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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화 ― 태허문의 검을 훔친 자
풍림촌을 떠난 여섯 사람은 정오가 지나기 전에 옛 수문에 도착했다.
수문은 두 개의 산줄기가 맞닿은 협곡 아래에 있었다.
한때는 평산현의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하던 곳이었으나 십여 년 전 큰 홍수가 난 뒤 폐쇄되었다. 돌로 쌓은 수문은 절반쯤 무너졌고, 물길을 조절하던 나무 바퀴에는 검은 이끼가 덮여 있었다.
무혁은 말에서 내려 수문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오래 버려진 장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문 앞의 잡초에는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바퀴에 묶인 쇠사슬에도 새 기름이 발라져 있었다.
“누군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소.”
남궁소연이 발자국을 살폈다.
“적어도 열다섯 명입니다. 무거운 짐을 옮긴 흔적도 있습니다.”
당소혜는 수문 아래로 내려가 나무 바퀴를 두드렸다.
통.
통.
세 번째를 두드렸을 때 안쪽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텅.
“속이 비어 있어요.”
소혜가 이끼를 걷어 내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홈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관 상자에서 가느다란 철심을 꺼내 홈에 넣었다.
“평범한 수문 장치는 아니에요. 안쪽에 걸쇠가 세 개나 숨어 있어요.”
백리운이 물었다.
“열 수 있겠나?”
“열 수는 있어요.”
당소혜는 철심을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멈췄다.
“그런데 바로 열면 안 돼요.”
“함정이야?”
연비화의 질문에 소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걸쇠 하나가 움직이면 지하 수로의 물이 이쪽으로 쏟아지게 되어 있어요. 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대로 휩쓸릴 거예요.”
철무광은 수문 주변의 절벽을 살폈다.
“물로 증거를 없애려는 장치군.”
무혁은 돌벽에 손을 올렸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지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와는 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무언가가 돌을 두드리고 있었다.
쿵.
잠시 뒤 다시.
쿵.
“안에 사람이 있소.”
남궁소연도 귀를 기울였다.
“도움을 청하는 신호 같습니다.”
당소혜가 수문의 기관을 다시 살폈다.
“정문으로 열면 물이 터져요. 다른 길을 찾아야 해요.”
백리운이 수문 옆의 검은 흙을 집어 냄새를 맡았다.
“사람이 오간 길은 이쪽이 아니네.”
그는 수문 오른편의 좁은 바위틈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희미한 송진 냄새가 남아 있었다.
“횃불을 든 사람들이 저 틈을 지나다녔어.”
무혁이 물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겠소?”
“지금 보이는 틈으로는 어렵습니다.”
남궁소연이 검집으로 바위 표면을 밀었다.
돌 하나가 안쪽으로 조금 움직였다.
“하지만 가짜 바위라면 다르겠지요.”
당소혜가 달려와 돌의 가장자리를 살폈다.
“이것도 기관문이에요.”
그녀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라면 반 각이면 충분해요.”
철무광이 바위에 등을 기댔다.
“아까 수문도 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열 수 있는 것과 안전하게 여는 것은 다르죠.”
백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과 멀쩡하게 살릴 수 있다는 말이 다른 것처럼 말이군.”
“좋은 뜻이에요?”
“아주 좋은 뜻일세.”
당소혜는 만족한 얼굴로 기관문에 집중했다.
잠시 뒤 작은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바위처럼 보였던 석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앞으로 밀려 나왔다.
그 순간 남궁소연이 검을 뽑았다.
“물러나십시오.”
석문 안쪽에서 가느다란 침 세 개가 날아왔다.
소연의 검이 짧게 움직였다.
챙! 챙! 챙!
독침이 모두 땅에 떨어졌다.
백리운이 침 하나를 집어 냄새를 맡았다.
“마비독일세. 맞아도 죽지는 않지만 두 시진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할 걸세.”
당소혜가 석문 안쪽을 노려보았다.
“기관 만든 사람의 성격이 나쁘네요.”
“당 소저가 할 말인가?”
백리운의 질문에 소혜가 돌아보았다.
“내 기관은 먼저 경고해요.”
“경고를 듣지 않으면?”
“그때는 맞아도 싸죠.”
철무광이 먼저 어두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잡담은 걸으면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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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벽에는 오래된 횃불 자국과 새로 긁힌 검흔이 함께 남아 있었다.
무혁은 앞서 걷는 철무광의 뒤에서 검흔을 살폈다.
세로로 한 번.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한 번.
마지막은 원을 그리듯 이어지는 반검.
단순한 흔적이 아니었다.
“태허삼환검.”
무혁이 걸음을 멈췄다.
철무광이 돌아보았다.
“알아보겠느냐?”
“태허문의 입문 검법입니다.”
남궁소연이 검흔을 자세히 살폈다.
“남의 눈을 속이려고 흉내 낸 검은 아닙니다. 손목의 회전과 힘을 빼는 위치가 정확합니다.”
“태허문의 제자가 이곳에 있었다는 뜻이군요.”
당소혜가 말했다.
무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화 마지막에 본 자가 죽은 태허문 제자의 검을 훔친 자라는 사실은 아직 일행은 모른다. 여기서는 검흔을 보고 의심.
통로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왼쪽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에서는 사람의 희미한 신음이 들렸다.
무혁이 오른쪽으로 향하려 하자 연비화가 말했다.
“잠깐.”
