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6. 26 경포도립공원으로 지정(면적 9.471㎢, 강원도 고시 제90호) 되었으며 수려한 자연환경과 함께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특히 보물 제183호인 해운정을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 5호인 선교장, 관동 팔경 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경포대가 있다. 또한 최고의 문장가(허균, 허난설헌)가 출생한 장소가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호수와 우거진 송림, 경포해수욕장을
비롯한 여러 해수욕장이 있어 사계절 관광을 할 수 있는 관광지이다. 호수 주변에는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 등이 있어 바쁜 생활 속에서 지친 현대인의 휴양과 생활의 활력소를 찾는 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며 주변의 여러 관광지와도 연계가 잘되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항시 관광을 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관광지이다.
<경포해수욕장>
동해안 최대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며 강문동, 안현동에 있고 시내에서 북으로 6km, 경포대에서 1km되는 곳에
동해의 창파를 가득 담고 펼쳐진 명사오리(明沙五里) 이다.
모두들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밀려오는 파도, 이를 쓸어 안는 길이1.8km, 면적1.44㎢의 하얀 모래밭과 외부와의 세계를
차단하는 듯 둘러 쳐진 송림병풍 4km는 정(靜)과 동(動)의 조화로 경포해수욕장 특유의 아름다움이다.
봄은 오리바위와 십리바위에서 밀려와 하얀 모래밭에 흰 빛깔을 내는 초록빛 바다. 여름은 이글이글 타는 더위 속에 추억과 낭만(浪漫)을 즐길 수 있는 바다. 가을은 쓸쓸히 혼자 거닐고 싶은 바다. 겨울은 어디서 누군가가 찾아 올 것만 같은 바다로 경포는 사계절 관광지이다.
강릉바다의 푸른 물이 맹하(猛夏)의 태양 빛에 반짝이는 은광(銀光)의 모래위로 밀려오고 붉게 타오르는 해돋이와
해 저무는 저녁 노을은 우리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한다.
주변에는 경포대, 오죽헌, 참소리 박물관, 선교장, 난설헌 문학비 등 경포호를 중심으로 볼 만한 곳이 많으며 경포호
주변을 자전거 하이킹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다. 해마다 여름해변축제와 관노가면극, 강릉농악, 사물놀이, 학산오독떼기 등의 전통문예행사, 해변무용제, 홍길동전,
공개방송 등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저 피서지의 열기를 달군다. 또한 1월 1일 새벽에는 해돋이 잔치가 열리고 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유람선, 혼자만의 추억을 간직하게되는 마차여행, 여름밤의 별을 헤아리며 젊음을 발산 할 수 있는
야영장, 싱싱한 생선회, 깨끗한 숙박시설, 편리한 대중교통 등이 경포해수욕장 매력중의 매력일 것이다.
경포대
경포대는 1326년(충숙왕 13) 당시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해 현 방해정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터에 처음 지어졌다. 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옮긴 후 고쳐짓기를 여러 차례 하였고, 1873년(고종 10)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다시 세운 뒤 1934년, 1947년, 1962년에 보수하였다. 경포 호수와 주위의 넓은 들을 감상할 수 있는 비교적 높은 장소에 지어진 이 건물은 기능적인 다양한 공간 구성과 자연과의 융합성이 돋보인다.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내부의 높이를 달리하고 흙과 마루를 적절히 사용하여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익공 양식에 2고주 5량 가구(架構 : 여러 재료를 결합하여 만든 구조)이며,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에 맞추어 높낮이를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에 따라 공간을 나누며, 시각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곳에 적절히 공간 형태를 부여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경포8경'
1.녹두일출(綠荳日出) 녹두정에서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며, 옛 한송정으로서 현 강릉 비행장 동쪽에 위치하였으며, 경포대의 正東을 가리킨다. 새벽에 대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면, 용광로처럼 붉게 타오르는 웅장한 태양이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떠오르는 순간은 신비스러울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이 장엄하고 경의로운 일출을 첫째로 꼽았다.
