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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7구간 제1부
삼웅2리마을-영탑사-성하마을-
한티고개-한티마을-장승배기
20260416
1.아름다운 영탑사
-칠층석탑과 그윽한 느티나무
4월을 맞이하여 동서트레일 6구간을 탐방한 뒤 2주만에 7구간 탐방을 위해 충남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에 다시 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T. S. 엘리엇(Eliot, 1888~1965)의 '荒蕪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 뒤의 유럽의 정신적 황폐 상황에서 4월은 생명이 약동하는 축복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가장 잔인한 달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전쟁과 문명 파괴를 겪는 이 봄은 축복이 아니며 春來不似春이다. 그럼에도 비판 의식이 무감각한 길손은 不似春의 봄을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즐기고 있다.
동서트레일 7구간은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서 서산시 운산면으로 넘어간다. 탐방 지역은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와 성하리, 대치리를 지나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로 넘어가 운산면 고산리와 수평리, 고풍리를 거쳐 운산면 용현리 서산마애삼존불에서 탐방을 마친다. 그래서 7구간은 당진시 면천면 지역의 법정리 세 곳과 서산시 운산면 지역의 법정리 다섯 곳을 탐방하는 구간이다. 7구간 탐방 체험을 당진시 운산면 대치리와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를 경계하는 장승배기를 경계로 하여 2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삼웅2리마을 입구~장승배기) : 양재역 국립외교원 앞에서 아침 7시 10분 출발한 도보여행팀 안내버스가 행당도 휴게소에서 20분 휴식한 뒤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의 삼웅2리마을 버스정류소 넓은 터에 9시에 도착하였다. 날은 맑지만 아주 청명하지는 않다. 문명의 존재들이 전쟁의 포탄에 죽어가는 처참한 4월의 봄은 공허하지만, 삼웅리 지역의 들은 생생하게 약동하며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빛난다. 삼웅리는 상웅, 중웅, 하웅 지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삼웅2리 마을회관은 하웅 지역에 자리한다.
삼웅리 드넓은 들녘을 하웅 지역에서 출발하여 중웅을 거쳐 수미골의 상웅으로 올라간다. 들길에는 벚꽃과 복사꽃이 피어 있고, 마을에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배꽃들이 순결하게 반짝인다. 서북쪽에는 석재 채취로 만신창이가 된 이배산이 흉물스런 모습을 보이고, 북쪽에는 면천면의 으뜸인 아미산이 서쪽의 다불산과 동쪽의 몽산으로 이어지며, 당진영덕고속도로는 면천면 지역을 가로지른다.
면천면 삼웅리 상웅 지역을 지나 성하리로 넘어가 연화봉 숲길을 따라간다. 연하봉 숲길에서 의두암을 올라가 보아야 하는데, 시간에 쫓겨 아쉽지만 의두암 갈림길을 지나친다. 의두암 갈림길에는 의두암 설명안내판이 두 개나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영탑사 뒷산 연화봉에 높이 4m 되는 바위에 '依斗岩' 글자가 예서체로 음각되어 있어 이 바위를 의두암이라고 부르는데, 이 글자를 새긴 사람은 구한말 학자 운양 김윤식이다.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은 병조판서로서 1887년(고종24년) 면천으로 유배되어 5년 6개월을 살았는데, 매일 의두암에 올라 임금님이 계신 북쪽 한양을 바라보며 망배하였다고 한다. '의두依斗'는 '每依北斗望京華'를 줄인 것으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북쪽 서울을 바라보며 임금님의 만수무강과 나라가 융성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며, 그의 문집인 <운양집>에 '依斗岩' 한시도 전해온다.
그런데 설명안내판에 김윤식의 한시 '依斗岩'이 적혀 있지 않고, 선답자들이 의두암에 올라 찍은 의두암 안내판에도 한시 '의두암' 원문은 없고 번역문만 있다. 인터넷에서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의 칠언율시 '의두암(依斗岩)' 원문을 찾아 보았다. "老石嶄巖立翠微노석참암립취미, 嗒然相對俗塵稀탑연상대속진희 心懸落日常依斗심현낙일상의두, 身御冷風欲振衣신어냉풍욕진의 從此玆邱應賀遇종차자구응하우 誰令遠客久忘歸수령원객구망귀 浮雲渺渺迷西望부운묘묘미서망 五十年來事覺非오십년래사각비" 이 한시를 기산(氣山) 이상현(李相賢)님은 아래처럼 번역했다.