그녀는 왼쪽 통로의 바닥을 검집으로 눌렀다.
바닥 아래에서 쇠사슬이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물을 막는 장치가 왼쪽에 있다.”
당소혜가 즉시 이해했다.
“오른쪽의 사람들을 먼저 구하러 가면 놈들이 왼쪽 기관을 움직여 수로를 잠기게 할 거예요.”
무혁이 두 길을 번갈아 보았다.
“나눠서 움직입시다.”
“안 됩니다.”
남궁소연이 곧바로 반대했다.
“적이 우리의 수를 알고 있다면 그것이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철무광이 말했다.
“그래도 두 곳을 동시에 막아야 한다.”
그는 왼쪽 통로를 가리켰다.
“나와 검후가 기관을 막겠다.”
연비화가 백리운을 바라보았다.
“내 공력은 이제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다.”
백리운은 그녀의 맥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빛과 호흡을 살폈다.
“전력으로 검을 쓰는 것은 삼십 초식까지입니다.”
“충분하다.”
“서른한 번째를 사용하면?”
“그 전에 끝내겠다.”
백리운이 한숨을 쉬었다.
“내 환자들은 왜 모두 의원의 말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지 모르겠군요.”
철무광이 왼쪽으로 들어섰다.
연비화도 그 옆에 섰다.
무혁이 말했다.
“위험하면 신호를 보내십시오.”
철무광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것이냐?”
“환자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백리운에게 나쁜 것을 배웠군.”
“좋은 것을 배운 겁니다.”
백리운이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여섯 사람은 처음으로 나뉘었다.
철무광과 연비화는 수문의 기관을 막으러 갔다.
무혁과 남궁소연, 당소혜, 백리운은 갇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오른쪽 통로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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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통로가 끝나는 곳에는 넓은 지하 동굴이 있었다.
동굴 바닥에는 물이 발목 높이까지 차 있었다.
양쪽 벽에는 나무 감옥 다섯 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뱃사공.
약재상.
표사.
평산현의 농부들까지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무혁 일행을 발견하고 쇠창살을 붙잡았다.
“도와주십시오!”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이 수문을 열려고 합니다!”
“물이 차오르면 모두 죽습니다!”
무혁은 감옥 앞으로 다가갔다.
자물쇠는 크지 않았다.
철검으로 한 번 내리치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소혜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그녀는 자물쇠 안을 들여다보았다.
“자물쇠와 수문의 기관이 연결되어 있어요. 하나를 억지로 부수면 물이 들어와요.”
무혁은 검을 거두었다.
“풀 수 있소?”
“다섯 개를 모두 푸는 데 일각은 걸려요.”
물은 이미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백리운이 감옥 안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독에 중독된 사람도 있네.”
“놈들이 매일 검은 물을 먹였습니다.”
감옥 안의 노인이 대답했다.
“힘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독이었습니다.”
백리운은 약상자를 내려놓았다.
“먼저 해독약을 나누어 주지.”
남궁소연은 동굴 위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 쇳소리가 들렸다.
“적이 옵니다.”
쉰다섯쯤 되어 보이는 검객 하나가 위쪽 석단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뒤에는 검은 경장을 입은 무인 스무 명이 따랐다.
검객의 허리에는 낡은 철검이 걸려 있었다.
검집에는 태허문의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무혁의 표정이 굳었다.
그 검을 알고 있었다.
“설명 사형의 검.”
태허문이 불타던 날, 마지막까지 북쪽 지하도를 지켰던 둘째 사형 설명의 검이었다.
검 손잡이 아래에는 작은 흠집 세 개가 있었다.
설명이 무혁에게 처음 검을 가르치다 바위에 떨어뜨려 생긴 흔적이었다.
무혁은 그것을 잊지 않았다.
위쪽의 검객이 웃었다.
“막내가 사형의 검을 알아보는군.”
무혁의 손이 녹슨 철검으로 향했다.
“당신은 누구요?”
“내 이름은 서문악이다.”
“태허문의 제자요?”
“한때는.”
서문악은 태허진의 먼 사숙에게 검을 배운 외문제자였다.
재능은 있었으나 성정이 잔인했다.
비무 중 상대의 검이 부러졌는데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패한 사제의 단전을 상하게 했다.
청허진인은 그를 태허문에서 내쫓았다.
서문악은 그날부터 태허문을 원망했다.
“태허문이 나를 버렸다.”
그가 말했다.
“그러니 나도 태허문을 버렸지.”
무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설명 사형의 검을 어디에서 얻었소?”
“불타는 전각 앞에서 주웠다.”
“주운 것이 아니오.”
무혁은 서문악의 옷소매에 남은 검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태허문 제자가 위험할 때 사용하는 구원신호의 흔적이 있었다.
“사형께서 살아 계실 때 빼앗았군.”
서문악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설명은 끝까지 검을 놓지 않더군.”
무혁의 귀검이 낮게 울었다.
우웅.
서문악은 그 소리에 오히려 기뻐했다.
“그래. 그 검을 뽑아라.”
그는 태허문의 철검을 뽑았다.
“내가 진짜 태허문 검법을 보여 주마.”
무혁은 귀검의 자루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당신에게 태허문의 검을 말할 자격은 없소.”
“나도 태허문에서 검을 배웠다.”
“초식을 훔쳐 배웠을 뿐이오.”
