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연변 경제학계간 초기교류협력의 회고:
최룡학 교수와 박승헌 교수를 중심으로
韓國和延辺的經濟學界間初期交流協力回顧
1. 교류협력의 배경과 전개
필자가 1990년 한국경제학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제일 큰일은 재외한국인경제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국제학술대회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1981~1988)하면서 미국에 있는 한국인 경제학들이 조국의 경제에 대해 말이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데서 출발하여, 1차 대회(이현재 회장/박재윤 사무국장 팀, 1984), 2차 대회(박기혁 회장, 정창영 사무국장 팀 1986), 3차 대회(정도영 회장, 김기태 사무국장 팀, 1988)까지 치렀다. 이어서 4번째 대회를 金潤煥 회장(단국대 교수 겸 고려대 명예교수)을 모시고 필자가 사무국장으로서 학술대회를 총괄하여야 했다.
1990년 2월 어느 날 서울 남대문 부근,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는 한국경제학회 사무실에 初老의 신사가 찾아왔다. 연변대학의 崔龍鶴 교수였다. 반가운 소님이었다. 우리들은 중국 소식, 연변 소식, 연변대학 소식, 연변 경제학계의 소식과 한국의 경제학계 소식들에 대해 서로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앞으로 서로 협력할 방향에 대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한국경제학회는 제4차 국제한국인경제학자 학술대회를 치러야 할 계획이 있으므로 호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최교수께서 귀국하면 연변대학을 비롯하여 소위 조선족 경제학자들과 많은 협조를 하기로 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수(沈圳)를 경유하여 서울에 온 연변대학의 崔勛 교수가 찾아왔다. 똑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최훈 교수로부터 중국과 연변의 한국인 경제학자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최훈 교수에게 발표를 부탁했다. 그가 논문 쓸 준비기간도 부족했지만 일단 연변 학계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그 동안 국제한국인경제학자 학술대회에는 재미한국인 경제학자들로 초청대상이 한정되었던 것을 제4차 대회부터는 재외 한국인 경제학자들로 대상을 넓혀 일본, 중공, 소련, 북한까지 포함하여 사회주의권의 학자들을 대거 초빙하기로 하였다. 당시 냉전의 벽을 허무는 학계로서의 一助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소련과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교류는, 물론 학자들의 교류까지도,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 중국의 학자들이 한국에 오거나 한국 학자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불편하였다. 마침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사회주의권에서 개혁개방의 시동을 걸렸던 시기였으므로 서로 방문하여 학문적인 교류를 한다는 것은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한 史實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신문 기사들로 기록되었다.
한국경제학회(회장 金潤煥 단국대교수)는 1990년 8월 16~17일 이틀간 고려대학교 과학도서관에서 ‘주요국의 대외경제전략과 한국경제’를 주제로 한 제4차 국제한국인경제학자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미국, 캐나다, 일본, 소련, 중국 등지의 한국인 경제학자 50여명이 참석, 국내학자 130여명과 함께 논문 발표 및 토론을 펼치었다.
특히 중국학자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그 중 발표자는 김명선(뇨녕대), 김희재(동북사범대), 김화림(연변대), 오봉식(연변대), 장세화(길림대), 이문철(길림대), 최훈(연변대), 김동(연변대), 李文哲(길림대), 林昌培(길림대), 崔泰殷(천진동북아연구소) 교수들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 하였다(각종 일간지).
북한 학자들의 참가에 대해 초빙을 하였으나 참가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1960년대 모스크바 대학 경제학과에서 공부하던 동급생들인 중공 뇨녕대학의 김명선 교수와 소련 국책연구기관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Institute of World Economy and International Relations)의 블라디미르 정(鄭英助) 교수를 초청하였는데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헤어진 후 처음으로 한국경제학회 리셉션에서 만났으며, <매일경제> 신문에서는 기사로 다루어주기도 하였다(부록 1,2 참조/생략). 또한 미국 뉴욕주립대학(Albany)에서 같이 공부했던 朴承憲 교수(연변대)과 박승준 교수(단국대)도 서울에서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한중수교(1992년 8월 24일) 이전이므로 일반적으로 중공이라 하였고, 한러수교(1990년 9월 30일)이전이므로 소련이라 하였음).
그 후 나는 중국 사회과학원 세미나 참석 및 중국경제특구 시찰에 참여하였고(1991. 7.17-7.28), 이어서 열리는 중국 연변대 제2차 조선학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발표하고, 사회와 토론에 참여하였다(8.7-8.21). 1993년 여름에 연변대학 학술행사에 참석하였고, 경제학부 겸직교수로 위촉되었고(1993) 장춘, 연길, 훈춘 등 두만강지역 산업고찰 및 백두산 순례를 하였다. 이어서 중 국연변대학과 한국 동북아경제연구소가 “개혁개방과 중국 경제”, 국제학술토론회를 공동주최하여(1999.1.3-1.9) 최초로 관련학회간의 학술교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동안 연변대 교수들과 한국의 교수들이 양측 관련 대학에 초빙되어 강의를 하기도 하였으며, 나도 2003년 2학기에 연변대학 대학원 경제학부에서 한국경제론 강의를 하고 객좌교수로 임명 되었다((2003).
당시 연변 경제학계에서 한중경제학계의 교류를 주도한 학자는 연변대의 경제학부의 원로이었던 최룡학 교수와 더불어 박승헌 교수가 있다. 박교수는 연변학계와 사회에서 촉망되는 학자로서 한중학술교류협력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 두 학자의 한국에서의 주요 학술활동은 <부록 3>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두 분들의 양국간 학술교류에 대한 회상은 필자의 정년기념저서에서 잘 나타나고 있어서 <부록 4>로 정리하였다.[계속]
출처: 2014 한중사회과학학회(KCSSS) 동계 국제학술대회, 한·중 경제협력의 도약과 뉴 로드맵: 공생과 창조, 韩中经协的跳跃和新的路线图: 共生和创新, New Roadmap for Kor-Sino Leaping Forward: Symbiosis & Creativity, 中國 西安 西安交通大學, 2014.12.12.(금)~15(월): 沈义燮 (명지대 명예교수, 연변대 객좌교수), 한국과 연변 경제학계간 초기교류협력의 회고: 최룡학 교수와 박승헌 교수를 중심으로, 韓國和延辺的經濟學界間初期交流協力回顧, Early Academic Cooperation in Economics between Korea and Yanb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