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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돌라의 후손 (2절)
③ 잇사갈 전체의 군사력 (3-5절)
주석
잇사갈은 성경에서 비교적 조용한 지파지만, 역대기는 의외로 강력한 군사 지파로 소개한다.
즉, 하나님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파도 자신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신다.
II. 베냐민 지파의 족보 (6-12절)
① 베냐민의 아들 (6절)
② 벨라 가문 (7절)
③ 베겔 가문 (8-9절)
④ 여디아엘 가문 (10-11절)
여디아엘
빌한
여우스
베냐민
에훗
그나아나
세단
다시스
아히사할
⑤ 숩빔과 훕빔 언급 (12절)
베냐민 족보는 다른 족보(역대상 8장)와 다르다.
이는
베냐민은
역대기는 베냐민을 여러 번 소개하여 유다 왕국과 함께 언약 공동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지파임을 강조한다.
III. 납달리 지파 (13절)
한 절로 끝난다.
매우 짧다.
아마
때문으로 본다.
길이가 짧다고 중요성이 작은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다.
IV. 므낫세 반 지파 (14-19절)
① 므낫세의 자손
↓
② 아람 첩의 후손
↓
③ 슬로브핫 언급
↓
④ 길르앗 계열
↓
⑤ 여러 후손
주석
여기서
슬로브핫은 딸만 있었던 인물이다.
이는 민수기의 상속법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역대기는 여성 상속 사례도 기억한다.
언약 공동체는 혈통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 안에서 유지된다.
V. 에브라임 지파 (20-29절)
이 본문의 중심부이다.
① 에브라임 족보 (20-21)
↓
② 아들들의 죽음 (21)
↓
③ 에브라임의 슬픔 (22)
↓
④ 브리아 탄생 (23)
↓
⑤ 세에라의 건축 (24)
↓
⑥ 여호수아까지 이어지는 족보 (25-27)
↓
⑦ 기업 소개 (28-29)
21절
가드 사람들이 에브라임 자손을 죽인다.
이는 외부 침입으로 인한 비극이다.
22절
에브라임이 오래 슬퍼한다.
족보에서 보기 드문 감정 표현이다.
23절
브리아 = "재앙 가운데 태어난 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24절
딸 세에라가 성을 건축한다.
성경에서 매우 드문 여성 건설자이다.
25-27절
결국 여호수아까지 이어진다.
이 단락은 역대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족보 중 하나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죽음이 있어도 하나님은 언약을 끊지 않으신다.
브리아가 태어나고 결국 여호수아가 등장한다.
즉 비극 → 회복 → 약속 성취라는 흐름이다.
VI. 아셀 지파 (30-40절)구조
① 아셀의 아들 (30절)
↓
② 각 가문의 족보 (31-38절)
↓
③ 결론 (39-40절)
끝부분도 다시 용사와 군사력이 강조된다.
이는 처음(잇사갈)과 연결된다.
아셀은 창세기에서는 풍요로운 지파였고, 역대기에서는 충성된 군사 공동체로 묘사된다.
전체 구조(대칭)
A 잇사갈 (1-5)
강한 용사
B 베냐민 (6-12)
언약 공동체
C 납달리 (13)
짧은 족보
D 므낫세 (14-19)
언약 계승
E 에브라임 (20-29)
★ 중심
죽음
슬픔
회복
여호수아
D' 아셀 (30-40)
언약의 번성
강한 용사
엄밀한 의미의 완전한 교차대구(chiasm)라기보다,
에브라임 이야기(20-29절)를 중심으로 앞뒤에 족보들이 배치된 중심 집중형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역대상 7장은 단순한 이름 목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신학적 흐름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역대상 7장은 '족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보존하시고, 상실 가운데서도 회복을 이루시며, 약속의 역사를 이어 가시는 과정'을 증언하는 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없어진 지파들
본문: 역대상 7:1-40
서론 : 잃어버린 열 지파, 그러나 하나님은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잃어버린 열 지파(The Lost Ten Tribes of Israel)'입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었습니다.