"늙은 돌은 뾰족하고 높은 산 중턱에 서 있는데/ 우두커니 상대해서 서 있으니 이 세상엔 드문 일이다./ 마음은 지는 해에 걸려 늘 북두에 의지해 있고(이 늙은이는 말년에 항상 임금님만 생각하고)/ 모시던 몸은 찬바람 맞았으나 다시 돌아가고 싶구나(모시던 몸은 귀양살이 왔으나 다시 돌아가고 싶구나)/ 앞으로 이 언덕에도 경사를 만나게 된다면(앞으로 내가 귀양길에서 풀려나게 된다면)/ 누가 귀양온 나를 오래 돌아가기를 잊으라 하겠는가/ 뜬구름같이 아득히 어지러운 서쪽을 바라보며/ 오십 년 동안 내려온 일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노라. *衣斗岩 : 임금님만 생각하는 나와 같이 북두성만 바라보고 있는 바위. *迷西望 : 나의 어지러운 말년을 바라봄, 어지어운 西洋을 바라봄." - '의두암(依斗岩, 북두에 의지한 바위) 운양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오십 년 동안 내려온 일이 잘못된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영탑사는 신령스러운 탑靈塔이 있는 사찰이다. 영탑 칠층석탑은 영탑사 남쪽 언덕에서 영탑사 전체를 내려보고 있다. 영탑사 칠층석탑은 위쪽에서 보는 것보다 아래쪽에서 올려보아야 더 멋지고, 영탑사 전경은 내려보아야 더 멋져 보인다. 영탑사의 명품 칠층석탑이 언덕 위에 솟아 있고, 영탑사의 보물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은 인법당 안에 안치되어 있지만, 영탑사를 빛내는 것은 오랜 수령의 느티나무들이 대웅전 마당가와 입구에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령스러운 샘靈泉과 절골저수지 동안(東岸)에서 자라는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으뜸으로 보인다. 영천靈泉은 위쪽에 공중화장실이 설치되면서 현재 음용 불가로 판정된 것이 안타깝다. 그 안타까움은 '의두암' 한시를 번역한 이상현님이 '靈泉' 글자를 새긴 표석 때문에 더 안타깝다.
면천읍성 아래쪽에 있다고 하는 성하리 들녘으로 나가 성하마을회관을 가까이서 확인하고 한티고개로 올라간다. 한티고개는 면천면 성하리와 대치리의 경계를 이루는데, 이 고개에서 북쪽과 동쪽으로 내려보는 면천면 풍경이 아름답다. 면천읍성이 자리한 면천면 소재지 성상리 지역과, 면천면의 명산 몽산과 아미산, 면천저수지를 에워싸고 펼쳐진 면천면의 성하리, 원동리, 문봉리, 영유리, 성상리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풍경은 아미산이나 몽산 남쪽 등줄기에서 바라보면 더 멋지게 조망될 것 같다.
한티고개를 넘어 면천면 대치리 한티마을로 내려간다. 서남쪽으로 가야산 산줄기가 늠름하고, 목적지인 서산마애삼존불은 가야산 산줄기 북쪽에 자리한다. 한티마을 길가에는 탱자나무 꽃들이 새하얗게 피어서, 또 농가 뜰에는 잘 가꾼 배나무에 배꽃들이 순백으로 피어 4월의 봄날을 맑음으로 빛낸다. 그리고 한티마을 자두나무밭에는 자두(오얏) 꽃들이 연두색이 감도는 흰빛을 뽐내고 있다. 따스한 봄날 앞다투어 피는 흐드러진 꽃들을 보면, 송순(宋純, 1493~1582)의 가을 날 시조가 떠오른다.
"풍상(風霜)이 섯거친 날에 갓 픠온 황국화(黃菊花)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양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바람과 서리가 몰아쳐야 고난을 이겨내는 지조를 알 수 있다. 면앙정 송순은 명종 임금이 보내온 황국화를 보고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빌어 신하로서의 지조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읊었다. 복숭아꽃과 오얏꽃, 도리화(桃李花)는 시속에 부유하는 무리들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시속에 부유하지 않는 지조는 무엇일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 영화가 쿵 가슴을 후려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3.7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32분
충남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삼웅2리마을 출입구로 이어간다.