무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태허문의 검은 쓰러진 사람을 짓밟으라고 가르치지 않았소.”
서문악이 손을 들었다.
그의 부하들이 감옥 위쪽의 쇠사슬을 잡았다.
“검을 내려놓아라.”
서문악이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문을 연다.”
당소혜가 자물쇠의 기관을 풀며 외쳤다.
“시간을 벌어 줘요!”
무혁은 녹슨 철검을 뽑았다.
“소혜는 사람들을 구하시오.”
남궁소연이 그의 오른쪽에 섰다.
“무혁 혼자 스무 명을 상대할 생각입니까?”
“가장 강한 자는 내가 맡겠소.”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맡겠습니다.”
백리운은 감옥 사이를 오가며 해독환을 나누어 주었다.
“다친 사람은 내 뒤로 오십시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아이와 노인을 먼저 도와주십시오.”
서문악이 비웃었다.
“의원 하나와 계집 둘을 데리고 나를 막겠다고?”
당소혜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사람을 얕보는 버릇 때문에 오늘 망하겠네요.”
“죽기 전에 입부터 닫아 주마.”
서문악의 부하 셋이 당소혜를 향해 뛰어내렸다.
남궁소연의 검이 움직였다.
푸른 검광 한 줄기가 세 사람의 병기를 차례로 쳤다.
챙! 챙! 챙!
병기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소연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뒤따라오던 두 사람의 소매와 허리띠를 검 끝으로 꿰어 기둥에 묶었다.
“그녀에게 다가가지 마십시오.”
남은 무인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소연은 감옥과 당소혜 사이의 좁은 공간을 지켰다.
검로를 넓게 펼치지 않았다.
한 걸음 안으로 들어오는 적의 병기만 짧고 정확하게 쳐 냈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은 본래 넓은 하늘처럼 펼쳐지는 검법이었다.
그러나 소연은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그 하늘을 한 줄의 검광 안에 담는 법을 익혔다.
첫 번째 검객의 손목이 멈췄다.
두 번째 검객의 무릎이 꺾였다.
세 번째 검객의 검이 손에서 벗어났다.
누구도 당소혜에게 닿지 못했다.
“하나 풀었어요!”
당소혜가 첫 번째 자물쇠를 열었다.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백리운이 그들을 동굴 안쪽의 높은 바위로 안내했다.
“뛰지 마십시오. 독 때문에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질 수 있습니다.”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백리운은 그를 받아 혈도에 침을 놓았다.
“천천히 숨을 쉬시오.”
그 순간 적 하나가 백리운의 등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백리운은 돌아보지 않았다.
은침 하나를 뒤로 튕겼다.
침이 검객의 손목 혈도에 박혔다.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백리운은 쓰러진 환자의 맥만 살폈다.
“의원이 환자를 볼 때 뒤에서 검을 찌르는 것은 예의가 아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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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과 서문악의 검이 처음 부딪쳤다.
챙!
서문악이 펼친 것은 태허양의검이었다.
음과 양의 두 검로가 번갈아 무혁의 상체를 노렸다.
초식은 정확했다.
힘을 거두는 위치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검에는 태허문의 고요가 없었다.
상대를 누르고 죽이려는 살의만 가득했다.
“어떠냐?”
서문악이 검을 밀어붙였다.
“네 사형보다 내 검이 낫지 않으냐?”
무혁의 철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서문악의 검을 정면으로 부수지 않았다.
태허양의검이 만드는 원 안으로 반걸음 들어갔다.
두 검이 교차하는 중심을 철검 옆면으로 눌렀다.
서문악의 검로가 멈췄다.
무혁이 말했다.
“설명 사형의 검은 사람을 살렸소.”
“검이 사람을 살린다고?”
“태허문이 불타던 날 사형께서는 지하도로 피신하는 제자들을 지키셨소.”
무혁의 눈앞에 마지막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은 연기.
무너지는 전각.
부상당한 사제를 업은 설명.
설명은 무혁에게 북쪽으로 달아나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혼자 돌아서 적들을 막았다.
그것이 무혁이 본 사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형의 검이 시간을 벌어 주었기에 내가 살아남았소.”
무혁의 철검에 무게가 실렸다.
“당신의 검은 뒤에 있는 사람을 죽이려 할 뿐이오.”
서문악의 태허양의검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는 다급히 검로를 바꾸었다.
태허삼환검.
세 개의 원을 겹쳐 상대의 병기를 가두는 초식이었다.
무혁은 피하지 않았다.
첫 번째 원이 철검을 감쌌다.
두 번째 원이 손목을 노렸다.
세 번째 원이 목을 향해 좁혀졌다.
서문악이 외쳤다.
“죽어라!”
무혁은 철검을 억지로 빼내지 않았다.
세 개의 원이 한곳에 모이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검을 아래로 내렸다.
낙산일검.
쿵!
서문악의 세 검환이 한꺼번에 깨졌다.
그의 팔이 크게 흔들렸다.
무혁은 반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을 목 앞에 멈췄다.
“설명 사형의 검을 내려놓고 항복하시오.”
서문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를 살려 주겠다는 것이냐?”
“죄는 살아서 묻겠소.”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태허문의 제자이기 때문이오.”
서문악의 눈에 증오가 타올랐다.
그는 검을 놓는 대신 왼손으로 벽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바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쏴아아!
동굴 입구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갇혀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당소혜가 마지막 자물쇠를 열며 외쳤다.