남유다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이어졌고, 북이스라엘은 나머지 열 지파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길을 걸었고,
결국 주전 722년 앗수르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정복한 민족들을 여러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 민족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도 각지로 흩어졌고, 다른 민족들과 섞여 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는 이들을 '잃어버린 열 지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열 지파를 찾아 나섰습니다.
아프리카의 부족들, 인도의 일부 공동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의 민족들,
심지어 일본이나 영국 민족이 열 지파의 후손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지역에서 자신들이 이스라엘 열 지파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관심은 '열 지파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는가'에 관심을 둡니다.
바로 그 점에서 역대상 7장부터 9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북이스라엘은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진 민족이었습니다.
족보도 대부분 끊어졌고, 어떤 지파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현실만 보면 "그들은 끝났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놀랍게도 그 사라진 지파들의 이름을 다시 기록합니다.
잇사갈,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아셀….
비록 족보는 불완전하고 많은 이름이 사라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성경 속에 남겨 두셨습니다.
이것이 역대기의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열 지파'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기억하는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살아가면서 잊힌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패와 상실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7장부터 9장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백성일지라도 하나님께는 결코 잃어버린 백성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누구를 기억하시며, 어떤 사람을 다시 세우시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신앙을 잃으면 아무리 강해도 결국 사라집니다.
역대상 7장을 읽어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지파가 잇사갈입니다. 잇사갈 지파의 족보를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큰 용사", "군사", "족장", "용맹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돌라의 후손들은 모두 용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 시대에만 해도 그들의 수가 2만 2,600명이나 되었고(7:2), 잇사갈 지파 전체의 군사는 8만 7천 명에 이르렀습니다(7:5).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젊은이가 많았고, 나라를 지킬 군사력이 풍부했으며, 가문도 크게 번성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벨라와 베겔과 여디아엘의 후손들은 모두 큰 용사들이었고, 수만 명에 이르는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들은 장래가 매우 밝은 지파였습니다. 인구도 많고, 경제력도 있었으며, 군사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강했던 북이스라엘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군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경제력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 금송아지를 세우고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대신 자신들이 만든 종교를 선택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정치와 경제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겉으로는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영토도 넓어졌고, 무역도 활발해졌으며, 국력도 남유다보다 강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은 점점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죄는 겉으로는 성공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사람과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마치 속이 썩은 큰 나무와 같습니다. 겉에서는 여전히 푸른 잎이 무성하지만, 어느 날 큰 바람이 불면 한순간에 쓰러지고 맙니다. 뿌리가 썩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애쓰고, 좋은 직장을 얻도록 돕고, 건강과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은 모두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성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능력은 사람을 높은 자리까지 올려놓을 수 있지만, 믿음만이 그 자리를 지켜 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건물이 얼마나 크냐, 성도가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뛰어난 프로그램이나 훌륭한 시설이 교회를 지켜 주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끝까지 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많이 물려줄 수 있습니다. 학벌도, 재산도, 기술도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유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잠시의 성공은 세상이 줄 수 있지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역대상 7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남기고 있는가?"
재산입니까?
능력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까?
한때 수만 명의 용사를 자랑하던 지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든 사람들의 이름은 성경 속에 남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외적인 힘으로 번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만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본론2. 하나님의 말씀 없이 앞서가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7장의 중심에는 에브라임 지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앞부분의 여러 지파는 이름과 숫자를 중심으로 족보가 이어지지만, 에브라임의 족보에서는 갑자기 하나의 사건이 기록됩니다. 족보 가운데 사건이 삽입되었다는 것은 역대기 기자가 이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에브라임은 원래 큰 축복을 받은 지파였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에게 데려와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의도적으로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요셉은 형에게 오른손을 얹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우가 형보다 크게 될 것이다."