삼웅2리마을 출입구에서 면천로 서북쪽 방향을 바라보면 왼쪽에 삼웅2리 버스정류소, 왼쪽 맨 뒤에 이배산이 보인다.
삼웅2리 마을 출입구에 삼웅2리 마을 표석이 서 있고, 삼웅2로를 따라 삼웅순복음교회 방향으로 올라간다.
삼웅2로를 따라 삼웅2리 마을로 올라간다. 오른쪽 맨 뒤에 웅산이 보인다.
삼웅2리 마을에서 돌아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중앙 뒤에 아미산, 왼쪽 앞에 다불산이 솟아 있다.
오른쪽 전신주 뒤에 삼웅순복음교회가 있고, 왼쪽 뒤에 삼웅2리마을회관과 동서트레일 6·7구간 시종점이 있다.
이곳은 삼웅리 중에서 하웅 지역으로 오른쪽 뒤의 삼웅2리 마을회관 앞쪽에 동서트레일 6·7구간 시종점이 있다.
앞쪽은 하웅 지역이고, 중앙 뒤쪽은 중웅 지역으로 수예들이 펼쳐져 있다.
삼웅2리 마을은 하웅 지역에 자리하고, 북쪽의 면천면 송학리 지역 중앙 뒤에 아미산, 그 왼쪽 앞에 다불산이 솟아 있다.
삼웅2리 마을회관 앞에 영웅정과 운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이 서 있다.
삼웅2리 마을회관 앞 동서트레일 6·7구간 시종점에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과 이정목이 서 있다.
안내판에서는 동서트레일 7구간을 삼웅2리마을회관~서산마애여래삼존상, 11.8km 거리라고 소개한다.
삼웅2리 마을회관 오른쪽에 삼웅마을회관이 있으며, 삼웅2로를 따라 삼웅리 들녘으로 나간다.
삼웅마을회관 왼쪽에 삼웅2리 마을회관이 있으며, 그 왼쪽 뒤에 삼웅순복음교회가 보인다.
삼웅2로 농로를 따라 삼웅리 중웅 지역 수예들 들녘으로 나간다.
삼웅2리 마을회관 0.2km, 영탑사 2.4km 지점, 앞쪽의 골짜기는 구루밑골이라 이르는 듯.
오른쪽에 구루밑골이 있고, 왼쪽에 수예들이 펼쳐진다. 동서트레일은 구루밑골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수예들을 지난다.
삼웅2리 마을회관 0.5km 지점, 삼웅리 중웅 지역을 통과한다. 오른쪽에 덤프트럭 자동덮개 전문기업 수호특장이 있다.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중웅 지역에 수예들이 펼쳐지고, 북쪽 뒤 송학리 지역의 왼쪽에 다불산, 오른쪽 뒤에 아미산이 솟아 있다.
삼웅2리 마을회관 0.7km, 영탑사 1.9km 지점, 삼웅리 들녘의 삼웅2로를 따라 해든농원 방향으로 올라간다.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앞쪽에 해든농원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왼쪽 삼웅2로를 따라 삼웅리 해든농원으로 이어간다.
삼웅2로를 따라 삼웅리 상웅 지역 들녘의 해든농원을 지나간다.
해든농원을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삼웅리 수미골 들녘의 들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의 골짜기를 수미골이라 이르는 듯.
삼웅리 상웅 수미골 들녘의 들길 삼웅2로를 따라간다. 중앙에 당진-대전 구간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삼웅리 들녘의 하웅, 중웅을 거쳐 상웅 지역으로 넘어왔다. 오른쪽 뒤에 면천면 사기소리 이배산이 보인다.
삼웅2리 마을회관 1.2km, 영탑사 1.4km 지점, 나무고개마을 상수도 시설을 지나간다.
맨 오른쪽 뒤 구루밑골을 돌아 중앙 뒤 해든농원을 지나 왼쪽의 삼웅2로를 따라 나무고개마을 상수도 시설 앞으로 왔다.
삼웅2리마을회관 1.4km, 영탑사 1.2km 지점, 왼쪽 위에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삼웅1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삼웅1로를 따라 고갯길을 올라왔다. 오른쪽에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고, 오른쪽 뒤에 다불산이 솟아 있다.
왼쪽 아래에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고 언덕의 삼웅1로를 따라간다. 오른쪽 농원 울타리 안에 복사꽃들이 흐드러진다.
