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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잠시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리니 잠결에도 걱정이 태산이다. 분명히 예보에는 낮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소리를 들어보니 큰 비는 아니라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부지런한 지평(김세봉)과 성암(오진탁)이 벌써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 5시에 출발키로 했으니 30분을 더 자도 되지만 옆에서 자던 거곡(정재민)도 눈을 뜬 모양이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지평과 성암이 분주히 산행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마실 물을 보충하고 아침으로 준비한 동결건조비빔밥에 물을 채우고 텐트를 접으며 배낭을 꾸린다. 준비를 마치고 하루밤 정 들었던 청옥산 정상을 예정했던 5시 전에 출발한다. 청옥산 정상에서도 마루금 찾기에 주의를 해야하는데, 정상에 올라서면서 12시 방향 표지석 뒤가 마루금처럼 보이나, 마루금은 올라서면서 오른쪽 4시 방향 무선기지국탑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12시 방향은 망지봉을 지나 삼척시 하장면 당곡천으로 내려서게 된다. 어제와 오늘 구간중 세번째로 높은 고적대(해발 1,353.9m)까지는 U자형으로 급경사를 내려 해발 1,200m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1,354m까지 암릉을 치고 올라야 한다. 어둠과 안개와 벌써 떨어진 낙엽 때문에 길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둠과 안개와 물기에 젖은 낙엽 때문에 조심스레 약 40여분을 내려서니 연칠성령이다. 어둠속에서 안개에 둘러 싸인 연칠성령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정말로 어렸을적 홀로 성황당에 서있는 기분을 연상시킨다. 청옥산 정상에서 텐트 칠 자리가 없으면 여기 연칠성령에서 야영할 계획이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짙은 어둠과 안개에 싸인 연칠성령을 뒤로 하고 고적대를 향하여 서둘러 떠난다.
망군대(해발1,244m)에서 바라본 동해시와 동해 바다 방향. 사진 중앙의 불빛은 동해시이고, 이때만해도 동해 바다에서는 태양이 떠 오를것같은 모습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진다. 망군대를 지나 고적대 300m 남았다는 이정표부터는 고적대 오름길이 시작된다.
군데 군데 암릉길과 안전 로프가 있는 오늘 구간 중 짧지만 가장 급경사이며 위험구간인 고적대 오름길을 오른다. 약간의 짜릿한 맛을 느끼며 치고 오르니 어둠속에서 걸어온 뒤가 훤하게 열려있다. 고적대 바로 직전 바위 전망대..... 오른쪽이 청옥산, 왼쪽 약간 구름에 가려 있는 곳이 두타산이다. 어제 오늘 산행 중 가장 확실한 조망인데, 카메라 노출이 잘못되어 사진이 별로다.
고적대 직전 바위 전망대에서 본 동해 바다 방향. 이때까지도 일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는데...........
중앙의 계곡이 천하절경에다가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이다. 바로 아래에 칠성폭포가 있을것이고, 용추폭포와 쌍폭을 거쳐 무릉도원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고적대에 올라선 거곡. 이름 그대로 고적대는 첨탑처럼 뾰족이 솟은 봉우리다. 정상의 넓이가 열명이 앉기에도 부족 할 것 같다. 좁은 공간에도 표지석, 안내판, 이정표등 있을건 다 있다. 주위를 살펴 보니 나무들이 앞을 가려 조망은 별로다. 차라리 직전의 바위 전망대의 조망이 훨씬 좋다.
고적대에서 뒤돌아 본 청옥산(오른쪽)과 두타산(왼쪽). 청옥산의 먼발치 모습은 지리산의 반야봉과 흡사하다.
둥그스름한 산 모습이 상당히 편안하게 보이지만 오르내림의 경사는 땀깨나 흘려야 한다. 하지만, 정상은 널찍하여 미물의 중생들은 얼마든지 품어 줄 수 있을듯한 너그러운 모습이다.