“수문이 열렸어요!”
서문악은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물에 묻어 버리겠다!”
무혁의 눈빛에서 마지막 망설임이 사라졌다.
한 번 항복할 기회를 주었다.
서문악은 그 기회를 수십 명을 죽이는 데 사용했다.
더는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먼저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소연!”
남궁소연은 무혁이 부르기도 전에 움직였다.
그녀가 검을 바닥에 꽂고 두 손으로 기울어진 나무 감옥을 밀었다.
“이쪽으로 올라오십시오!”
나무 감옥이 임시 다리가 되었다.
백리운은 중독된 사람들을 한 명씩 높은 석단으로 옮겼다.
당소혜는 기관 상자의 쇠줄을 천장에 걸었다.
“수문을 다시 닫아야 해요!”
무혁이 물었다.
“철 사부님과 어머니께서 막고 계실 것이오.”
“바깥 기관만으로는 부족해요. 여기의 보조축도 끊어야 해요!”
당소혜가 물살 아래를 가리켰다.
거대한 쇠바퀴 하나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보조축은 물 아래에 잠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거센 물살에 휩쓸릴 수 있었다.
무혁이 철검을 들었다.
“어디를 쳐야 하오?”
“가운데가 아니에요. 오른쪽에서 세 번째 톱니 아래!”
“보이지 않소.”
“물이 잠깐 갈라져야 해요.”
남궁소연이 말했다.
“제가 길을 만들겠습니다.”
그녀는 감옥 위로 올라선 뒤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창궁무애검의 푸른 검기가 물살을 향해 내려갔다.
콰앙!
밀려들던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시간은 한 호흡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혁에게는 충분했다.
그는 갈라진 물길 안으로 뛰어들었다.
당소혜가 가리킨 세 번째 톱니가 보였다.
무혁의 철검이 내려갔다.
낙산일검.
쾅!
보조축이 부러졌다.
회전하던 쇠바퀴가 멈췄다.
하지만 수문에서 들어오는 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당소혜의 얼굴이 굳었다.
“반대쪽 주기관까지 멈추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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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왼쪽 통로에 들어간 철무광과 연비화는 수문을 지키는 무인들과 맞서고 있었다.
검은 경장의 무인 열다섯 명.
그들을 이끄는 자는 쌍도를 든 거한이었다.
철무광이 앞을 막았다.
“네가 맡을 수 있겠나?”
연비화가 장검을 뽑았다.
“백 의원은 삼십 초식까지 허락했다.”
“그 말은 서른 번이나 검을 써도 된다는 뜻이 아닐 텐데.”
“그대가 의원의 말을 따지는 날도 오는군.”
쌍도 거한이 달려들었다.
철무광의 흑도가 그의 두 도와 부딪쳤다.
쾅!
상처가 남은 철무광의 어깨가 흔들렸다.
연비화의 검이 그 틈을 지나갔다.
첫 번째 검은 쌍도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었다.
두 번째 검은 거한의 오른쪽 소매를 벽에 박았다.
세 번째 검은 수문의 쇠사슬을 끊으려던 무인의 검을 쳐 냈다.
검후의 공력은 절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검을 보는 눈과 수십 년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비화는 큰 검기를 일으키지 않았다.
상대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한 점만 찔렀다.
무인들이 연비화를 포위하려 하자 철무광이 흑도를 휘둘렀다.
거대한 도풍이 통로를 휩쓸었다.
무인들의 병기가 한꺼번에 밀려났다.
“검후에게 다가가지 마라.”
연비화가 철무광을 바라보았다.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 것이냐?”
“환자를 보호하는 것이오.”
“무혁과 같은 말을 하는군.”
“저놈이 내게 배운 말이오.”
“그 반대인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등을 맞댔다.
철무광의 도는 거칠고 무거웠다.
연비화의 검은 차갑고 정확했다.
성질은 전혀 달랐지만 두 병기가 함께 움직이자 서로의 빈틈이 사라졌다.
철무광이 정면의 병기를 밀어내면 연비화가 손목의 혈도를 찔렀다.
연비화가 검로를 열면 철무광의 도가 그 길을 따라 적의 진형을 갈랐다.
열다섯 명의 무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마지막 거한이 쓰러졌을 때 연비화는 스물일곱 번째 검을 거두었다.
“세 번 남았군.”
철무광이 말했다.
“세고 있었느냐?”
“백리운에게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소.”
두 사람 앞에는 수문을 움직이는 거대한 쇠기둥이 있었다.
이미 절반 이상 내려간 쇠기둥 때문에 수문이 열리고 있었다.
철무광이 흑도를 세웠다.
“내가 끊겠소.”
“어깨가 버티지 못한다.”
“그럼 함께 합시다.”
연비화는 거절하지 않았다.
흑도와 장검이 동시에 쇠기둥의 같은 지점을 향했다.
철무광의 도가 바깥의 두꺼운 쇠를 갈랐다.
연비화의 검이 드러난 중심축을 찔렀다.
쾅!
쇠기둥이 부러졌다.
거대한 수문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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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동굴로 쏟아지던 물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당소혜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두 분이 해냈어요!”
무혁은 물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남궁소연이 그의 팔을 잡아 감옥 위로 끌어 올렸다.
“다치지 않았습니까?”
“괜찮소.”
“이번에는 정말입니까?”
“물만 조금 마셨소.”
백리운이 말했다.