2.죽도명월(竹島明月) 호수 동쪽에 있는 섬모양의 작은 산으로서 산죽이 무성하여 죽도라고 불렸는데 현 현대호텔 자리이다. 동쪽 수평선 넘어에서 솟아오르는 보름달의 달빛이 죽도의 대나무 사이를 뚫어 그 빛이 호수에 비칠때 일어나는 그림같은 장관을 죽도명월이라 하였다. 멀리는 하늘의 달과 가까이는 바다와 호수의 달이 잇닿아 월주를 이루고 은파위의 월굴이 백해중으로부터 호심을 꿰뚫어 대 앞에까지 수십리를 뻗친 장엄하고도 기묘한 전망을 찬미한 것이다.
3.강문어화(江門漁火) 강문은 경포대에서 동쪽 호수 하구에 있는 곳으로서 호수와 바다를 상통교류케 하므로 강문이라고 했다. 밤에 경포대에서 강문쪽 바다를 건너다 보면, 오징어 잡는 고기배의 불빛이 마치 항구의 불빛처럼 휘황찬란하게 보이는데, 그 빛이 바다와 호수에 영도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4.초당취연(草堂炊煙) 초당은 호수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세가 호수와 바다보다 낮은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깊은 두메산골 같은 맛을 나게하며, 마을둘레는 낙낙장송이 울창하고 대지는 비습하여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다. 해가 서산마루 시루봉에 기울러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데 이때 가가호호 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노을에 물들어 평화로운 농촌을 연상케 하는데 그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5.홍장야우(紅粧夜雨) 홍장은 조선 초기에 석간 조운흘 부사가 강릉에 있을 즈음 부예기로 있었던 여인이었다. 어느날 모 감찰사가 강릉을 순방했을때, 부사는 호수에다 배를 띄어놓고 부예기 홍장을 불러놓고 가야금을 켜며 감찰사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미모가 뛰어난 홍장은 그날밤 감찰사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그 감찰사는 뒷날 홍장과 석별하면서 몇 개월 후에 다시 오겠다고 언약을 남기고 떠나간다. 그러나 한 번 가신님은 소식이 없다. 그리움에 사모친 홍장은 감찰사와 뱃놀이하며 즐겁게 놀던 호수에 나가 넋을 잃고 앉아서 탄식하고 있는데, 이때 자욱한 안개사이로 감찰사의 환상이 나타나 홍장을 부른다. 홍장은 깜짝 놀라면서 너무 반가워 그쪽으로 달려가다 그만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이때부터 이 바위를 홍장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안개낀 비오는 날 밤이면 여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전한다. 꽃배에 임을 싣고 가야금에 흥을 돋우며 술 한잔 기울이던 옛 선조들의 풍류정신을 회상하기 위한 기념으로서의 일경이다.
6.중봉낙조(甑峰落照) 시루봉은 경포대 북서쪽에 있으며, 그 생긴 봉우리 모양이 시루와 비슷하다하여 시루봉이라고 한다. 해가 서산마루에 기울어질 무렵이면 채운이 시루봉 북쪽 봉우리에서 경포 호수에 반영되는 일몰의 낙조가 잔물결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말한다.
7.환선취적(喚仙吹笛) 시루봉의 상선봉에 신라 선인들이 풍류를 즐기며 바둑을 놓고 놀던 곳이 있었는데 고요한 날 밝은 밤이면 어디서 부터인가 구슬픈 피리 소리가 바람결에 은은히 들려왔다 한다. 지금도 달밝은 밤이면 산자수명한 제일강산에 구름밖으로 부터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경포대의 환선취적은 신선경인 듯 하면서도, 속세를 떠난 속세인 듯 하면서도 신선경으로 생각되는 곳에 옛 신선들이 바둑놓고 피리불며 즐기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을 말한다.
8.한송모종(寒松暮鍾) 한송정은 지금의 비행장 동쪽에 있다. 녹두정이라 불렸던 이 정자는 화랑도들의 수양의 도장으로 지었던 것으로 지금은 석조.석지.석정만이 남아 있다. 신라 불교의 중흥기에 한송정에서 해질 무렵 치는 종소리가 경호의 잔물결을 타고 신선이 놀던 경포대까지 은은히 들려오던 옛 정취를 회상한 것이다.
월주(月舟), 월탑(月塔), 월파(月波) 등의 이른바 '경포월삼'은 천하의 장관이다.
대호인『경포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의 글씨이고, 정자안의『제일강산(第一江山)』은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 않다. 내부에는 율곡 이이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및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조하망(趙夏望)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들의 글이 걸려 있다. 정철이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했다는 경포대에 저녁이 되어 달빛이 쏟아지면 하늘,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님의 눈동자에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동해안 제일의 달맞이 명소이다.