고적대 좁은 정상에서 우리는 청옥산 정상 출발 때 미리 준비한 아침 식사(동결 건조 비빔밥)를 한다. 좁은 정상인데다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올라오랴 싶어 길 위에 아침 보따리를 풀어 놓고 고적대의 정기와 함께 아침밥을 먹는다. 찬물을 부은 된장국은, 아침인데다 날씨가 쌀쌀하니 먹히지가 않는다. 비빔밥도 차다보니 먹기에 약간은 부담스럽다.
상당히 편한 식품이지만 날씨가 추울때는 따뜻한 물을 준비해야 되겠다. 그래도 언제 또 고적대 위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랴!!! 차가운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모두 즐겁다. 지평이 가져온 아이 머리만큼 큰 배를 깍아 디져트로 먹고, 갈 길이 먼 나그네들은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위 안내판의 글을 읽으며, 의상대사는 우리가 감히 비교 할 수 없는 산악인(?)이라는 농담을 하며 서로 웃는다.
우리나라의 명산이라고 하는 산에는 늘 의상대사와 원효대사등 고승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지 않은가!!!
그들이 이런 명산을 찾아 수행을 하고 도를 깨우쳐 중생을 구제하고 나라를 구하고....그런데, 우리같은 하찮은 중생들은 '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도 아직 답변을 제대로 못하니, 평생을 산에 다니고 마음을 정갈히한다 하여도 저들의
티끌만큼이라도 따라 갈 수 있을런지?!?!
고적대에서 가파른 내리막 경사를 지나 조금 더 내려서니 고적대 갈림길이다. 대간 마루금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 설 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무릉계곡에서 이 곳으로 올라 또 한번 청옥산 정상에서 야영을 하고, 두타산을 거쳐 다시 무릉계곡으로 내려서는 산행을 해보리라!!!
고적대 삼거리를 지나 갈미봉(해발 1,260m) 전에서 암봉과 단풍을 배경으로.... 약간의 안개에 싸여 있는 암봉과 고사목, 그리고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더욱 신비롭다.
단풍 터널에서 성암이 모델이 되어 준다.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단풍잎 터널은 가을을 느끼기에 손색이 없다.
우리는 이런 단풍 터널을 계속 지난다. 흐린 날씨와 안개 때문에 기대했던 동해 바다쪽의 조망을 안보여 주는 대신, 눈 앞에 이런 광경을 보여 주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산행길도 부드러운 흙길이다.
갈미봉 정상(해발 1,260m). 고적대에서 갈미봉에 이르는 길은 대부분 마루금 왼쪽 사면길로 이어진다. 마루금 오른쪽 즉 동해 바다쪽은 그야말로 깍아지른 절벽들의 연속이다. 갈미봉부터 이기령까지는 큰 오름 없이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갈미봉에서 내림길은 흙받이 나무 계단이다. 약 30여분을 내려오니 이정표 없는 갈림길이다. 능선마루를 따라 뻗어 있는 길은 1,142.8m봉으로 가는 마루금이고 왼쪽 길은 우회로다. 미련없이 우회로로 접어들어 너덜길을 지나 산사면을 내려 서니, 왼편으로 지도상의 샘터가 나타나는데 수량도 적고 물도 깨끗하지 못하다. ,등반지도에 소나무 군락지라고 표시된 곳을 지나 898봉을 넘고 산죽 사이를 걸어내리자 드디어 이기령이다. 오른쪽은 동해시 이기동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왼쪽은 임도를 따라 정선군 임계면으로 빠지지만 임도가 워낙 길어 탈출구로는 적당치 않다. 반면 이기동 방향은 약 1시간 정도 내려서면 민가가 있는데, 민박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2개의 벤치에 배낭을 내려 놓고 약간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이기령으로 오는 중간에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모두 우비를 꺼내 입는다. 지도를 꺼내 보니 원방재까지는 약 1시간 30분 거리다. 원방재에서 물을 끓여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하고 이기령을 출발한다. 이기령은 사거리인데, 이기령으로 내려서면서 왼쪽길은 임도로 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동해시 이기동으로 빠지고, 원방재로 가는 마루금은 10시 방향 이정표가 가리키는 백복령 방향 숲속길이다. 이기령은 사람이 걸어서만 넘을 수 있는고개이며, 휴게소와 같은 편의 시설은 전혀 없다. 150m를 가면 우물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냥 지나치느라 상태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선답자들에 의하면 믿을만한 곳이 아니란다.