“그 물에는 독이 섞였을 수도 있네.”
무혁의 표정이 굳었다.
“뱉었소.”
“이미 삼켰다면 뱉는다고 해결되지 않지.”
“나는 환자가 아닙니다.”
“그 판단은 의원이 하네.”
당소혜가 웃으려다 표정을 굳혔다.
“서문악이 사라졌어요.”
수문을 연 뒤 웃고 있던 서문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위쪽 석단 뒤의 비밀문이 열려 있었다.
무혁이 그곳으로 향하려 하자 남궁소연이 앞을 막았다.
“혼자 가지 마십시오.”
“그자를 놓치면 사형의 검도 잃소.”
“그래서 함께 가자는 겁니다.”
당소혜가 기관 상자를 고쳐 멨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나왔어요.”
백리운은 마지막 환자의 맥을 확인했다.
“당장 위험한 사람도 없네.”
네 사람은 비밀문으로 들어갔다.
통로 끝에는 가파른 돌계단이 있었다.
위쪽에서 서문악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옛 수문 위의 절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무혁 일행이 지상으로 나왔을 때, 서문악은 말 한 필의 고삐를 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덟 살쯤 된 소년이 붙잡혀 있었다.
지하 감옥에서 먼저 빠져나왔던 뱃사공의 아들이었다.
서문악은 소년의 목에 검을 대고 말 위에 올랐다.
“따라오면 아이가 죽는다!”
무혁이 멈췄다.
남궁소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당소혜는 손가락 사이에 암기를 끼웠지만 아이가 너무 가까워 던질 수 없었다.
서문악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듯 웃었다.
“천하제일귀검객도 별것 아니군.”
무혁의 귀검이 등에 매인 채 울었다.
우우웅!
서문악이 외쳤다.
“귀검을 땅에 내려놓아라!”
무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듣지 못했느냐?”
“들었소.”
“그렇다면 검을 버려라!”
무혁이 서문악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있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당신은 태허문의 검을 훔쳤소.”
“그래서?”
“태허문의 검법을 훔쳤고, 죽은 제자의 이름까지 이용했소.”
“강한 자가 가지면 그자의 검이다.”
무혁은 천천히 녹슨 철검을 검집에 넣었다.
서문악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무혁은 귀검도 내려놓지 않았다.
“당신이 훔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소.”
“무엇이냐?”
“태허문의 마음.”
서문악이 비웃었다.
“죽은 문파의 마음이 무슨 소용이지?”
“그래서 당신은 내 검을 보지 못하는 것이오.”
무혁의 오른손이 철검의 자루에 놓였다.
아직 검은 검집 안에 있었다.
서문악이 아이를 앞에 세웠다.
“뽑는 순간 이 아이부터 벤다!”
무혁은 서문악이 아니라 남궁소연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선이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소연은 무혁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검집 끝을 땅에 댔다.
당소혜도 슬그머니 기관 상자 옆의 돌기를 눌렀다.
백리운은 소매 안에서 은침을 준비했다.
무혁이 한 걸음 내디뎠다.
서문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당소혜의 쇠구슬이 말의 앞발 앞에 떨어졌다.
펑!
작은 흙먼지가 솟았다.
놀란 말이 머리를 들었다.
서문악의 몸이 한순간 흔들렸다.
남궁소연의 검집에서 푸른 검기가 뻗어 나가 아이와 서문악 사이를 갈랐다.
아이의 옷깃이 검기에 밀려 앞으로 기울었다.
백리운의 은침이 아이의 허리띠를 꿰뚫어 무혁 쪽으로 당겼다.
세 사람의 움직임이 이어진 시간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것보다 짧았다.
소년이 서문악의 검 앞에서 벗어났다.
무혁의 철검이 검집에서 나왔다.
한 걸음.
한 검.
검광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틈도 없었다.
낙산유수.
챙!
설명의 철검이 서문악의 손에서 날아갔다.
무혁의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십 명을 물에 빠뜨리려 한 자.
어린아이까지 방패로 삼은 자.
항복할 기회를 주었으나 더 큰 악행으로 대답한 자.
무혁은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철검이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지나갔다.
서문악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몸이 말 아래로 떨어졌다.
무혁은 철검을 거두었다.
“훔친 검으로는 태허문의 제자를 이길 수 없소.”
악행을 거듭하던 서문악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무혁은 땅에 떨어진 설명의 검을 주웠다.
낡은 검집.
손잡이 아래의 흠집 세 개.
분명 사형의 검이었다.
무혁은 소매로 검집에 묻은 흙을 닦아 냈다.
철무광과 연비화가 수문 쪽에서 걸어왔다.
연비화는 무혁이 든 검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설명의 검이구나.”
“예.”
“서문악은?”
무혁은 쓰러진 자를 바라보았다.
“베었습니다.”
연비화는 아들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주변에 구출된 사람들과 살아난 아이가 있었다.
그것만으로 서문악이 마지막까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철무광이 말했다.
“후회하느냐?”
“아닙니다.”
무혁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자를 놓아주면 다시 약한 사람을 이용할 것이었습니다.”
철무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객은 사람을 베는 것만 배워서는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베어야 할 때 망설이지 않는 것도 배워야 한다.”
무혁은 설명의 검을 양손으로 들었다.
태허문이 멸문한 뒤 수많은 유품이 사라졌다.
누군가는 태허문의 검을 전리품으로 팔았다.