당진영덕고속도로 건너편 삼웅1리 수미마을을 돌아보았다. 왼쪽 뒤 다불산, 중앙 뒤 아미산, 맨 오른쪽 뒤 몽산을 확인한다.
왼쪽은 삼웅육교를 건너 삼웅1리 수미마을 방향,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삼웅1로를 따라 영탑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지상의 삼웅육교는 건너편 면천면 삼웅1리 수미마을로 이어진다.
영탑사 1.0km 지점, 동서트레일은 삼웅육교 서쪽의 삼웅1로를 따라 영탑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건너편 중앙에 삼웅1리 수미마을이 보이고, 왼쪽 뒤에 다불산, 오른쪽 뒤에 아미산이 솟아 있다.
삼웅1로를 따라 (주)코시노인터내셔널 앞을 지나간다. 삼웅1로 왼쪽은 면천면 성하리, 오른쪽은 삼웅리 수미골 지역이다. 중앙 뒤의 연화봉에 의두암이 있으며, 그 너머에 영탑사가 자리한다.
(주)코시노인터내셔널 출입구에서 안쪽을 살폈다. (주)코시노인터내셔널은 육상 금속 골조 구조재 제조업체라고 한다.
삼웅1로는 밤가시골로 이어지며, 동서트레일은 왼쪽 연화봉 숲길로 이어간다.
영탑사 0.7km 지점, 연화봉 의두암 방향의 연화봉 숲길로 이어간다.
연화봉 숲길 입구에서 삼웅리 상웅 지역의 수미골 들녘을 내려본다. 왼쪽 아래에 해든농원이 보이며, 수미골 들녘의 농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왼쪽 뒤에 이배산, 오른쪽 뒤에 다불산을 확인한다.
영탑사 0.5km 지점, 오른쪽은 연화봉 의두암으로 가는 길, 동서트레일은 왼쪽 영탑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연화봉 의두암, 동서트레일은 직진하여 영탑사로 내려간다.
연화봉 의두암 오르는 오르막길 입구에 의두암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영탑사 뒷산 연화봉에 위치한 의두암은 높이 4m 되는 바위에 앉을만한 편편한 대(臺)를 이룬다. 산 정상 쪽으로 병풍처럼 수직으로 두르며 의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의두암의 바위를 살펴보면 예서체로 의두암 글자를 음각한 것이 보이는데, 글자를 새긴 사람은 구한말 학자 운양 김윤식이다. 김윤식은 병조판서로서 1887년(고종24년)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에 반대하여 대원군의 재집권을 모의하다 미움을 사서 면천으로 유배되어 5년 6개월을 살았는데, 최초에는 순성면 양유리 앵두샘 마을에서 거처하였다가 그 후 영탑사 노전으로 옮겨 살았다. 김윤식은 매일 의두암에 올라 임금님이 계신 북쪽 한양을 바라보며 망배하였다고 한다. 의두암依斗岩의 두는 북두칠성을 의미하고 북쪽은 임금을 상징한다. 그의 문집인 운양집에 의두암이라는 한시도 전해온다.
의두암 갈림길을 지나며 연화봉 의두암 가는 오르막길을 올려보았다.
의두암 오르막길 왼쪽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한 또 하나의 의두암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의두암은 당진시 면천면 성화리의 연화봉 정상에 있는 4m 정도의 큰 바위이다. 바위 전체의 모양은 커다란 의자 형상으로, 중간에는 몇 사람이 앉을 정도의 평평한 자리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마치 병풍을 두른 모양을 하고 있다. 바위의 전면에는 '의두암依斗岩', 왼쪽 아래에는 '인도정일人道正一'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글자들을 새긴 사람은 조선 말기의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다. 김윤식은 병조판서를 지내다 명성황후의 친러정책에 반대하여 대원군의 집권을 모의하다 1887년 면천에 유배되어 총 7년을 지냈는데, 매일 이 바위에 올라 나라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의두암'이라는 명칭은 '每依北斗望京華'를 줄인 것으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북쪽 서울을 바라보며 임금님의 만수무강과 나라가 융성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운양 김윤식은 1887년부터 1921년까지의 일을 기록한 <속음청사> 일기를 남겼으며, 제1권부터 제7권까지가 면천 유배 시기의 기록을 담고 있다.