이기령 임도 옆에서 외국인(미국인)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 남자 둘, 여자 한명인데 여자가 양치질을 하고 있다. 울산에서 영어 선생을 하고 있으며, 백두대간 종주 중이란다. 원방재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는데, 정선쪽 탈출구인 부수베리 마을로 가지 않고 동해시 서학동 방향으로 내려 갔는데, 길을 제대로 알고 간 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서학동 방향길도 지도상에는 나와 있는데, 어느 누구도 탈출구로 추천하는 사람이 없다. 원방재에서는 대부분 임도가 잘 나있는 정선군 부수베리 마을로 하산하여 택시를 타고 동해시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해시가 가까우니 그 길로 내려간 것 같은데, 지도상으로는 상당히 험한 길 같다.
"이 곳이 진짜다. 아니다 여기가 진짜다." 두개의 상월산 정상이다. 여러 곳을 뒤져 봐도 어느 곳이 정상인지 알 수가 없다. 여하튼 이기령에서 처음 만나는 상월산 오름길이 장난이 아니다. 또 한 처음 상월산에서 두번째 상월산도 한참을 가파르게 내려 섰다가 가파르게 다시 올려 쳐야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레인커버를 쒸웠지만 배낭은 물기를 머금어 점점 무거워지고 길은 미끄러워 걱정이 태산이다. 백두대간 여러 구간 중 어제 오늘의 댓재-백복령 구간이 어려운 점은 거리도 길지만 오르내림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다.
정선군 부수베리 마을로 빠질 수 있는 원방재이다. 여기에도 2개의 벤치가 놓여 있다. 나와 거곡은 버너와 코펠을 꺼내
물을 데우고, 지평과 성암이 물을 뜨러 간다. 동결건조비빔밥에 끓인 물을 부어놓고 느긋이 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성암과 지평이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온다. 그사이에 물을 뜨는 냇가에서 알*을 하였다고 한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하지만 평소 지평과 성암의 성품으로 보아 우리를 놀려주기 위한 거짓말 일리는 없고....
뜨거운 물을 부은 비빔밥은 정말 먹을만하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산객들이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원방재로 내려 선다. 고요하던 대간길이 시끄럽다. 안양에서 온 산악회 사람들인데 4-50명은 됨직하다. 그들도 대간 종주 중인데, 한 남자가 청옥산 부근에서 다리를 다쳐 후미에 쳐져서 오고 있었고, 일행들은 그 남자에게 오늘의 나머지 구간을 포기하고 부수베리마을로 내려 가라고 권하는데, 본인은 끝까지 가겠노라고 고집을 피우는 모양이다. 원방재에서 백복령까지는 약7.3km, 시간상으로는 3시간 30분에서 4시간은 가야 되는데, 우리가 봐도 쓸데 없는 고집이다. 아니 자기만을 생각하는 아집이다. 다른 일행들을 생각한다면, 본인이 스스로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일행들이 편안하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 것이 맞으리라...오늘 포기해서 못한 구간은 훗날 혼자 여유롭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컨데 그 남자가 고집을 피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4-50명이나 되는 단체가 같이 왔을 때에는 조그만 자신을 버리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전체를 생각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 동안 몇일 안되는 우리 네명의 산행 과정을 곰곰히 되새겨 보며 나는 어떠했는지 곱씹어 본다.