누군가는 훔친 검으로 태허문의 이름을 더럽혔다.
무혁은 사형의 검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는 검을 자신의 허리에 차지 않았다.
“태허문으로 가져가겠습니다.”
남궁소연이 물었다.
“불탄 태허문으로 돌아갈 생각입니까?”
“언젠가는.”
무혁은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허문을 멸한 자를 모두 찾아 죄를 물은 뒤, 살아남은 제자들과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다시 세울 생각입니까?”
무혁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정할 일이오.”
태허문은 무혁 혼자만의 문파가 아니었다.
청허진인의 것이기도 했다.
죽은 사형과 사숙들의 것이기도 했다.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 모르는 제자들의 집이기도 했다.
무혁은 혼자 장문인이 되거나 문파의 운명을 결정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사형의 검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마음은 분명했다.
---
지하 감옥에서 구출된 사람은 모두 마흔세 명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석 달 넘게 갇혀 있던 사람도 있었다.
서문악의 수하들은 사람들을 납치해 지하 수로의 증거를 옮기게 했다. 일을 마친 뒤에는 수문을 열어 모두 없앨 계획이었다.
백리운은 수문 앞에 임시 의방을 만들었다.
중독이 심한 사람부터 침을 놓고 해독환을 나누어 주었다.
한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은전 하나를 내밀었다.
“가진 것이 이것뿐입니다.”
백리운은 은전을 받아 손가락으로 튕겨 보았다.
“가짜 은전이군요.”
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는 몰랐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져가겠습니다.”
백리운은 은전을 소매에 넣었다.
노인이 물러난 뒤 당소혜가 손을 내밀었다.
“보여 줘요.”
“무엇을?”
“방금 받은 가짜 은전.”
백리운이 마지못해 은전을 꺼냈다.
당소혜는 그것을 이로 살짝 눌러 보았다.
“진짜잖아요.”
“내 눈에는 가짜였네.”
“가난한 환자한테 돈을 돌려주려고 일부러 거짓말한 거죠?”
“의원의 판단을 의심하지 말게.”
“그럼 이건 제가 가져가도 돼요?”
백리운이 즉시 은전을 빼앗았다.
“환자가 낸 치료비를 마음대로 가져가면 안 되지.”
당소혜가 웃었다.
“역시 돈을 밝히네요.”
“이제야 제대로 보는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비화가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진백현도 살아 있을 때 같은 방식으로 가난한 환자의 돈을 받았다.
그리고 환자가 돌아가면 몰래 약값보다 더 많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곤 했다.
백리운은 스승의 의술만 이어받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돕고도 드러내지 않는 서투른 마음까지 닮아 있었다.
남궁소연은 붙잡힌 서문악의 수하들을 심문했다.
복잡한 비밀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비검당주 제갈현의 돈을 받고 움직인 낭인들이었다.
태허문 멸문에 직접 가담한 자는 세 명뿐이었다.
그들은 태허문 북쪽 지하도를 막고 달아나는 제자들을 공격했다고 인정했다.
무혁은 세 사람 앞에 섰다.
“누가 명령했소?”
가장 나이 많은 자가 대답했다.
“서문악이 명령을 전했습니다.”
“그 위에는 누구였소?”
“남궁세가의 내당총관 남궁진호였습니다.”
남궁소연의 손이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직접 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남궁가의 푸른 장포와 가주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주인이 진짜인지 확인했습니까?”
“우리는 그런 것을 확인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태허문의 퇴로를 막았군요.”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소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남궁진호가 가주인을 훔쳐 거짓 명령을 내렸다는 증거가 다시 나타났다.
남궁세가 전체가 태허문을 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궁가의 사람이 가문의 힘과 이름을 이용해 멸문에 가담한 것은 분명했다.
무혁이 소연을 바라보았다.
“소연.”
“괜찮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무혁은 위로하는 말을 찾지 않았다.
대신 죄인들을 향해 말했다.
“남궁진호의 죄는 그자에게 묻겠소.”
그는 세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당신들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오.”
“살려 주십시오.”
“목숨을 구걸하기 전에 당신들이 공격한 사람들의 이름부터 기억하시오.”
무혁은 그들을 그 자리에서 베지 않았다.
태허문 멸문에 가담한 자들이 살아서 죄를 증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풀어주지도 않았다.
당소혜가 세 사람의 손목에 기관쇄를 채웠다.
남궁소연은 그들을 무림맹의 공개 재판에 세우기로 했다.
한 사람의 은밀한 심문이 아니었다.
수많은 무인이 보는 앞에서 태허문 토벌령이 어떻게 악용되었는지 밝힐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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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소혜는 수로 안쪽에서 불타다 남은 장부와 서찰을 찾아냈다.
대부분은 재가 되었지만 두 통은 돌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서문악에게 내려진 명령서였다.
평산현의 지하 수로를 지키고 태허문 멸문의 증거를 없애라는 내용이었다.
명령자는 남궁진호.
두 번째 서찰의 수신인은 사마진천이었다.
봉인은 뜯기지 않았다.
무혁은 서찰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열어 볼 겁니까?”
당소혜가 물었다.
“내게 온 편지가 아니오.”
백리운이 말했다.
“그러나 태허문 멸문과 관련된 내용일 수 있네.”
“그렇다고 남의 편지를 마음대로 읽을 수는 없소.”
철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전해라.”
