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과 안락사 혼동하는 사람 없어야
최근 국립암센터에서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품위 있는 죽음과 호스피스 제도에 대해 조사했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 중단'과 '사전의사결정'에 대해 국민의 84%, 81%가 각각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는 품위 있는 죽음과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결과로, 정부가 추진 중인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화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품위 있는 죽음을 안락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개념적인 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적극적 안락사'란 환자의 요청에 따라 고통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를 말하며, '소극적 안락사'란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 공급,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적극적 안락사'든 '소극적 안락사'든 모두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보다 훨씬 이전에 생명을 마감시키며, 질병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행위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케보키언 박사가 환자에게 염화칼륨을 투입해 심장을 멈추게 해 죽게 한 행위가 바로 적극적 안락사다. 얼마 전 반 식물인간 상태인 딸이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은 아니었지만 간병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한 아버지가 딸의 산소호흡기를 꺼 죽게 한 일은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된다.
반면 품위 있는 죽음을 지향하는 호스피스 의료에서 말하는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란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순간에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기계적 호흡 등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인간조건에 따른 한계의 수용이다. 노화에 따른 자연적 죽음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과 같으며 단지 죽음의 원인이 '노화' 혹은 '질병'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미국.대만 등 호스피스 제도가 정착된 나라들은 죽음의 순간에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기계적 호흡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시행하지 않도록 법률이 마련돼 있으며, 최근 프랑스가 추진 중인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은 바로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법이기도 하다.
이번 국민의식 조사에서도 안락사와 구분해 '무의미한 치료 중단'을 명백히 설명했다. 물론 의학적으로 회복 가능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호흡정지와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있을 때 '의미 있는'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료계에서도 반대한다. 무의미한 치료는 중단하더라도 통증 조절, 우울과 불안에 대한 심리사회적 상담, 그리고 사랑을 나누고 삶을 정리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삶과 죽음의 질을 높이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용어의 혼선은 호스피스 제도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루 속히 개념이 정리되고 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 하루에도 170명의 암 환자와 700명의 가족이 죽음을 직면하고 있으나 이 중 고작 5%만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2주밖에 이용하지 못하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는 누가, 어떤 환자에게, 어떤 의료를, 어떻게 중단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의 절차다. 의료계는 이에 대한 지침과 안전장치를 마련해 종교계.시민단체.언론 등과 깊이 있는 논의를 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삶의질향상 연구과장 -중알일보. 2005.1.27