순감옥에 수감되었던 유명한 사람 10여명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식 모니터에 한국어(조선어)로 설명이 되어 있다.
관광객을 위한 것은 아니고, 중국 자체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조선어 버젼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약 12명의 유명 수인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두 분이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좀더 자세히 찍은 모습
▼검역실
맨 먼저 이곳에서 검역을 한 뒤, 걸려있는 죄수복을 입히고, 감방으로 데려 간다.
▼감방이 보이는 복도
이곳은 1층 인데, 복도의 천정이 뚫려 있어서, 2층의 상황도 다 보인다.
▼일반 감방의 문
▼감방 내부
변기통으로 보이는 작은 통이 하나 보인다.
세로 길이가 약 2.5m 정도 되어 보이는데, 이 작은 감방에서 8명이 수감 되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께서 수감 되었던 독방. 아니 '독채'이다.
거대한 뤼순 감옥에서 유일한 독채.
이 독채에 수감 되었던 유일한 수인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
붙은 지붕있는 부분은 간수가 묵었던 곳.
▼해설 동판
▼내부에는 책상이 하나 있고, 침상이 하나 있다.
책상 위에는 서예를 할 수 있는 도구가 완비 되어 있고,
왼쪽 침상에는 베개가 하나 놓여 있고, 오른쪽 벽에는 직접 쓰신 글들이 걸려 있다.
▼오른쪽 벽에 걸려 있는 글.
'국가안위 노심초사' 라는 글이다.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나라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수인들을 끌고 다닐 때 씌웠던 마스크
사형장으로 데리고 갈 때나 기타 등등에 사용. 아주 기분 나쁘게 생겼다.
▼수인들에게 사용했던 기구들.
어디에 사용했을지는 생긴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고문실
고문기구들 정말 기분 나쁘다.
▼단재 신채호 선생
10년형을 받고 6년간 수감되었다가 이곳에서 병사 하셨다.
저런 고문실에 끌려 다니며, 허구한 날 고문을 당했을터인데, 어찌 살 수가 있겠는가?
▼신채호 선생이 수감 되었던 감방 내부. 작은 방.
▼이렇게 작은 방에 7명이 함께 수감 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수감되었던 방의 전체 모습.
▼감옥 내 병원. 의료기기들
▼진료 받을 때 발목에 채우는 기구.
▼입원실들
▼입원실 내부 모습
▼사형장
▼사형을 시켜서 통 속에 시체를 구겨서 넣는다. 그리고 저 통을 쌓아서 따로 보관 한다.
썩어서 뼈만 남은 모습이 보인다.
통은 높이 약 60~70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통이다.
▼사형은 교수형을 시켰다.
목을 메달아 저 밑에 보이는 빈 공간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목을 메어 다는 줄과 도르래
▼사형을 당한 사람들을 넣은 통을 매장한 장소.
저 속에 안중근 의사의 통도 있을지는?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안중근 의사의 시체를 찿기 위해 이 곳을 두 번 방문하였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안중근 의사를 찿는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출구 부근의 기념품 코너
뤼순감옥 기념품점 벽면의 반을 차지 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글 족자들이다.
중국인들도 안중근 의사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 곳 뤼순은 군사 도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외국인 출입이 제한 되어 있는 곳이다.
이 수많은 수인 들 중, 유일하게 독채를 사용하며, 서예와 책까지 만들 수 있었던 수인은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 뿐이다.
중국인, 일본인들이 보기에도 우리 안중근 의사는 대단한 인물인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글들
'위국헌신 군인본분'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글도 보인다.
▼포장하고 있는 복무원 아가씨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당하신 장소
안중근 의사는 사형마저도 남들과 같은 곳에서 당하지 않으신 것이다.
혼자만 따로 말이다.
▼'1910년 3월26일, 조선의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는 이 사형실 교수대에서 의연하게 순국하셨다.'
30세의 나이에 일본의 최고 권력자 중 한사람을 제거하고,
31세의 나이에 한복을 차려입고 교수대에서 의연하게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
간수마저도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안중근 의사.
출처 :대련 한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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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