이처럼 에브라임은 하나님께 특별한 축복을 받은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7장에 나타난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에브라임의 자손들은 가드 사람들의 가축을 빼앗으러 내려갔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7:21). 성경은 그들의 행동을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간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판단으로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아직 출애굽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강하다."
"지금이 기회다."
"우리가 먼저 차지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판단이 앞서면 아무리 좋은 목적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원리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채 법궤를 손으로 붙들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문제는 열심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슷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먼저 결정합니다.
말씀으로 분별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조급한 마음으로 행동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적극성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그것을 조급함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하나님보다 한 발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죽었고, 에브라임은 여러 날 슬피 울었습니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새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브리아, 곧 "재난" 또는 "불행 가운데 태어난 자"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아버지의 깊은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비극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브리아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조상들은 자신의 힘만 믿고 싸우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 하시면 건넜고,
"여리고를 돌아라." 하시면 돌았습니다.
"아이성을 공격하라." 하시면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고 기도할 만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조상들이 이루지 못했던 가나안 정복을 여호수아가 완성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실패가 없는 삶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에브라임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실패를 훈련으로 사용하셨고, 그 가문에서 결국 여호수아라는 믿음의 지도자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실패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일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문이 닫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길고,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습니다.
당장의 실패가 하나님의 약속이 무너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교만을 낮추시고,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시며,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가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경험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의 실패를 여호수아의 승리로 바꾸셨던 것처럼, 우리의 실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본론3. 하나님께서는 사라진 것 같은 사람도 기억하십니다.
역대상 7장을 읽다 보면 매우 안타까운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지파는 수많은 이름과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지파는 겨우 한 절로 끝나 버립니다.
대표적인 지파가 납달리 지파입니다.
"납달리의 아들들은 야하시엘과 구니와 예셀과 살룸이니 이는 발하의 손자더라."(대상 7:13)
이것이 납달리 지파에 대한 기록의 전부입니다.
한때 이스라엘을 이루었던 열두 지파 가운데 하나였던 납달리 지파의 족보가 단 한 절로 끝나고 맙니다. 더욱이 스불론 지파와 단 지파는 이 부분의 족보에서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마을은 불타고 성읍은 무너졌으며, 집안에서 대대로 보관하던 족보와 문서들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누가 누구의 후손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갑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사랑하며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이겠습니까?
역사는 대부분 위대한 왕이나 장군, 영웅들의 이름만 기록합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역사책에서 쉽게 사라집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도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100년만 지나도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0년이 지나면 이름조차 잊힙니다.
세상은 그렇게 사람을 잊어 갑니다.
고대 로마에는 '기록 말살형(Damnatio Memoriae)'이라는 형벌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비석에서 지우고, 동상을 부수고, 기록을 없애 버렸습니다.
마치 그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드는 형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장 무서운 형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도 어쩌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없어진 지파', '잃어버린 열 지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 줍니다.
비록 기록은 짧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성경 속에 남겨 두셨습니다.
사람들은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족보에서는 이름이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억에서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아무 의미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고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자신이 잊힌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는 나를 찾는 사람도 없구나.'
'내가 없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구나.'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이름을 잊어도 하나님은 이름을 부르십니다.
사람은 공로를 잊어도 하나님은 충성을 기억하십니다.
사람은 눈물을 잊어도 하나님은 눈물까지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끝까지 찾아 나서십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군중 속에서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를 "마리아야"라고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대상 9장으로 가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됩니다.
그 가운데는 제사장도 있고, 레위인도 있으며, 성전 문지기들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문지기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 나라에는 이름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은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세상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아간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도 기억하시고, 우리의 헌신도 기억하시며, 우리의 눈물과 수고도 모두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충성한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세상은 큰 일을 한 사람을 높이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를 '사라진 사람'이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인생은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역대상 7장부터 9장까지의 족보는 사라진 지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까지 기억하시는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강했던 지파도 하나님을 떠나면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대로 실패와 상실을 경험했던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여호수아를 배출하는 축복의 지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은 지금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살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이름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사람은 어떤 시대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공은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