여하튼 우리가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니 짐을 챙기고 우리는 떠난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오를 산이 여러개 남아 있다.
--아직도 오를 산이 여러개 남아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아니한가???ㅎㅎㅎ---(일본 북알프스에서...뽕환 말씀)
원방재에서 1,022봉 오르는 길도 오름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1시간 이상을 계속 올라야 하는 길에 전망대가 있어도 그냥 지나치고, 가다 쉬고 가다 쉬기를 여러번. 비에 젖은 텐트와 배낭이 양 어깨를 짓누른다. 862봉을 지나 어렵게 1,022봉에 오른다. 이정표 앞에서 포즈는 취하지만 이정표를 보니 아직도 백복령까지 5km 남았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성암이 건네준 간식을 먹고 다시 백복령을 향하여 출발하는데,내리막 또한 급경사다.
987봉 오름길도 급오름이다. 내려서고 다시 오르고 이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낮은 봉우리 몇개를 또 넘는다. 863봉을 지나고 다시 921봉 오른는 흙받이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다행이 921봉은 옆으로 비껴간다. 얼마동안 무거운 배낭과 빗줄기에 정신 없이 앞만 보고 걷는데 뒤에서 오던 지평과 성암이 "백복령 1.3km"라고 외친다. 그렇다면 옛 백복령 삼거리가 지났단 말인가? 너무 피곤해서 무심결에 지나친 모양이다.엣 백복령 삼거리에서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할 계획이었는데.....시간상으로는 백복령까지는 약30분이면 충분하다. 배낭을 내려 놓고 핸드폰을 꺼내 동해 택시기사에게 지금 출발하여 백복령으로 오라고 당부를 하고 다시 빗속을 뚫고 백복령으로 향한다. 이후는 완만한 내림막으로 시야가 흐려 멀리 주위를 조망 할 수가 없다. 앞쪽으로는 다음 구간인 자병산의 잘린 구간이 보인다는 봉우리에 올라 서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심하게 훼손되어 흉칙스러울 정도라니, 차라리 안개가 가로막아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조금 내려가니 철탑을 지나고, 다시 3-4분이 지나니 숲사이로 백복령을 넘는 42번 국도가 시야에 들어 온다
빗줄기와 안개를 뚫고 백복령으로 내려 서는 지평과 성암, 그리고 나... 이렇게 12시간 20분에 걸친 오늘의 일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어려운 구간이라 내심 큰 걱정을 했는데 무사히 마침에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는 비가 예상될 시는 꼭 배낭 레인커버를 하나 더 준비해야겠다. 장시간 산행에서는 1개의 레인커버로는 배낭에 스며드는 물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물에 젖은 배낭의 무게는 설명치 않아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스틱을 접고 배낭을 내려 놓으니 바로 택시가 올라 온다.
다음 구간인 백복령-삽당령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택시에 올라 나의 차를 세워둔 동해시로 향한다. 내 차에 모든 짐을 옮겨 싣고 사우나로 가서 간단히 씻고, 근처의 저렴한 횟집으로 들어 간다. 오징어회와 광어회를 보니 쐬주 한 잔 생각이 굴뚝 같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운전을 해야 하니 참기로 하는데, 거곡이 눈치를 챘는지 극구(?) 쐬주를 권한다.
본인이 운전을 할 테니 편하게 한 잔 하란다. 나는 여러번(?) 사양타가 못 이기는척 소주를 시킨다ㅋㅋㅋ.
지평과 나누어 마시는 소주 맛이 오늘의 힘들고 긴 산행만큼이나 배속에서 짜릿한 여운이 오래 간다. 따라나온 매운탕에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원주로 향한다. 원주에서 성암과 헤어져 서울 집에 도착하니 저녁 11시가 넘었다.
다음 일정은 10월 24-25일 1박 2일로, 화방재-피재, 피재-댓재 구간을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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