연비화는 봉투에 적힌 글씨를 확인했다.
“진백현의 필체다.”
무혁의 눈빛이 움직였다.
아버지가 죽기 전 사마진천에게 보낸 편지.
그 안에는 귀검을 다스리는 방법이나 태허문을 노린 자의 이름이 적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혁은 봉인을 뜯지 않았다.
“사마진천께 직접 전하겠습니다.”
남궁소연이 물었다.
“마교로 향할 생각입니까?”
“그 전에 남궁세가로 가야 하오.”
무혁은 붙잡힌 세 사람과 남궁진호의 명령서를 바라보았다.
“태허문 멸문에 가주인이 사용되었소. 남궁가주에게 직접 확인해야 하오.”
소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하고 싶은 길이었다.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장로들 앞에서 남궁세가의 죄를 꺼내야 했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무혁이 말했다.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소.”
“알고 있습니다.”
소연은 무혁과 당소혜, 백리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귀검사우가 함께 갈 테니까요.”
당소혜가 기관 상자를 두드렸다.
“남궁세가에 기관이 많지는 않겠죠?”
소연이 대답했다.
“검객은 많습니다.”
“그것도 별로인데.”
백리운이 말했다.
“부유한 세가라면 치료비는 받을 수 있겠군.”
“백 의원은 환자부터 찾는군요.”
“돈 많은 환자는 언제나 환영일세.”
철무광은 사마진천에게 보내진 서찰을 무혁에게 건넸다.
“잃어버리지 마라.”
무혁은 품속 깊이 서찰을 넣었다.
“지도와는 다릅니다.”
당소혜가 물었다.
“누가 뭐라고 했어요?”
“모두 얼굴에 쓰여 있소.”
연비화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들이 이제 눈치는 조금 늘었구나.”
“조금뿐입니까?”
“길을 찾는 모습을 더 봐야겠다.”
무혁은 더 묻지 않았다.
---
그날 밤, 여섯 사람은 옛 수문 위의 빈 관리소에서 쉬었다.
구출된 사람들은 불을 피우고 오래간만에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무혁은 관리소 뒤편의 넓은 바위 위에 홀로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귀검이 놓여 있었다.
검은 조용했다.
풍림촌에서 곽대웅을 벨 때도 귀검은 자신을 불렀다.
오늘 서문악이 설명의 검을 들고 나타났을 때도 거세게 울었다.
그러나 모든 싸움이 끝난 지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무혁은 연비화가 가르쳐 준 말을 떠올렸다.
귀검이 울 때 분노로 뽑지 않는다.
귀검이 힘을 요구할 때 내공을 주지 않는다.
귀검이 잠잠할 때 자신의 의지로 깨운다.
무혁은 오른손을 귀검의 자루 위에 올렸다.
귀검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적도 없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은 안전했다.
바로 지금이 귀검을 자신의 의지로 불러야 할 때였다.
무혁은 천애귀원공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거대한 힘을 일으키지 않았다.
가느다란 진기 한 줄기만 손바닥을 통해 검으로 보냈다.
귀검의 일곱 심철이 서로 다른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웅.
우웅.
낮고 높은 일곱 울림이 검집 안에서 충돌했다.
무혁은 힘으로 누르지 않았다.
각각의 소리를 그대로 들었다.
분노를 원하는 기운.
두려움을 키우는 기운.
힘을 탐하는 기운.
주인을 지키려는 기운.
서로 다른 성질이 뒤엉켜 있었다.
그중 가장 거친 기운이 무혁의 진기를 삼키려 했다.
무혁은 내공을 더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떼지도 않았다.
“힘을 원한다면 기다려라.”
그가 귀검에 말했다.
“내가 허락할 때까지.”
귀검의 울음이 조금씩 낮아졌다.
완전히 잠잠해지기 직전, 검집 입구에서 검은 검신이 반 치만큼 모습을 드러냈다.
무혁이 억지로 뽑은 것이 아니었다.
귀검이 스스로 나오려 한 것도 아니었다.
무혁의 의지와 검의 힘이 처음으로 같은 순간에 움직였다.
그러나 검신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려 하자 무혁은 검을 다시 밀어 넣었다.
찰칵.
귀검이 검집 안으로 돌아갔다.
연비화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끝까지 뽑지 않았느냐?”
무혁은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직 일곱 기운 가운데 네 번째부터 흐름이 흔들렸습니다.”
“알아차렸느냐?”
“예.”
연비화는 아들의 옆에 앉았다.
“네 아버지는 처음 귀검을 만들었을 때 그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버지보다 내가 낫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쉽게 기뻐하지 마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무혁은 표정을 굳혔다.
연비화가 작게 웃었다.
“진백현도 칭찬을 들으면 꼭 그런 얼굴을 했다.”
무혁은 귀검을 바라보았다.
“오늘 한 것은 성공입니까?”
“첫 번째 문턱에 발을 올린 정도다.”
“아직 넘은 것은 아니군요.”
“검신을 끝까지 드러낸 뒤에도 일곱 기운을 네 의지 아래 두어야 한다.”
“그다음은요?”
“귀검을 들고도 네 검법을 잃지 않는 것.”
연비화가 말했다.
“귀검의 힘에 취하면 네가 익힌 낙산일검과 낙산유수는 사라진다. 모든 것을 힘으로 부수는 살검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귀검으로도 녹슨 철검과 같은 검을 펼쳐야 합니까?”