영탑사는 이정목 왼쪽으로 내려가야 되지만, 이정목 오른쪽 언덕의 칠층석탑 왼쪽으로 내려가도 된다.
영탑사(靈塔寺)를 빛내는 명품 칠층석탑이 언덕의 암반 위에 조성되어 있다.
아래쪽에서 영탑사 칠층석탑을 올려보았다. 영탑사는 신령스러운 탑(靈塔)이 있는 사찰로, 칠층석탑이 대표 명품이다.
이 탑은 기단부가 없이 암반 위에 세워진 7층 석탑이다. 5층만 남아있던 것을 1911년 신도들이 다시 7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지붕돌은 얇고 평평하며, 낙수면落水面은 직선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처마는 곡선화되어 있어서 전체가 치켜 올라간 느낌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이곳에 탑이 세워지게 된 내용은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1798년(정조22년) 지윤智允 스님이 유리광전琉璃光殿을 보수할 때 5층탑을 세웠고, 그 탑을 기리어 절을 <영탑사>라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하여 덕산 가야사를 불태웠는데, 이때 가야사 스님들이 영탑사로 금동삼존불과 법당의 범종을 옮겨왔고, 후에 부숴진 가야사의 탑도 옮겨와 쌓은 것으로 추정하나 모두 불분명하다. - 설명안내판
왼쪽부터 범종각, 적묵당, 대웅전, 인법당, 공양간이 자리한다. 인법당 안에 보물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이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영탑사(靈塔寺)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은 유리광전(琉璃光殿) 안에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약사여래상의 마애불(磨崖佛, 암벽에 새긴 불상)이다. 약사여래는 동쪽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에 살면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며 현세의 행복함과 즐거움(福樂)을 이루게 하는 부처이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적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한 약사도량(藥師道場)이 자주 열리기도 하였다. 이 불상은 영탑사가 있는 象王山 연화봉의 자연 암벽에 새겨져 유리광전(琉璃光殿) 안에 안치되어 있다. 불상의 높이는 3.5m의 좌불(坐佛, 앉아있는 부처)이며, 하반신은 잘 보이지 않으나 얼굴의 형체는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을 표현하였고, 얼굴은 윗부분이 넓고 밑부분이 갸름한 형상이며 신체에 비해 큰 편이다. 눈·코·입은 길고 큼직한데 다소 서투르게 표현하여 전반적으로 둔한 느낌을 준다. 몸은 4각형으로 건장하나 움츠린 듯한 느낌이 들며, 무릎 또한 높고 넓어서 얼굴과 함께 둔중함을 나타낸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데 안에는 Y자형의 속옷이 표현되어 있다. 굵은 선으로 새긴 옷주름은 마멸이 심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세련미는 부족하나 둔중하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고려말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가 사찰을 둘러보니 기이한 바위가 빛을 내고 있어 심상치 않게 여겨 이곳에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을 새겨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후로도 영험이 많아 질병의 쾌유를 비는 민속신앙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 설명안내판
유리광전(流璃光殿)에 약사여래상이 안치되어 있고, 유리광전 축대 아래에 약사여래상과 영탑사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21개의 우수경관자원 중 20번째 우수경관자원 '영탑사' : 영탑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의 연화봉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大韓佛教曹溪宗) 소속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제7교구 수덕사(修德寺)에 속한 말사이다. 영탑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 신라 말기 도선국사(道洗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후기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수하였으며 그 후 1798년(정조 22)에 연임당(鍊岩室) 지윤(智)이 중건하였다. 1911년에 신도들이 중수하였으며, 1928년에 이민동이 노전(爐殿)을 중건하였다. 영탑사는 원래 대웅전이 없었는데 1985년 30평 [99.17㎡] 규모의 대웅전 건립을 시작하여 1990년에 완공하였다. 1992년에는 화재로 노전이 소실되었으나 최근에 복원되었다. 2010년에 산신각을 승려 초운이 신축하였다. - 설명안내판
산신각 아래에 있는 장독대와 그 옆 공양간을 지나 대웅전 앞 마당으로 나간다.
수령 200년이 넘는 느티나무 오른쪽에 범종각과 그 옆에 적묵당이 자리한다.
대웅전 왼쪽에 적묵당, 대웅전 오른쪽에 인법당이 자리한다. 영탑사에서는 왼쪽 산을 상왕산이라 부르는 듯.