선교장
조선말기의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으로 안채, 사랑채(열화당), 별당(동별당,서별당), 정각(활래정), 행랑채등 민가로서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선후기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안 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2)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3)동별당(東別堂)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4)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5)기 타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서재겸 서고로 사용하던 서별당이 있는데 소실되었다가 1996년에 다시 복원하였으며, 건물의 전면에는 행랑채가 있다. 또한 건물의 측면에는 원래 창고였으나 개화기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터가 있다.
허난설헌생가터
이 가옥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이 태어난 집터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실과 건립 연대는 미상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가 'ㅁ'자 배치를 하고 있으며 외부를 둘러싼 담이 있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하여 남자들은 솟을대문으로, 여자들은 우물간과 방앗간 옆의 협문으로 출입하였다. 또한 사랑마당과 구분하는 내외 담을 사랑채 옆에 쌓아서 출입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사랑채는 넓은 대청과 방들로 구성되며 전면에 툇간마루가 놓여 있다. 팔작기와지붕의 높은 처마를 갖춘 장여에 소로 받침이 있는 구조로 전면 기둥은 둥글게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5간, 측면 2간의 겹집으로 넓은 부엌과 방, 대청마루가 있다. 사랑마당, 행랑마당, 뒷마당을 담으로 넓게 나누어 놓아 한국의 아름다운 조경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주변의 소나무 숲이 전통적인 한옥의 멋을 더해 주고 있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오죽헌은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師表)가 되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 태어나고 또한 위대한 경세가(經世家)요 철인이며
정치가로서 구국애족(救國愛族)의 대선각자(大先覺者)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사임당 신씨(1504∼1551)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 침공, 자수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에도 뛰어나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예술가라 할 수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進士初試)에 합격하고 명종(明宗) 19년(1564) 생원시(生員試),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모두 장원급제한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大司憲) 등과 이조·형조·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유학계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했고 붕당(朋黨)의 조정(調停),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 사창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묘에 종사되었고 선조(宣祖)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紫雲書院),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 등 20여개 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오죽헌은 강릉 유현(儒賢)인 최치운(崔致雲)(1390∼1440)의 창건으로 아들 응현(應賢)은 사위 이사온(李思溫)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은 다시 그의 사위 신명화(申命和, 사임당의 부친)에게,신명화는 그의 사위 권화(權和)에게 물려 주면서 그 후손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문성사(文成祠),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선생의 위업과 교훈을 길이 추앙(追仰)하게 된 것이다.
참소리박물관
참소리박물관은 소리(Sound)가 중심이 된 음악 박물관 성격의 참소리축음기박물관과 에디슨 발명품 위주의 과학 박물관 성격인 에디슨사이언스뮤지엄 두개의 특화 박물관으로 구성 되어있다.
1982년 강릉시 송정동에서 손성목(설립자) 관장이 “참소리 방”으로 설립 된 이래 약3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주요 소장품은 뮤직박스, 축음기, 라디오, TV, 자동차, 에디슨의 발명품 등 5,000여점으로 소장품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의 사립박물관이다.
덤!! 주말 및 여름휴가에는 야간 개장을 한다. 관람소요시간 1시간 30분이며 참소리박물관안내원의 안내를 들을수 있다.
[시설안내]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은 400여평 규모로 전시품의 성격에 따라 4개의 독립 전시관과 100여평 규모의 전용 음악 감상실이 있으며 3층에는 경포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에디슨사이언스뮤지엄은 1,2층으로 되어 있으며 에디슨 발명품, 유품, 생활용품 등 에디슨 의 발명품이 3개의 전시관에 있다.
첫댓글 오죽헌을 들려볼수 있으면 좋겠는데 일정중에 시간배정이나 위치가 어떨지 ...기사님과 상의해 봐야겠지여
오죽헌은 경포대에서 나오면서 낙산 가는 방향에 바로 있습니다.관람하는데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은데 입장료가 3000원 든 답니다. 아참, 단체는 30명이상이고 2000원입니다. 주차비는 무료구요.
어디든 경비가 드네..그날 가면서 상의해 보죠그래도 코스가 그 길이라면 둘러보는게 좋겠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