“그 이상이어야 한다.”
연비화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귀검은 네 검을 대신하는 병기가 아니다. 네가 평생 익힌 검을 더 깊게 만드는 병기가 되어야 한다.”
무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귀검의 주인이 되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귀검의 힘을 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의 의지로 깨우고, 그 힘 안에서도 자신의 검을 잃지 않아야 했다.
멀고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
무혁이 불렀다.
연비화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무혁이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아직도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말해 보아라.”
“귀검을 완전히 뽑는 날이 오면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그날까지 살아 있으라는 뜻이냐?”
“백 의원의 말을 잘 들으시면 됩니다.”
연비화가 아들을 바라보다 웃었다.
“철무광에게 정말 나쁜 것만 배운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구나.”
“철 사부님께도 좋은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관리소 문밖에서 철무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면 됐다.”
무혁과 연비화가 돌아보았다.
철무광과 남궁소연, 당소혜, 백리운이 모두 서 있었다.
당소혜가 말했다.
“우리도 귀검이 반 치 나온 것을 봤어요.”
“엿보고 있었소?”
백리운이 대답했다.
“환자의 보호자가 수련하다 쓰러질까 확인한 것뿐이네.”
“나는 환자가 아닙니다.”
“조금 전 물을 마셨지.”
무혁은 입을 다물었다.
남궁소연은 무혁의 옆에 놓인 귀검을 바라보았다.
“다음에는 한 치가 되겠군요.”
“그럴 것이오.”
“그다음에는 두 치.”
“아마도.”
당소혜가 손가락으로 길이를 재었다.
“그렇게 조금씩 뽑으면 완전히 뽑는 데 몇 달은 걸리겠는데요?”
철무광이 말했다.
“서두를 일이 아니다.”
그는 무혁을 바라보았다.
“검을 빨리 뽑는 것보다 바르게 뽑는 것이 중요하다.”
무혁은 귀검을 등에 멨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아느냐?”
“오늘은 길도 찾았습니다.”
남궁소연이 말했다.
“제가 앞장섰습니다.”
“수문 입구는 내가 먼저 발견했소.”
“물소리를 듣고 발견했지 지도를 보고 찾은 것은 아닙니다.”
당소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지도는 멀었네요.”
무혁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관리소 안에 작은 웃음이 퍼졌다.
그날 무혁은 귀검을 완전히 뽑지 않았다.
그러나 귀검은 처음으로 분노가 아닌 무혁의 의지에 응답했다.
그것은 한 검으로 적을 쓰러뜨린 승리보다 중요한 진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일행은 남궁세가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구출된 사람들은 평산현으로 돌아가 서문악과 관아의 죄를 알리기로 했다.
태허문 멸문에 가담한 세 사람은 기관쇄에 묶인 채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무혁의 등에는 귀검이 있었다.
허리에는 녹슨 철검이 걸려 있었다.
설명의 검은 흰 천으로 감싸 철무광의 말에 실었다.
남궁소연은 가장 앞에서 길을 확인했다.
이번 길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남궁세가로 이어졌다.
표정은 침착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무혁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소연.”
“말씀하십시오.”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소?”
소연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두렵습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어디까지 알고 계셨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가문의 장로들 가운데 남궁진호와 손잡은 사람도 찾아야 하고요.”
“소연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소연은 무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돌아갈 수 있는 겁니다.”
당소혜가 두 사람 사이로 말을 몰고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는 뒤에서도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길부터 확인해요.”
백리운이 말했다.
“이번만큼은 당 소저의 말이 옳네.”
“이번만큼은 무슨 뜻이에요?”
철무광은 가장 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연비화는 그런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말고삐를 천천히 쥐었다.
강호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약자를 괴롭히는 산채가 있었고, 문파의 이름을 훔쳐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었다.
무림맹과 명문세가 안에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검을 파는 자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막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뚝뚝하지만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진무혁.
가문의 죄까지 똑바로 바라보는 남궁소연.
자유분방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당소혜.
돈을 밝히는 척하면서 사람부터 살리는 백리운.
거칠지만 은혜와 죄를 구분하는 철무광.
그리고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으며 다시 검을 드는 연비화.
여섯 사람은 태허문을 멸한 자를 찾기 위해 강호를 걸었다.
하지만 진실만 쫓지는 않았다.
길에서 악인을 만나면 벌했다.
약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멈췄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 주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귀검사우의 이름은 더욱 널리 퍼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결전 속에서 진무혁은 조금씩 귀검의 주인이 되어 갈 것이다.
여섯 필의 말이 남쪽 관도로 나아갔다.
그들이 떠난 옛 수문에는 다시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죽은 사형의 검도 되찾았다.
태허문 멸문에 가담한 자들의 증언도 확보했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남궁세가.
그곳에서는 남궁진호가 훔친 가주인의 진실과 태허문의 퇴로를 막은 명령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밝혀야 했다.
남궁소연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딸로서가 아니라 검객으로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죄를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밝힘으로써 가문의 검을 바로 세우는 무인으로서.
그녀의 곁에는 진무혁과 귀검사우가 있었다.
저 멀리 남궁세가의 푸른 깃발이 걸린 성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혁의 등에 멘 귀검이 아주 낮게 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노의 울음이 아니었다.
주인의 다음 선택을 기다리는 고요한 검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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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 「남궁세가로 돌아온 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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