오른쪽에 유리광전, 그 왼쪽에 요사채, 그 왼쪽 언덕에 산신각, 그 아래에 공양간이 자리한다.
영탑사 대웅전 뜰에는 그윽한 느티나무들이 자리하며 경내 곳곳에도 수령 150~400년 수령의 느티나무들이 솟아 있다.
영탑사 대웅전 뜰의 그윽한 느티나무들을 뒤돌아보았다.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솟아 있는 영탑사 입구로 내려간다. 영탑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영탑사 칠층석탑을 내세운 '영탑사' 조형물이 영탑사 입구에 서 있다.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아래에 약수터와 '靈泉' 표석이 서 있다. 오른쪽 뒤에 '解憂所'가 생겨나면서 샘물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기산(氣山) 이상현(李相賢)님이 쓴 '靈泉' 표석 글씨가 멋지다.
영천 옆에 음용 불가 경고안내판, 그 위에 '靈泉' 표석과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솟아 있다.
영탑사 입구의 동서트레일 정코스로 돌아왔다.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과 이정목이 서 있다.
장승배기 2.2km, 면남산 5.8km, 내포문화숲길 고풍리안내소 7.9km, 서산마애여래삼존불상 9.0km 지점이다.
◆내포문화숲길은 가야산 주변의 4개시군(서산시·당진시·예산군·홍성군)이 내포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적 가치를 바탕으로 연결한 장거리 도토 여행길이며 거리는 약 320km이다. 내포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적 가치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네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내포 지역에서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해 나가기 위한 나눔과 성찰의 순례길이다. ◆통서트레일은 한반도 남쪽 중간에서 동과서를 연결하는 최초의 숲길이며, 경북 울진군에서 충남 태안군까지 5개 시도, 21개 시·군·구가 연결되어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각 노선 구간의 처음과 끝에 농·산촌 마을이 있도록 노선을 선정하여 숲길 이용자가 농·산촌 마을에서 머물면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수요를 반영한 백패킹 수요를 반영한 백패킹 전용 숲길이다. 숲길 내의 다양한 생태적, 환경적,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함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울진금강송, 속리산정이품송, 안면송을 연결하는 소나무 대표 숲길이다.
수령이 오랜 느티나무들이 그윽하고 왼쪽 산벚나무에는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영탑사 입구에서 조금 내려가면 주변에 산벚꽃이 흐드러진 절골저수지가 있다.
성하로(城下路)를 따라 절골저수지 옆의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를 지나 면천면 성하리(城下里) 들녘으로 내려간다.
성하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절골저수지 동안(東岸)에서 자라는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를 뒤돌아보았다.
면천읍성 2.0km, 팔중리 마을회관 2.8km 지점, 왼쪽은 면천읍성으로 가는 길이고, 동서트레일은 오른쪽 들길로 이어간다.
면천면 성하리 원나무골 들녘의 들길을 따라간다. 성하리(城下里)는 면천읍성 아래에 있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충남 당진시(唐津市) 면천면(沔川面) 성하리는 면천읍성 아래쪽에 해당되므로 ‘성하리(城下里)’라 하였다. 성하리(城下里)는 본래 면천군 읍내면(邑內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신촌리, 사동, 만지동을 병합하여 성하리라 해서 당진군 마암면(馬岩面)에 편입하였다. 1917년 10월 면명(面名) 개칭에 따라 면천면에 편입되었다. 새말[新村], 절골[寺洞], 만지(晩之), 삼성당[三仙當], 고지물[古芝坪], 반월(半月), 배암산골, 옷나무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성하리는 동쪽은 면천면 성상1리, 원동리와 남쪽은 면천면 자개1리와 대치리, 서쪽은 대치리와 삼웅1리, 북쪽은 삼웅1리, 성상2리와 접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탑사 입구 0.4km, 팔중리 마을회관 2.4km 지점, 성하로를 따라 원나무골 버스정류소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전신주 뒤에 성하리마을회관이 보이며, 동서트레일은 원나무골 버스정류소 옆 성하로 105번길을 따라간다.
성하로105번길을 따라 식재한 소나무들이 멋지게 자라는 민가 앞을 지나간다.
성하로105번길을 따라 장개미골 들녘을 지나 왼쪽 위 한티고개로 올라간다.
성하로105번길에서 장개미골 들녘을 돌아보았다.
성하로105번길을 따라 한티 고갯길을 굽이돌아 올라간다.
