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남녀노소를 불문한 마흔 여섯 명이 지장왕사 앞에 모였습니다. 짝을 지어 버스에 나누어 타고 경남 청도 운문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버스에 앉은 남녀노소님들은 떠나는 설레임에 다들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으신 현장스님의 목소리 또한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지장왕사 법요집을 펼쳐들고 버스 안에서 사시예불을 보았지요. 이동을 하면서 보는 예불은 버스가 바로 법당이요, 바깥의 경치가 바로 극락이 되어 색다른 환희심이 일었습니다.
<운문사 입구에서 현장스님께 전각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계신 보살님들의 모습입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님은 저서에서 '운문사의 예불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이라고 이야기 했답니다.
<운문사 입구에 자리한 늘어진 소나무 입니다.>
예전에는 스님과 사부대중이 한 법당에서 예불을 보지 않고 법당 맞은 편에 사진 배경처럼 넓은 마루를 깔아서 대중은 바깥에서 예불을 보았다고 현장스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운문사는 그 양식을 따르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주력을 환희심으로 하는동안 밖을 보니 차장에 빗줄기가 스쳐 아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언제나 막힘이 없는 현장스님께서 유머법문까지 곁들여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게 지나고 네시간 남짓 달려 드디어 도착한 운문사. 거세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법정스님께서 좋아하셨다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웅보전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현장스님께 비로자나불에 대해서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운문사 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의 모습입니다>
<현장스님께서 삼배를 올리고 계십니다>
비로자나라는 말은 인도말로 ‘쪼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육안을 떠나 법안으로 입자를 보면 빛과 파동으로 되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웅보전의 비로자나불은 오랜 입정을 끝내고 결가부좌하셨던 한쪽 다리를 내려 편안히 쉬시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존상도 아주 친숙하고 소탈하게 보였습니다.
대웅보전의 왼쪽에는 아름다운 삼장탱화(천장, 지장, 인장)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탱화는 고려말에 나타난 불교회화로 이전에는 부처님의 광배만 있었다고 합니다. 부석사의 경우가 대표적이고 이때 법당에 마루를 놓는 양식도 생겨 났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화엄사의 각황전처럼 전돌을 놓았답니다.
<선혜보살이 부처님께 진흙바닥에 머리카락과 몸을 깔아 엎드린 벽화를 설명해 주고 계신 현장스님>
과거 연등불 시절 선혜보살은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구리천녀에게 푸른 연꽃을 사서 연등불에게 공양하고, 연등불이 지나가는 진흙투성이 길 위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땅에 깔아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답니다. 그리하여 선혜보살은 연등불로부터 미래의 부처가 되어 호가 석가모니라고 할 것을 수기(授記)받게 되고 자신의 몸을 땅에 붙여서 절을 하는 오체투지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맞은편에는 설산동자와 나오는 벽화가 있는데 설산동자가 히말라야에서 홀로 수행하고 있을 때 제석천이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 나찰로 나타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것이 나고 죽는 법이라네.(제행무상 시생멸법)'라는 시의 앞구절을 외었답니다. 설산동자는 이 진리의 게송을 듣고 한없이 기쁨을 느껴 나머지 싯구를 마저 듣기위해 굶주린 나찰에게 자기 몸을 주기로 하지요. '나고 죽는 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고요한 열반의 기쁨이어라.(생멸멸이 적멸이라)'의 시구 절을 듣고 나서 설산동자는 약속한대로 나무에서 몸을 날리자, 나찰은 곧 제석천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도대체 그런 신심은 타고 나는걸까요, 닦아지는 걸까요.
<운문사 대웅보전 앞에서 모두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사리암 산신각 앞에서 재물을 올리고 기도하시는 보살님>
운문사를 거쳐 사리암에 올랐습니다. 비옷을 챙겨입고 가파른 바위 계단을 30여분 오르니 정상에 사리암이 보입니다. 사리암은 나반존자님을 모시는 기도도량으로 유명합니다. 사리암에서 기도를 올리면 꼭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말이 있답니다. 다행스럽게도 2시 예불 시간에 맞추어 져서 비구니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와 함께 예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반존자님을 모신 사리암 천태각>
미륵하생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부처가 열반에 즈음하여 마하가섭, 쿤다다나 존자, 빈두로 존자, 친아들 라후라 네 명의 큰 제자들에게 천상 도솔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희들은 입멸하지 말라. 내 불법이 다할 때까지 남은 후에 입멸하라. 마하가섭은 입멸하지 말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려라.” 당부합니다. 나반존자는 석가부처가 열반 때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라 부촉한 4명중의 한명 빈두로 존자를 가리킵니다.
<산신각 앞에 모여앉아 예불을 올리시는 보살님들>
<빗속에 해인사 독성각앞에서 설명중이신 현장스님>
마지막으로 해인사에 들렀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해인사 올라가는 계곡의 물소리가 천둥치는듯
했습니다. "입해인 출송광" 이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곳의 풍광은 해인사가 나오는 곳의
아름다움은 송광사가 으뜸이라는 말이랍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에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6.25동란 중 해인사 공습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지킨 고 김영환 공군 이 금관훈장을 추서받은 것을 기념하는 플랑카드가 일주문앞에 붙어있었습니다. 대웅전과 팔만대장경판전을 둘러보는 동안 해는지고 비오는 가야산에 바람이 불어 운무를 이리저리 쓸고 다니며 비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내리는 빗소리에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가 경내를 울리니 다시 돌아오기가 싫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하며 억지로 억지로 발길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