한티 고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팍팍하다.
한티 고갯길을 올라가며 한티 고개를 올려보았다.
한티 고개는 면천면 성하리와 대치리의 경계를 이룬다.
오른쪽 아래에 면천면 성하리 지역이 펼쳐지고, 맨 오른쪽 아래 소나무를 식재한 민가 앞을 지나왔다. 중앙 뒤에 면천면 소재지 성상리 지역이 있고, 중앙에 몽산, 왼쪽 뒤에 면천면 송학리의 아미산이 솟아 있다.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는 본래 면천군 읍내면(邑內面) 지역이었으며, 그 위치가 면천읍성의 위쪽이 되므로 '성상리(城上里)'가 되었다. 성상리는 본래 면천군 읍내면(邑內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성내리(城內里), 동문리(東門里), 서문리(西門里), 남문리(南門里), 북문리(北門里), 평리(坪理), 동산리(東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성상리(城上里)라 해서 당진군 마암면(馬岩面)에 편입되었다. 1917년 10월 마암면은 본래 면천군이었던 지명을 따서 면천면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시로 승격됨에 따라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가 되었다. 동쪽은 순성면 양류리, 남쪽은 면천면 원동리, 서쪽은 성하리와 삼웅1리, 북쪽은 송학리와 접해 있다. 성상리는 옛 면천군의 동헌이 있었던 곳으로, 1439년(세종 21)에 축조하였다는 면천읍성을 비롯하여 면천 향교, 군자정, 안샘, 풍락루, 건곤 일초정 등 역사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1,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복지겸의 딸 영랑이 심었다는 면천 은행나무가 있으며, 그에 대한 전설이 얽힌 두견주[국가무형유산]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면천읍성 복원·정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면천면 지역이 중앙의 면천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다. 면천저수지 서쪽에 성하리, 남쪽에 원동리, 동남쪽에 문봉리, 동북쪽에 영유리, 북쪽에 성상리 지역이 자리한다.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에서 한티고개를 넘어 면천면 대치리로 넘어와 대치로를 따라간다. 왼쪽 뒤부터 오른쪽으로 가야산, 석문봉, 일락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탑사 입구 1.3km, 팔중리 마을회관 1.5km 지점, 대치로를 따라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 한티골을 내려간다.
현묘재(玄妙齋)는 법보신문 사장을 역임하고 미디어붓다 대표를 지내고 귀농한 이학종님 부부의 사저라고 한다.
영탑사 입구 1.6km, 팔중리마을회관 1.2km 지점을 지나 대치리 들녘으로 내려간다.
중앙 뒤 한티고개에서 대치로를 따라 한티골을 지나 대치리 들녘으로 내려왔다.
오얏나무(자두나무) 밭에 오얏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티마을 농가 뜰의 배나무들이 배꽃을 하얗게 피우고 반짝인다.
대치리종점 버스정류소를 지나 한티길을 따라 오른쪽의 벌말골을 지나 그 뒤 장승배기로 올라간다.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 뒤매봉 남쪽 자락에 한티마을이 자리한다.
한티길을 따라 오른쪽의 대치리 벌말골을 지나간다.
대치리 벌말골 자두나무 밭 옆에서 지나온 한티마을을 뒤돌아보았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大峙里)는 읍내면 방향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마을에 큰 고개가 있어서 크다는 뜻의 '한'과 고개를 의미하는 '티'를 써 '한티[大峙]', 또는 '대티[大峙]'라 하게 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대치리는 본래 면천군 마산면(馬山面)의 지역이었으나,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내여리(內餘里), 외여리(外餘里), 강기(江基)를 병합하여 대치리라 해서 당진군 마암면(馬岩面)에 편입되었다. 1917년 10월 면명(面名) 개칭에 따라 면천면에 편입되었다. 북동쪽은 면천면 성하리와 자개1리, 남동쪽은 면천면 율사리, 남서쪽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 북서쪽은 면천면 삼웅리와 접해 있다. 한티[大峙], 강터[江基], 안여름[內餘], 바깥여름[外餘], 능골, 붉은골, 사기점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티길을 따라 벌말골 맞은편 던절미산 골짜기 입구를 지나 장승백기로 올라간다.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 던절미산 능선 북쪽 골짜기를 살폈다.
당진시 면천면 대치리와 서산시 운산면 팔중리의 경계를 이루는 장승배기를 넘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